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작성하는 서류에도 작성자의 성격과 인격, 감정이 보입니다.
"천성이 게을러 움직이는 걸 싫어 한다." 언젠가 읽은 나의 사주풀이의 내용이 나의 합리화에 사용된지 30년! 모든 인간은 항상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모든 것을 하려는 경향이 있고, 천성이 게으르다는 사주를 가진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나의 휴식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tv의 예능 프로를 보거나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 '운동은 보는 것이기에 선수라는 직업이 있는 것이다'라는 뿌리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는, 잘하는 운동이 숨쉬기 운동이고, 좋아하는 취미가 천장 바라보기이다. 책읽기도 좋아하지만 가끔 책장을 넘기는 것이 너무 귀챦아 책을 덮기도 한다. 그래서 소설은 첫 문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문장에서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는 소설은 내용을 모르고 싶은 소설이 된다. 그래서, 고전이라고 꼭 읽어봐야 한다는 소설들도 첫문장에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면 책장을 덮어버린다.
이런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 수없지만, 어릴때를 회상하면 그저 닥치는 대로 그냥 읽었다. 한글을 읽기 시작하고 글자의 뜻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리스신화를 1권으로 배치하였던 50권의 동화전집을 읽었다. 10대 중반을 지나면서 서서히 좋아하는 장르가 생겨났는데, 주로 모험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많았다. 소공녀,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시작으로 엉클 톰, 보물섬 등으로 이어지면서 차차 스파이소설과 탐정소설에 눈을 돌리며 007 제임스 본드를 시작으로 셜록 홈즈를 비롯하여 미스마플을 거쳐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까지 읽게되었다. 그러다 학생이 읽어야 하는 고전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10대 중반의 나에게 괴테가 왔고, 니체와 까뮈를 지나 마르크스의 철학을 접한 10대 후반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철학을 왜 그렇게도 이해하려고, 그렇게도 책장을 넘겼는지...
그러다, 책보다는 현장이 중요한 직업을 전제로 하는 전문직을 선택한 20대에는 직업에 필요한 책들을 선별해서 읽기 시작했고, 직장이라는 현장에서는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생활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래서 '천성이 게으른' 나는 집에서 보내는 휴식을 좋아하여,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어도 정보를 제공해 주는 텔레비젼을 좋아했다. 예전에는 그냥 멍하니 쳐다본다 해서 '바보상자'라고도 불리우던 텔레비젼은 나에게 살아가는 활력과 많은 정보를 주었다.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세상의 소식을 전해주고, 날씨를 알려주고, 요즘은 어떤 유행어를 쓰는지 가르쳐 주었다. 급기야는 노래를 듣게 되고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지식도 쌓았다. 그런 텔레비젼을 난 무척 좋아했다. 심지어 외국생활 중에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랍어로 된 퀴즈방송을 쳐다보기도 했다.
젊은시절 아라비아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나라의 종교인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슬람, 유대교와 개신교가 공존하면서도 대립하는 그 곳 특유의 종교적 분위기에 내가 가지고 있던 불교에 대한 관심이 더해지면서 힌두교와 소수민족 종교의 역사와 기원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아가면서 궁금증 해결을 위한 대화와 책을 통해 이해를 넓혀갔다. 귀국해서도 한글로 된 종교 서적들을 읽으면서 도서관을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독서는 나이가 들면서 종교에서 철학으로 서서히 넘어가게 되었고, 10대 후반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철학서적들의 내용들이 눈에 들어오고 이해하게 되었다.
