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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Jul 24. 2023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거릴 시간, 꿈꿀 시간!

- 도종환 '종례시간', 박성우 '몸부림'

  *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거릴 시간, 꿈꿀 시간!    

             - 도종환 ‘종례시간’, 박성우 ‘몸부림’          


  도종환 시인의 시 ‘종례시간’을 처음 읽었을 때, 교사가 학생들에게 종례 시간에 해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말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종례시간에 학생들에게 "수고했다. 집에 가서 쉬어!", "주말에는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아라!" 또는 "친구들과 농구도 하고 산책도 하렴!" 하고 자주 말하곤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선생님은 왜 공부하라는 말 안 하시냐"며 신기해 한다. 그러면 나는 "공부하라는 말은 내가 아니어도 지겹도록 듣지 않니?"라고 답하곤 한다. "그건 그래요"라며 아이들은 피식 웃는다.

     

  학교, 학원, 공부에 지쳐 있는 학생들은 5분이라도 수업을 일찍 끝내달라고 조른다. 그런 학생들이 안쓰러워 수업을 조금 일찍 끝내준다. 그러면 수학이나 영어 학원 문제집을 꺼내 정신 없이 푸는 학생들이 있다.

  "얘들아, 우리는 문제 풀려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 문제 풀지 말고 쉬어. 친구들과 수다 떨든가." 이런 나의 말은 허공 속에 외침으로만 남는다. "오늘 여기까지 안 풀어가면 죽어요."라는 애처로운 대답이 돌아온다. 쉬는 시간, 점심 시간에도 학원 문제집을 푸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시간이 부족한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문제집을 풀다가 걸려 혼나기도 한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생기발랄하고 의욕적이던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해 채 한 학기도 지나기 전에 지치기 시작한다. 한 번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강촌으로 기차 타고 소풍을 갔었다. 학급 회장을 맡은 아이와 얘기를 나누다가 충격을 받았다. 다양한 학교생활에 호기심을 가지고 활기차게 생활하던 아이였다. 체육대회가 있는 날에는 1시간이나 일찍 나와 준비할 정도로 주체적이고 의욕적이었다. 그러던 아이가 생기 없는 눈빛과 지친 표정으로 "꿈요? 전 약사 할 거예요. 편하잖아요. 아르바이트생 두고 약 지어주고 가만히 있어도 되고…"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아이의 생기와 열정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상담하다 보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학원 안 다니게 부모님께 말좀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제법 많다. "주말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학원에 앉아 있는 자신의 삶이 너무 남루하다"며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중2 여학생의 말을 들으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중학교 입학 전에 고등학교 수학을 선행하고 있는 남학생이 틱장애처럼 눈을 계속 깜박거렸다. 물어보니 평일은 학원 다니고 주말에는 과외를 하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님과 2시간이 넘는 상담을 했다. 아이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먼저라고 하루쯤은 온전히 쉬어야 한다고 설득을 한 후 그 아이의 틱이 나아지기도 했다. 그 남학생과 상담하면서 놀다가 지쳐 잠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해서 "문학책도 읽고, 하루쯤은 온종일 자유롭게 놀아보는 경험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업 일수와 수업 시수는 세계에서 최고로 많다. 프랑스와 비교해 보면 55일, 약 2달을 더 학교에 나간다. 하루 수업 시수도 많아 평일 7교시 수업이 1주일에 2번 이상이다.

  학교 수업 후에 집에서 쉬거나 책을 읽거나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없다. 대부분은 곧장 학원이나 공부방을 가거나 과외를 한다. 토요일도 학원을 가거나 주말 내내 학원에 다니기도 한다.

  학습 시간과 학습량과 학업 성취도의 관계는 어떨까? 2007년 12월 4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OECD 본부에서 PISA 결과 발표가 있었다. PISA는 OECD가 2000년부터 3년마다 한 번씩 각국의 만 15세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비교 평가하는 시험이다. 2006년 PISA에는 OECD 30개국 포함, 57개국 40만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그 평가에서 핀란드가 읽기와 쓰기에서 2위, 과학 1위, 수학 1위를 차지하여 종합 1위를 했는데 핀란드는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한국도 읽기와 쓰기에서 1위, 수학 2위, 과학 7위,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PISA 평가위원들은 한국의 교육 방식에 비판적이었다. 한국 학생들은 공부는 잘 하지만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스트레스는 매우 높다. 반면 지적 호기심과 자기주도 학습능력, 타인과의 소통 능력은 매우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진정한 배움은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교육의 방향성과 가치는 시험 성적만이 아니라 즐거움을 느끼고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학생들의 정서·행동 검사 결과지를 받아보면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학생들이 반에서 과반이 넘는다. 자기주도 학습 능력과 학업 만족도도 낮고 타인과의 공감 능력도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다. 상담을 하면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는 학생은 거의 없고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어서, 좋은 대학을 가야 하니까, 공부를 억지로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른들도 삶이 바쁘고 몸이 힘들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삶에 대한 만족감은 낮아지고 의욕이 떨어져 만사가 귀찮다. 내 몸과 마음이 힘들면 주변과 타인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경쟁 교육에만 매몰된 학생들에게 자신을 사랑하고 꿈을 찾고 친구를 배려하며 성장하길 바라는 것은 어른들과 이 사회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버틀란트 러셀’의 책 『게으른 삶에 대한 찬양』을 보면 조금 명확하게 성찰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강제적인 틀을 가할 때, 사람들은 잔인함과 무관심의 특징을 보인다고 했다. 그들에게선 어떤 선함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교육은 반복적인 훈련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경험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되어 생기를 잃은 채 삶에 지친 아이들.

  박성우의 시 ‘몸부림’처럼 아이들이 지독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라며 뺏어왔던 시간들을 지금이라도 돌려줘야 한다.       


뒹굴뒹굴할 시간.

늘어지게 잘 시간.

무료함을 느낄 시간.

게으르게 멍때릴 시간.

심심해서 친구를 찾고 친구와 놀 시간.

책을 읽을 시간.

자연에서 뛰어놀 시간.

꿈꿀 시간.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거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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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례시간

                                     도종환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지 말고

코스모스 갸웃갸웃 얼굴 내밀며 손 흔들거든

너희도 코스모스에게 손 흔들어 주며 가거라

쉴 곳 만들어 주는 나무들

한 번씩 안아 주고 가라

머리털 하얗게 셀 때까지 아무도 벗해 주지 않던

강아지풀 말동무해 주다 가거라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

만질 수도 없고 향기도 나지 않는

공간에 빠져 있지 말고

구름이 하늘에다 그린 크고 넓은 화폭 옆에

너희가 좋아하는 짐승들도 그려 넣고

바람이 해바라기에게 그러듯

과꽃 분꽃에 입 맞추다 가거라     

               -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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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부림

                                          박성우     


나의 지독한 몸부림이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아름다운

풍경으로 비춰질 때가 있다 가령     

물고기가 튈 때다, 해질 무렵 물고기가 튀어오르는 것은

붉고 고요한 풍경에 격정적인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비늘 안쪽으로 파고드는 기생충을 털어내기

위한 물고기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 중략 -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앞다투어 빛나는 학교와

도서관과 공부방 또한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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