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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Jan 04. 2024

SIMPLE! EASY! FRESH!

자연치유의 세 가지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

모든 게 처음 시작이 막연하고 어렵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자연치유를 결단하고 실천하고 보니 막연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던 그 길의 반 이상은 이미 걸어서 지나오고 있었다. 자연치유의 길목에 서 있는 많은 환우들은 몇 시간씩 앉아서 들어야 하는 치유사례 강의도 마다하지 않았다. 몇 백만 원씩 들어가는 자연치유캠프도 환우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했다. 나 또한 자연치유를 결단하기 전에 수많은 번민 속에 괴로워하다가 자연치유센터에 5박 6일간 입소했던 적이 있었다.


자연치유센터는 자연치유 전문의가 상주하며 의료적 케어와 자연 치유 가이드를 제시하는 곳도 있었고 의사는 아니더라도 말기암이나 4기 암 환우들이 자연치유를 하며 암을 극복하여 센터원장으로 상주하며 센터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갔던 곳은 자연치유 전문의가 상주하는 곳은 아니었고 일반 사람이 운영하는 양평의 어느 산자락 아래에 있는 곳이었다. 황토방과 자연식단으로 요양환경이 갖춰져 있는 치유센터였다. 

자연치유를 결단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자칭 ‘자연치유 전문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치유센터들은 치료비나 견적이 명품관 수준이었다. 


이 힐링의 세계도 이미 프리미엄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어 자연치유 전문의가 있다는 센터에 문을 두드려 보기도 했다. 나는 다시 한번 이 자연치유라는 프리미엄 시장의 높은 문턱에서 쓴맛을 봐야 했지만 말이다. 나는 고심 끝에 그나마 합리적인 가격의 자연치유센터를 알아보았고 그곳에서 한번 자연치유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경험해 보기로 했다.

5박 6일에 거금 80만 원을 지불했다. 나는 주변 엄마들이나 지인들의 SNS에 호캉스 휴가를 다녀온 사진들을 볼 때도 내게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휴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이 기회를 큰 마음을 먹고 일종의 나를 위한 호캉스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연치유 입소를 앞둔 1일 전까지도 이 비용이 합리적인 것인지 아닌지 심의에 심의를 거쳐서 센터에 예약금을 입금했다. 


3살짜리 아이가 달려 있는 내게 5박 6일의 휴가는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다. 친정 엄마께서 주말에 아이를 자주 봐주신 덕에 주말에 쉴 수 있긴 했지만 이렇게 길게 혼자서 집을 떠나 쉴 수 있다는 게 얼마만인지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대망의 입소날이 되어 자연치유센터에 갔더니 유방암부터 신장암, 혈액암, 간암, 난소암, 전립선암 등등의 4기, 말기 환우들이 요양을 하고 있었다. 이런 암 요양을 위한 자연치유센터는 대부분 공기가 좋은 산 자락 밑에 위치해 있고 자연식으로 식사가 나왔다. 가끔 장어도 나오고 수육도 나왔지만 대체적으로 신선한 채소들과 나물, 된장국이나 토란국 같은 한식이었다. 아침에는 사과 반쪽과 토마토주스도 나왔다. 저녁은 채소 수프와 찐 고구마 정도로 간단하게 나왔다. 


내가 갔던 곳은 유방암이 있는 여자 환우분들이 많이 상주해 있었다. 남자 환우분들도 보이긴 했는데 성비로 보면 여자 환우들이 훨씬 많았다. 여자 환우들은 같이 그룹으로 모여서 밥도 함께 먹고 대화도 나누고 산으로 운동도 다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 자연치유센터에 있는 환우들의 평균 연령대가 50은 될 것 같았다. 간혹 20~30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1명에서 2명 정도 보였다. 아무튼 당시 나는 30대 초반의 나이로 자연치유센터에 입소한 최연소 환우에 속했던 것 같다. 나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4,50대 이모뻘 되는 환우들 틈에 껴서 식사 시간이 되면 밥도 같이 먹고 산행도 같이 하곤 했다. 대체로 여자들은 그곳에서 나름대로 적응을 잘하고 서로 소통을 하며 씩씩하게 잘 지내는 듯했다. 그런데 남자 환우분들은 대체로 혼자서 식사를 하거나 산행을 하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나중에 여자 환우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여기가 천국이라고 했다. “내가 아무리 암선고를 받고 항암을 하고 몸이 아파도 집에 있으면 엄마이고 아내이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잖아. 너무 힘든 거지. 여기 오면 나만 신경 쓰면 되니까 얼마나 편해. 나야 아이들이 다 커서 혼자 밥도 잘 챙겨 먹고 해서 크게 걱정 없는데 자기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힘들겠어.” 

