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5. 야간버스
5.
야간버스는 오랜만이다. 바깥의 어둠 속,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의 불빛들과 창에 비친 내 모습. 이상적이지 않지만 모른척하거나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좋은 환경이다. 이번 부산행이 그 가족들과의 마지막 대면이 되길 바라는 내 마음을 아버지도 이해하시리라 짐작한다. 아니 이해해야만 한다. 그들과 나를 이어주던 연결고리인 아버지가 없어져버린 지금, 아무도 나를 보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참석하지 않아도 무방한 방문이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그가 정말로 사진으로만 존재하는지 궁금해졌다. 그의 장례식은 어떤 모습일까?
부산까지의 여정에 버스를 선택한 것은 흔들리는 어둑한 버스에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려서 맞이할 상황이 짐작이 되어 가는 동안만이라도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고, 기차에서의 부산함으로 피곤해지고 싶지 않았다.
창밖의 고속도로는 낮과는 다른 어둠을 담고 지나가고 있다. 그 어둠의 먼 곳에서 빛나는 인간의 보금자리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이제 나는 정말 혼자인가? 그가 있거나 없거나와 상관없이 내 생활은 그렇게 흐를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던져놓은 나를 보살펴 준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던 사람이다. 그의 둥글고 넓적한 얼굴에서 가끔씩 보이던 피곤함이 나의 존재였다. 그에게 나는 그런 피곤함을 제공하는 존재였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나는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내 행동과는 다르게 난 자꾸만 그에게서 달아나고 있다. 그의 죽음이 나에게는 잘된 일일까? 염치가 없는 나는 그의 죽음이 내 인생을 해방시키는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에 기쁘기까지 하다. 가슴 한쪽에 남아있는 양심이라는 것이 그의 죽음은 슬프지만 내 인생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부산 갔다가 와야겠어.”
“왜? 무슨 일이야?”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그래? 그럼 갔다 와야지. 나도 갈까?”
“아니, 나 혼자 갔다 올 거야. 엄마가 새엄마라서.”
“……, 몰랐어.”
“내가 말 안 했잖아.”
“너, 괜찮은 거지?”
“응. 괜찮아. 아버지랑은 정도 별로 없었어. 그래도 갔다는 와야 할거 같아.”
“오늘 가?”
“응, 야간버스로 갔다 내일 야간버스로 오려고.”
“조심해서 갔다 와.”
그의 말투에는 걱정이 살짝 담겼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 전을 기억해 낸 듯한 말투였다. 그의 걱정이 나를 향한 것임을 잘 안다. 하지만 그 걱정만큼 나에게 아버지의 자리는 크지 않다. 혼자 지내면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나에게 그냥 아는 사람 정도이다. 딱히 보고 싶지도, 생각나지도 않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다. 나에게서 어머니라는 존재를 없애버리고 그 자리를 돈이라는 존재로 메꾸어준 사람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내가 어떠한 요구를 한다고 해도 거절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가 죽었다. 난 그의 죽음을 확인하러 가는 것이다. 정말 존재가 없어져 버린 것인지, 그래서 나에게 돈이라는 존재가 없어져 버린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아프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나에게 그의 존재가치는 없어져 버린 것이다.
불빛으로 훤한 톨게이트를 지나니 고속도로의 어둠이 버스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혼자 앉은 좌석은 충분히 넓고 충분히 아늑하다. 가지고 온 얇은 무릎담요를 가슴까지 끌어올리고 좌석을 젖혀 가만히 눈을 감는다. 이제 부산까지 그냥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도착할 것이고, 그럼 나는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그의 부인과 아이들에게 도도한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보며 나는 그들과 다른 종류의 사람임을 알려주고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그럼 유언장이 공개되기 전까지 나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유언장이 없다면 내 몫으로 주어지는 유산을 받으면 될 것이다. 법적으로 까다로운 일이 있다면 박변이 알아서 해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나에게 돈을 남기고 존재를 거두는 것이다. 눈을 잠고 잠 속으로 빠져들어 보려고 천천히 숨을 쉬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 조용히 깔리는 소음이 아득해지길 바라며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뱉었다.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며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느낌이다. 주위가 싸아하니 조용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느낌이 없어지는 것 같다. 눈을 뜨려고 하는데 안 떠진다. 생각을 해보려고 하는데 생각이 안된다. 주위는 조용하고 내 몸은 아직 공중에 떠있다. 눈을 다시 떠보려고 힘을 준다. 눈이 안 떠진다.
갑자기 주위가 소란해졌다.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와 사람들의 소리가 갑자기 스피커에서 들리듯 큰 소리가 들린다. 너무 갑자기 시끄럽다. ‘눈을 떠야지’하는 생각은 아까부터 했는데 왜 눈이 안 떠질까? 어떻게 된 것일까? 주위는 또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조용히 좀 하세요. 머리가 너무 아파요. 그렇게 떠들고만 있으니 시끄러워요. 속으로 소리쳐 보지만 목소리도 안 나온다. 몸의 감각도 없이 공중에 떠있는 이 느낌은 아까부터 계속되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봐요. 여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내 말이 들려요?” 나를 부르는 소리일까? 손을 들어 보려고 손을 움직여본다. 상상으로는 손을 올린다. 그리고 소리도 내본다. ‘눈이 안 떠져요.’ 손을 허공에 대고 젖고 있다. 그런데 내 손에 대한 느낌이 없다. 내가 손을 흔들려고 하고 손을 흔드는 상상을 해보지만, 손을 흔드는 감각이 없다.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눈도 떠지지 않는다. 어떻게 된 것인가 곰곰 생각해 본다. 내가 어디에 있지? 내 마지막 기억이 어딘지 생각하려고 애쓴다. 내가 어디를 가고 있었나? 여기가 어디일까? 갑자기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책상에 귀를 대고 있을 때 책상을 통해 들리는 소리처럼 낮게 깔리는 소리가 귀속의 고막을 울린다. 사람들의 부산한 발자국소리가 귀속으로 천천히 들어온다. 아, 내가 어디에 있는 걸까?
