노환이라는 진단명이 있다.
나는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다. 요양병원이라는 곳이 만성질환자들이 입원하는 병원이다보니 치매와 뇌병변으로 인한 와상의 환자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특히 내가 근무하는 병동은 와상의 환자들이 많이 입원해 있다. 와상!. 와상이란 24시간중 20시간이상을 침상에 누워서 지내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여기에는 자의에 의한 20시간의 누워지냄도 포함이 된다. 에~이, 설마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을 자의로 누워지내는 사람이 있으랴 하지만, 있다. 그것도 멀쩡한 사람이 꼼짝없이 누워서 일어나지 않아 욕창이 생긴 사람도 있다.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병에 걸린것이다. 간혹 심한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으로 인하여 꼼짝없이 20시간이상을 누워지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 마음의 병이 나에게는 없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예전에 '노환'이라는 진단명의 환자를 본 적이 있다. 당뇨 혹은 고혈압이라는 만성병도 없고 심장에 특별한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90세 이상의 고령이라 병원에 입원을 하여 수액치료를 겸하였는데, 그때 내과의사는 진단명으로 '노환'을 기재했다. 난 그때 그 진단명을 한참을 쳐다보면서 '늙는다는 것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병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린 늙는것을 자연적인 현상으로 생각하는 일반인이지만 의료계의 정점을 찍고있는 의사들은 늙는다는 것도 병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씁쓸했다. 누구나 늙어간다는 것은 누구나 병들어간다로 해석할 수 있는 이 진단명을 요즘은 보기 힘들다. 나는 왜 그런지 정확히 알수는 없다.
늙는다는 자연현상을 병명으로 추가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아마도 '사망진단서 때문이 아니었을까'였다. 예전에는 집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고, 아파도 병원에 가보지 못한 분들이 많았던 시절에 집에서 돌아가시게 되면 의사가 방문하여 사망을 확인하고 사망진단서를 발행해야하는데 정확한 병명도 모르고 연세는 80이 넘었으면 평균수명은 지났기에 노환이라는 병명으로 기재하고 '자연사'로 처리하기 위해서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내 결론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니까. 그런데, 요즘은 집에서 사망을 하게되면 경찰이 개입하여 자연사인지 사고사인지 타살인지 자살인지를 따지게 된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자녀들은 병원에 모신다. 일단 돌아가시기 전에 조금이라도 아프면 응급실이라도 이용을 한다. 그만큼 병원의 문턱이 낮아져서 일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요즘 자녀들은 바쁜다. 그것이 또한 연세드신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시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같이 생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질병이 있는 부모님을 혼자 둘 수 없어 요양병원에 모시기도 하고, 심한 치매로 사고의 위험이 있는 경우에도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가 개입이 되어 병원이라는 곳에 입원을 시키고 간병사의 보살핌으로 생활을 하게하는 자녀들의 마음도 꽤나 무거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태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고, 여러가지 이유와 시대적인 필요로 인하여 생겨난 만성질환자들이 입원 대상이 되는 요양병원도 이제는 한국사회의 병원의 일환으로 자리잡은지 꽤나 된다. 어쩌면 그런저런 이유로 인하여 진단명에서 자연히 '노환'을 볼 수 없게 된것인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노환과 와상은 떼어내지 못하는 연인관계일 수도 있다. 싫지만 붙어지내는 원수처럼 나이 들어감이 건강하지 못하게되면 와상이 붙어오는 것이다. 움직일 수 없다는 것과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다른 의미이다. 몸이 움직이지 못한다고 해서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말을 못한다고 해서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잘 안들린다고 해서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앞이 잘 안보인다고 해서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니, 나이들었다고 해서 생각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워서 지낼 수 밖에 없어도 생각은 할 수 있고, 감정이라는 것이 아직 존재하는 사람이다. 가끔 나는 간병사들에게 이야기한다. "말을 못하고 누워있다고 듣지 못하고 화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늙음이 진단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느낌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요사이 많은 사람들이 늙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늙음은, 나이듬은 고칠 수 없는 질환의 하나 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평균 수명이 90세를 넘어선지 오래이다. 곧 100세 시대가 온다고 한다. 그러나 예전의 어느 시점에서는 평균 수명이 60세 였고, 또 70세가 되었고, 80세가 넘으면 장수라고 했다. 나의 할머니도 90에 가까운 나이에 돌아가셨다. 만약 다치지 않았다면 더 오래 사셨을 지도 모른다. 그때 마을장을 치뤘는데 어른 중 한 분이 '호상'이라는 표현을 하셨다. 평균수명은 넘기고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호상'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녀들의 입장에서 좋은 죽음은 없다. 또한 부모님이 100세가 넘었다고 하더라도 '좋은 죽음'으로 치부 할 수는 없다. 나에게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없어지는 일이 어떻게 좋기만 하겠는가?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아무리 싫어하는 부모일지라도 돌아가시면 슬프다. 평소에 살펴보지 않더라도 부모가 돌아가시면 아쉽고, 못해준 일들만 생각난다고 한다.
