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DO NOT ENTER

by 정애

[DO NOT ENTER]


황량한 사막의 휴게소 옆에 서 있는 경고판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오더군.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지. 흐흐.’ 오래된 나무 벤치 몇 개와 문이 덜렁거리는 간이 화장실만 있는 휴게소는 서부영화 세트장같이 썰렁했어. 가까운 곳에서 까마귀 한 마리도 낮게 날고 있었지, 더럽게도 큰. 미국이란 동네는 뭐든 커. 차도, 사람도, 까마귀도.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해서 첫 끼로 먹었던 인앤아웃 햄버거는 또 얼마나 크던지. 무지막지하게 커서 볼 양쪽 근육이 뻐근할 정도였다니까. 콜라는 한 손에 쥐기도 힘들 만큼 컸어.


쾌락과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사흘은 정말 환상적이었지. 카지노에서 도박도 하고, 벨리스 호텔 누드 쇼도 보고, 대낮부터 밤까지 빨대로 맥주를 홀짝거리며 온 스트립을 돌아다녔어. 카지노 뷔페 음식은 푸짐하고 맛있었지만, 한식당에서 순두부 뚝배기 한 사발 벌컥 들이켜야 먹은 것 같았지. 그렇게 내 인생의 선물 같은 사흘을 보내고 렌터카를 빌려 바로 사막 데스 벨리로 향했던 거야. 어느 책에서 보았어. 호주 원주민 애버리지니는 더 이상 살아야 할 희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 혼자 사막에 가서 죽기를 기다린대. 나도 그들처럼 사막에서 오롯이, 혼자 힘으로 조용히 죽고 싶었어. 그래서 얼마 안 되는 돈을 몽땅 털어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표를 샀지. 쓰라리고 외로웠던 내 인생, 그래도 죽기 전 며칠만은 즐기고 싶더군.


‘DO NOT ENTER’를 스쳐 사막 안쪽으로 차를 몰았어. 렌터카의 기름은 빌릴 때부터 거의 마지막 눈금이라 기름이 다할 때까지 달리면 내 마지막 안식처가 나올 것 같았지. 처음엔 풀 몇 포기가 군데군데 보이더니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모래뿐인 사막이 펼쳐졌어. 다행히 푹푹 빠지는 지형은 아닌지 차는 막힘없이 잘 달려주더군. 그렇게 삼십 분쯤 달리니까 차가 스르르 멈췄어. 차에서 내려 맨발로 잠시 걸어보았지. 햇살은 피부를 매섭게 찔렀지만, 발바닥의 촉감은 따뜻하더군. 벌러덩 누워보니 안기듯 포근하기까지 한 거야. ‘그래! 여기로구나, 나의 마지막 안식처!’. 미국으로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사막에서 물 없이, 음식 없이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사흘이라고 하더군. 그 사흘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야. 다시 말하는데, 나는 오롯이, 혼자 힘으로, 조용히 죽고 싶었어. 내 의지로 죽고 싶었단 말이지.


곧 목이 타들어 가더군.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잔 마시고 나섰으니 그럴 만도 했지. 곧 발바닥이 뜨거워졌어. 이내 온몸이 뜨거워지고 땀이 비 오듯 하더라고. 예상했던 일이라 당황하진 않았어. 다만 한 줌의 그늘이 필요했지. 차 안은 이미 찜통같이 뜨거워서 나는 손바닥만 한 차 그늘에 앉아 사막을 바라보았어. 이런저런 생각들이 나더군. 날 버리고 간 엄마, 평생 누워있기만 했던 아빠, 그리고 보따리 방물장수 우리 할머니. 스쳐 갔던 나의 친구들 혹은 악당들, 첫사랑 그녀, 무심했던 동료 직원들, 나를 살짝 설레게 했던 옆자리 소영 씨, 옆에만 있어도 소름 끼쳤던 김 과장, 박 대리. 좋은 사람들, 싫은 사람들 다들 한 명씩, 혹은 한꺼번에 무슨 앨범 펼치듯이 생각나더군. ‘여러분! 이제 저는 갑니다. 다들 잘들 계세요.’ 하늘에 대고 작별 인사를 했어.


점점 더 목이 타들어 가더군. 다행히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어. 그런데 이번엔 냉기가 땅에서 스멀스멀 밀려왔어. 소름이 끼치고 온몸이 떨리더군. 당황하진 않았어, 예상했던 일이었으니까. 차로 들어갔어. 푹신한 카시트가 참 고마웠지. 잠을 자다가 추위에 몸을 떨며 일어났어. 마치 차 속이 냉동실 같더군.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하다가 첫날밤을 보냈지. 다음 날 해가 떠오르니 추위가 좀 가시더군. 차에서 나와 모래밭을 조금 걸었어. 그런데 힘이 빠져 많이 걸을 수가 없었지. 모래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어. 파란 하늘을 보니 괜스레 눈물이 나더군. 그래도 몸속에 수분이 남아있었던 모양이야. 동물처럼 울부짖으며 울었어. 울고 나니 힘이 빠져 일어나 앉기조차 힘들어졌지. 기다시피 다시 차 그늘로 와서 누웠지. 그 뒤엔 별로 기억나지 않아. 몇 시간이 지났는지, 며칠이 지났는지. 의식이 오락가락했던 것 같아.


갑자기 밝은 빛이 보였지. ‘그래, 이 빛을 따라가면 천국일 거야.’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말소리가 들리더군. 이어서 들려오는 갖가지 소리들, 빛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어. 허 참! 미국 렌터카에는 도난 방지 GPS 추적 장치가 있다나. 그 덕에 난 죽지도 못하고 이렇게 라스베이거스에서 구걸이나 하며 늙어간다네. “이보게, 프렌드! 듣고 있나? 허허, 이 사람 또 약 맞았네그려. 말도 못 알아듣는 사람한테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구먼. 아엠쏘리. 여긴 사람 왕래가 너무 없네. 난 저기 메인 스트립 쪽으로 가볼게. 다음에 또 봄세. 바이바이”


donotenter.jpg.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투명하고 끈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