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론스톤 Dec 26. 2023

연말에는 공로패 수상식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공로패를 받았으면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가고 나는 다시 문수산으로 왔다. 금, 토, 일 3일 만에 오는 시골집이다. 이렇게 산 밑에 비빌 곳이 있다는 게 행운을 거머쥔 기분이다. 하얀 눈이 오는 모습은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답고 설레지만 눈 쌓인 산을 맨발로 걷는 일은 아무래도 심적으로 큰 부담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겨울의 나는 무식하고 용감했다.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맨발로 산을 탔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무식하다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하는데 나는 어떤 의미에서 무식함은 가능성과 잠재된 힘을 내포하고 있는 긍정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그 누구도 저렇게 무모하고 힘든 일을 무식하게 강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렇게 강행을 하는 데에는 나름의 사연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시 원시적인 시각으로 자연치유에 접근했다. '나는 똑똑한 메이저급 대학병원에서도 데이터도 없는 희귀 암이라서 자기들도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했으니 내 암의 특성에 맞게 희귀한 방법으로 회복하자.'라는 비상식적인 결심을 가지고 나의 길을 헤쳐온 것이었다. 아마 내가 상당히 논리적이고 상식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체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면 나는 온갖 의심으로 가득하여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학문을 배우거나 닦을 때에는 이론이나 지식이 필요하겠지만 '실존'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것이 불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자연치유의 길에서 배우게 되었다.  

나에게 자연치유는 생존을 넘어서 실존이었기 때문이었다. 작년 겨울의 나는 나의 건강과 인생의 주체로서 그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일으켜 세우고 책임지겠다는 실존의 무게를 어깨에 지고 있었다. 나는 철학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지만 생과 사의 경계에 서서 균형감각을 키우느라 그 누구보다 철학을 실천하는 동시대 철학자였다.

 나는 대학병원의 주치의, 한의사, 자연치유 명의, 암을 극복한 사례, 종교 지도자, 풍수지리사, 철학자, 마켓터, 문학가, 예술가, 기업가, CEO, 디자이너 등등을 나의 무너진 심신을 일으켜 세우는 파트너로 여겼다.

그 프로젝트의 주최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도 나였다. 그 누구도 나의 권한에 대해서 월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자신이 지닌 지식과 경험의 세계에서 평등하게 파트너십을 나누며 팀워크를 만들어가는데 협조하는 것이 그들의 포지션이었다.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그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씩씩하게 걸어온 나를 문득 볼 때면 마치 처음 본 사람처럼 낯설기도 하다.

 나는 한 해 동안 무식하고 용감하게 이 미지의 길을 잘 헤쳐온 내게 공로패를 수여하는 것으로 연말을 뜻깊게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26,000원으로 멋진 상패를 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뜻깊은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해서 지체 없이 바로 실행하였다. 공로패에 들어갈 이미지는 발바닥을 넣기로 했다. 영광의 공로패를 받게 될 주인공은 전업치병 샤론스톤으로 정했다. 샤론스톤은 내가 암카페에서 쓰는 닉네임이지만 그 속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나의 자연치유의 본질은 원초성에 있고 그 원초성에는 강인한 생명력과 치유력이 있다는 것을 뜻했다. 현대 문명에 길들여진 나를 돌아보게 하고 멈추게 하기 위한 나만의 의식적인 장치였다.  공로패에 들어갈 문구는 이렇게 창작하였다.


"귀하는 치병기간(2022.10.1~2023.12.31)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항상 열정과 초심으로 맨발로 산을 타며 치병한 노력으로 건강성 회복과 다이아몬드 치병에 비전을 제시하며 자연치유의 길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기에 그 공로를 기리고자 사랑과 응원을 가득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 2023년 12월 00일

문수산 다이아몬드 암센터 산신령 일동"