어제 오랫만에 아빠가 전화를 했다. 받지 못해 나중에 전화를 했더니, 핸드폰을 새로 장만했는데 조작하다가 눌러졌다고 했다. 그 핑계로 이런저런 안부를 물어보고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었다. 나의 아빠도 80을 훌쩍넘기고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 예전, 30년도 전에 내가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아빠가 돌아가실것 같다고 하여 원대한 꿈으로 계획했던 세계여행을 접고 귀국했었다. 그런 에피소드를 뒤로 하고 아직까지 건재하시다. 다행이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원망을 하며 20년을 지냈다. 거의 10년전 쯤에야 내 운명이려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난 역마살을 끼지 않았던 것이다.'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늙음도 정복해야 하는 병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노화를 멈추게하는 여러 연구를 하는 것이 인간의 욕심일까, 아니면 과학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하는 진단명 '노화'가 불쑥 생각나서 이렇게 감상문을 적어본다. ^^
* 2022년부터 시행되는 개정판에서 변경될 내용 중에는 구식으로 여겨지는 용어인 ‘노쇠(senility)’라는 진단을 조금 더 광범위한 표현인 ‘노화(old age)’로 대체하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노화’는 ‘증상, 징후 또는 임상 소견’을 포함하는 진단 분류에 속할 예정이었다. 여기서 결정적인 부분은 신약과 치료법을 등록하는 데 필요한 ‘노화’ 진단과 관련된 질병코드에 ‘병리적(pathological)’이라는 단어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는 노화가 그 자체로 질병이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해석될 수 있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서 발췌)
* 그간 '노화(Aging)'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여겨졌으나, 지난 2018년 세계보건기구가 노화에 '질병코드'를 부여한 것이 올해부터 공식 발효되면서, 이제 노화는 더 이상 불가역적 현상이 아니다.
해외 각국에서는 이미 노화라는 질병에 맞서기 위해 노화의 원인을 연구하면서 노화현상을 지연시키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국·공립노화연구소를 설치하여 노인건강 정보를 도출하고 보급하며, 건강관리 정책을 제시하는 권위 있는 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https://www.medipana.com/article/view.php?news_idx=295935)
글을 작성하고 나서 검색을 해보니 2018년 세계보건기구는 노화에 질병코드(XT9T)를 부과했단다. 난 2018년 이전에 이런 진단명을 봤는데, 그건 한국에서만 사용하던 코드였는가? 의문이다.
한국질병분류코드를 검색하니 '노쇠'라고 나온다. R54, 표제어 노쇠, 영어로 senility, 내가 노화라고 생각한것이 노쇠였다. 한국에서는 이미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었는데 세계보건기구는 21세기에 들어서 질병코드를 부과하다니, 한국의 의료가 앞서간다고 하더니 맞는 말이다. 질병분류도 이미 완결해 놓았다. 이제야 세계는 늙는다는 것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치료해야하는 병으로 인식하는데, 한국은 이미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다는 것이니 얼마나 앞서가는 인식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나라인가. 대단하다.
결론은 노화, 노쇠, 늙음은 더이상 자연현상이 아닌 질병으로 인식하고 치료제를 개발하겠다고 한다. 욕심일까, 과학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럼 나는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하나. 65세에 은퇴하고 60년을 더 살아야 하는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 대표사진은 구글에서 떠도는 사진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