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독일까지 가게 되었을까?

지금은 룩셈부르크에 살고 있는 이유.

by 여름하늘

우리 가족은 애초부터 독일로 이민을 간 것은 아니었다. 아무렴 아이들까지 둔 부모가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났을까 할 수도 있지만, 진짜다. 우리는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간 것은 아니었다. 나의 남아있던 육아휴직 2년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남편의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희망퇴직을 발표했다. 이 때다 싶어 우리는 나의 휴직을 담보로 남편과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실패를 해도 일단은 내가 일을 계속하면 되니까.


해외살이를 해 보겠다는 생각은 나의 의견이 조금 더 강했다. 몇 년 정도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나의 바람이 있었고, 남편은 나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독일을 선택한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그 당시 가장 최근에 다녀온 남편의 출장지가 바로 독일, 뮌헨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독일은 형님 국가였고 남편의 경력 분야에서만큼은 큰 언어 장애 없이 경력을 이어 나갈 수 있었기에 독일이 우리의 최종 후보지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다.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코로나가 터져 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는 우리에게 기회의 시간이 되었다. 모든 행정업무가 스톱이 되었고 그 시간에 남편은 본인의 실무 경력에 추가하여 하나둘씩 포트폴리오를 쌓아갈 수 있었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번외지만 남편의 관점에서의 해외 취업은 엄청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감히 삼상만 해 본다. 여하튼 그는 곧 직장을 구했으며, 두 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은 한국에서의 커리어와 비슷한 수준을 맞춰 놓았다.


작은 아이 친구의 엄마와 친구가 되면서, 우린 곧잘 놀이터에서 만난 곤 했다. 러시아 사람이고, 독일인 남편과 러시아에서 만나 결혼을 했단다.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본인은 러시아에서 정신과 의사였다고 한다. 지금은 한국으로 치면 여성 다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경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왜 의사로 일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독일에서 러시아 의사 면허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다고... 어렸을 때, 옆집에 한국인이 살았던 덕분에 한국 문화에 익숙해서 나를 만난 처음부터 나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서로의 개인사를 털어놓던 중, 우연히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우리 부부가 한국에서 꽤 큰 회사에서 일을 했었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우리 남편은 한국에서 S전자 다녔었다고 했더니 대뜸 물어보는 질문이, 그럼 한 달 월급이 얼마야? 세금 포함이야? 넌 한국에서 어떤 회사를 다닌 거야? 둘이 합쳐서 한 달에 얼마를 번 거야? 아이고, 한국에 있지,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 독일로 도대체 왜 오게 된 거야?


아. 우리가 돈을 벌러 이억만 리까지 온 줄 알았구나. 독일에서도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남부의 한 시골 동네에 동양인이 도대체 왜 여기 있는지. 무척 궁금했을 것이다. 이 부분이 이해가 되는 게 내가 살았던 2여 년의 시간 동안 나조차도 우리 동네에서 단 한 명의 동양인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와 친분을 쌓은 독일 사람들이 하나 같이 물어보는 질문은 바로, 왜 독일에 왔느냐는 것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우리가 왜 독일까지 가게 된 것일까.

그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으니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주 귀하게 잘 쓰고 싶었다.


아마도 나는 우리 가족이 독일에 간 이유를 앞으로도 커밍아웃하지 못할 것 같다.


나의 퇴직 절차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남편은 이사를 가고 싶어 했고, 이사를 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이유를 만들기 위해 남편은 이직 준비를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독일에서 룩셈부르크로 다시 떠나게 되었고. 이로써 나는, 왜 독일에 갔는지에 대한 이유를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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