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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Dec 29. 2023

아이가 잠든 후에야 쏟아지는 것들

변화무쌍한 변수 속에서도  '여백의 미'는 꼭 살리고 본다.

'오늘은 아이를 무조건 저녁 8시 전에는 재우자!'

나는 오늘 아침부터 이런 큰 그림을 가슴에 품고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오후 1시에는 올 해의 마지막 진료인 흉부, 복부, 목 ct 판독 진료가 예약되어 있던 날이었다.

진료 예약일은 원래 지난주 금요일로 잡혀있었는데 대학병원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주 연기된 날짜였다.

어느 날 나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는데 대학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00 병원 암병원 예약관련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주 금요일 오후 2시 10분에 00 교수님 진료 예약이 되어있으시죠?"

"네. 그런데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 네...... 다름이 아니라 00 교수님이 2주 동안 병가를 내셔서 갑작스럽게 연락을 드리게 되었어요.

죄송합니다. 오랫동안 기다리셨을 텐데 그 당일 날은 00 교수님이 안 계셔서 다른 교수님께서 진료를 봐주실 수 있으실 거예요. 아니시면 다음 주 중으로 00 교수님 앞으로 다시 예약 날짜를 잡아드려도 괜찮으실까요?"

암병동 진료 예약 담당자의 예의 바르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데 마치 그 표정까지 그려지는 듯했다.

"아...... 그러셨군요. 00 교수님이 어디가 그렇게 아프시길래 2주간 병가를 내신 거죠?

저도 개복 수술할 때 5박 6일 입원하고 퇴원했던 것 같은데요. 많이 아프신가요? 혹시 암...... 걸리셨나요?"

"아...... 그건 아니시고요......" 나는 00 교수님의 병가 휴가가 염려가 되었다. 안 그래도 00 교수를 3개월에 한 번씩 볼 때마다 하얗고 깨끗한 의사 가운으로도 차마 다 가리지 못한 피로를 눈치챌 수 있었다.

재빠르게 키보드를 쳐대는 00 교수님의 손가락은 매우 기능성이 좋아 보였고 마우스 커서를 부드럽게 돌려대는 오른쪽 검지 손가락은 바다 생물체 같이 유연해 보였다. 까맣게 햇빛에 그을려서 짧고 투박한 내 손과는 확실히 대조되었다.  00 교수의 성별은 남자였음에도 손은 보통의 여성들 손보다 더 곱고 예뻤다.

의사란 나의 건강을 염려해 주는 쪽에 서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의 주치의인 00 교수의 건강이 염려가 되곤 했다. 00 교수님은 흉강경 수술도 거부하고 나의 암을 느긋하게 관찰하겠다고 하는 나를 골 때리는 괴짜 환우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아무튼 그런데 나는 참으로 그 의사 선생님의 유난히 하얀 안색이 더 염려가 되는 것이었다. '저 00 교수는 햇빛을 너무 못 쬐었네. 곱고 예쁘긴 해도 너무 유약해 보이는데......'


 나는 피부톤만 봐도 그 사람의 내부에 햇빛의 에너지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었다.

햇빛의 에너지가 있는 사람은 몸에서 생명력이 흘러나왔다. 사람은 적당히 까무잡잡한 피부를 갖고 사는 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꾸려가는데 좋은 마스크가 되어주었다. 대학 병원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햇빛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의사, 간호사, 환자 등등을 포함해서 사람들의 표정과 안색을 관찰해 보면 그 사람이 심신이 건강한지 아픈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이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채소를 살 때에도 뿌리와 줄기, 잎의 신선도를 확인하고 사듯이 사람도 생명체이기에 그런 신선도를 관찰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역시 생명체이기에 자고로 신선해야 한다.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비와 바람을 맞으며 광합성을 잘 받은 식물처럼 말이다. 사람도 파릇파릇한 생기가 돋아 있어야 먹어도 맛있고 몸과 마음에도 이롭듯이 자신과 타인에게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 아무튼 무슨 사정인지 어떤 병명인지 모르겠지만 00 교수님께서 얼른 회복하시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담당자님께 연말에 다시 예약 날짜를 잡아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나는 우리 아이에게 어젯밤부터 이야기를 해놓았다."엄마가 내일은 병원에 진료받으러 가는 날이라서 서울을 가야 해. 너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가려면 엄마가 등,하원에 병원까지 왔다 갔다 하기가 힘들 것 같아.

