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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야 Jul 04. 2024

103동 508호

그 노인의 어느 날.

1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노래를 부를 수가 없어. 아니 말도 할 수 없어.’ 아무리 입을 벌려 말을 뱉어내 보려 하지만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음악은 지속적으로 흐르며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재촉하는 듯하다. 스탠드 마이크가 점점 커지더니 어느새 보이지 않고 스탠드만 기둥처럼 앞에 놓였다. ‘여보세요. 아무도 없나요?’ 누군가 있을 것 같아 소리 내보려 하지만 여전히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는 공간의 기둥 앞에 나 혼자 섰다. ‘어떡하지. 꿈이면 깨어야 하는데.’ 순간, 음악이 들린다.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울린다.

눈앞의 천장에는 불빛도 없다. 아직 캄캄한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방 안의 공기가 싸늘하지는 않다. 이 어둠 속에서 울리는 알람은 언제 들어도 깜짝 놀라는 교향곡이다. 이런 음악은 언제 저장한 거야. 기억을 더듬으려 눈을 깜박거려 본다.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잡으려고 하지만 팔이 들어지지 않는다. 아, 왜 이렇게 기운이 없는 거야. 생각처럼 팔을 움직일 수가 없네. 저 시끄러운 소리는 언제 꺼질 건지. 가만, 휴대전화가 어디에 있는 거야. 고개를 들어 휴대전화를 찾아보려 하지만 머리를 조금 들어보는 것도 힘겹다. 내 몸이 내가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그냥 그대로 있자. 가만히 눈을 감는다.


오늘도 나는 혼자 눈을 떴다. 아내가 암으로 고통받다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났다. 나는 혼자 눈을 떠야 한다는 사실에 힘들어하며 3번의 계절을 보내고 해가 바뀌면서 아내가 없는 현실에 점점 우울해지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그렇게 아내의 첫 번째 기일에 딸과 사위가 보는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육십 셋이라는 젊은 나이도 아깝고, 혼자라는 내 처지가 더 처량하다. 낡은 주공아파트는 나를 닮아 더 낡아버린 듯하고, 청소라는 건 할 줄 모르고 차려주는 밥상만 받았던 나는 혼자 차려먹는 밥상이 더 서럽다. 늙으면 수발받으려고 젊은 여자와 결혼한 건 아니지만 조금은 그런 계산도 없지 않았다. 내가 70이면 아직 62인 아내가 내 수발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튼튼하게 보이던 아내는 언제부터인지 모를 병을 안고 살아오고 있었다. 딸아이 결혼을 앞두고 무슨 맘인지 종합건강검진을 하겠다고 나서더니 덜컥 암진단을 받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하루아침에 생길 수가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아프다는 이야기도 없이 1년을 지내던 어느 날 병원을 가봐야겠다고 했다. 아파서 잠을 잘 수 없다고, 그때서야 아내가 암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이 새삼 기억이 났다. 그렇게 아프다고 하더니 어느 날 입원을 했다. 그 후로 아내는 점차 야위어 가더니 어느새 머리카락이 빠지고 많이 아프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딸아이가 들었다는 보험으로 간병인을 쓰면 된다고 나더러는 간병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70이 넘어버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하루에 한 번, 아내를 방문하여 한두 시간가량 같이 있어주다 천천히 걸어 집에 와서 딸과 사위가 준비해 둔 밥상을 받으며 지냈다. 그러다 사위가 본사로 발령을 받아 떠나고 나서는 딸이 챙겨주는 음식들을 소화시키며 세월을 보냈다. 아내의 병세가 심해진 것도 그때쯤인듯하다. 사위가 본사로 떠나고 얼마 되지 않은 새벽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위독하다고 딸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면서 아내를 위해서는 그렇게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내는 그 새벽에 정신을 놓아버리더니 이틀을 더 그렇게 헤매다가 숨을 끊었다. 장례식 내내 먼저 떠난 아내보다는 혼자된 내가 더 처량했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하지만 70이 넘어버린 내가 어디 가서 무슨 재미를 볼 수 있다는 건가. 그렇다고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다. 직장 따라 들어온 이 소도시에서 열심히 직장 생활하다 정년이라는 것을 앞두고 회사를 정리하고 시작한 사업은 잘 되지 못했고, 이럭저럭 집 하나만 남은 상태로 노년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아내는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집안일은 하나도 할 줄 모르는 내가 혼자되어 딸아이도 사위 따라가버린 상태에서 혼자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 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들이라도 하나 있어야 하는데, 나는 복도 없어 딸만 둘이다. 큰딸 아이는 이 도시에 직장을 구하고 여기서 사위를 만나 아내가 아프기 전에 결혼을 했다. 일찍 결혼한다고 그렇게 구박을 주었어도 스물일곱이면 그렇게 일찍도 아니라고, 사위가 맘에 들었던 아내는 그렇게 큰딸 아이를 보냈다. 작은 딸아이는 서울의 무슨 분장아카데미 어쩌고 하는 데를 다닐 거라고 고등학교 때부터 아내랑 죽이 맞아 떠들더니 영국이라는 곳에 유학을 간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더랬다. 그래도 실력이 있는지 그 아카데미라는 데서 장학생으로 영국에 보내준다고 훌쩍 떠나더니 프랑스로, 이탈리아로 떠돌고 있다가 제 어미가 아프다니 한 번 얼굴 내밀고는 바쁘다고 가더니 제 어미 장례식에 외국 남자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맘에 안 드는 것들. 아내는 딸들과 북적거리며 잘 지냈으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딸들은 아내랑 잘 지내고 나는 그것들이 불편하지 않는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나이 들어 보니 어느덧 딸들은 다 커서 내 곁에 없고, 아내도 영영 떠나버렸다. 아내의 장례식 이후에도 나는 아내가 없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눈을 뜨면 아내가 밥을 차려 놓고 나를 부르러 올 것 같아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아내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울적해졌다. 그렇게 아내의 첫 번째 기일이 지나고 아내가 없다는 생각이 현실이 되었다. 아내가 없다. 나는 아내가 없는 홀아비가 돼버린 것이다. 아내가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그때쯤이었다. 그렇게 가려면 좀 더 일찍 가던가 어중간이 70이 넘은 나를 혼자 두고 가다니. 괘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늙어 힘없고 거동하기도 불편한 나를 두고 가다니, 괘씸한 것. 그때부터 딸들도 괘씸해졌다. 아내가 있을 때는 연락도 자주 하더니 큰딸 아이는 사위 따라가더니 이제 연락도 잘 안 한다. 작은딸 아이는 원래 연락 잘 안 하고 지내는 아이라 그러려니 한다. 이럴 때는 아들 녀석이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데. 참 내 인생도 불쌍하게 되었다. 젊어 가족 뒷바라지 한다고 열심히 일하고 은퇴하여 사업한다고 하다 날려 먹고 이제 조용히 아내의 수발받으며 지내려 했더니 아내는 뭐가 급하다고 먼저 가버리고...


