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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Jul 24. 2023

나의 성공은 도착이 아니라 그 여정에 있음을 기억하며

 - 낸시 함멜 '여행'

  * 나의 성공은 도착이 아니라 그 여정에 있음을 기억하며

         - 낸시 함멜 ‘여행’  


  누구나 처음 가는 길, 새로운 세계는 항상 낯설고 두렵다. 특히 우리나라 학생들은 입시 경쟁과 성적의 부담감 속에 하루하루를 산다. 공부를 왜 하는지에 대한 물음 없이 1등과 합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간다. 그 시간 속에 모든 추억은 거세되고 목표가 좌절됐을 때 느끼는 깊은 패배감과 절망감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

  졸업과 동시에 입시 전쟁터에 진입하는 중3 학생들에게 선생으로서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하나 항상 고민이었다. 3년 동안 감당해야 할 시간의 힘듦을 알기에 어른이랍시고 어쭙잖은 조언을 하고 싶지는 않다. 혹은 ‘다 잘 될 거야’라는 무한 긍정의 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삶이 뭐라고 생각하니?, 사는 게 어떠니?"라는 질문을 던져 보곤 했다. 순간 아이들 사이에 정적이 감돈다. "삶이 그냥 그래요!"라거나 "사는 게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꽤 있다.

  "선생님도 삶이 쉽지 않고 지금도 잘 모르겠다. 삶이 도 닦는 과정 같기도 하고  잘 죽어가는 과정 자체 같기도 하고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소풍 같기도 하고 여행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살아보니 삶이 마냥 쉽지도 매일 행복할 수도 없다. 순간순간 견뎌내야 할 일도 많고"라고 얘기해 준다. 한마디로 "삶은 살아보니 별것 없는데,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그런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별거 없다는 말에 피식 웃기도 한다.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날을 살아왔지만, 나에게도 삶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이다. 그런 순간마다 시가 참 많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학생들이 살면서 절망하고 좌절할 때, 다시 삶을 살아낼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른 시가 낸시 함멜의 ‘여행’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향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인간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결정되는 것 같지 않다. 살면서 배운 게 있다면 ‘꿈을 꾸고 노력한다고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후의 결과는 우리의 의지와 바람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우리 삶이 우리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망스럽고 억울하지만 그게 삶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법 없이도 살 만큼 착하게 살아온 많은 사람이 갖가지 고통스러운 일을 겪는다. 수없이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우리는 ‘왜 하필 나지?’라는 질문을 한다. 신을 원망하지만 삶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삶을 대충 살 수도 없고 우리는 그 삶을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인지 독재 시절 군대와 학교,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짓누르던 구호들 ‘하면 된다.’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현실과 다른 무한 긍정의 이상적 구호를 가르치고 싶지는 않았다.

  ‘고흐’가 ‘피카소’보다 노력이 부족했을까? 능력이 부족했을까? 아니면 열정이 부족했을까? 둘 다 예술에 열정적이었고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고흐는 평생 그림 한 점 겨우 팔았을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고 그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다. 피카소는 천재 화가로서 평생 부와 명성을 얻었다.

  고흐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사후라도 그의 그림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열정의 대가를 지불받았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러지 못할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성공의 결과만이 다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업적이나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잣대로 타인의 삶을 쉽게 평가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쉽게 삶의 본질에서 멀어져 돈이나 권력, 성공, 명예라는 헛된 것에 현혹되어 집착하거나 주눅 들어 괴로워한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느냐, 얼마나 가치 있게 성장했는가이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이 시를 들려준다. ‘나의 성공은 도착이 아니라 그 여정에 있음을 기억하며’라는 구절은 ‘너의 수고는 너만 알면 돼’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너의 꿈을 향해 열정을 다해 준비하자. 그 선택의 순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결과 때문에 주저하지는 말자. 그리고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우리의 노력과 열정을 부질없는 것이라고 치부하며 너희들의 지나온 삶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말자"라는 말을 덧붙인다.

  큰 성공이나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수고로운 삶을 사는 평범한 우리들. 열정과 의지로 충만하던 그 시간, 힘겹기에 아름다웠던 그 노력들을 기억한다면 새로운 삶의 여행을 떠날 힘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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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낸시 함멜           


   길을 선택해야만 했을 때 나는 서쪽으로 난 길을 택했다.

   길은 유년기의 숲에서 성공의 도시로 이어져 있었다.     

   내 가방에는 지식이 가득했지만

   두려움과 무거운 것들도 들어 있었다.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은

   그 도시의 황금 문으로 들어가리라는 이상이었다.      

   도중에 나는 건널 수 없는 강에 이르렀고

   내 꿈이 사라지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나무를 잘라 다리를 만들고 강을 건넜다.

   여행은 내가 계획한 것보다 더 오래 걸렸다.

   비를 맞아 몹시 피곤해진 나는 배낭의

   무거운 것들을 버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나는 숲 너머에 있는 성공의 도시를 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난 목적지에 도착했어. 온 세상이 부러워할 거야.’

   도시에 도착했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문 앞에 있는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목쉰 소리로 말했다.

   ‘당신을 들여보낼 수 없어. 내 명단엔 당신의 이름이 없어.’     

   나는 울부짖고, 비명을 지르고, 발길질을 해댔다.

   내 삶은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고개를 돌려

   내가 걸어온 동쪽을 바라보았다.

   그곳까지 오면서 내가 경험한 모든 일들을.     

   도시에 들어갈 순 없었지만

   그것이 내가 승리하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강을 건너고, 비를 피하는 법을 스스로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을 여는 법을 배웠다.

   때로는 그것이 고통을 가져다줄지라도.     

   나는 알았다, 삶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 이상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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