“저희 아이는 아직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나이라서요...... 부러워요......” 나는 내심 홀가분하게 이곳에서 장기투숙하며 지내는 여자환우들이 부럽기도 했다.


황토로 만들어진 집에는 작은 싱크대 하나와 작은 드럼세탁기 한 대가 있었다. TV와 작은 소파도 하나 있었다. 소파 앞에는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방에는 옷을 걸 수 있는 옷장과 화장실, 맥반석으로 만든 따끈한 돌 침대가 있었다. 공기 좋은 산 밑에 암환우들이 모여있다는 것 빼고는 딱히 특별한 점은 없었다. 

‘절간이나 다름없네...... 템플스테이가 더 낫겠는데...... 다음에는 이 돈으로 차라리 템플스테이 한 달 살이를 하고 오는 게 낫겠다.’ 나는 방에 들어와서도 가성비를 따지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하루는 이모뻘 환우들과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데 낯선 여자분이 우리 옆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더니 식사를 하셨다. 이모 환우분들과 친분이 있으신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길래 센터에서 일하시는 분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주열관리사’라는 분이셨다. 나는 난생처음 주열관리사라는 직업을 들어봐서 이모 환우분들에게 여쭤보니 ‘주열기’라고 우쯔미인가 미쯔이인가라는 일본 여자가 암 통증을 줄이고 치유를 이끄는 다리미 같은 기구를 개발한 의료 기구같은 것이었다. 암환우들 사이에서는 이미 주열기가 자연치유의 한가닥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이 주열 관리사는 센터의 황토방 하나를 사무실처럼 임대해서 침대와 주열기를 갖다 놓고 환우들을 예약제로 관리를 하고 있었다. 이모 환우들은 내게 주열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며 복수가 가득 찼었는데 주열기 덕에 빠졌다는 간증 후기부터 이 주열기가 치유 효과가 얼마나 뛰어난지와 암의 원인은 몸의 냉기로부터 발병하는 것인데 고열을 몸속에 주입하여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주열기의 원리까지 속사포로 설명해 주었다. 나는 이모 환우분께 나도 한번 주열관리사님께 상담을 받아볼 수 있을지 연결을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마침 이모 환우님이 오후에 주열 마사지가 예약이 되어있어서 점심을 먹고 이모 환우를 따라서 주열기 사무실로 갔다. 

주열관리사는 내게 커피를 한 잔 타 주며 나의 암이 무슨 암인지, 아이는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지 등등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내가 커피를 홀짝 거리며 마시자 주열관리사가 내게 이렇게 질문했다. “암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원인이야 다양하겠죠. 저는 희귀 암이라 대학병원 교수님께서도 원인불명이라고 하셨거든요.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 습관, 스트레스 등등이 복합적으로 발병 원인이 된 것 같아요.” 

“식습관과 생활 습관, 스트레스도 암의 원인이 될 수 있겠죠. 그런데 무엇보다도 암의 원인은 냉기에서 발병합니다. 냉기를 없애고 따뜻하게 하는 것이 치유의 핵심입니다.” 주열관리사는 눈에 힘을 가득 주고 냉기가 암의 원인이라며 물도 항상 따뜻하게 데워서 마시고 몸도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모 환우는 편안하게 침대에 엎드려서 주열기 치료를 받고 있었다. 


주열관리사는 이모 환우의 등과 어깨를 다리미처럼 생긴 주열기로 쓸어내리며 내게 주열기에 관한 역사부터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치유사례 등등을 이야기했다. 주열관리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1회 마사지 비용이 어떻게 되는지 바로 여쭤보았다. “주열관리를 받는데 회당 얼마인가요?” 

“회당 12만 원이에요.” 

“아...... 그렇군요...... 주열기는 얼마예요?” 

“쿠팡에서는 지금 150만 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저한테 하시면 120에 드릴 수 있어요.” 

