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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야 Jul 11. 2024

침묵

기나긴 여정으로의 긴 침묵을 지키는 간 떨어지는 소리

1.

평소와 같은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어젯밤에 마신 술이 아직 머리를 빠져나가지 못해 어지럽다. 밖이 컴컴하니 어둡다. 알람을 맞춘 기억이 없는데, 알람소리는 어디서 났을까? 생각이 어지럽다. 일어나야 하는데  눈이 떠지질 않고 머리가 어지럽기만 하다. 어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어지러운 건지. 겨우 눈이 떠졌다. 천장이 빙글거린다. 이렇게 어지러울 수가 있나. 근데, 그 알람소리는 어디서 난거지? 빙글거리며 돌고 있는 천장이 낯설다.


어제의 술자리는 협동조합회의의 연장이었다. 조합회의는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공론만 오고 가다 식사로 연결되면 언제나처럼 술자리로 마감을 한다. 이번 조합회의의 안건은 조합에서 운영하는 냉동창고의 대여료가 너무 비싸다는 조합원의 제의로 시작된 냉동창고에 관한 전반적인 검토에 대한 것이었다. 규모가 작지 않은 냉동창고의 관리를 맡고 있던 박과장이 지병으로 사직을 하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이과장이 그 자리를 맡으면서 불쑥 대여료 조정을 해야 한다고 제의하면서부터 이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생각은 여기까지 밖에 할 수 없다. 다시 머리가 빙글거리며 토할 것 같은 느낌으로 식도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고 있다. 화장실에 가서 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켜 보는데, 왈칵 목에서 끈적이는 액체가 올라와 입안에 머문다. 비릿한 냄새와 함께 입안의 액체가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피다. 붉은색이 선명하다. 순간 어지러운 기운과 함께 머릿속의 피도 빠져나가 창백해지는 느낌이다.


2.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없다. 눈을 떴을 때 다시 천장이 빙글거리며 돌고 있다. 어지럽다. 코를 헤집고 들어오는 비릿한 냄새에 다시 울컥 액체가 올라온다. 이번에도 비릿한 냄새와 함께 선홍색의 액체를 쏟아냈다. 다시 머릿속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이 선홍색의 액체가 위장에서 올라온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부터 내려온 듯한 느낌이다. 이렇게 피를 토하다니, 생각을 할 수 없다. 다시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이다. '아, 내가 이러다가 죽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이 나이, 서른일곱이 될 때까지 나는 뭐 했던가. 몇 달 전 건강검진에서 간 수치가 높다고 재검사를 하자고 했다. 내 간은 튼튼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무슨 재검? 그럴 리가 없다. 내 간이 그럴 리가 없다. 그리고는 잊었다. 바쁜 생활 속에서 그렇게 재검은 잊혔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특히 술 마신 다음날은 겨우 추스르고 출근해서는 오전 내내 피곤이 가시지 않은 몸으로 견뎌야 했다. 그런 날들이 연속되며 견디던 중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멈추지 않아 그날 하루를 꼬박 피를 쏟았던 그 코피. 몇 시간 동안 멎지 않아 인근 의원을 들렀을 때, 한 번 더 이렇게 코피가 멈추지 않으면 종합검진을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잊었다. 그 코피도, 종합검진도.


지난주, 부서 회식에서 마신 술은 몇 잔 먹지도 못했는데 취해서 비틀거렸다. 이렇게 취할 내가 아닌데 그렇게 취하여 혀가 마비되어 발음도 잘 되지 않아, 2차는 진행도 못해 보고 후배의 배웅을 받으며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어지러워 일어날 수가 없다. 선홍색의 액체가 다시 올라온다. 이제는 무언가 코에서도 흘러나오는 느낌이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막고 머리카락을 적시고 있다.


3.

엄마가 보고 싶다. 나를 버린 엄마가 왜 갑자기 생각나는 걸까? 엄마, 어머니.

중학교를 올라가던 그 해, 엄마는 집을 나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가 없는 집은 먹을 것이 없었다. 술만 마시는 아빠와 말 없는 형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 가서 먹는 급식이 유일한 끼니가 되는 날들이 많아지던 어느 날, 경찰이 찾아와 형과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에 누워있던 아빠의 얼굴은 푸르죽죽한 형광색이었다. 그렇게 아빠는 길에서 쓰러져 죽은 자로 돌아왔다.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아빠의 하나뿐인 혈육이라는 고모는 형과 나를 고모가 살고 있는 시골 마을로 데리고 갔다. 바닷가 마을에서 뱃일을 하는 고모부에게서 형과 나는 뱃일을 배웠다. 판장에서 생선을 팔고 나면 형과 나의 통장에 얼마씩의 돈을 넣어 주었다. 고모부는 항상 '너희 밥값 제하고 주는 거다.'라고 했고, 주말 새벽에는 형을 데리고 바다로 나갔다. 말없는 형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배를 탔다. 그러더니 어느 날 큰 배를 타고 나간다고 했다. 선금을 받아서 내 통장으로 절반을 넣어주었다. 나더러 대학을 가야 한다고 했던 것이 그때쯤이었다. 형은 일 년 만에 돌아왔고 나는 고3이 되어 대학을 준비했다. 고모부는 형을 기특하게 생각하는 듯 가끔 형 칭찬을 했다. 고모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었다. 나는 만난 기억이 없는데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 고모부와 똑 닮은 눈매에 고모의 입모양을 하고 있다. 아주 어릴 때 기억도 없는 누나는 아프다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고모부는 형을 아꼈다. 고모부와 고모는 여느 집 아이들처럼 우릴 대했다. 가끔 아빠와 엄마에 대한 고모의 푸념만 아니라면 내가 고모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고모는 스스럼없이 형과 나를 대했다.

그 지역의 대학에 입학한 나는 형과 고모부의 자랑이 되었다. 입학식이 끝난 4월 형은 원양어선을 탄다고 선금을 받았다며 내 통장에 2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넣었다. 그리고 매달 100만 원가량의 돈이 통장으로 입금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난 2학년 가을 학기에 형이 탄 배가 사고가 났고, 몇 명의 사망자 명단에 형의 이름이 있었다. 고모와 고모부는 부산에 있다는 한국지사를 방문하여 소식을 알아보았다. 서류상의 가족은 나밖에 없어 형의 장례절차와 합의금 등의 절차는 고모부의 지도하에 내가 진행하였다.

형이 보고 싶다. 나는 형의 죽음값으로 대학을 마치고 현재의 직장에 입사했다. 나는 형의 죽음값으로 집을 마련하고 이렇게 잘 살았었다. 형은 죽음으로 실의에 빠졌을 때 고모부는 입대를 권했다. 형을 기억해야 했건 나는 고모부의 의견에 따랐고 입대 시부터 나는 관심병사여야 했다.


형이 보고 싶다. 말이 없던 형은 원양어선을 타면서 돌아오면 둘이 독립하자 했다. 고모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사는 걸 보여주자 했다. 형도 없이 나는 고모부에게 잘 사는 걸 보여주고 있다. 명절이면 고모와 고모부를 챙기고 자주 통화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를 버린 엄마와 말이 없던 형이 보고 싶다.


또 다른 핏덩이가 머리에서 입으로 흘러나온다. 뇌가 창백해지며 눈앞이 하얗게 변한다. 이마에 있던 혈액이 모두 코로 모이더니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덩어리와 만나 목구멍으로 토해진다. 끈끈한 혈액의 뜨거운 기운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몸이 바닥으로 꺼지고 있다. 점차 바닥으로 가라앉는 몸뚱이의 감각이 점점 아득해진다. 형아 나 데리러 와라. 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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