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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연 Oct 19. 2024

안부의 출처

6

  커브를 돌자 앞쪽의 차들이 비상등을 켠 채로 속도를 멈추고 있었다. 나도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앞차와 좁은 간격으로 차를 세우자마자 등이 서늘해졌다. 백미러를 통해 뒤따라오던 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두 손으로 핸들을 움켜주고 어깨를 움츠렸다. “하, 제발.”이라는 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왔다. 다시 고개를 들어 백미러를 바라봤을 때는 내 뒤의 차도 가까스로 멈춰선 상태였다. 여기저기 자동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난리였다. 정체는 시야에 보이는 도로 끝까지 이어져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비게이션에 유고 정보가 떴다. 도로 어딘가에서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담배가 당겼다. 냄새가 배는 게 싫어서 차에서는 피지 않는 담배를 아무렴 어떠냐고 피우고 싶었다. 하지만 가방 깊숙한 곳에 있는 담배를 꺼내 불까지 붙여 피울 자신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었지만, 매연이 들어와서 다시 창문을 닫았다.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 냉기에 피부가 식으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차는 찔끔 가다 멈춰서길 반복했다. 예상 도착시간은 20분 늘어 10시 25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핸드폰 진동이 짧게 두 번 울렸다. 정체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나는 차가 멈춰 선 틈을 타 오른손을 핸들에서 떼고 메시지 창을 클릭했다. 또 선영의 메시지였다.

  - 인주야, 내가 왜 자꾸 이런 꿈을 꾸는지 모르겠어.

  - 너한테 미안해서인가 봐.

  나는 선영의 메시지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얘가 무슨 소리 하는 건가. 

  -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한 손으로 문자를 찍어 보낸 뒤 핸드폰 화면을 내비게이션으로 돌려놓았다. 진동은 계속 울렸다. 아예 막히는 것도 아니고 일정하게 나아가는 것도 아닌 도로 위에서 연거푸 울리는 핸드폰 진동 소리에 신경이 거슬렸다. 

  -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소개해줬던 애 말이야. 

  - 걔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 그때 내가 널 도와줬어야 했는데.

  - 미안해. 이제라도 사과하고 싶어.

  선영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알고 싶은 마음보다 문자를 그만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햇빛도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전면 유리창 위로 내리꽂히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선바이저를 내리자 열린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이 보였다. 거울 속의 잔뜩 찌푸린 나를 일별하는 순간, 문득 떠올랐다. 혹시 그 얘긴가? 하지만 곧 의문이 들었다. 

  내가 그 얘기를 선영에게 했었나?          

  앞쪽에 터널이 보였다. 차들의 기다란 행렬이 터널 안으로 구겨 넣어지고 있었다. 했겠지. 했으니까 선영이 지금 내게 이러는 거겠지. 그래도 나는 물었다. 앞 유리와 휴대전화를 번갈아 바라보며 문자를 찍어 한 문장을 쓰는 데도 오래 걸렸고 결국 오타가 났다.

  - 근데 내가 그 애기를 너한태 했었나?

  메시지를 읽었다는 표시가 떴지만, 선영에게는 한동안 답문이 없었다. 

  앞에 서 있는 차는 브레이크 등이 고장났는지 멈춰 설 때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앞차의 바퀴를 노려보며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가 다시 갖다 대기를 반복했다.

  사고가 수습되었는지 터널을 벗어나면서부터 차량의 정체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편 갓길에 경광등을 켠 레커차와 차 두 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뒤 범퍼가 떨어져 나간 차는 구형 코란도였고 보닛이 찌그러진 차는 회색 그랜저였다. 아까 나를 위협하던 회색 그랜저는 다른 길로 갔으므로 그 차일 가능성은 적었지만, 그 차와 낡음의 정도와 튜닝의 스타일이 비슷했고, 그냥 그 차였으면 싶었다. 두 차 사이에 멀찍이 떨어져 서 있는 남자 둘이 보였다. 한 명은 키가 컸고 한 명은 키가 작았다. 나는 핸들을 세게 움켜쥐고 풀리기 시작하는 도로의 흐름을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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