“아......” 고대기 같이 생긴 조그마한 저 기구가 백만 원이 훌쩍 넘었다. 이모 환우분들은 주열 마사지를 주 1~2회씩은 꾸준히 받고 계셨다. 주 2회 기준으로 한 달을 계산해 보니 주열 치료 비용으로 월 96만 원이 나왔다. 주 2회씩 주열관리를 받게 되면 매달 약 백만 원이 수증기처럼 고정비용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이모 환우분들은 이곳에서 몇 달씩 요양하며 주열 관리까지 받고 계셨으니 적어도 한 달에 4~5백만 원은 고정지출로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열 관리사님은 한 주간 예약이 꽉 차 있어서 내가 5박 6일 머무는 동안에 주열 치료 일정을 잡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퇴소 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열관리사를 소개해주겠다며 내가 어디에 사는지 물었다. 내가 김포에 산다고 하자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김포에는 활동하는 주열관리사가 없다고 서울에 있는 센터로 오셔서 받아야 할 거라고 했다. 나는 주열 치료 비용을 물어보고 마치 사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민망한 거절을 하지 않고 그 상황을 적재적소에 빠져나올 수 있음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적당히 이야기를 듣다가 상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주열관리사의 명함을 받아서 나왔다. 


자연치유라는 타이틀에는 생각보다 많은 자본이 필요했다. 곧 ‘힐링 플렉스’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자 따뜻한 장작 앞에서 원적외선도 쬐며 수다의 꽃을 피우려고 이모 환우들이 모였다.

오후에 주열 관리를 받던 한 이모 환우가 내게 물었다. “주열 상담받아보니까 어때?”

“음..... 일리가 있는 말씀이긴 한데요..... 저는 주열기가 자연치유에 부합한 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너무 비싸기도 하고요......” 그러자 이모 환우들은 주열기의 가치를 못 알아보는 나를 갸우뚱하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이모 환우분은 뻘쭘해하는 나를 보면서 한마디 하셨다. “어린 나이에도 그런 소신이 부럽네.” 


나는 암 선고를 받고 재발과 전이를 거듭한 환우들의 마음이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랬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은 환우들의 취약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을 파고들며 치유와 관련된 각종 고가의 의료기구들과 약과 치료법들이 판을 쳐댔다. 심신이 무너진 상태에서 그런 모든 것들은 귀에 쏙쏙 들어오고 무리해서라도 사야 할 것 같고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이곳에 와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곳에서 프리미엄 자연치유의 시장이 얼마나 번성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생 최초로 '힐링 플렉스'도 해보며 5박 6일간 홀로 쉬면서 어떻게 하면 힐링 플렉스를 하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나의 길을 개척해 갈지 밑그림을 그려보았다. 나의 치유 계획에는 고가의 약이나 영양제, 주열기, 매트, 자연치유 전문의는 모두 제외시켰다. 


나는 치유의 핵심 모토를 SIMPLE, EASY, FRESH의 세 가치들로 추려냈다. 무엇보다 단순하고 쉽고 신선해야 꾸준히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고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니시 의학과 거슨 의학, 한국의 자연치유 전문의들이 써낸 책들을 보며 자연 치유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집중하였다. 그러나 점차 치유의 길에서 이 모든 것들이 마음이 관장하는 것이라는 치유의 본질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자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고 정주영 회장님의 이야기도 메시지가 되고 시골집 할머니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도 메시지가 되었다. 마음의 본질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 어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의료기기와 고가의 관리를 받는다 한들 결코 치유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일체 그런 곳에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나를 위한 자연치유의 계획을 세워나갔다. 

이런 원칙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자연치유센터에서 이런저런 모습들을 보며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결코 자본과 심신의 건강성을 따로 놓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본력은 면역력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건강성이 무너졌을 때 기본적인 자본력이 없고서는 딛고 일어나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 이때 암환우는 이 두 마리 말을 마음의 힘으로 일어나 고삐를 바짝 잡고 이랴! 하고 이끌며 달려가야했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대부분 건강이 무너지면 마음이 와장창창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지면서 자본력이 무너졌다. 

나 또한 건강이 무너지면서 마음이 와장창창 무너진 상태였고 곧 자본력도 무너질 수 있는 상태였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비록 지금 건강이 무너졌지만 제일 먼저 마음을 굳건하게 세우고 나면 건강은 자연스럽게 좋아질 거야. 그러면 자본력도 따라서 좋아질 거야. 마음, 건강, 자본은 하나의 유기체야. 이 세 쌍둥이들을 조화롭게 잘 회복시켜야 하는 게 나에게 주어진 미션이야.’ 심신의 건강성과 풍요는 자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과 평화에서 자연스럽게 싹트는 것이었다. 그것이 치유의 본질이었다는 것을 고독한 겨울왕국을 올라타며 하얀 눈 속에서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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