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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야 Jun 06. 2024

왜, 내가..,

<왜, 내가>  3. 밥 차려주는 남자

3.

식탁에 차려진 정갈한 음식에서 초대한 주인장의 정성이 느껴졌다. 우린 아무 말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마음에 드니?'라는 말은 눈으로 주고받았다. 

난 아무에게도 나의 출신을 밝히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도 한마디 하지 않았고 그도 묻지 않았다. 단지 그는 짐작으로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은 입장에서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정석이다. 난, 무얼 기대했을까?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상태에서 준비한 음식이 나에게 감동을 주었을 것을 확신하는 표정이다. 그 표정에 반응해야 한다,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와우, 멋지다" 

난 최대한 표정을 밝게, 눈가에 주름이 자글하도록 하고 약간 높은 톤으로 감탄사를 뱉었다. 

그는 '그것 봐, 좋아할 줄 알았어.' 하는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이제는 최대한 맛있다는 표정으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순간이다. 난, 이 시간이 힘들다. 

미각이 둔하여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맛있는 표정의 가면을 써야 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짜고 매운맛만 느끼는 나에게 단맛과 쓴맛은 모르는 맛이다. 

아주 어릴 때는 그런 맛들을 느끼고, 단맛을 좋아하여 선반 높이 숨겨놓은 설탕을 찾아 먹다가 어머니라고 부르던 그녀에게 들켜 혼난 기억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 단맛을 느끼지 못했는지 기억이 없다. 쓴맛과 신맛도 잘 몰라 그냥 먹는다. 그래도 배부르면 되니 음식을 가리지는 않는다. 단지, 맛을 잘 모를 뿐이니 맛평가가 제일 힘들다. 

그런데 이렇게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음식을 준비한 상대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고 오늘도 맛있는 척 음식을 먹어야 한다니... 

세상 사는 게 녹록지 않다고 하는데, 난 이런 순간들이 힘들다. 그래서 식사 초대에는 응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의 초대는 거절할 수 없었다. 

별로 자랑할 것 없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였기에 나는 그에게는 항상 자랑스러운 인연이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고 가까이하는 모든 사람을 항상 자랑스러워한다. 사람뿐 아니라 물건도 그는 자랑스러워한다. 일반 문구점에서 구입한 볼펜 하나도 그의 소유가 되는 순간,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가진 하나뿐인 볼펜이 되는 것이다. 그의 그런 능력이 부럽다.

하지만 내가 그의 자랑이 되는 순간은 부끄러움이 가슴 한켠에서 슬며시 올라온다. 

나는 뻔뻔하고 자만심 가득한 인간이다. 그런 몰염치하고 불한당 같은 나의 본심을 아는 내가, 그가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가끔 고개 숙이게 된다. 

난 확실하게 가능한 일만 하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도 많아지고, 나름 계산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서 동료들이나 상대방의 상황을 타인들보다 먼저 판단하려고 한다. 그래야 성공확률이 높으니깐... 

그런 나를 그는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표현한다. 나의 이미지가 그렇다고 그는 말한다. 그건 나에 대한 그의 생각이고,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준비한 음식을 우물거리며, 난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만족한 음식이라는 듯이. 

그렇게 식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 초인종이 가볍게 울렸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 쪽으로 걸어간다. 

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그의 뒷모습을 무심히 쳐다보았다. 

문득, 그의 뒷모습이 어딘지 낯설어 보였다. 

난, 항상 그의 앞이나 옆 자리를 지키고 있어 그의 뒷모습을 보는 일이 드물었다. 이렇게 온전히 그의 뒷모습을 본 것이 언제인가 생각했다. 

아주 오래전 그가 친구의 사고소식을 듣고, 테이블에서 일어나 식당 문을 밀고 나가던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는 항상 내 앞이나 옆자리를 지켰다. 

그런 그가 일어나서 나에게 뒷모습을 보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왔다. 

인터폰을 들여다보던 그의 뒷모습이 순간 멈짓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고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잠깐만'이라고 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당황함이 묻어났다. 문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닫은 문밖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가 오고 갔다. 그는 이내 문을 열고 들어 왔고, 그의 뒤로 정복을 입은 경찰이 보였다. 

그는 동생이 사고가 있는 듯하다고 경찰서에 가야 한다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같이 갈까라는 나의 물음에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아직 안 되니 혼자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나를 그의 집에 놓아둔 채 외투를 챙겨 들고나갔다. 

난, 그가 정성스럽게 차린 저녁을 무심히 쳐다보다 정리를 했다. 그리고 그의 집을 떠났다. 


다음날 그에게는 연락이 없었고, 궁금함에 걸어 본 전화도 받지 않았다. 아마도 동생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는 그날이 지났다. 

그다음 날도 그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문득, 난 무엇인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과 함께 그에게 무슨 변고가 생긴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또 하루가 더 지난 후, 난 그의 집에 가보기로 했다. 

그는 초인종에 대답하지 않았고, 난 비밀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열었다. 

빈 집의 냄새가 코를 스치고 지났다. 짠맛과 쓴맛 밖에 느끼지 못하지만 냄새에는 예민한 내가 그의 집에서 느끼지 못한 냄새였다. 

내가 떠난 그날 이후 이 집에는 아무도 출입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떠난 그날의 모습을 간직한 집은 나에게 싸늘하고 차가운 바람을 주고 있다. 

난, 소파에 앉아 그날 이후 어느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싱크대에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는 이내 일어나 설거지를 하기 위해 싱크대로 다가갔다. 

별생각 없이 내가 담가 두었던 그릇들을 씻고, 주변 정리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휴지통을 열었을 때, 그날의 정갈한 음식의 정체들을 알게 되었다. 제품으로 완성되어 있는 포장지들... 

그는 내가 맛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음식을 주어도 맛있는 표정을 짓는 나의 거짓된 미소를 알고 있었다. 

난, 그가 요리 꽤나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마음이 들킨 것 같이 부끄러운 것은 왜일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갑자기 그의 신상에 생긴 일이 더욱 궁금해졌다.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동생은 고향에서 부모님과 살고 있다는 여동생이 전부다. 그 여동생에게 무슨 사고가 생긴 걸까 궁금해졌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궁금해하면서 연락되지 않는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본다. 신호음이 한참을 울렸고 그 끝에 '전화기가 꺼져있어...'로 시작하는 여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전화를 툭 끊으며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약간의 짜증이 묻어나는 내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와 고막을 통과한다. 

그때, 물어보지 못한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궁금하고 초조하지만 난 그의 집 현관문을 살며시 닫고 나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맛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척하는 태도를 그냥 모른척해준 그가 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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