갑자기, 내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난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고 있었다. 어둑한 차창밖을 보면서 눈을 감았고 잠이 살짝 들었다. 떠지지 않는 눈을 뜨려고 눈꺼풀을 계속 움직여본다. 누군가 내 얼굴을 만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눈꺼풀을 벌려 불빛을 비춘다. 나는 눈알이 아파와서 눈을 감고 싶다. 불빛은 이내 사라지고 어둠을 배경으로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말이하고 싶다. 머리가 아파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요. 눈꺼풀에서 손이 떼어지자 내 눈이 다시 감겼다. 그리고 부산한 소리가 들린다.
“여기 퍼필 리플렉스 없고, 비피 70대. 하트레이트 40대. 호흡 불안정. 씨코드 인져리 의심. 브레이스 하고 3번 앰뷸런스요.”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 여전한 내 몸이 얼굴 아래에 있나 보다. 턱밑으로 무엇인가 와닿는 감촉이 귀아래에까지 온다. 내 얼굴이 공중에서 움직이고 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야 한다.
어떻게 된 걸까? 다시 생각해 보자. 나는 버스를 타고 어딜 가고 있었어. 정신이 아득해지려고 한다. 주위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어딘가의 실내로 들어왔다. 공기가 따뜻하다.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 말이 들리나요?” 들려. 너무 크게 말해 귀가 아플 지경이야. 그렇게 말하려고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눈 떠 보세요.” 나도 눈 뜨고 싶어. 그런데 안 떠져. 왜지? 내가 알고 싶은 거야. 왜 눈이 안 떠지는 거지? 내가 어디 가고 있었나? 그래 부산행 야간 버스에 타고 자려고 눈을 감았어. 그리고 그다음이 지금이야. 내 몸은 공중에 떠 있는 느낌만 있고, 손을 움직이는 느낌도 없고 말도 안 나와. 그리고 눈도 안 떠지고, 생각도 안돼.
‘은정아. 은정아.’ 누군가 날 부르고 있다. 누구세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있는 느낌이다. 주위가 따뜻해지며 따스한 기운이 주위를 감싸고 있다. ‘은정아. 은정아. 은정아.’ 주위가 밝아지는 느낌이 든다. 바다를 옆에 두고 능선을 이루는 나지막한 언덕이 포근한 느낌의 그림 속 같은 풍경에서 누군가 웃고 있는 느낌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제외한 모든 것이 하얀색으로 칠해진 그림 같은 느낌. 어디서 본 듯한 풍경과 느낌. 길쭉하고 하얀 사람의 형체, 얼굴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느낌으로 부드럽고 포근한 분위기, 지구가 아닌 느낌과 따뜻함이 섞인 익숙하지 않지만 포근한 느낌. 어딘지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이 풍경. 번뜩 얼마 전의 꿈속 풍경이라는 생각에 눈동자가 마음대로 움직인다. 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얼굴이 즐겁다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하얀 형체의 사람이 손을 들어 하얀색의 포장된 길을 가리킨다. 햇볕에 반사된 바닷물이 유리알같이 반짝이며 포장된 길을 더욱 하얗게 만든다. 따뜻한 햇빛과 알 수 없는 즐거움에 기뻐하는 마음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하얀 사람의 형체는 나에게 손을 내민다. 포근함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나지막이 자리 잡은 언덕이 하얀 손이 가리키는 곳의 끝에 나타났다. 하얀 도로의 끝에 초록의 선명함을 가진 나지막한 언덕의 중턱까지 쭉 연결된 어두운 색의 돌계단이 보인다. 꿈속에서 혼자 올랐던 그 계단이다. 꿈속의 풍경이 지금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 꿈이 나의 길을 알려주는 꿈이었다는 생각에 머리털이 쭈뼛해지는 느낌이 들며 감각 없는 목 아래로 소름이 돋아옴을 느꼈다.
아니야. 난 그 언덕을 오르지 않을 거야. 여기서 이곳의 이 포근함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 하얀 형체는 나를 돌아본다. 하얀 얼굴의 눈이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코가 나오고 입이 말을 한다.
‘은정아. 은정아.’ 아, 아버지 아버지의 목소리네요. 그래. 아버지의 얼굴이네요. 그래. 난 아버지 좋아하지 않아요. 알아. 그래도 네 아비야. 그렇기는 해도 아버지는 나에게 남보다 못해요. 그래도 네 아비다, 그건 바꿀 수 없어. 그래요, 난 안 가겠어요. 여기 있으면 안 돼, 가야 해, 그 남자가 너를 기다리잖아, 여기는 내가 있을 거야, 나는 돌아갈 길이 이미 없어졌어, 저 길은 너의 길이야, 계단을 올라가야 해, 그래서 여길 떠나는 거야. 그런데 나는 가기 싫어요. 아버지와도 있기 싫지만 저 언덕을 오르고 싶지도 않아요. 은정아, 가야 해, 가라, 이제 가야 해, 계단이 없어지기 전에. 싫어요, 안 가고 여기 있을 거예요. 은정아, 가야 해. 싫어요. 가야 해, 은정아. 싫어요 가지 않겠어요, 그냥 여기 있을 거예요. 가라고 하지 말아요. 여기 있어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그래도 여기 있을래요. 나는 그냥 여기서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