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기도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9p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야기를 쓴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고, 여러 가지 일들을 기도한다. 그리고 때때로 소설이라는 형태로 기도한다. 이 기도야말로 기적을 일으키고, 과거에 대한 희망을 반짝거리게 한다. 어쩌면, 그 희망을 실현시키는 것마저도 가능하다. 이야기와 소설 속에서라면. 12p
아름다움은, 설령 그것이 자신을 죽이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을 사로잡는다. 35p
기도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기도는, 그저, 무엇인가를 원하고 있다고, 그것을 들어줄 리 없는 그 누군가에게, 혹은 그 누구도 아닌 것에, 호소하는 행위인 것이다. 37p
죽지 말아줘, 죽으면 안 돼라는 말 속에, 정말 좋아해, 사랑해라는 마음은 충분히 들어가 있다. 41p
'메타화'하기 때문에 비평의 여지도 생긴다, 아니 '메타화' 그 자체가 '비평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것은 소설도 마찬가지다. 44p
연애란 그런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찌 되었는가가 아니라, 단 한순간만이라도 마음이 서로 통했는지 아닌지에 있다. 95p
어쩌면 편지의 뒤를 알고 싶어서, 나는 생각지도 않게 장수를 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야기에는 그런 효과가 있는 것일까? 95p
시간은 반드시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해결해 주지 않더라도 해소는 시켜준다. 해소는, 해결의 한 존재 방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108p
그런 우주인이나 마법을 진짜로 믿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야. 그런 우주인이나, 마법이라는 것은 비유와 같은 것이야. 우주인이나 마법이 나타내는 그 무엇인가가 중요한 거야. 124p
물론 말할 필요도 없지만 가키오가 지금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연애>가 과거가 되었다는 것은, <가키오>가 과거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은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거야, 나와 가키오는 꺠닫는다. 137p
나는 진짜로 일어난 일은 쓰지 않는다. 내가 쓰는 것은 일어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나 애당초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역시 일어나지 않았던 것뿐이다. 140p
나는 가키오의 그날 일을 자주 생각한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가키오가 그때 그런 식으로 외출해서 비밀로 했던 것은, 틀림없이 내게 그 일을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이며 가키오가 죽고 나서도 내게 가키오를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생각하는 일이 가키오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 나는 가키오의 생각대로 가키오를 좋아하는 그대로 잊어버리지 않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반복해서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57p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가, 사람을 사랑하기엔 딱 알맞은 것이다. 158p
그리고 작품 전체를 인용하고 싶은 <드릴홀 인 마이 브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