 이렇게 내가 자화자찬하는 공로패를 받으니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약간 민망하기도 하면서 뿌듯하기도 하면서 뭉클하기도 했다. 이 공로패에는 나의 희로애락이 녹아들어 가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공로패를 내 방의 선반에 잘 비치해 두었다. 나는 매일 그 앞에 서서 공로패를 감상하며 몰래 나만 아는 기쁨을 느끼곤 했다. 공로패라는 것이 어느 조직이나 사회에서 공헌하고 이바지해야 받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내게 수여해 주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절실하게 몸과 마음을 던져서 헌신하고 정성을 들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살면서 한 번쯤은 누구나 공로패 하나는 소장하고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 공로패 효과는 막강했다. 그 누구보다 나를 신뢰하며 내게 주어진 큰 위기가 나를 실존하게 하는 큰 기회였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는 듯했다. 내게 손가락 호루라기를 불며 뜨겁게 박수와 함성을 보내는 듯했다.   

이렇게 나는 공로패로 훈훈하고 뜻깊은 연말 준비를 마쳤다.

 공로패에 이어 오늘은 그간 고생했던 내 두 발바닥에게 겨울 강풍을 대비한 어싱 신발을 제작해 주기로 했다. 김포는 한겨울에도 낮에는 기후 이상으로 인해 맨발 걷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렇게 춥지는 않다. 그래도 1월과 2월 사이에는 눈이 오거나 영하로 급격히 온도가 떨어졌다. 그런 날씨에 맨발로 산을 타는 건 극기 훈련처럼 느껴지곤 했다. 나는 이 어싱 신발을 눈이 오거나 강풍이 불 때 비상용으로 신고 운동할 수 있도록 나의 발바닥을 위한 연말 선물로 준비했다. 한국에서 맨발 걷기가 대중화가 되면서 어싱 운동화, 어싱 지팡이, 어싱 매트 등등 각종 어싱 제품들이 온라인 시장에 나왔다. 구리와 동판의 접지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제품들로 신발을 신거나 지팡이를 짚으면 접지가 되는 제품들이었다. 어싱 제품들은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책정이 되어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나는 구리 전선과 동판 한 장을 사서 헌 운동화를 어싱신발로 재탄생시키기로 했다.  헌 운동화를 뒤집어놓고 바닥에 칼집을 내어 대못을 대고 망치로 뚝딱뚝딱 때렸다. 전동드릴이 있었다면 이 과정이 더 수월했겠지만 내게는 전동 드릴이 없었다. 대못이 꽂히긴 했는데 뚫고 들어가지 질 않았다. 나는 대못을 돌려가며 쑤셔 넣어서 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총 4개의 구멍을 뚫고 구리 전선을 꼬아서 또다시 돌려가며 그 구멍에 집어넣었다. 구멍이 시원하게 크게 뚫려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대못으로 우겨가며 뚫어놨더니 구리 전선을 넣을 때에도 쉽지는 않았다. 낑낑 대면서 구멍을 간신히 통과한 구리전선을 뺀 지로 잡아당겼다. 구리 전선이 쭉 당겨졌다. 그렇게 구리 전선을 신발 안쪽 바닥에 잘 깔아 두었다.

그리고 동판 위에 깔창을 대고 덧대서 그린 뒤 가위로 잘랐다. 모서리는 전기 테이프로 감아서 마무리해주었다. 그 동판 깔창을 잘 덮어서 깔면 어싱신발 완성이다.

 나의 절약정신에는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을 감내해야 한다는 대가가 따른다. 만드는데 3시간이 소요되고 엄지 손가락에 물집이 생기는 고통까지 생각해 보니 몇만 원 더 주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이 뚫린 양말을 신고 맨발이 동판 깔창에 닿도록 하여 어싱신발을 신고 산을 타 보았다. 맨발로 눈 길이나 언 땅을 걷는 부담감이 전혀 없고 매우 따뜻하고 편리했다. 올 겨울에 또 예쁜 눈이 내리면 신발장에서 자체 제작한 어싱신발을 꺼내 신고 산으로 가기로 했다. 내게 자연치유는 생존의 차원을 넘어서 실존하는 철학이자 예술이자 문화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상상력과 실행력이 없이는 이 길을 걸어가기가 너무 고독하고 외로울 것이다.

내가 지닌 본연의 천진함과 명랑함으로 되돌아가는 찬란한 길이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크리스마스 대청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