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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Dec 25. 2023

크리스마스 대청소

남편은 도대체 왜 그러는걸까?

 남편은 도대체 왜 똥 지린 아이의 엉덩이를 닦일 때 아이를 세면대에 세워놓고 닦는 것일까? 

나는 이런 고집스러운 남편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장염에 걸렸는데도 딸기랑 사과를 먹고 싶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결국 나는 아이에게 딸기와 사과를 먹도록 허락해 주었다. 깨끗하게 샤워를 시키고 재우려고 누웠는데 아이가 엎드린 채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나 바지에 똥 싼 것 같아." 

나는 아이를 얼른 재우고 책을 조금 읽다가 미역국을 끓여놓고 자려던 참이었다. 예상은 했던 일이지만 아이가 잠자리에서 똥을 지렸다는 말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나는 짜증이 잔뜩 섞인 투로 아이에게 야단을 쳤다."거봐! 엄마가 뭐라고 그랬어. 장염 증세가 있어서 딸기나 사과 같은 거 먹으면 안 된다고 했지. 이제 엄마는 몰라. 얼른 아빠랑 화장실 가서 닦고 와." 

 남편은 한 숨을 푹 쉬며 아이를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늘 그렇듯이 남편은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서 세면대 위에 세웠다. 그리고 아이에게 거울장을 손바닥을 펴서 잡으라고 했다. 남편은 그렇게 불안한 자세로 똥 지린 아이를 꼭 세면대에 세워놓고 샤워기로 똥물을 여기저기 다 튀기면서 닦는 것을 고집했다. 나는 그 고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 집 화장실의 거울장은 옆으로 밀어서 여는 식이라 거울장이 옆으로 밀릴 수도 있었고 도기 세면대에 물이 고이면서 자칫하면 미끄러져서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도대체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아이를 왜 불안하게 세면대 위에 세워두고 엉덩이를 닦는 거야? 아이가 넘어져서 다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똥물이 사방에 다 튀겨서 비위생적이고 거울장도 손자국과 물자국으로 엉망진창이 되는데 왜 항상 그런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목욕법을 고집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네? 바로 옆에 욕조가 있는데 욕조에 아이를 세우고 안전하고 깔끔하게 엉덩이를 닦아줄 수 있잖아? 어?" 남편은 속사포로 쏟아놓는 나의 비판이 못마땅하여 부글부글 끓는 화를 참으며 나를 째려보았다."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뭐라 잔소리하지 말고 신경 꺼." 남편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자신의 그 불편하고 위험해 보이는 목욕법을 맹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리 비켜!"결국 나는 남편에게 소리를 빽 질러대고 불안하게 서있는 아이를 번쩍 안아서 욕조에 안전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는 샤워기로 아이의 엉덩이를 깨끗이 닦아주었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육아에 있어서 아이를 잘 살펴주기만 해도 나는 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치병의 길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나 남편의 손끝은 5년이 다 되어가도록 처음처럼 서툴고 투박하고 고집까지 세서 결국 나의 손길이 여러 번 가야 했다. 나는 그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치고 쓰러져도 꿋꿋하게 또 일어나서 엄마와 아내의 의무를 이행했다. 이런 억척스러움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계발되었다. 

'또 일주일은 병원 다니며 고생하게 생겼구나.'치병을 하면서 아이가 아프지 않도록 하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아이가 건강해야 나는 그 흐름 속에서 건강성을 회복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씩 아이가 아프게 되면 병원을 다녀야 하는 일부터 약을 챙겨 먹이고 밤을 새우고 하는 모든 일들이 심리적으로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나는 굉장히 예민해지곤 했다. 정말 자질구레한 모든 일들이 결국에는 엄마의 몫으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미뤄왔던 대청소를 진행하였다. 

