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초등학교 요약본

K-초등학생 & K-맘으로 독일의 공립 초등학교에 적응하기

by 여름하늘

코로나 시기는 어른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독일어를 빨리 배워야 한다는 나의 조급함은 나를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만들었고, 나는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서 독일어 공부를 했다. 동영상 강의를 듣고 유튜브를 보며 당장 필요한 것들을 익혀 나갔다. 그러고 내가 공부한 것들을 그대로 큰 아이한테 가르쳤다. 우리는 열심히 했고 효과는 좋았다. 우리의 무기는 그저 성실함이었다. 숙제는 반드시 했어야 했고, 모르는 것은 공손하게 물어보라고 늘 강조했으며, 친구들과도 가길 것은 가려가며 잘 지내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Hallo/Danke/Entschuldigung은 입에 달고 다니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했다. 내가 엄마에게 받았던 그대로 내 아이에게 가르쳤다. 전형적인 K-맘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초등학교에서 2년을 온전히 마치고 온 큰 아이는 공부 습관이 배어 있었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덧셈, 뺄셈, 구구단까지 이미 마치고 온 우리 애를, 이곳 선생님은 <<똑똑하다>>라고 놀라워하셨고 이뻐해 주셨다. 아이가 말만 못 할 뿐이었지, 다른 애들은 어려워하는 덧셈이며 뺏세요, 그리고 구두단까지 척척 해 내니,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구구단 하나로 수학에서 두각을 나타내니, 아이에게 동기부여는 충분했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구구단으로 말할 거 같으면, 먼저 원리를 짧게 배우고 그 후에는 빠르게 암기해야 한다. 큰 아이는 암기까지 완전히 마친 상태였는데, 이 나라에서는 구구단을 1년 동안 잡고 있으니 우리 애가 뛰어난 머리를 가진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한국이 수학 진도가 빨라서 어떤 한국 아이라도 우리 애와 사정이 비슷하다면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독일어가 조금 서툴 뿐이지 머리는 좋은 아이가 되었고, 아이의 작은 질문 하나에도, 아무리 더듬더듬 말을 꺼내도 선생님들은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우리 큰 애의 한국 초등학교 2년은 너무나 평범했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와 보조를 맞춰가야 했기에, 우리는 한 팀이었고 아이의 하루 일과도 나의 퇴근 시간과 비슷하게 끝났다. 학교 돌봄 시간이 끝나면, 요일에 맞추어 영어학원과 수영을 거쳐, 집 가까이 피아노 학원과 한우리 독서 수업까지 촘촘하게 스케줄링을 되어 있었다. 학교 돌봄 시간에도 방과 후 활동을 신청해서 체스며, 창의 로봇 그리고 줄넘기 수업까지 그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2년 동안 그 시간들을 다 소화했다. 내 기억에는 아이가 아플 시간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애는 워킹맘을 둔 아주 평범한 K-초등학생으로 커가고 있었다.


아이에게는 분명히 고단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엄마 아빠 사정을 뻔히 알기에, 일단은 엄마가 시키는 데로는 해야 했기에, 하루 스케줄이 시스템화되어있는 아이의 시간은. 흥미를 느낄 시간조차 부족했기 때문에 그저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는 정도였다고 해 두는 것이 좋겠다. 그때는 몰랐다. 언젠가 써먹을 곳이 있을 것이라고는... 독일에 와서 한 동안 꿀 먹은 벙어리였지만, 구구단에서 쌓은 자신감으로, 체육 시간에 수영을 해 봤더니, <<오, 너 잘한다! >> 소리를 듣고, 미술 시간에 색종이로 팽이를 접어 주었더니, <<오, 이건 뭐야? 나도 만들어 줄래?>> 반 아이들이 줄을 서서 우리 큰애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체스를 슬쩍해 보았더니, 모두가 인정하게 되었다. <<아시아 사람은 원래 너처럼 그렇게 똑똑하니?>>


어느 날, 등교 길에 아이에게 쪽지 한 장을 주였다. 독일어 한 줄, 그 밑에 한글로 한 줄. <<잘 모르겠으니 다시 설명해 주세요>> 수업시간에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나오면 손 들고 다시 설명해 달라고 이야기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건넨 쪽지였다. 그런데 아이는 덤덤하게, <<엄마, 내가 일단 해 볼게요>>하며 쪽지를 다시 나에게 주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아이는 독일어에 날개를 달은 듯, 말을 술술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친구들 하고도 관계가 두터워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외국어 학습에 대한 나의 생각은 확고하다. 모국어를 잘하는 아이가 다른 외국어도 상대적으로 체계적으로 배우고, 결국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잘할 수 있다. 큰 아이의 독일 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늘 강조했던 것이, 한국어와 독일어를 서로 바꿔가며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언어를 바꾸는 시간이 짧아질 것이라고. 선생님의 생각은 어린 나이에 외국에 온 아이들이 이런 훈련을 하지 않으면 자기 나라 언어를 잊어 먹게 된다는 것인데, 나 역시 공감한다.


결국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에서 큰 애는 학급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었고, 담임 선생님은 어려서 독일에 와서 유치원부터 시작한 외국 아이들 포함 독일 친구들과 우리 애를 공개적으로 비교하셨다. 말만 잘하는 아이와 말만 못 하는 아이로 말이다. 큰 애는 어디에서든 잘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 모습이 적극적으로 보였고, 친구들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학년을 막론하고 독일 생활 2년 만에 학교에서 인기 많은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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