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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Jan 03. 2024

Let it go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배낭을 메고 산을 올랐다. 날씨가 따뜻했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모자를 쓰고 싶은 마음에 모자를 쓰고 산을 올랐다. 산을 타고 올라가는데 가늘고 하얀 눈발이 흩날렸다. 왠지 모자를 쓰고 싶더니만 역시 나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나는 겨울 왕국의 엘사처럼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 산길을 터벅터벅 올라갔다. 철 지난 명작이지만 여전히 큰 울림이 있는 겨울왕국의 이야기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주인공인 엘사에게 치병을 하는 동안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디즈니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대단한 기업인지 디즈니의 수많은 명작들을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울왕국은 국적과 남녀노소를 초월하여 팬덤을 만들어내고 대박을 터트리며 우리들의 마음에 감동을 전해주었다.


엘사는 모든 걸 얼려버리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는 아델라 왕국의 예쁜 주인공이다. 엘사는 마법의 힘을 지닌 자신의 오른손의 비밀이 세상에 들킬까 봐 괴로워한다. 그러나 결국 엘사의 오른손의 비밀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아델라 왕국은 꽁꽁 얼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엘사는 홀로 발자국도 없는 북쪽의 눈 덮인 산으로 도망치게 된다. 엘사가 하얀 설산을 터벅터벅 걸어가며 자신의 고뇌와 슬픔을 노래하는 OST ‘Let it go’는 세상 모든 여자 아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엘사의 드라마가 나는 결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내가 이 작품에 지나치게 감정이입하여 시청한 탓이기도 했다. 나는 겨울왕국을 혼자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는 엘사의 그 고독하고 슬픈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엘사, 나 그 마음 뭔지 알 것 같아.’ 나는 화면에서 어깨를 축 내려뜨리고 쓸쓸히 걸어 산을 올라가는 엘사를 바라보며 독백의 대사를 내뱉었다.

엘사가 부르는 'Let it go'의 가사가 마치 나를 위한 노래처럼 들렸다.      


모든 걸 얼려버리는 신비한 초능력은 엘사의 정체성이었다. 엘사는 사회에서 결코 사람들과 뒤섞일 수 없는 자신의 비밀스러운 정체성을 거부하고 숨기고 싶었지만 결국 정체성이 드러나자 그 정체성으로 온전히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존재할 수 있는 엘사만의 겨울 왕국으로 떠나게 된다. 아무도 없고 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겨울 왕국은 적막하다 못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겨울왕국에 와서 비로소 엘사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남들이 자신을 뭐라고 정의하든 말든 내버려 두겠다며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자신이 이 겨울왕국의 공주이자 여왕이라는 존재를 알린다. 그리고 엘사는 결단한다.

더 이상 그 어떤 추위도 엘사가 가는 길을 방해할 수 없다고. 그리고 자신의 오른손에게 마법의 주문을 건다.

마법의 냉각 기능이 있는 자신의 신비한 오른손이 폭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나는 엘사가 평범치 않은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홀로 겨울왕국이라는 세계를 건국해 가는 모습에 지나치게 몰입되어 있었다. 엘사가 더 이상 울지 않고 자신의 신비스러운 손으로 폭풍을 일으키겠다는 큰 결심이 메아리처럼 울려 내 마음에 큰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나도 엘사처럼 한 때는 나의 ‘희귀 암’의 정체를 거부하고 싶고 숨기고 싶었다. 누군가 내 암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이 내 암에 대해서 타인에게 말할 때에는 아웃팅을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었다. 또 사람들이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화기애애하게 잘 이야기하다가도 암환우라는 사실에 심히 놀라고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가라앉곤 했다.  

사람들은 암에 대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들을 탈탈탈 털어내며 충고와 조언, 위로를 포함한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들을 했다. 나는 매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고통도 감내해야 했다.

친척들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내밀하고 사적인 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이미 모든 사돈의 팔촌까지 나의 암소식에 대해서 듣고 알고 있었다.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자연치유의 길을 선택하고 홀로 그 길을 걸어갈 때조차도 나의 선택에 대해서 가까운 관계든 먼 관계든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았다. 상대방은 마치 나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듯 “불안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상대방은 선한 의도로 한 질문이었겠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이상적인 대답이 될지 몰라서 그냥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대답했다. 그런 말들은 분명 따뜻한 어조와 어투로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내게는 얼음처럼 차갑고 금방 사르르르 녹아서 증발해 버리는 눈꽃 같은 말들이었다.      

의사들 또한 엘사의 신비한 오른손 같은 나의 암의 정체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았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걱정하는 일은 내버려 두고 엘사의 심정으로 눈 덮인 산으로 걸어 올라갔던 것이다.

나는 눈 내리는 겨울에는 'Let it go' OST를 목청 높여 불렀다. 나는 엘사처럼 나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도 엘사처럼 폭풍을 일으키겠다고 문수산에서 절절한 나의 결단을 담아서 노래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숨기고 싶고 거부하고 싶었던 ‘희귀암 환우’라는 나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암은 더 이상 내게 두렵고 혐오스러운 어떤 것이 아닌 엘사의 오른손처럼 신비스럽고 신령스러운 보석 같은 것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엘사의 마음을 헤아리며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에 비로소 암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된 것 같은 자유를 느꼈다. 나의 고유성과 정체성이 이 '암'에서 흘러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내가 지금은 사회로부터 단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 겨울왕국에서 곳곳에 떨어져있는 신비롭고 영롱한 삶의 가치들을 발견하며 생의 신비로움 속에 있었다.

'Let it go'를 목청 높여 불러가며 무너진 심신을 일으켜 세웠다. 취약해졌던 나의 내면과 건강성은 엘사와 함께 겨울왕국에서 조용히 회복되며 성장하였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체성이 있을 것이다. 그 정체성이 사회의 통념에 벗어나고 잘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맞지 않는 듯 보일 수도 있다.

나의 정체성의 개성이 너무 강하거나 이례적인 일이라서 타인들에게 거부당하거나 어울릴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절망하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나의 존재를 이 세상에 우뚝 존립시키는 비밀을 품고 있을 수 있다. 신비한 마법의 힘을 지닌 엘사의 오른손과 같은 것일 수 있다는 비밀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말이다.

'Let it go' OST처럼 그 누가 뭐라 하든 걱정일랑 내버려 두고 자신을 괴롭혔던 자신의 그 정체성을 긍정하며 마법의 손으로 폭풍을 일으켜 진정 나를 위한 겨울왕국을 건설해 보면 어떨까?

울라프 같은 재치 넘치고 똥꼬 발랄한 친구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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