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론스톤 Dec 23. 2023

고슴도치 아내와 사는 남편

뾰족함과 둔탁함의 조화를 이루고 싶을 뿐인데......

 어제는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와 함께 새로 생긴 키즈카페에 놀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 키즈카페에는 노란색의 커다란 포클레인에 올라타서 아이들이 직접 조종할 수 있는 멋진 콘텐츠가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깔 볼풀공에는 젤리와 사탕 등등의 상품들이 들어있어서 그 공을 퍼담은 아이들에게 해당되는 간식을 선물로 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우리 아이는 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가는 신설키즈카페에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한참을 신나게 놀았다. 신설키즈카페에는 그뿐만 아니라 범퍼카 존과 레일 미끄럼틀, 노래방 등등 요즘 키즈카페 트렌드에 맞는 콘텐츠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노래방도 방이 여러 개가 여유 있게 있었고 오락실부터 빙글빙글 돌아가는 빙글이까지 모두 우리 아이들의 흥미와 입맛을 돋우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2시간을 끊고 들어왔다. 

 아이는 1시간 남짓 여기로 갔다가 저기로 갔다가 뛰어다니며 신나게 노는듯하더니 갑자기 어느 순간, 얼굴색이 창백한 게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왜 그래? 피곤해? 졸려?" 아이에게 상태가 어떤지 물었다. 아이는 배가 아프고 졸리다며 테이블 쪽으로 와서 맥없이 드러누웠다. '낮잠을 못 자서 그런가? 어디가 아픈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아이가 낮잠을 못 자서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우리 아이는 내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아이가 배가 아픈 것을 참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배가 많이 아프니? 집에 가는 게 좋겠는데? 일어나서 집으로 가는 게 어때?" 아이 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안 좋아 보여서 집으로 데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이는 싫다고 울며 불며 떼를 썼다. 결국 함께 온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고 키즈카페 40분을 남겨두고서 아이를 안고 키즈카페를 나왔다. 배가 아프다고 칭얼대는 아이가 걱정이 되었다. 나는 부지런히 소아과 영업이 끝나기 전에 들렀다가 가는 게 좋을 듯싶어서 소아과로 향했다. 뒷좌석 카시트에서 잠을 자는 듯했던 아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몸을 뒤틀었다. "왜 그래? 많이 아파? 조금만 참아! 엄마랑 소아과 갔다가 가자." 그때였다. "웩!""........."아이는 뒷좌석에 거대한 분수토를 연거푸 쏟아냈다. '하........ 차를 이제 폐차해야 하나...... 하........' 엄마로서 아이부터 걱정해야 하는 것이 분명 옳은 순서였지만 아이의 토사물로 뒤덮인 뒷좌석과 역한 냄새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이의 잠바와 바지도 온통 토사물이 묻어서 엉망진창이 되었다. "괜찮아? 토하고 나니 이제 조금은 시원하니? 속이 울렁거렸구나. 에휴....."아이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이 상태로 소아과를 들렀다가 갈 수는 없었다. 집까지 도착하려면 족히 20분은 걸렸다. 나는 잠시 갓길에 차를 세워서 일단 아이의 입과 옷에 묻은 토사물을 물티슈로 닦아내었다. 뒷좌석은 갓길에 차를 대고 비상등을 켠 상태로 청소를 할 수 있는 스케일이 아니었다. 차 안에는 아이가 오후에 먹은 진한 초코브라우니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 맛있는 초코 브라우니를 우리 아이의 위장은 왜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해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내 나는 머릿속으로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고 잠든 아이를 어떻게 옮기고 토사물을 어떻게 치워야 할지 순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도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서 집에 도착할듯하여 남편에게 다급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회사의 일로 회의 중이었는지 회의 중이라는 메시지로 통화 거절을 했다. '꼭 필요할 때는 전화를 안 받네. 쓸모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휴......' 나는 늘 애타는 순간에 통화가 잘 되지 않고 뒤늦게 도착하는 남편이 초코 브라우니처럼 소화가 되지 않고 울렁거렸다. 20분 뒤에 집에 도착할 무렵까지도 남편으로부터 회신 전화가 없었다. 나는 다시 남편한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바로 전화를 받고는 "여보세요? 무슨 일이에요?" 나는 다짜고짜 짜증과 미움과 설움이 뒤섞인 어조로 "뭐가 그렇게 바빠?" 남편은 나의 날카로움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감지한듯했다. "회의가 있어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어. 안 그래도 막 전화하려고 했어. 무슨 일 있어요?"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차에서 토하고 난리였다고. 당신 도움이 필요했는데! 아이 소아과도 가야 하는데!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왜 항상 필요할 때 전화를 안 받는 거야? 도대체!" 나의 히스테릭함이 극에 달했다."휴..... 지금 바로 집으로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결국 나는 잠든 아이를 안고 집으로 올라와서 옷을 벗기고 눕혀서 재웠다. 대야에 걸레와, 클렌져 물티슈, 휴지, 봉투를 챙겨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 사이에 토사물이 조금 굳은 부분들도 보였다. '하....... 이를 어쩌면 좋담......' 결국 나는 그 토사물들을 다 쓸어 모아서 치웠다. 클렌져 티슈로 한번 더 깨끗이 닦아내고 걸레로 빡빡 구석구석 닦아내었다. 그런데 안전벨트 꼽는 버튼 홈 사이에 낀 것은 닦이지가 않았다. "하......"나는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지갑에 일시 정지 된 폐카드가 하나 있었다. 카드를 길고 가늘게 가위로 잘랐다. '이렇게 뾰족하게 잘라내서 홈에 낀 것을 빼내야겠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얇고 뾰족한 그것을 홈에 끼워 섬세하게 긁어냈다. 물티슈를 깊숙이 집어넣고 뾰족한 것으로 후벼 파며 여러 번 깨끗하게 닦아내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 진한 초코브라우니 냄새가 가시질 않고 가죽 소파에 베어버린 것 같았다. 너무나 불쾌한 냄새가 차 안에서 계속 올라왔다. 여기까지가 오늘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 했다는 생각이었다. 봉투에 쓸어 담은 토사물들을 담고 더러워진 카시트까지 해체해서 집으로 가지고 올라왔다. 카시트도 욕조에 넣고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내었다. 

