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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Dec 28. 2023

새해맞이 정리정돈

정리를 잘 못하는 사람들은 연말에 몰아서 치운다.

 새해를 맞이하여 쌓아 두고 미뤄두었던 일들을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난 몇 년간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새해가 오고 가는지도 모른 채 4년이라는 시간이 그냥 통째로 지나가 버린 것 같았다. 올해는 잘 곱씹고 정리할 것들은 정리하고 새해를 새롭게 맞이하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거울을 보니 거울에 비친 까만 나의 얼굴부터 정돈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지난 1년간 매일 산을 타며 다녔더니 마사이 족 추장님으로 추앙받을 만큼 새까맣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 위로 주근깨가 먹음직스럽게 뿌려져 있었다. 매일 빗질 한번 제대로 못 받고 손가락으로 대충 쓸어 올린 머리카락도 정돈이 필요해 보였다. 오른쪽 눈 밑에는 작지만 선명한 잡티가 생긴 지는 오래되었는데 오늘따라 눈에 거슬렸다. '아우, 미용실 좀 가야겠다. 머리도 좀 자르고, 피부과도 가서 눈 밑에 잡티도 좀 제거하고, 얼굴에 팩도 좀 해야겠다.' 나는 뒤늦게 피부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한참을 거울을 보며 얼굴을 매만졌다. 생각보다 정리해야 할 것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우리 집 주방의 살림살이부터 정리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오랫동안 사용해서 스크래치가 나고 변색된 도마, 이가 나간 식칼, 오래 쓴 프라이팬들, 냄비들, 자리만 차지하는 공병들, 얼룩 생긴 머그잔, 그릇들을 모두 비워내기로 했다. 

 냉동실에 얼려둔 앵두와 오디는 잼으로 만들어서 소진시키고 오랫동안 냉동실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식품들은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내게 냉동고는 사실상 크게 필요가 없었다. 남은 음식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냉동고에 보관을 하다가 결국에는 이런 식으로 버려지는 식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용량이 크고 디자인이 좋은 냉장고를 살 필요가 없었다. 나에게는 작은 냉장고가 최고 좋은 냉장고였다. 우리 집은 나로 인하여 신선한 채식 위주의 먹거리로 밥상이 차려지다 보니 오랫동안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먹지 않았다. 

그때그때 조금씩 신선한 식재료로 해 먹었기 때문이다. 김치도 한 포기씩 먹고 싶을 때마다 신선하게 담가서 먹었다. 아무튼 우리 집 냉동실에는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이 저장되어 있었다. 얼려서라도 언젠가는 먹겠다는 욕심을 더 이상 부리지 않기로 했다. 신선한 음식을 적게 사고 적게 먹고 적게 보관하는 것이 식품의 신선도와 삶의 신선도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아이의 교구장은 지난 크리스마스 대청소 때 정리작업을 해서 패스하기로 했다. 

팬트리에 쌓여있는 물건들도 정리가 필요해 보였다. 휴롬 녹즙기도 오랫동안 팬트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까만 봉투에 먼지가 소복이 쌓여있었다. 콩 가는 기계도 팬트리 선반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여름에 콩국수 해 먹을 때 저걸로 갈면 엄청 맛있긴 한데.....' 마음에 미련이 자꾸 남아서 자꾸 쟁여놓고 싶어 졌지만 당근에 처분하기로 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사용했던 미키마우스 미니 가습기도 집에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서 팬트리 구석에 전세를 내고 오랫동안 조용히 잘 살고 있었다. '저 가습기도 딱히 필요가 없는 건데 저기 구석에 있었네.' 나는 미키마우스 가습기도 당근에 내놓기로 했다. 드레스 룸으로 가보니 우리 식구들이 옷을 사들이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옷장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실제로 올해에는 내 옷을 샀던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등산용 바지 두 벌을 구매한 것 빼고는 말이다. 산중생활을 하다 보니 격식을 갖춰서 입을 옷도 불필요했고 매일 운동복 몇 벌을 교대로 갈아입으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남편의 옷들과 아이의 옷들이었다. 남편이 입지 않고 무의미하게 걸어둔 옷들은 싹 다 비우기로 했다. 아이의 작아진 옷들도 모두 나눔 해버리기로 했다. 뒤죽박죽 한 곳에 섞여 있는 아이의 옷들도 계절별로 정리하여 정리함에 넣고 옷장 위칸에다가 보관하면 더 깔끔하게 정리가 될 것 같았다. 내 옷들 중에서도 입지 않는데 보관만 하고 있는 옷들은 모두 처분하기로 했다. 

우리 집에는 로봇 청소기와 다이슨 청소기가 있었는데 둘 다 고장이 나서 사용을 못한 지 몇 개월이 지났다. 로봇청소기는 계속 뭐가 문제인지 배터리 충전이 다 되었는데도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음성이 나왔다. 다이슨 청소기는 필터 교체의 문제인지 부품의 문제가 있는지 먼지들을 전혀 흡입하지 못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수리를 못하고 연말까지 끌고 왔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살림을 안으로 살뜰히 챙기지 못했던 나의 게으름과 태만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노트북은 갑자기 에러가 났다고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저장해 둔 나의 글문서들과 아이 사진파일이 모두 들어 있는데 말이다. 에러난 노트북도 데이터복구 서비스를 알아보고 받아서 해결하기로 했다. 

몇 번씩 떨어트려서 액정이 깨진 핸드폰도 교체할 때가 되었다.

며칠 전 아이가 차에서 토를 하는 바람에 그 후로 내부세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에서 은은한 토사물 잔향이 났다. 내부세차만으로는 토사물 잔향이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비용이 좀 들어가더라도 제대로 스팀세차를 받기로 했다. 서재에 장식용처럼 꽂혀있는 책들은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남편은 서재에서 책을 뽑기도 힘들게 부엉이 조각품도 올려놓고 액자도 올려놓았다. 조각품들도 각자 다른 적절한 위치에 옮기기로 했다.  신발장에는 낡은 신발들이 몇 켤례가 묵혀있었다. 몇 번 못 신었는데 사이즈가 작아져서 못 신는 아이 신발들도 있었다. 아이 신발은 나눔 하기로 하고 낡은 신발은 쓰레기통에 버리기로 했다. 

 집에 있는 모든 창틀에 먼지가 까맣게 쌓여있었다. 모두 하얀색 창틀이라서 까만 먼지가 더 돋보였다. 창틀도 싹 다 닦아내기로 했다. 작년에 강서구에서 속도위반으로 날아온 우편물도 있었다.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이걸 안 냈다고?' 나는 늘 아이를 태우고 다니기 때문에 안전권 속도에서 운전을 하는데 도대체 왜 맨날 여기서 딱지가 날아오는 것인지 정확한 원인을 알고 싶었다. 이것도 좀 억울하지만 정리하기로 했다. 

 내일은 올해의 마지막이 될 대학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다. 지난 1년이 흑백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난 1년 2개월간 지켜봤던 추적관찰의 데이터도 문서로 잘 정리해 보기로 했다. 정리는 그때 그때 해둬야 하는 것이지 이렇게 연말에 몰아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각성하게 되는 연말이다. 정리 정돈을 잘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일 것이다. 새해에는 다 털어내고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하늘 높이 점프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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