남편과 대청소를 하고 싶지만 남편과 청소를 같이 하면 싸움으로 끝나고 만다. 결국 내가 다해야 끝나는 청소가 되는 것이었다. 남편은 아이가 어질러놓은 장난감도 각각 다 제자리가 있고 위치가 있는데 뒤죽박죽 다 섞어서 아무 데나 쌓아놓거나 그냥 한쪽에 몰아놓기 일쑤였다. 결국에는 내가 다시 다 끄집어내어 처음부터 다시 정리를 해야 했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렇게 2번 3번씩 나의 손길이 가는 일을 관두어버렸다. 그랬더니 아이의 교구장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아이는 무얼 꺼내서 놀아야 할지 자신도 헷갈려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남편을 시켜서 아이 방에서 쓰던 매트리스도 시원하게 버렸다. 매트리스 깔개를 들어 올려서 보니 먼지가 뭉터기로 쌓여 있었다. "이렇게 더러운 먼지 구덩이 속에서 날마다 아이와 꿈나라로 떠났다니!" 남편은 대청소하는 나의 모습을 보더니 아이와 함께 같이 청소를 하자고 하였다. 남편의 그 말이 얼마나 이상적인 말인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대청소를 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아이랑 나가서 눈썰매나 끌어주고 와주는 게 도와주는 일이야."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그 사이에 아이 방을 깨끗하게 쓸고 닦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이방에 매트나 침대 같은 큰 가구를 들이지 않기로 했다. 바닥에 방음용 뽀로로 매트 하나 정도만 깔아주고 이불을 깔고 생활하기로 했다. 수시로 청결을 유지하는데 편리하도록 말이다. 거실 소파를 밀어보니 온갖 종류의 장난감들이 먼지와 뒤범벅이 되어서 나왔다. 양말, 공, 밀대, 블록, 자동차, 퍼즐, 인형 등등이 나왔다. 파손되었거나 고장 나서 사용하지 못하는 장난감들은 봉투에 넣어서 싹 다 버렸다. 우리 집에는 이웃집으로부터 나눔 받은 책들이 굉장히 많았다. 받을 때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는데 아이는 생각보다 그 책들을 그렇게 즐겨보지도 않았고 자리만 차지하게 되어 어느 순간 애물단지가 되었다. 나는 결국 책들을 모두 작은 방으로 옮겼다. '작은 방을 아이의 도서관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어수선했던 거실이 조금씩 공간이 생겨나면서 정돈이 되어갔다. 질서 없이 마구 뒤섞여서 쌓여있던 장난감들이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면서 공간에 질서와 안정이 생겼다. 청소를 하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아직 청소가 끝나지 않았는데 아이가 아빠와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아빠랑 함께 편의점에 들러서 감자칩을 하나 사서 먹으면 들어왔다."너 지금 장염인데 그런 거 먹으면 어떡하니? 배 아프다고 징징대지 말아라. 밤새 엄마 괴롭히지 말아라. 응?" 나는 남편을 짧고 굵게 째려봤다. '아이가 장염 있어서 약 먹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감자칩을 사가지고 들어오는 것 좀 봐. 진짜 짜증 나.'

나는 어느 정도 포기하고 말았다. 아이가 남편에게 생떼를 부렸을 테고 남편은 항상 아이의 생떼를 거부하지 못했다. 아이는 깨끗하게 청소된 거실을 보고 즉각 기쁨을 표현했다."집이 깨끗해졌네? 엄마가 청소해 줘서 깨끗해졌어. 엄마 고마워!" "앞으로는 하나씩 꺼내서 놀고 정리하고 제자리에 갖다 놓고 또 다른 장난감 꺼내서 놀고 정리하고 갖다 놓고 그래야 해. 우리 깨끗한 이 상태를 잘 유지하자." 밖에서 아이와 놀다가 들어온 남편은 지쳤는지 곧바로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눕더니 잠들어버렸다. 아이는 감자칩을 바사삭 씹어먹으며 바닥에 부스러기들을 흘려댔다. "엄마가 이렇게 힘들게 청소해 놨더니 또 이렇게 너는 손쉽게 어질러놓는구나? 식탁에 앉아서 흘리지 말고 먹어라." 주말이나 연휴가 왜 나는 더 힘들까? 주말이 되면 아이와 남편을 위해서 삼시 세끼를 차려줘야 하는 것에 먼저 지친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에 지친다.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 일에 지친다. 

 '엄마'라는 평생 직업에는 아이 없이 온전히 쉴 수 있는 진짜 주말이 필요하다. 그런 하루를 통해서 방전된 에너지가 충전되고 연기로 가득한 내부가 환기가 된다. 모두가 아이 어릴 때가 그리울 거라고 하는데 나는 육아가 너무나 숨 가쁘고 벅차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남편과 아이가 잠들고 이렇게 혼자 키보드 앞에서 글을 쓰는 고요한 이 시간이 가장 평화롭다. 글 쓰는 이 시간만큼은 어수선했던 나의 마음이 정갈하게 정돈이 되고 여백이 생겨나는 마법의 시간이다. 내게 이런 탈출구가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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