 그제야 삐삐 삐삐삐 하고 도어록 여는 소리가 들렸다. 8시가 넘어서 남편이 뒤늦게 집에 귀가하였다. 나는 현관으로 가서 남편을 째려보았다. "아이는 좀 어때?" 남편은 째려보는 나의 눈빛에서 냉기를 느끼고 낮은 톤으로 물었다. "어떻긴 뭐가 어때! 지금 들어오면 어쩌자는 거야? 결국 소아과는 못 갔어! 늦게 오면 늦게 온다고 미리 카톡을 하던지 전화를 하던지! 매일 7시면 들어오는 사람이 왜 꼭 필요한 날에는 연락도 안되고 늦게 오는 건데?" 나는 늘 애타는 시점에 일이 생겨버리는 남편을 날 선 고슴도치처럼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나의 비판이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남편 입장에서는 왜 하필 업무에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아이가 아프거나 긴급한 일이 생기는 건지 남편도 답답했을 것이다. 나는 남편 저녁을 차려주고 샤워를 하며 오늘의 피로까지 씻어버렸다. 아이는 간헐적으로 신음 소리를 내며 목이 타는지 물을 갖다 달라고 했다. 아이는 물을 한 컵 갖다 주면 꿀꺽꿀꺽 다 마셨다. 미열이 있는 것 같았다. 아이는 밤새 수시로 깨며 물을 찾았고 새벽에 한번 더 침대에서 분수토를 하였다. 

결국 나는 새벽 1시 30분쯤에 일어나 이불과 베개 커버를 탈피해서 세탁실로 옮겨두고 아이를 욕실에서 씻겨야 했다. 아이는 엉엉 울었다. '소아과를 어젯밤에 데리고 갔다 왔었야 했는데.....' 남편은 아이가 엉엉엉 점점 더 크게 울어대자 그제야 잠에 깨서 나와보았다. 그 새벽에 아이의 젖은 머리카락을 드라이기로 신속히 말려주고 아이를 안방으로 데리고 와서 안방 침대에서 재웠다. 아이가 밤새 탈수 증상이 있어서 물을 찾는 바람에 나도 아이도 잠을 설쳤다. 

