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4. 그집남자
4.
전화벨이 울린다. ‘그집남자’라고 쓴 이름이 떴다.
오, 궁금하고 초조했던 그의 전화다. 그가 ‘밥 먹자’라고 하면 항상 그의 집에서 그가 준비한 음식을 먹었기에 난 그를 ‘그집남자’라고 저장했다.
일주일 전 그의 집에서 밥을 먹던 중 경찰과 함께 나가서 연락이 되지 않았던 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여보세요”
나의 느긋한 목소리에는 그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는 아직 정겨움이 묻어있다.
“그동안 걱정했지?”
“응”
“미안해, 연락할 상황이 아니라서 그렇게 되었어”
“응, 그래. 동생은?”
“이제 많이 좋아졌어.”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피곤한 기색이 목소리에도 묻어왔다. 뭔가 말 못 하는 상황이 있군.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내 목소리는 담담하고 명량하게,
“동생이 다친 거야?”
“내가 말 안 했어?”
“응.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갔잖아.”
“그래, 말 한 줄 알았네”
“정신없었구나.”
“그랬나 보다.”
“많이 다친 거야?”
“응, 오토바이사고”
“엥? 그럼 많이 다친 거네”,
“헬멧 쓰고 있어서 다리만 부러졌어”,
“에구, 다행이네”,
“그래, 다행이지.”라는 말에 이어 난 살짝 모른 체하며 묻는다.
“자긴, 어때?”
“나도 괜찮아”라고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집에 온 거야?”,
“아니, 아직 집에는 안 갔어”,
“그럼 어디야?”,
“엄마하고 있어, 아마도 2~3일 더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아. 걱정할까 봐 전화했어.”
이런, 내가 걱정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면 좀 더 일찍 전화를 했어야지.
“응, 목소리 들어서 다행이야. 일 보고 천천히 와.” 와우, 목소리에 나도 가증스럽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니,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니.
그가 없는 이 일주일 동안 그에 대한 생각을 줄곧 하게 되었다. 그와 나는 어떤 관계인가? 나는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이 일주일 동안 나의 주 관심사는 그것이었다.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이 그가 없는 동안 내가 생각하고 또 생각한 주제였다.
결국 아직 정리하지 못한 내 생각을 나의 이런 말들에서 확신을 하다니.
나는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좋은 사람이고 내가 연애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그를 만나면서 연애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안다. 하지만 망설이면서도 그를 만나는 나를 보면서 나의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늘의 통화로 내가 그와의 연애를 인정하게 되었다.
아, 이렇게 연애를 하는구나 나도.
그와의 통화를 끝낸 나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되자, 나랑 연애하는 ‘그집남자’. 그가 보고 싶다.
“내 동생이야”
그가 내민 사진의 얼굴이 익숙하다. 어디서 본듯한 얼굴,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얼굴인듯하다. 익숙하면서 낯선 느낌은 뭐지? 그랑은 닮지 않은 것 같은데, 익숙하다.
“너랑 닮았나?”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를 쳐다보고 있던 그가 “나랑 안 닮았어.”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대답한다.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
말꼬리를 흐리는 내게 불쑥 “너, 부산 어느 학교 졸업했어?”라고 물었다.
“내가 부산인 건 어떻게 알았어?”,
“나도 부산이야. 그래서 알았지. 너가 부산 출신이라는 거”.
그의 표준어에는 부산 사투리가 없다. 완벽한 표준어.
내 얼굴에 나타난 질문을 읽은 것인가
“엄마가 서울사람이라 우리 식구들은 서울말 잘해”라고 한다.
“엄마가 서울사람이었어?”
내 질문에 그가 웃음으로 대답한다.
난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심지어 동향사람인데도 오늘에야 그걸 알았다.
그리고 현재의 그의 어머니가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난 당연히 그가 서울출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고등학교까지 부산에서 지내고 서울로 대학진학을 하면서 외갓집에서 지내다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서울 외갓집으로 들어왔단다.
여동생은 부산에서 학교를 마치고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부산에서 생활한단다.
그러나 얼마 전 그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수술을 하고 재활을 위해 서울로 옮겨 엄마랑 지내고 있단다.
사진 속의 동생은 그와는 다르게 생긴 생김새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이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해맑은 미소. “동생이 남성여고 출신이니?”,
“응. 어떻게? 혹시 너 남성여고 나왔어?”
그의 물음에는 반가움이 묻어났다.
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여고시절의 사고가 떠올랐다.
“동생이 몇 살이야?” 그가 나보다 한살이 많으니 연년생이 아니길 바랐다.
“응, 너보다 어려.”
그의 말에 몰려드는 이 안도감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