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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 자신에게 묻곤 한다. 뭐가 이렇게 엉망이지? 그러면 뭐가 엉망인지 짚어보게 되고 결국엔 별로 엉망인 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정말이다. 현재 나는 별일 없이 살고 있다. 아쉬울 것도 추구할 것도 없다. 마음이나 감정 따위에 연연하지 않기로 하자 편했다. 선영의 결혼식 이후로는 눈물을 흘린 적도 없다. 그게 특별한 계기가 되어준 것은 물론 아니다. 그냥 타이밍이 그랬을 뿐이다. 외로움은 적당히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선영도 지금의 나를 보면 더는 우유부단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 자신에게 이따금 물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뭐가 이렇게 엉망이냐고. 가끔 선영의 꿈에 나타나 울거나 죽는 것만 빼면 나는 아무렇지 않다.
맞다. 내 하숙방으로 찾아왔던 선영에게 그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때도 나는 조금 울었는데, 아마 그 얘기를 하다가 그랬을 것이다. 선영은 “걔가 원래 좀 재수 없었어. 제복이 퍽이나 멋있는 줄 알고 시도 때도 없이 입고 다니더라고. 제복 입으면 본인이 다른 애들이랑 좀 다른 것처럼 느껴지나 보지? 그런 애들 딱 질색이야.”라고 말했었다. 대화하는 중에 선영의 왼쪽 뺨에 새로 생긴 점을 골똘히 들여다보았던 기억도 난다. 그날 우리는 하숙집 아주머니가 쪄놓은 옥수수를 많이 먹었다. 그 이후로 선영과 둘이 만난 적은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취업을 한 고등학교 동창들과 몇 번 모이긴 했는데, 단둘이 만난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주유 경고등이 불이 들어왔다. 전방 20km 앞에 휴게소가 있었다. 휴게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휴게소의 입간판이 눈에 들어오자, 요의가 느껴졌다. 평일 낮인데도 휴게소는 주차된 차량들로 가득했다. 겨우 한 자리를 발견하고 주차한 뒤 마스크와 핸드폰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몸에서 소변이 빠져나가자, 고개가 절로 뒤로 젖혀졌다. 화장실을 나온 뒤에는 카페로 갔다.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가 얼굴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더워 죽어도 뜨거운 아메리카노였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핸드폰에 들어와 있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 아무튼, 언제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 이 시국에 보자고 하는 거 민폐인가?
- 지금 통화는 되니?
내가 읽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선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으면서 나는 선영의 목소리에서 선영의 결혼 생활의 불행을 감지했다. 나는 결혼 생활이 뭔지 모르고, 더구나 선영의 목소리에서 뭔가를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대화를 나눈 지 오래됐으면서도, 그냥 그렇게 느끼고 말았다. 선영이 목소리에 부옇고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불행이 내게 건너올 것만 같아 나는 얼굴에서 휴대전화를 조금 떼었다. 얘야말로 정말로 엉망이겠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그랬다. 선영은 잠시 횡설수설한 끝에 말했다.
“얼마 전에 걔를 은행에서 만났는데, 어떻게 하다가 같이 잤는데, 그 후로 걔랑 연락이 안 돼.”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선영 역시 듣기보다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기색 없이 선영은 말을 이었다.
“나는 걔가 그런 앤 줄 몰랐어. 근데 너는 왜 알면서 나한테 말 안 해줬니?”
그래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얘가 어떤 얼굴과 어떤 자세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를 떠올려 볼 뿐이었다. 화장은 했을까. 맨얼굴일까. 앉아 있을까. 서 있을까. 나는 마스크를 벗어 손목에 끼우고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선영은 말을 이었다.
“아니, 탓하는 건 아니고. 있잖아. 나 어떡하니? 나도 더 연락 안 하는 게 맞겠지?”
살다 보면 재밌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선영을 알게 된 지 13년째, 선영은 이제야 재밌는 사람이 되었다. 아니면 원래 재밌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걸 이제 안 건가. 내 판단이 너무 성급했는지도 모른다. 선영의 결혼 생활은 불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선영은 그것에 대해선 아무 얘기도 안 했다. 결혼 생활이 그럭저럭 괜찮으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흡연구역으로 걸어갔다.
“근데, 선영아.”
나는 재떨이 근처에 커피를 내려놓고 어깨를 들어 올려 핸드폰을 귀에 고정한 채 담배에 불을 붙인 뒤 물었다.
“내가 어떻게 죽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