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가 지금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 반칠환 '노랑제비꽃'
* 그 아이가 지금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 반칠환 '노랑제비꽃’
어느 날 문득 특정한 시가 마음속으로 훅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반칠환 시인의 시 ‘노랑제비꽃’은 하루아침에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300여 명의 세월호 아이들로 각인되었다. 그해 5월은 유난히 하늘이 파랗고 맑은 날이 많았다. 아름다운 봄날이었지만 비현실적인 악몽을 꾸듯, 속절없이 죽어간 아이들 생각에 시리게 아팠다.
내 자신이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뼈아픈 성찰 때문이었다. 흙길을 걷다 작은 풀꽃을 만나면 참 대견했다. 여린 노랑제비꽃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숲 전체가 오염되지 않고 건강해야 한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이 한 명이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 가정과 학교는 물론 정부가 제 역할을 다해야 했다. 아이 하나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플래카드가 지역마다 내걸렸음에도, 건강한 공동체의 중요성을 알고 있음에도, 정부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물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아이들의 생명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 왔던가? 우리 어른들은 어떤 국가를 만들기를 원했던가?
영화 ‘조커’를 보는 동안 이 시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난한 환경에서 홀어머니와 단둘이 생계를 이어가던 소시민 ‘아서’. 자신을 무시하며 폭력을 행사하던 사람들을 실수로 죽이게 되면서 자유를 느끼고 광기의 범죄자 조커로 변한다. 분명 조커는 살인자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안쓰러웠다. 아마도 몇몇 학생들이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경제적 궁핍과 부모의 방치, 문화적 소외로 외로움을 홀로 견디고 있던 아이들.
영화의 배경인 범죄가 판치는 악의 도시 ‘고담시’는 1970년대 뉴욕을 상징한다. 당시 뉴욕시의 브룽크스는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던 중산층이 살던 맨해튼의 위쪽에 있었다. 맨해튼의 상권 유지를 위해 고속도로가 뚫리게 되면서 브룽크스 중간을 관통하게 된다. 그 영향으로 브룽크스 상권이 무너지고 집값이 떨어졌다. 중산층 백인들은 은행 대출을 받아 브룽크스를 떠나고 대출을 받지 못하는 유색인종들만 남게 됐다. 생산시설들도 빠져나가자 세금을 걷지 못해 시 재정이 약화되자 뉴욕시장이 중앙 정부에 구제 요청을 하지만 거부당한다. 결국 시는 예산을 삭감하고 경찰서, 소방서도 줄이고 복지예산도 없애고 만다.
영화 속 ‘아서’도 정신질환이 있었으나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 정부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부의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게다가 인간에 대한 존중과 연민이 사라진 사회에서 소시민 ‘아서’가 광기의 살인자 ‘조커’가 되는 비극이 일어난다. 그 비극은 얼굴만 다를 뿐 무수한 조커들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 아서가 풍기던 그 침울함, 우울함, 깊은 어둠은 그 누구라도 집어삼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연을 맡았던 호아킨 피닉스는 아서 연기를 할 때 질식할 것 같아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새 학기 첫날, 청소 시간에 도망간 중3 남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청소하고 가야 한다고 했더니 순순히 학교로 왔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며 청소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이가 불안해 보여 집에 전화를 걸었다. 이혼한 부모님 대신에 할머님이 두 손자를 키우고 있고 할머니와 그 아이의 관계가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와 할머니의 관계가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노년에 어린 손자 둘을 키워내고 있을 그 삶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기에 할머니도 그 아이도 안타까웠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에 무슨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었다. 감나무에 감이 예쁘게 달린 삽화를 보고 어떤 느낌인지 물었다. "핏덩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요"라고 말해서 그 아이의 불안과 분노가 걱정되었다. 그 아이의 숙모랑 통화를 했다. "심성이 착한 아이였는데 어머니를 많이 닮아서인지 할머니의 구박을 받으면서 자꾸 삐뚤어 나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학교에 결석하는 날이 많아졌다. 학교에 나오는 날이면 대화를 시도했다. "공부를 안 해도 좋으니 중학교만 졸업하자, 그래야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어"라고 겨우 설득했다. 학교에 가끔 나오기는 했으나 1교시만 대충 하고 사라지거나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와서는 점심만 먹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의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연락이 닿았고 어렵게 만났다. "중학생 시기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고 추억을 만들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이에게 조금만 더 관심과 애정을 주시고 목욕탕도 가고 놀이공원도 가서 시간을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처음에 그 아이는 "각자 사는 것이 편해요"라며 지금 와서 불편한 일을 만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처음 아버지 역할을 하는 거라서 실수할 수 있으니 기회를 드려보자"고 설득했다. 아이 눈동자가 흔들리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그 아이와 아버지는 함께 목욕탕도 가고 놀이공원도 다녀오는 듯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고 그 이후, 그 아이의 아버지랑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다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다. 경찰관 말씀이 "세상에 저렇게 독 오른 뱀 같은 아이"는 처음 본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매번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 때문에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나 힘들면 독이 올랐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저 아이였다면 맨 정신으로 삶을 견디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웠다.
그 아이와 수시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 아이는 이미 만사가 다 귀찮은 표정이었다. 자존심이 센 아이였기에 밥을 사주겠다고 얘기하면 거절했다.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있을 이 아이. 기댈 곳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 아이. 담임이라고 어른이랍시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어쭙잖은 충고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기에 해 줄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나쁜 환경이라고 해서 다 그렇게 문제를 일으키며 살지는 않아’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 아이에게 세 가지만 약속하자고 했다. “첫째는 중학교는 꼭 졸업하자, 그러니 결석은 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는 다른 사람을 아프게는 하지 말자, 절대 주먹은 휘두르지 말고 나쁜 짓은 하지 말자. 셋째는 네가 지금도, 미래에도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였다. “그러려면 너 자신을 놓지는 말자, 부모에게 복수한답시고 너 자신을 놓아버리고 막살면 안 된다”라고 신신당부했다.
담임으로서, 어른으로서, 고르고 골라서 그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말들이었다. 그 말이 얼마나 그 아이에게 받아들여졌는지 나는 모른다.
이후에도 아이는 학교에 오지 않거나 마음대로 학교에 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전화해도 수시로 끊어버렸다. 학교에서 운 좋게 그 아이를 만나면 세 가지 당부를 약속받곤 했다. 고등학교 원서를 쓸 때도 아이도 부모님도 만날 수가 없었다. 학기 초 휴대전화로 찍어놓은 증명사진을 이용해 원서를 넣었고 그렇게 고등학교를 보내고 헤어졌다.
2년 뒤 다른 제자를 통해 그 아이가 고1때 자퇴하고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 아이가 가끔 선생님 얘기를 한다는 말을 끝으로 그 아이가 30이 넘었을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나라도 그 아이에게 화분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줌 흙이나마 되지 못했을까 걱정이 된다.
시 ‘노랑제비꽃’과 영화 ‘조커’를 보며, 정부와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의 올바른 생각과 지혜와 실천이 정말 중요함을 느낀다. 또한 가정이 충분한 화분이 되어 주지 못할 때, 우리 어른들과 사회가 어떤 시선과 태도로 소외된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자신을 걱정하고 염려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최소한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자신을 쉽게 놓지는 못할 것이라는 희망을 걸어본다. 그 희망마저 쓸모가 없다면 애초에 인간의 노력과 열정과 책임 따위는 필요 없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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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제비꽃
반칠환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