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안 나은 거야? 마음이 다친 거야?
“그러니까, 병원에서 잘못한 거 아니야!”
민원실 밖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는 조용한 실내에 퍼졌다. 복도 의자에 앉았던 수미에게 그 소리는 비수가 되어 꽂힌다. 병원에서 잘못한 것이라면 내가 잘못한 것이라는 소리인가? 그렇다고 그가 나를 때릴 수는 없다.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그 시간에 근무를 시작했다는 것뿐이지 않은가?
행정실장의 목소리가 웅얼거리며 들린다. 무어라고 하는 거야?
간호부장은 일을 키우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난 다르다. 맞은 사람은 나다. 간호부장이나 간호과장이 아니라 내가 맞았다. 행정실장도 병원장도 아니라 내가 맞았다. 나는 고소하겠다고 했다. 환자가 때린 것도 아니라 보호자가 때렸으니 이건 엄연히 폭행이라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내가 일방적으로 맞아야 할 정도로 잘못한 일이냐고.
행정실장과의 면담을 잡았는데, 공교롭게도 나를 때린 그가 지금 행정실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의 폭행에 대한 이야기인지,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병원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게 병원에서 잘못한 일인가? 수미는 허리를 곧추세워 자세를 고쳐 앉았다. 기다려야 할지, 그냥 가야 할지를 곰곰 생각했다.
그 일은 어느 누구의 시선에도 걸리지 않고 일어날 뻔한 일이었다. 2시 40분에 시작한 인계가 거의 끝날 때쯤인 2시 55분에 갑자기 복도에서 간호사를 부르는 다급한 소리에 동료들 몇이 달려갔다. 인계를 받고 있던 수미는 평소와 다른 비명소리에 불안했지만 연차 있는 동료가 갔으니 잘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곧, 동료는 그들을 부르러 왔다.
“선생님들 와보셔야겠어요.”
동료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인계를 주고 있던 선배와 내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613호실로 안내하는 동료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방은 6인실 남자방으로 현재 4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다. 무슨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지만 불안한 느낌은 틀리는 법이 없다.
사람들이 창에 붙어 있다. 갑자기 엄습하는 불안감은 머리가 아닌 손끝으로 번졌다. 손이 떨리기 시작하며 창으로 빠르게 다가가 동료와 보호자 사이를 파고들었다. 뒤따르던 선배도 내 옆에 붙었다. 병실창은 윗부분은 통창으로 붙어있고, 아랫부분만 환기를 위한 여닫이 내밈창으로 되어있다. 내려다본 창 아래에는 환자복을 입은 사람의 형체가 바닥에 누워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 할아버지가 이리로 뛰어내렸어요.” 다급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젊은 여자다. “내가 들어오는데 이 창문으로 빠져나가는 다리가 보였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도 떨림이 느껴진다.
“샘, 간호부에 보고하세요. 나는 내려갈게요.” 선배가 재빨리 말한다.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간호부 번호를 누르며 모니터에 환자의 차트를 띄웠다.
응급실로 옮겨졌던 환자는 심폐소생술로 소생하지 못했다고 한다. 머리가 먼저 떨어져 두부 골절에 뇌 손상까지 있었다고 한다.
사태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버젓이 환자의 보호자가 침상 옆에 있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곁을 지키던 환자의 부인이 아들에게 연락을 했고, 흥분한 아들은 간호사실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침번이던 선배와 동료는 이미 퇴근을 했고, 담당간호사가 되었어야 했던 나는 그가 지르는 소리를 다 듣고 있어야만 했다.
흥분하여 소리 지르는 환자나 보호자의 경우, 우선 흥분을 일으킨 상황을 파악하여 최대한 빨리 사과를 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이 경우는 내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며 그가 소리 지르면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작지도 않은 노인의 몸이 그 좁은 내밈창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보호자나 환자가 소리를 지르거나 공격적이 되면 대응하지 않고 경비실로 전화를 하라는 교육내용이 생각났다. 이렇게 소리 지르는 보호자는 교육내용대로 해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하며 경비실로 전화를 하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고, 번호를 누르고, 차분하게 보호자가 소리 지르고 있으니 해결해 달라고 말했다.
소리 지르던 그는 수화기를 들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고, 순간 그의 눈빛이 돌변하더니 손바닥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안경이 수화기와 부딪히면서 안경이 깨어졌고, 이마에 상처가 생겼고, 코와 눈사이에 피가 흘렀다. 비명도 지를 수가 없었다. 몇 명의 남자들이 그를 잡았고, 나는 돌아간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턱이 빠졌다.
응급실 침상에 누워 가만히 턱의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목과 턱을 연결하는 보조기를 착용하여 고개를 돌릴 수 없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손끝이 떨려온다.
“재수가 없는 날이라 생각해야지 어쩌겠어.”
잠시 나를 보러 온 수간호의 말이 감정을 추스르던 나를 자극했다.