그래서 내일은 어린이집을 빠지고 엄마랑 같이 서울 병원에 다녀오자. 병원에 갔다 오면 엄마가 키즈카페 데리고 갈게." 아이는 어린이집 빠지는 날이 마냥 신난 건지 "키즈카페 좋아! 챔피언! 챔피언 갈래!" 아이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떤 키즈카페를 갈 것인지 미리 정해 놓았다. 엄마가 무슨 일로 병원에 가는지 전혀 모르는 천진무구한 4살 아들이니까 말이다. 어린이집 선생님께도 미리 결석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왔고 브런치에 오늘 쓸 글감은 병원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하고 아이를 준비시키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00 암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뭐지.....? 진료 당일 아침에 왜 전화가 오는 거야? 아침에 진료 확인 톡도 받고 확인했는데?'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00 암병원인데요, 오늘 진료 예약이 되어있으시죠......."

"네, 그런데요? 또 무슨 일이 있나요?"

"아...... 정말 죄송하지만 오늘 진료가 불가능하실 것 같아서요......"

"네?"

" 김*경님 흉부 CT 판독이 아직도 안 나와서 진료를 보실 수가 없으실 것 같아요..... 지금 대기 중인 CT판독이 밀려가지고요..... 저도 어젯밤에 00 교수님께 전화를 받게 돼서 당일 아침에 이렇게 전화드리게 된 점에 대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 주 금요일에 예약을 다시 잡아드리려고 하는데요, 편하신 시간대에 예약 도와드리겠습니다. 1시에서 3시 사이에 어떤 시간이 편하실까요?"

"아...... 대학병원에 암환자들이 많은 건 저도 잘 알고는 있는데요...... 몇 주씩 예약이 변경될 정도로 CT판독이 밀릴 정도로 많은 건가요? 대학 병원 시스템으로도 통제가 안 되는 수준인 건가요? 지난번 00 교수님 병가휴가는 이해가 갑니다만은.......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당황스럽네요. 뭐 어쩔 수 없지요."

결국 올해의 마지막 진료일에 방점을 찍고 한해를 멋지게 피날레를 할 참이었는데 이런저런 변수로 진료일은 2024년 신년의 첫 주로 넘어갔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아서 병원도 많고 환자도 많은데 대학병원 암병동에는 암환자들로 늘 만원 상태였다. 나는 암병동에서 기다림에 대한 것을 많이 배웠다. 평소에 나는 선천적으로 성격이 급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에 진절머리를 느꼈던 성향이었는데 곱씹고 기다릴 줄 아는 소양을 많이 길렀다. 채혈표를 뽑고 혈액검사 대기 순서를 기다릴 때도 기다림을 배웠다. 알레르기 주사를 맞으러 가서도 순서를 기다리며 기다림을 배웠다. CT를 찍으러 가서도 순서를 기다리며 기다림을 배웠다. 00 교수님의 진료날에도 그 많은 환우들 틈에서 대기하며 앉아서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며 기다림을 배웠다.

'겨우 3분도 안 되는 진료를 해줄 거면 스마트한 이 시대에 화상채팅으로 진료를 해주면 안 되는 걸까?'

막히는 길을 뚫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자그마치 2시간은 족히 걸렸다. 간밤에 공복을 유지한 채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야하는 부지런함과 자동차 유류비, 대기하는 시간들까지 합치면 하루의 반나절은 진료를 위해서 헌납해야했다. 이처럼 암환우가 된다는 것은 병원의 스케줄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꽤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암병동의 풍경은 대체적으로 매우 깨끗하고 위생적이지만 햇빛의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 유약한 곳처럼 느껴졌다. 의사라는 전문가에게 나의 생명을 맡겨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곳.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나의 생명을 '전문가'라는 직함하에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그 의사에게 올인해야 하는 곳이 바로 대학병원이라는 곳이었다. 이것은 굉장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이치처럼 보이지만 사실 소름 끼칠 정도로 이상하고 공포스러운 현상이었다. 어디까지나 의사는 대학병원에서 고용된 '전문가'일뿐이었다. 그 의사의 진단이나 방향이 전문가적인 시각에서 충분히 참고할만한 것이 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의 판단 주체는 늘 본인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우들이 마치 의사가 나를 구원하고 살려줄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있었다. 또 대부분의 대학병원 교수들은 환우들에게 '~해야 합니다.'의 어조를 사용하였고 확률과 통계로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환자가 거부를 하거나 다른 대안을 내놓을 시에는 어처구니없다는 태도였다.

나의 생명이 여러 개라서 한 번쯤 테스트를 해볼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방식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생명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내 생명의 운명은 내 손에 달려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취소된 진료로 오늘 예정에 없던 가정보육을 하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이를 어린이집을 보냈지. 휴...... 너무 하시는구먼!'

나는 뽀로로를 시청하고 있던 아이를 긴급히 설득해 보기로 했다.

"방금 엄마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오늘 진료가 취소돼서 병원 안 와도 된다네? 다시 어린이집 가야겠다. 얼른 준비하고 어린이집 가자!"

"싫어! 안가! 키즈카페 갈 거야!" 아이는 완강했다.

'어제 병원 간다고 아이한테 미리 말해놓지 말걸...... 에휴.....'