 남편은 코를 골며 세상 태평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그런 남편을 잠시 한참 쳐다보았다. '코를 발등으로 한대 차 버릴까?' 밤새 아이가 아파서 수시로 깨는데도 무신경하게 잠만 잘 자고 있는 남편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상쾌한 아침을 시작해야 하는데 묵직한 피로가 느껴졌다. 아침부터 마음이 바빴다. 아이를 데리고 오전에 일찍 병원을 갔다 오고 세차장에 가서 내부세차를 받아놓아야 긴 연휴 기간 동안 일정에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아침을 간단하게 만두로 해결하였다. 우리가 밥을 다 먹고 나자 아이가 깨서 거실로 나왔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배는 안 아파?" "괜찮아요. 배 안 아파요." "그래도 병원에 갔다 와봐야지. 어제 새벽에도 분수토를 했잖니. 장염이거나 식중독일 수 있어. 얼른 서둘러 갔다 오자." 남편은 안방에 들어가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오늘 일정을 말했다. "아이 데리고 얼른 소아과 갔다 와야 하니까 내가 아이 데리고 소아과 갔다 올 동안에 얼른 세차장 가서 내부세차 좀 하고 와줘. "나는 다소 건조하고 사무적인 어조로 부탁을 했다. 남편은 나의 부탁이 따분한 잔소리로 들리고 짜증이 났는지 눈을 치켜뜨고 내게 말했다. "자기가 어제저녁에도 내부세차 하라고 이야기했고 오늘 내가 갔다 온다고 이야기했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반복해서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네." 나는 남편의 반응에 결국 꼭지가 돌았다. "어제 자기가 전화를 받았으면 소아과를 다녀올 수 있었을 것 아니겠어? 그럼 아이가 저렇게 밤새 힘들어하지 않았을 텐데? 자기는 잠만 잘 자더라? 아이가 수시로 깨서 신음하는데 잠이 와? 항상 왜 그렇게 행동이 느리고 둔한 거야? 갔다 와야 내가 차를 타고 오후에 산을 타고 올 것 아니겠어?" 결국 아침부터 우리 부부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며 목청 높여 싸웠다. 아이 앞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해 놓고 아이에게 이미 바닥까지 다 보여준 것 같았다. 결국 토요일 아침부터 남편과 한바탕을 치르고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 소아과는 주말 아침인데도 어린아이들로 붐볐다. 한참 대기를 한 뒤에야 아이 이름이 호명되었다. 아이는 병원에서 장염 진단을 받았다.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마트에 들러서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벌써 세차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있었다. "세차 잘했어? 구석구석 꼼꼼히 했어? 토했다고 말했어?" 남편은 구조적인 일이나 설득하는 일에는 탁월했지만 꼼꼼하지 못한 구석이 있어서 늘 여러 번 손이 갔다. "다 말했고 깨끗하게 청소받고 왔어요. 냄새가 배어서 창문을 조금 열어두라고 해서 창문을 일부러 살짝 열어두고 왔어요." 나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바로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확인해 보았다. 여전히 차 안은 그 진한 초코브라우니 냄새가 났다. 전체적으로 깨끗해진 것 같긴 했는데 구석구석 토사물이 튀겨서 굳어 있는 부분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뒤쪽 차 안쪽 문짝은 닦지도 않았는지 더러운 발자국이 그대로 찍혀있었다. '뭐야. 5만 원이나 받고 세차를 뭐 이 따위로 해놓은 거야?' 남편한테 나는 내가 가라고 했던 세차장에 가서 한 게 맞냐고 확인차 다시 물었다. 그제야 남편은 거기에 갔더니 대기하고 있는 차들이 많아서 근처에 다른 곳에 가서 했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남편에게 부탁을 하면 결국 내 손이 한번 더 가거나 신경이 쓰였다. 남편은 내가 신경증적이고 예민한 거라고 했지만 나는 남편이 너무 무신경하고 둔감한 사람 같았다. 나는 초코 브라우니 냄새가 나는 차를 타고 뒷산으로 갔다. 산 밑에 주차를 하고 털래털래 산으로 올라갔다. 주말에 나는 이렇게 본가 근처에 있는 작은 야산을 탔다. 문수산에 비하면 언덕 정도의 작은 산이라서 3바퀴는 돌아야 운동이 되었다. 뒷산은 대체적으로 돌이 없고 흙길이 많아서 맨발로 걷기에는 편안하였다. 정오가 지나자 볕도 따뜻하고 바람이 그렇게 불지도 않았다. 늘 그렇듯이 벤치에 와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걸었다.  '나는 오직 오늘만 가진 사람인데 그 소중한 오늘 중에 만난 남편한테 또 날 선 말들을 쏟고 말았네.' 맨발로 산을 걷다 보니 남편에게 날 선 말들을 쏟아낸 것들이 후회되었다. 한 시간 정도 맨발로 걷다가 발이 얼얼해서 양말을 다시 신고 신발을 신고 걸었다. 산에 오면 히스테릭했던 감정의 결들이 차분해지고 정돈되곤 했다. 장염에 걸린 아이가 좀처럼 밥도 잘 먹으려 하지 않았다. 아이는 약을 먹이고 일찍 재웠다. 오늘 밤에는 남편과 빨간 딸기를 먹으며 오늘 아침에 날 선 말들을 쏟아낸 것에 대해서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겠다. 

종종 고슴도치가 되는 아내를 조금만 이해해주면 정말 고맙겠다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30대에 신선이 된 아줌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