“슨생님, 므슨 마를 그러케 해요.” 입을 벌리지 못하고 말하는 내 목소리가 생소하다.
“아니, 상황이 그렇다고. 어쩌겠냐. 니가 재수 없게 걸린 거지.”
섭섭한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나, 맞아서 아프다고요. 턱뼈 부러졌다고요.” 입을 벌리지 못하고 혀만 움직이는 내 목소리가 커졌다.
나를 때린 그를 경찰에 폭행으로 신고를 했다. 그럴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장염으로 입원한 여고생이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퇴원을 이틀 앞두고 있던 그 아이는 오후에 있었던 사건을 알고 있었고, 소리 지르는 사람이 누군지도 알고 있었다. 평소 동영상촬영을 좋아하던 그 아이가 이런 소란은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란다.
그 아이의 영상은 “지금 왠 고약한 어른이 우리 간호사에게 욕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현장으로 가봅시다.”로 시작하고 있다. 고스란히 찍힌 그 동영상을 경찰에 제출하며 사건 접수를 했다. 그리고 조사가 나오자 수간호는 그런 일로 신고를 하냐며 나무랐다.
이런, 그럼 선생님이 맞아서 턱뼈가 부러져 보던가.
간호부장은 의외로 담담하게 병가신청서를 받으며, 몸조리 잘하라고 말했다.
동영상을 찍은 그 아이가 방송국에 제보를 했고, 기자가 취재를 나오자 수간호는 입을 다물었다.
기자의 취재가 있던 날, 행정실장이 전화를 했다.
보조기에 의지하고 있던 나는 안 되는 발음으로 ‘많이 좋아졌다’는 대답을 했다. 행정실장은 진단서만큼 쉬고, 보조기 풀고 나면 면담을 하자고 했다.
행정실장실 안의 상황은 짧게 끝날 것 같지 않다. 행정실장 번호로 ‘지금 왔는데 바쁘신 것 같으니 나중에 다시 연락해 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복도에서 원장실에서 나오는 행정실 직원과 마주쳤다. 살짝 웃음을 보이는 그의 눈에 호기심과 함께 ‘네가 그 맞았다는 간호사냐?’하고 말한다. 이런, 아무 말도 못 하고 맞은 건 난데, 내가 왜 이렇게 주눅 들어야 하는 거지? 세상 억울하다.
이렇게 온 김에 간호부장을 만나고 가야겠다. 병가신청을 하던 날, 필요하면 2주 정도 더 쉬어도 된다고 했으니 더 쉬어야겠다고 신청해야겠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간호부로 가는 복도에서 회의 마치고 나오는 수간호사들이 보였다.
아, 오늘이 수요일이구나. 이런 시간 잘못 골랐네.
“수미샘. 부장님 면담하러 온 거야?” 수간호가 먼저 말을 건다.
“녜, 선생님.”
“이제, 보조기 뺐구나. 조만간에 출근하겠네?”
“아, 예.”
“그럼, 나중에 봐.”
혼자 말하고, 혼자 끝내고, 인사를 한다.
언젠가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 수가 싱글이라 상대를 이해 못 해. 싱글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혼자 너무 오래 살아서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려고 안 해.”
그래, 수간호는 너무 혼자만 살았어. 오십이 넘은 나이까지 혼자 살았으니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어. 아니, 이해하지 않으려고 작정한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선배가 말했지만, 나는 이해가 안 된다. 혼자 살았다고 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수간호보다 더 오래 혼자 살고 있는 간호과장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개인차야. 성격차이야. 그래, 성격이 그런 거야. 다른 사람을 이해 안 하고, 자신만 생각하는 개인주의자.
간호부의 문을 노크하며 안에서 들리는 간호과장의 목소리에 여기까지 생각을 마쳤다.
문을 열자 간호부장이 책상에서 고개를 든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동안인 부장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그런 부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과장에게 몸을 돌렸다.
사람 좋아 보이는 간호과장은 내 이야길 듣고 부장의 얼굴을 쳐다본다. 부장은 오라는 손짓을 한다. 부장 앞으로 다가간 나는 그에게도 휴가를 더 쓰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부장은 내 얼굴을 빤히 본다.
“몸이 안 나은 거야? 마음이 다친 거야?”
부장의 질문에 잠시 대답을 찾았다.
“둘 다입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선생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선생이 맞아서 이번 사건이 병원에는 유리하게 되었어요. 다음 주에 있을 판결에도 유리하게 작용이 될 것 같아요. 수미선생은 이번 판결이 나올 때까지 병가 사용하는 걸로 처리할게요. 출근일은 수간호사를 통해서 알려줄게요.”
담담한 어조의 부장의 말에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알겠습니다.”
인사를 꾸벅하고 뒤돌아서 나오는 수미의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하지만 ‘마음이 다친 거야?’하고 묻는 부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무겁게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