몽상을 즐겼던 10대와 현실에 적응하느라 바빴던 20대를 지나고 결혼과 육아로 지낸 30대, 40대를 지나 50대 문턱의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진학하며 논문읽기의 매력을 알게되면서 학문과 연관된 책들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관련된 서적들을 읽으면서 과학서적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제 막 입문자에서 벗어난 느낌이지만 여러 장르의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책읽기의 요령이 생기다 보니 서적뿐 아니라 서류 읽기도 요령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서류에서도 작성자의 성격이 나타나고 의도가 보인다. 그 의도로 가끔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서류로 이야기하는 직장에서의 대화는 최대한의 예의를 지켜야 하면서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다. 각 직장에서의 서류대화는 예의와 절차가 중요하다. 아무리 직장이 예전 같지는 않고 자유롭다고 하지만 직장예절이라는 것이 있다. 특히 외부의 컨설팅이거나 외주의 경우에는 갑과 을이 존재한다. 그런 관계에서의 대화는 항상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서류에 의한 대화인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상식적인 선에서 마무리가 되어야 하며 상대를 존중해야한다. 요즘의 컨설팅은 거리감이 없이 비대면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톡이나 라인등의 메신저를 이용한다. 이런 경우의 장점은 문제 해결시 전달 오류의 발생이 적다는 점이다. 반면 단점으로는 각자의 성격의 차이로 예의가 지켜지지 않거나 갑과 을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직장에서 몇가지 문제로 인하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위해 컨설팅을 받는 상황이 생겼다. 작성된 서류를 원격으로 확인해주며 잘못된 부분이나 추가해야 할 부분을 알려주면 그것에 맞추어 고치고 추가하여 재 작성하여 마무리하는 것이다. 몇 주 전 컨설팅해주는 상대에게 무례하게 느껴지는 지시를 받았다. 그것으로 인하여 기분나쁨을 표시하였으나 상대는 모르는 듯하다는 주위의 반응을 접했다. 그리고 여전히 메신저를 통한 컨설팅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며칠전 상당히 무례한 말투의 컨설팅 지시서를 받았다. 기분이 나쁘면서 '이 사람은 컨설팅해주는 상대를 얼마나 무시하면 이런 말투의 지시서를 작성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상사에게 나의 기분 나쁨을 표시했고, 상사도 그 문장을 읽고는 상당히 기분나빠했다. 난 그 지시서에 수정한 부분과 확인한 사항을 메모를 통해 피드백을 하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하나 하나 작성하다 문제의 그 문장에서 메모로 내가 느꼈던 기분을 문자로 남겼다.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당신이 무시할 만큼 형편없는 직장은 아니며, 돈을 주고서라도 잘하고 싶어 컨설팅을 받는 곳이니 돈 받은 만큼 잘 해달라'는 내용의 메모를 남기게 되었다. 옮긴지 몇개월 안되는 직장이지만 관리자로써의 책임을 가지고 잘 설계하여 탄탄하게 구성하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 컨설팅을 받는 부분도 내가 관여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전적으로 메달리기에는 다른 일들도 많아 컨설팅을 받고 확인과 수정을 지시하거나 직접 수정을 하고 있다. 보통은 지불하는 입장이 갑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컨설팅을 해주는 쪽이 갑이 되는 것은 왜일까? 물론, 잘 못하니 돈을 주고 도움을 받는 것이지만 직접적인 컨설팅을 받는 내 입장에서 내가 하지 않은 일을 수습하는 상황에서 대놓고 "생각보다 형편없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그러니까 당신에게 돈을 주쟎아요'라는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컨설팅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잘 부탁합니다'라는 말을 하게되지만 그말이 '무시 받아도 됩니다'는 아니지 않은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이 와 닿는 사건이었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어쩌면 이 일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 직장 내부의 예절도 중요하지만 상대 직장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특히 문서 혹은 서류로 흔적을 남기는 경우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말투에서 성격이 묻어나고 예의가 보이듯이, 문서에서도 성격이 드러나고 문서의 예의가 있다. 그래서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문서에는 형식이 있는 것이다. 문서의 형식은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내용도 지배하고 있다. 각각의 문서는 생각보다 많이 작성자의 인격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의 성격이 작품에 드러나듯이 형식이 정해진 문서에서도 작성자의 성격이 드러난다는 사실은 직장인으로써는 한번쯤 생각해 봄직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앞에서 장황하게 나의 독서 이력까지 드러내면서 길게 이야기한 이 글의 요점은 모든 글에는 작성자의 인격이 묻어난다는 내 생각을 최근의 사건을 통해 알리고 싶어 시작한 글이다. 우린 가끔 상대의 말투에 상처 받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또한 말 한마디에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끼며 위로 받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여러 형식의 글에서도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좋은 작품을 접하면 위로 받고 감사함을 느끼듯이 직장에서 작성되는 간단한 문서에도 내 위로와 감사함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자. 그럼 우린 단어 하나의 선택에도 잠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아니,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감정을 담은 문장은 읽는 사람도 느끼고 교감한다. 같은 문장으로 작성된 서류라도 어떤 서류는 미소를 머금게 되고, 어떤 서류는 한 곳으로 밀어버리게 된다. 특히 손글씨로 작성하는 서류의 경우는 마음이 그대로 나타난다. 컴퓨터로 작성된 서류도 마찬가지로 작성자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작성해 보자.
요즘 글이 뜸해진 여러 이유 중, 나의 일상이 이렇게 바빠서 잠시 미뤄두었다는 변명을 하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내가 부끄럽다. 이제라도 꼭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Nov-6.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