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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야 Jun 27. 2024

왜, 내가..,

<왜, 내가> 6. 104자1004

<왜, 내가>  

6.

기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시간쯤 후면 그녀가 있는 곳에 도착할 것이다. 어제 그녀가 부산에 갔다 와야 한다고 전화를 했을 때는 장난 삼아 조심해서 갔다 오라는 이야길 했다. 부산에 간다는 이유를 알았을 때, 그녀의 가족이야기를 잠깐 했을 때는 센척하는 그녀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녀의 가족이야기를 살짝 내뱉었다는 사실에 그녀가 성큼 다가와 내 옆에 앉은 느낌을 가졌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의 사투리 섞인 담담한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나를 당황하게 했다. “안은정님 지인 되시죠? 안은정님이 고속도로에서 사고로 저희 응급실에 있습니다. 가족분들에게 연락이 안 되어 지인분에게 연락드립니다. 방문하실 수 있나요?” 그렇게 시작된 통화에서 그녀가 대구의 D병원 응급실에 있고, 고속도로에서의 교통사고로 그곳에 도착했다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 목숨이 위급할 수도 있다는 말에 심장이 배꼽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 찾아본 뉴스에서 오늘 새벽 경부고속도로에서 화물차와 버스 두대 그리고 승합차의 4중 충돌사고가 있었고, 이차 사고도 있었단다. 그중 한 버스에 그녀가 타고 있었다. 화물차 운전자를 포함하여 3명이 사망했다고 뉴스에서 보도하고 있다. 그녀의 목숨이 위급하다고 했으니 아직 사망자에 포함된 것은 아니다. 서둘러 동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친구 놈이 운전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소식 듣고 운전하다가 사고 나기 십상이라고, 그래서 자신이 운전해 주겠다고 했지만 기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서울역에 도착하여 가장 빠른 시간의 기차표를 끊고 출발하기까지는 30분이 걸렸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동생의 사고소식을 전해 들을 때도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여동생이 사고를 당하던 그날의 소식은 동승인이 가지고 있던 사회적 배경 때문에 전화가 아닌 사람이 직접 전달한 소식이지만 그녀의 사고 소식은 병원에서 직접 온 전화이고 뉴스에 나온 소식이라 전화를 받은 이후 어딘지 불안한 느낌이 지속적으로 따라다니고 있다.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녀가 부산행을 결심한 이유가 아버지의 마지막을 확인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녀는 부산에 도착도 못하고 대구에 머물고 있다. 그것도 의식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도대체 의식이 확인되지 않는 상태는 어떤 상태인지 답답하다. 병원 놈들은 말을 왜 애매하게 하는 건지. ‘아이 씨’ 답답한 마음의 소리를 뱉어낸다. 

그 병원여자가 또 뭐라고 했는지 생각해 보자. 그래 척추뼈가 어떻게 되었다고 했어. 부러졌다고 했는지 부러진 것 같다고 했는지 모르겠는데, 척추가 손상이 되었다고 했다. 손상? 그건 또 무슨 말이지? 호흡과 맥박은 치료를 통해 돌아왔는데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최대한 빨리 오라 했고 가족 연락처를 물었어. 나도 모른다고, 알고 싶다고 나도. 새어머니에게 연락이 갔을까? 말투로 봐서는 새어머니 하고 사이가 안 좋아. 아버지 죽음을 확인하러 가겠다고 말할 때 목소리에 뭔가 비장함이 있었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야. 아버지가 죽었는지 확인하고 올 거라 했어. 무슨 뜻일까? 아버지가 안 죽었다는 건가? 아니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보겠다는 말일까?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새어머니가 뭔가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 했는데, 부산에 도착도 못하고 대구에서 목숨이 간당간당하구나. 경북 사투리는 확실히 애매해. 항상 내용이 끝나지 않은 느낌을 준단 말이지. 그래서인지 전화 목소리로는 이 사고가 끝나지 않은 애매한 느낌이야. 뭔지 모르겠지만 불안해. 은정일 보고 나며 부산에 가야 하나?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데, 아마도 그 집 식구들은 내 존재도 모를 거야. 그런데 가야겠다는 생각은 뭐지? 난 아버지 성함도 모르는데. 은정인 얼마나 다친 거야. 가슴이 답답해지네. 운전했으면 사고 날 뻔한 게 맞을 거야. 느긋해지자. 침착해지자. 숨 한번 쉬고, 그래 아버지 장례식장에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은 오지랖이야. 도대체 얼마만큼 다친 거야? 얼마나 다쳤으면 그런 전화를 하는 거야. 동생은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튕겨나가 다리뼈와 갈비뼈가 부러졌어. 다행히 헬멧을 쓰고 있어 머리도 안 다쳤고 척추손상도 없어어. 그만한 사고로 그 정도 다친 거는 행운이라고 의사가 말했어. 동생이랑 있던 놈은 헬멧 쓰고도 머리가 다쳐 수술했지. 은정이가 안전벨트를 했을까? 그 성격으로는 틀림없이 안 했을 거야. 자려고 야간버스를 탄다고 했으니 틀림없이 좌석을 젖히고 안전벨트는 풀었겠지. 그래서 더 많이 다쳤을지도 몰라. 틀림없이 그랬을 거야. 도대체 사고는 왜 난 거야. 화물트럭 운전자가 졸았다고 하던데, 화물차는 조심해야 해. 특히 밤에. 졸리면 자다 가지. 에이, 화나네. 근데, 가족이랑 연락이 안 되었으면 어떡하지. 내가 처리해야 하나? 어쩌냐. 나는 연락처도 모르는데. 만약 죽으면 어떡하지? 아이 씨, 무슨 그런 생각을,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가서 보고 결정하자. 아직 죽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잖아. 에이. 나이 드니 별 생각을 다해. 일단 가서 보고 결정하자. 병원 놈들은 최악을 이야기한다고 동생도 그랬잖아. 정신 말짱한 사람 눕혀 놓고 별 이야길 다 했다고. 아마도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 가서 봐야 알지. 그때까지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살짝 눈을 감았다. 주위의 소음이 귀에 들어왔다. 평일 낮인데도 기차는 빈자리가 거의 없다. 다행히 옆자리가 비어 별 방해를 받지 않고 있다. 얼마 지나 동대구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다. 크게 숨을 내쉬고 일어나 입구 쪽으로 걸었다. 그때, 주머니의 전화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꺼내든 전화에는 053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찍혀있다. 뭐지? 하는 생각과 함께 통화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안은정님 지인 되시죠? 안은정님 혈압이 떨어져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습니다.” 목소리에 약간의 다급함이 묻었다. 

“지금 대구에 도착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응급실로 오시면 됩니다.”

전화를 끊고 택시 승강장으로 뛰었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만 머리속에 돌고 있다. 택시승강장에는 남자 한 명이 택시에 타고 있다. 두 번째 택시의 문을 열고 엉덩이를 들이밀며 “D병원 응급실이요.”라는 목소리의 떨림이 기사의 고막을 울리고 문을 닫음과 동시에 택시가 출발한다. “빨리 가 주실 수 있나요?” 재촉하는 심정을 아는지 기사는 짧게 대답하고는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은정아, 내가 갈 때까지 버텨야 해. 내가 가고 있다. 가더라고 나 보고 가라. 

남자의 등은 좌석에 붙어있지 못하고 앞으로 쏠리며 앞 좌석 등받이를 쥐고 있는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정면을 노려보는 남자를 실은 택시꽁무니 노란 번호판의 ‘104자 1004’가 흔들리고 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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