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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Jul 25. 2023

우리는 왜 사소한 것에 분노하는가?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우리는 왜 사소한 것에 분노하는가?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인간은 누구나 가끔 옹졸해진다. 사소한 것에 분노하고 강자한테는 약하고 약자한테는 강한 모습을 보인다. 부당한 일이나 불의한 상황에 저항하기보다는 바로 눈앞의 이익에 집착한다. 특히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에서 갑질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겨났다. 기업가의 갑질, 직장 내에서의 상사의 갑질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소비자의 갑질이 세계적인 신문에 언급될 정도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 시민으로서 성숙한 의식을 갖기보다는 소비자로서의 인간에 더 일찍 길들어져서일까? 인간으로서 성숙한 자아, 시민으로서의 합리적 자아가 형성되기 전에 구매와 소비의 반복된 경험 속에서 ‘소비자’로서의 존재로만 각인된 것일까?     


  평소 상남자처럼 보이던 중3 남학생이 사소한 어떤 지점에서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고 같은 반 동급생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비좁은 책상 사이를 지나가던 한 여학생이 그 남학생을 모르고 치고 가자 그 여학생을 향해 계속 욕을 하고 화를 냈다. 주위 분위기는 싸해지고 다른 아이들은 그 남학생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되도록 지켜보다가 안되겠다 싶어 나섰다. "00이 고의가 아니니 직접 그 00에게 실수를 알려주고 사과를 요청하는 게 어떨까?”라고 말해 주었다. 그 남학생은 "나를 쳤으면서 열 받게 사과도 안 하잖아요"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분위기를 좋게 해 보려고 김수영 시인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왜 우리는 사소한 것에 분노하는가’를 말하며 "그러지 말고, 대화로 풀어봐"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 남학생은 화를 좀처럼 가라앉히지 않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학생이 오히려 그 시에 대해 묻는다. "어떤 시에요?", "유명한 시에요?" 시인과 그 시에 관해 짧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여전히 그 남학생은 불편한 말들을 내뱉는다. 나는 참지 못하고 "평생 그렇게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화내며 살거니?"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그제서야 남학생은 민망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돌아왔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      


  이제 곧 있으면 졸업할 중3. 그 남학생에게 김수영의 시를 전해주면 나의 의도와 달리 기분 나빠할까봐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남학생이 시를 읽고 뭔가를 깨달았으면 하는 마음에 시를 출력해서 주었다. "너를 위해 준비했다"고 말하니 놀란 눈동자와 함께 "정말 저를 위해 준비한 거에요?"라고 감동한다.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감정과 함께 나의 진심을 알아준 그 학생이 고마웠다.

  "이 시를 읽고 네가 조금만 변화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멋질 것 같아"라고 말해주었다. 그 남학생은 시를 진지하게 읽고 모르는 단어도 물어본다. 시를 다 읽고 나서 "시가 참 좋네요"라고 말하자 주위 친구들이 무슨 시냐고 묻고는 자기네들끼리 돌려 읽는다. 그 뒤 보드게임을 하다가 화를 내는 친구에게 "야, 왜 우리는 보드게임을 하며 사소한 일로 친구에게 욕을 하는가"라며 시를 인용해 농담하며 자기들끼리 웃는다.


  교사로서 큰 욕심은 없다. 학생들이 문학을 통해 지금보다 성숙하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문학의 아름다움을 알고 서점에 가서 시집 한 권 사 볼 줄 아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 자녀와 함께 책을 사서 같이 읽는 부모가 됐으면 좋겠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김수영 시인의 사진을 고등학교 때 잡지에서 처음 봤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그냥 전율이 왔고 너무 좋았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제목만 보면, 어느 날 좋은 날, 아름다운 고궁을 산책하며 느낀 낭만적인 내용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김수영 시인은 매 순간 날카롭고 예민한 시선으로 부당한 사회에 대하여 비판 정신을 보여준 시인이다. 이 시 또한 500년 동안 권력의 정점이었지만 지금은 옛 흔적만 간직한 채 관광객을 기다리는 고궁의 퇴락한 모습을 통해 옛 권력자들의 무능과 부정을 비판한다.

  그런데 이 시의 핵심은 권력자들의 무능과 부정함을 넘어선다. 그것을 용인하고 가능하게 한 평범한 시민들, 우리들의 내면을 성찰하게 한다. 우리 누구나가 가진 소시민적 특성과 위선을 보여준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자기 모습을 뼈아프게 반성한다. 국가의 부당한 권력이나 불의와 언론 탄압과 예술가 탄압 그리고 월남 파병이 잘못된 일인 줄을 알면서도 침묵하던 자신과 소시민들을 비판한다.      


  이 시가 쓰인 1965년과 지금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 관리자와 상급자의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명령과 지시에 우리는 종종 침묵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장애인 차별, 비정규직 차별, 동성애자 차별, 이주민 차별에는 침묵한다. 나와 친분이 있으면 부당한 일도 쉽게 용인하거나 그냥 넘기지만 친분이 없거나 나보다 약자라는 생각이 들면 태도가 달라진다. 식당에서 음식이 조금 늦게 나오고 백화점에서 뭔가 마음에 안 들거나 택배가 하루라도 늦게 오면 우리는 쉽게 화를 내고 비난한다.


  이 시를 볼 때마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동성애는 개인의 사생활이며, 무신론과 동성애와 싸울 시간이 있으면 세계의 빈곤과 싸우십시오. 하느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자유로운 사람으로 창조했다면, 지금 그 자유인을 간섭하려는 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우리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세계의 전쟁과 빈곤에는 분노하지도 않으면서 사소한 것에 목소리를 높인다. 김수영 시인의 시를 보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나의 낯 뜨거움과 부끄러움과 대면한다. 나는 과연 학생들에게 이 시를 건넬 만큼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고 있는가? 나는 과연 그 학생을 혼낼 자격이 있는 스승인가? 그렇게 잘살고 있는가? 라며 되묻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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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째 네번째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의 포로수용소의 제 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비켜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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