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기에 맨살이 드러난 팔뚝이 차갑게 시리더니 꽁꽁 언 강바닥을 디딘 듯 발바닥이 아린다. 얼음장 같은 두 발바닥을 맞대어 파리처럼 비비다가 스르륵 잠에서 깬다. 발밑까지 제쳐진 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었지만, 한기는 여전히 그녀의 몸을 휘감고 떠나질 않는다. 그녀의 몸이 부르르 진동한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일어나 앉으니 갑자기 오른쪽 어금니 언저리가 뻐근하다. 오른쪽 목덜미도 아프고 이어지는 등까지 통증이 있다. 평소 이를 앙다물고 자는 버릇이 있긴 했지만, 오늘은 꽤 심하게 느껴진다. 아랫배도 불쾌하게 조인다. 생리 때도 아닌데 조이며 아픈 게 아무래도 수상하다. 겨우겨우 몸을 움직여 한참을 스트레칭하고는 일어선다.
부엌에서 물 한 잔을 따라 마시면서 이럴 땐 어떤 병원을 가야 할지 잠시 고민한다. 아랫배가 아프니까 내과일까, 산부인과일까? 근육통이 있으니까 신경과일까, 정형외과일까? 아니면, 만병통치 한의원으로 가야 하나? 신통한 의사 친구 하나 있으면 딱 좋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녀가 피식 웃는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마시려다 알래스카 불곰과 눈이 마주친다. 그녀의 남편이 보낸 엽서. 2년 전 그는 불곰이 보고 싶다며 알래스카로 떠났다. 그사이 저렇게 드문드문 불곰, 스라소니, 무스, 흰머리독수리가 찍힌 사진엽서로 안부를 전해 오긴 하지만 이제 돌아가겠다는, 한 번 다니러 오라는 말은 없다. 심지어 주소도 없다.
15년 전 그가 처음 대학 도서관에서 수줍게 건넸던 쪽지에도 곰돌이 푸의 그림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사랑했던 그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고등학교 생물 교사가 되었다. 그렇게 곰돌이 푸의 쪽지로 시작했던 만남은 결혼으로 이어졌고, 그는 교사로, 그녀는 대학 강사로 평범하고도 아름다운 신혼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결혼 후 5년이 지나도록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겼던 ‘임신’이 되지 않자 둘 사이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어느 산부인과에서는 정자의 운동성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라고, 어느 한의원에서는 자궁이 차서 아이가 자리를 잡지 못한다고 애매하고 알쏭달쏭한 진단들이 내려졌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원인 불명의 불임이었다. ‘원인 불명’. 이처럼 무정하고 야속한 병명이라니.
처음에는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인공수정은 배란촉진제로 난자를 과배란 시킨 후 정자를 선별해 인공적으로 자궁에 넣어주는 시술인데, 네 번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다음은 시험관 아기서였다. 역시 과배란 시킨 여러 개의 난자를 몸 밖으로 꺼내 체외에서 정자와 수정시켜 시험관에서 일주일 동안 배양한 후 다시 자궁에 넣는 시술이다. 하지만 다섯 번의 시험관 아기 역시 매번 실패로 끝났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몸은 거리에 뒹구는 비닐봉지처럼 너덜너덜해졌고, 그의 마음은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마치 제 스스로 한 가닥 빛도 없는 지옥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듯했다.
“나, 알래스카 불곰을 보러 갈 거야.”
네 번의 인공수정과 다섯 번의 시험관 아기가 실패한 후 각자의 아픔을 추스르느라 바빴던 어느 날 불쑥 그가 말했다. 처음에 그녀는 그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같이 여행 가자는 건지, 혼자 가겠다는 건지. 아니면 잠시 다녀오겠다는 건지, 영영 떠난다는 건지. 하지만 그녀가 미처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그는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앵커리지에서 살 집을 찾으며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고는 두 달 만에 살고 있던 작은 아파트와 퇴직금의 절반을 그녀에게 넘기고는 알래스카로 날아가 버렸다. 그는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고, 그녀 또한 그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암담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은, 멀리 도망가고 싶은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녀 또한 그런 심정이었으니까.
그렇게 훌쩍 떠난 지 석 달여가 지났을 즈음 그에게서 첫 번째 엽서가 왔다. 강렬한 눈빛으로 브룩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노리는 불곰이 찍힌 사진엽서. 보낸 이의 주소도 없이 오직 한 문장 ‘잘 지내’라는 글자가 사막의 이정표처럼 덩그러니 적혀있었다. 잘 지내. 잘 지내. 잘 지내. 그의 안녕을 말하는 것일까. 그녀의 안녕을 묻는 것일까. 해석할 수 없는 그의 엽서에 그녀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에게 퍼붓는 모든 저주와 악담은 허공을 떠돌다가 다시 그녀에게로 되돌아왔다.
아무래도 그는 쉬이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쓰던 크고 작은 물건들을 작은 방으로 차근히 옮겨놓았고, 그의 체취가 남아있던 칫솔, 수저, 옷가지들을 죄다 버렸다. 또 전보다 더 부지런히 일했고, 요가며 도자기며 문화센터 강좌들을 두루 섭렵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늘 시간이 남아돌았고, 그럴 때면 밤새 그가 떠난 이유를 찾아 헤매 다녔다. 주변에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혼하고 새 삶을 찾으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새 삶이란 게 과연 봄날 햇살처럼 빛나고 따사롭기만 할까. 새 삶이 더 좋을 거라고 누가 과연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그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혼자서 남은 인생을 살아낼 용기가,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날 에너지가 이제 그녀에겐 없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낯선 도시의 길잃은 아이처럼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한 달에 한 번 투명하고 끈끈한 액체가 팬티에 묻는, 그녀의 몸에서 새 씨앗이 생겨났으니 어떻게 좀 해보라며 온몸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오늘 같은 날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