방안에 햇살이 가득하다. 언제 씻었는지 알 수 없는 이불에서 나는 냄새인지, 언제 감았는지 알 수 없는 내 머리카락에서 나는 냄새인지, 아니면 언제 갈아입었는지 기억도 없는 내 옷에서 나는 냄새인지 알 수 없는 쾌쾌한 냄새가 코를 스친다. 오늘이 며칠인지 알 수 없다. 덥지 않은 걸 보면 여름은 아니다. 춥지도 않으니 겨울도 아니다. 비교적 높지 않은 주공아파트의 창으로 들어오는 하늘의 색은 오늘도 파랗다. 햇살 비추는 방안에는 먼지가 햇빛 따라 피어나고 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팔을 들어 보려 하지만 이내 포기한다. 돌아눕고 싶은데 돌아눕는 게 힘들다. 이제는 혼자 돌아눕지도 못하고 팔을 뻗지도 못한다. 아랫배의 묵직함이 느껴지지만 언제 소피를 봤는지도 기억이 없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한심하다. 소리를 내어보려 하지만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인상을 써보자. 이마가 찡그려지는 게 느껴진다. 얼굴근육은 움직여지는구나. 눈을 가만히 감아본다. 눈은 감아지고 떠지는데, 입안이 말라서 혀가 굳어버린 건지 움직이지 않는다. 목소리도 안 나온다. 소리를 질러볼까? 쓸데없이 듣는 사람도 없다. 며칠째 방문하는 사람도 없다. 아, 나를 방문하는 사람이 언제 있었는지 생각해 본다. 아파트 반장이 가끔 와서 안부를 물어봐 주기는 하지만 요 근래 본 기억이 없다. 저번에 방문했을 때 어디 간다고 얼마동안 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때문인가?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사와 봉사자들이 가끔 들러 도시락을 주고 간다. 며칠에 한 번씩 온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기억에 없다. 이렇게 누워있으니 기억이 점점 가물거린다. 날짜도 모르겠다. 시간도 모르겠다. 내가 누운 곳이 우리 집인지도 알 수 없다. 졸다가 자다가 깨었다가를 반복한다. 가끔 배가 고프기도 한데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화장실 가기 위해 일어나서 움직이기를 했는데 어느 순간, 일어설 수가 없다. 그리고 소변보고 싶은 생각도 느낌도 없다. 이렇게 꼼짝을 못 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도 알 수 없다. 그렇게 또 눈을 감는다.