이미 키즈카페를 데려가겠고 선심을 쓴 탓에 아이를 설득시키긴 힘들 것 같았다.

"너 그럼 엄마 산에 가야 하는데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마라."

"뒷산 가면 되지! 작은 산!"

아이는 나를 따라서 문수산에 몇 번 따라와보더니 큰 산이 힘들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치병을 하면서 그 어린아이를 데리고 문수산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우리 아이는 겁이 없고 매우 활동적인 성향에 운동성도 탁월했지만 산 타는 일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나 보다.

'오늘도 고된 하루가 되겠군.' 나는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산에 갈 준비를 했다.    

아이에게 편의점에 들러서 과자와 주스를 사주겠다고 꼬셔서 데리고 나왔다. 역시나 우리 아이는 그 작은 산도 올라오기는 올라오는데 한참을 투덜대고 징징댔다.

"다시 어린이집 가자. 그게 좋을 것 같아. 너는 어린이집 가고 엄마는 산에 가고. 그래야 해."

아이는 어린이집 가기는 싫고 산에 가기도 싫은 것 같았다. 아이와 나뭇가지를 던지며 부메랑 놀이를 하며 간신히 반토막을 걸었다. 평소에 3바퀴는 돌아야 운동량에 맞는데 아이가 너무 징징대서 산을 타기가 어려웠다. "가자! 키즈카페로!"

"오예!"나는 아이를 데리고 내려와서 김포공항 롯데몰로 갔다. 내게는 챔피언 무료쿠폰이 있었다.

아이는 키즈카페에서 2시간 가량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신나게 놀았다. 나는 배가 너무 고팠는데 딱히 먹을만한 게 없었다. 아이와 롯데시네마에서 옥토넛 영화 한 편을 보고 가기로 했는데 1시간이 떠서 점심을 먹으면 딱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결국 아이가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고 나는 식당들을 둘러보다가 고기가 들어간 메뉴들을 재끼다 보니 다 지나쳐 버렸다.


 그냥 굶기로 하고 아이쇼핑을 했다. 쇼핑이 그렇게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조금만 둘러봐도 눈이 피곤하고 지쳤다. 백화점의 다양하고 화려한 시청각 정보를 흡수하기에 나의 용량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았다. 영화 시간이 다가와서 잠들었던 아이를 깨워 함께 옥토넛 영화를 보았다. 1시간 20분 분량의 옥토넛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아까 롯데몰 유모차에서 잠시 낮잠을 잔 탓인지 쌩쌩하였다.

오전 9시에 아이와 함께 집에서 나왔는데 집에 돌아오니 오후 5시였다. 아이와 함께 보낸 힘든 하루였다.

나는 그냥 뻗어서 한숨 자고 싶었다.

'안 되겠다. 6시쯤 해가 지고 창밖이 캄캄해지면 그냥 밤이 되었다고 하고 불 다 끄고 재워야겠다. 너무 피곤하다.' 나는 신나게 아이와 총싸움을 했다. 내가 총을 쏘려 하면 아이는 자신의 총으로 방패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했다.

"얼굴 공격! 빵!"

"방패로 막았다!"

"헛! 방패에 총탄이 튕겨나갔네! 이런? 으악." 아이는 이런 놀이를 너무 재미있어했다.

"이번에는 고추 공격!" 내가 이런 장난을 치면 우리 아이는 들고 있던 총을 그곳에 대고 소중한 그곳을 보호했다. 그런 우리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너무나 귀여웠는데 너무나 피곤했다.

"이제 5분 뒤에 게임이 끝난다! 해가 졌다. 우리는 꿈나라로 떠날 것이다."

"안돼! 싫어! 더 놀 거야!"아이는 세상이 무너진 듯 엎드려서 통곡을 하며 울었다.

결국 한바탕 울음바다가 된 후, 나는 아이를 일찍 꿈나라를 보내는 것보다 내가 꾼 그 야무진 꿈을 포기하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직감했다. 설거지 통에는 설거지가 가득했다. 거실은 아이가 꺼내놓은 교구들로 어지러웠다. 아이 저녁밥은 계란 프라이와 멸치볶음, 김치로 차려주었다.


 아이 밥을 챙겨주고 나니 남편 저녁을 해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올 때 김밥을 사가지고 들어와 달라고 했다. 아이는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자신의 이불을 들고 와 잠자리에 누웠다. 우리 아이는 평소처럼 잠자리에서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였지만 나는 마귀할머니가 나타날 시간이 되었다고 협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는 내 손목시계를 만지작만지작 거리더니 금세 꿈나라로 떠났다.

아이가 잠든 후에야 나는 종일 마음에 꽉 차 있던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낼 수가 있다.

이야기들을 쏟아낸 후에는 나의 마음이 텅 비워져 공명이 울려 퍼진다.

'여백의 미'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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