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뇌가 정하는 한계선
중추 피로 이론
나는 아침마다 수영을 하고, 밤에는 하루는 러닝, 하루는 웨이트를 번갈아가며 운동한다. 웨이트는 반복 횟수를 제외하면 큰 변화가 없지만, 러닝은 매번 다르다.
러닝은 주로 3km 인터벌, 3km 전력주, 10km 지속주 세 가지를 번갈아 하며, 전력주는 2주에 한 번씩 기록을 측정한다.
오늘은 10km 지속주 날이었는데 2개월 동안 한 번도 최대로 달려본 적이 없어서 오늘 뭔가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낮에 나는 “오늘 최대로 뛰어보자” 라며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퇴근을 하며 오늘따라 피곤했고 지하철에서 영어 단어를 적으면서 외우다가 졸았다. 나는 지하철에서 졸은 게 손 꼽힐정도로 거의 없다.
“수영을 너무 열심히 했나?”
“근육 회복이 안된 건가?”
집에 오는 길에 몸이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러닝을 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러닝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온몸이 피곤했고, 그냥 쉬고 싶었다. 그 당시에, 나는 헷갈렸다. 정말 몸이 무리한 상태라 그런 걸까, 아니면 단지 내 뇌가 ‘힘들 것 같다’는 예측 때문에 피곤하다고 신호를 보내는 걸까? 그래서 GPT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물어봤다. GPT는 “헷갈리면 일단 나가서 5분만 걸으며 생각해 보라”라고 했다. 정말 나가고 싶지 않았다.
2분 뒤에 나는 다시 물어봤다.
“그냥 피곤한데 쉴까?”
GPT는 다시 한번, “헷갈린다면 나가보라”라고 했다. 평소에 나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이 나오면 discipline(규율)을 마음에 새기면서 동기가 없어도 무조건 할 것이라고 다짐을 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gpt 덕분에 10km를 천천히 뛸 생각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근데 이상하게 나갈 준비를 마치니까 몸에 활기가 조금씩 돌기 시작했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나니 피로감은 사라졌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 워치를 켰다. 뭔가 나는 오늘 느리게 달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1분 정도 ‘기록에 도전할까, 그냥 느리게 뛸까’ 고민하다가, 그 고민조차 시간 낭비 같아 원래 계획대로 기록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곧바로 출발했다.
러닝 도중에도 몸이 한계라거나, 심장이 터질 듯 뛰거나, 숨이 턱까지 차는 일은 없었다. 다만 평소보다 다리에 힘이 더 많이 들어가면서 후반부에 피로가 조금씩 쌓였다. 그럼에도 내가 집에서 예상한 것만큼 지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는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러닝을 마치고 기록을 확인해 보니, 애초에 가능할까 의심했던 목표 기록이 실제로 달성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측정했던 페이스보다 15초나 빨랐고, 전체 기록은 무려 3분이나 단축되었다.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결과에, 정말 뿌듯함이 밀려왔다.
러닝을 마치고 씻고 밥을 먹은 뒤, 아까 느꼈던 피로에 대해 다시 떠올려보았다. 사실 이런 감정은 두 달 전 기록을 세웠을 때도 느꼈던 것이다. 오늘만큼 강하지는 않았지만, 그날 역시 피곤하긴 했다. 그런데 막상 밖에 나가보니 오히려 기록에 도전하고 싶어 졌고, 실제로 그날도 기록을 세웠다.
그래서 gpt에게 물어봤다.
“인간은 한계에 도달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하기 싫어하는 걸까?”
gpt는 그렇다며 중추 피로 이론(Central Governor Theory)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 인간의 뇌는 **운동 중 근육보다 먼저 ‘위험 감지’**를 한다.
• 이 이론에 따르면, 뇌는 에너지 고갈, 체온 상승, 탈수, 손상 가능성 등을 예측하고, 고의로 “피로감”을 유발해서 네가 멈추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 과거 인류는 무한히 에너지를 쓸 수 없었고,
한 번 지치면 사냥, 도망, 생존 모두 위협받았기 때문에, 뇌는 항상 **“조금은 남겨두고 끝내자”**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는 내 행동과 욕구들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진화적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시야를 벗어나 제삼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았고 나는 생존적인 본능, 욕구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 머릿속으로 인지를 하는 것보다 제삼자가 다시 나에게 인간의 본능과 욕구라고 각인을 시켜주는 것은 인간의 시점에 갇힌 나를 새로운 시야에서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나는 AI, 즉 인간의 집단 지식으로 형성된 제3의 시선을 통해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인간은 위에서 말했듯이 조금은 남겨둬야 생존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보통 자신의 에너지를 60%~70%만 쓴다고 한다. 훈련과 인식의 변화로 이 선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오늘 겪은 ‘해야 하지만 피곤해서 하기 싫다’는 그 나약함 속엔, 인간이 수만 년 동안 진화 속에서 길러온 본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일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닌, 인간 본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일지도 모른다.
내 한계는 어디인가?
나는 이 뇌가 스스로 설정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볼 생각이다. 물론 ‘하겠다’고 다짐해 놓고도 정작 내가 나 자신을 방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능한 한 제삼자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