2

아내가 앞서서 걷고 있다. 뒤를 따라가던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어디 가는 거야?” 내 물음에 아내가 뒤를 돌아보고 웃는다. 그리고는 다시 앞서 걷는다. “당신, 어디 갔다 이제 와서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아내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걷다 문득 아내의 머리가 없어졌다. 파마로 곱슬한 뒤통수가 어느새 하얗게 변하더니 사라져 버렸다. 머리가 없는 아내의 등판이 눈앞에서 걷고 있다. “여보,” 떨리는 목소리로 불러본다. 순간 형체 없는 머리가 돌아본 느낌이다. 그러나 무섭지 않다. 이상하지도 않다.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면서 고개를 떨구고 걷고 있는 발등을 내려다봤다. 발이 창백하다. 창백하여 거의 투명해진 발이 바지밑에서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바닥에 딛는 느낌도 없이 걷고 있다. 이렇게 계속 따라가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고개 들어 아내를 찾았다. 아무도 없다. 혼자 덩그러니 하얀 길 위에 남겨졌다. 두리번거리는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하얀 공간이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에 나 혼자 섰다. 어디로 갈까?라는 생각을 하며 가만히 섰다. 얼마가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났다. 웅성이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두리번거리지만 소리가 들리는 곳은 알 수 없다. 답답하네.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그냥 가만히 섰다. 얼마의 시간이 또 지났는지 모르겠다. 발 앞에 길이 생겼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리는 왜 또 이렇게 무거운 거야. 고개를 들어보니 옛날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가 눈앞에 있다. 엄마 손잡고 입학식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국민학교 교복, 까만 웃옷에 하얀 카라를 대고 가제손수건을 왼쪽가슴에 옷핀으로 꽃고는 엄마 손을 잡고 입학식에 모인 아이들. 우리 엄마도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아내가 나를 보고 웃는다. ‘여보, 당신이 왜 여기 있어.’ 말이 안 나온다. 아내가 웃으며 손을 내민다. 무거운 팔을 들어 아내의 손을 잡았다. 갑자기 몸이 가벼워진다. 공중에 뜬듯한 느낌이 아주 상쾌하다. 아내가 웃는다. 나도 웃었다. 그리고는 기억이 끊어졌다.


 경비실의 인터폰이 울린다. 103동 부녀회장이다.

“우리 동 508호 혼자 사는 할아버지 혹시 어디 갔나요?”

“아니요. 밖에 안 나온 지 꽤나 오래되었어요? 저번 달에 회장님이 집에 갔을 때 이제 기운이 없어 화장실가기도 힘든 것 같다고 한 뒤로, 소식 들은 것 없어요.”

“혹시 그 뒤로 따님들 왔다 간 적 있나요?”

“글쎄요. 내가 알기로는 없는데요.”

“제가 어제부터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어요. 안에 인기척도 없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그래요? 문 따고 들어가 볼까요?”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저번에 너무 기운 없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어요.”

“알겠습니다. 마스터키 가지고 올라갈게요.”

마스터키를 가지고 올라간 경비의 눈에 부녀회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508호 앞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508호 노인네는 경비보다 몇 살 많은 노인으로 2년쯤 전에 부인이 암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적적하게 지내고 있어 부녀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여 안부를 챙긴 지 거의 6개월 정도 된다. 지난가을까지 경비실 앞을 지나가거나 아파트를 한 바퀴씩 돌고 하던 그가 겨울이 접어들면서 집 밖 출입을 안 하게 되었다. 겨울이 들어서면서 혼자 사는 노인들의 고독사가 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부녀회에서 단지 내의 혼자 사는 노인들을 조사하여 동사무소와 협력하여 방문스케줄을 작성하여 안부 확인을 하고 있다. 이 아파트 단지 내에 혼자 사는 노인은 몇 되지 않는다. 그중 남자노인은 101동에 두 명, 103동에 한 명 그리고 105동에 한 명 그렇게 4명이 전부이다. 요즘은 거의 혼자 사는 노인들은 자녀들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보내고 있는 실정이라 노인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남자노인들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거동이 불편하면 자녀들이 억지로라도 시설로 보내는 추세라 거절할 수 도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 그 노인은 딸들이 외국에 있어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동사무소에서도 겨울이 오기 전에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보내려고 수속을 밟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노인이 인기척이 없다고 부녀회장이 걱정을 하는 것이다. 경비를 재빨리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다. 약간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부녀회장은 신발을 급하게 벗고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안방 문을 연다. 뒤에서 지켜보던 경비의 눈에 이불밖으로 삐져나와있는 발바닥이 보였다. 새파랗게 변색된 발바닥을 보는 순간, 아찔해졌다. 경비는 재빨리 인근 지구대의 전화번호를 누르며 현관문으로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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