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은 불가능한 것일까?
인천 송도에 거주하고 있는 묘신화 보살님과의 인연은 절에서 시작되었다.
묘신화 보살님은 인천에서 삼계탕 사업을 오랫동안 하셨고 성공한 여성 CEO셨다.
자신의 사업을 활발하게 하시며 절에서 봉사 활동도 열심히 하시고 회장도 역임하셨다.
묘신화 보살님은 늘 나누고 베푸는 일에 열정적이셨다. 성격도 호탕하시고 인품이 좋으셔서 나모 모르게 그냥 그 보살님께 정이 갔다. 그 보살님만 보면 왠지 모르게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묘신화 보살님은 풍채도 좋으시고 빨간 립스틱에 풀메이크업을 하고 절에 오셨다.
묘신화 보살님은 항상 웨이브가 살아있는 정돈된 헤어 스타일을 고수하셨다.
멋지게 갖춰 입으신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스와 아우라가 일반 아주머니들과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묘신화 보살님은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모습이었다. 내가 출산을 하면서 육종암 수술을 한지 몇 달 뒤였다.
묘신화 보살님이 유방에 혹이 잡혀서 유방암인 줄 알고 조직검사를 했는데 원발이 췌장암이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보살님과 나는 그렇게 세대를 뛰어넘어서 같은 암환우로서 이심전심으로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찡하고 통하는 그 무엇이 생겼다. 나도 치병을 하며 육아를 하느라 보살님을 찾아뵙기가 힘들었지만 종종 안부차 연락을 드리곤 했다. 보살님은 췌장암 수술을 하시고 그 독한 항암도 진행하셨다. 췌장과 십이지장 등등 여러 장기들을 절제했고 항암으로 면역과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셨다.
그렇게 몇 년을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건강 악화로 괴로워하셨다.
그 사이에 양 쪽 무릎 수술까지 하시고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시며 여전히 골골거리시고 괴로워하셨다.
나는 열심히 치병을 하며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었는데 보살님은 하루하루를 힘들게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그 사이에 보살님의 후덕했던 몸집이 피골이 상접해져서 보기가 안쓰러웠다.
그간 통증으로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미간과 눈가에 생긴 깊은 주름들만 봐도 느껴졌다.
그렇게 화려하고 환했던 얼굴이었는데 웃음과 미소는 온데간데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보살님은 회복하시기 위해서 주열 관리도 받으시고 간병인을 고용해서 간병인과 함께 산책도 하시고 나름대로 노력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결국 또다시 췌장암이 재발했고 당시 보살님 연세가 70이 넘으셨는데 병원에서는 보살님께 보장할 수 없는 항암을 권했다고 했다.
보살님은 결국 항암을 거절하셨고 그렇게 지내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지난봄에 보살님께서 연락이 왔었다.
"봄인데 산에는 진달래 꽃이 예쁘게 폈겠다고 언제 한번 인천에 와서 같이 진달래꽃 보러 가자~"
보살님은 잘 못 드시고 많이 아프시지만 그래도 지난 봄에는 거동은 가능하셨던 것 같다.
봄에 보살님을 뵈러 가본다는 것을 그렇게 봄이 빨리 지나가버렸다. 지난 여름은 아이와 제주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나는 가을이 되어서야 보살님께 전화를 드리게 되었다. 보살님이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이상한 촉이 들어서 카톡을 했는데 이틀 내내 카톡도 읽지 않으셨다. 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보살님의 삼계탕 사업장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분이 받으셨다.
"안녕하세요. 대표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부득이하게 업장으로 전화드리게 되었어요. 혹시 무슨 일 있나 싶어서요..."
"아..... 대표님이 몸 상태가 많이 나빠지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세요."
"아..... 그러셨군요..... 어느 병원에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저도 그건 잘 모르는데......"
"혹시 보살님 아드님이나 며느님 오시면 제게 연락 좀 달라고 전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그제야 보살님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틀 뒤에 둘째 아드님께서 보살님 폰으로 내게 전화를 걸어주셨다.
"보살님...? 저예요. 입원하셨어요? 많이 아프세요?"
"안녕하세요. 저 둘째 아들입니다. 엄마가 많이 심각하셔서 전화 통화가 힘드세요."
"아......."
그리고 둘째 아드님께서 스피커폰으로 보살님과 통화를 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보살님..... 저예요. 많이 아프세요? 전화를 안 받으셔서...."
"ㄱㅎㅎㅁㅎㅎ"
"네?"
"붕 떠 있다고.ㅇㅎㅎㅇ"
"......."
보살님과 전화 통화로는 아무래도 대화가 어려웠다.
"여보세요? 지금 엄마가 전화 통화로는 대화가 힘드세요. 병문안은 나00 병원 812호로 오시면 되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보살님이 이제 다시 병상에서 일어나기 힘드신 상태라는 것을 직감했다.
다음날 병원을 갔다.
보살님은 세 살배기 아기처럼 양갈래 머리를 하고 침대에 누워계셨다.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기저귀를 차고 누워계셨다. 소변줄을 달고 영양제를 맞고 계셨다.
24시간 보살님을 돌보는 중국계 간병인이 보살님을 보살펴주고 계셨다.
"보살님.... 나 누구예요? 나 기억해요?"
"응. 여래심."
"보살님...... 하......"
"날 좀 만져줘."
나는 이불 속에 들어가 있던 보살님 손을 꺼내서 만졌다. 혈관이 잘 안 잡혔는지 손등에 피멍이 크게 나있었다.
보살님의 손끝과 발끝은 새하얗고 차가웠다.
"이렇게 나를 만져줘야 돼."
"보살님......"
"나를 좀 때려. 나를 깨워야 돼."
"보살님......"
"이러다가 죽는 거야."
"보살님......"
"세상에......뉴스에 알려야 돼. 경찰서에 신고 좀 해줘."
"보살님......"
보살님은 초점이 없는 눈빛으로 이런 말씀을 이어가셨다. 간병인이 내게 눈을 찡긋하며 보살님께서 계속 그렇게 왔다 갔다 하신다며 손등 너무 만지면 나중에 혈관 잡기 힘들다고 그만 주물러대라고 나무랐다.
보살님은 호흡도 힘들어하셔서 호흡기도 차셨다.
나는 보살님 드시라고 병원 앞에서 사과를 한 봉지 사갔는데 한 조각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신다고 했다.
이번에는 보살님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실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존엄한 죽음이란 불가능한 것일까.......
순간 햄릿의 대사가 머리를 스쳐갔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죽음이라는 것은 생의 또 다른 자연스러운 일대사인데......
나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나는 일찍이 현명한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 보건소에 가서 연명치료거부신청을 했지만 신청을 했어도
그걸 지키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한다.
병상에 누워계신 보살님의 그 모습이 아무 말없이 내게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는 것보다 어쩌면 죽는 게 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보살님과 이별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마음의 준비는 하겠지만 그날이 오면 정말 많이 울 것 같다.
보살님께서 정말 좋아하셨던 꽃을 한 아름 사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