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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Dec 20. 2023

매실 항아리는 킥보드를 타고

새콤달콤 매실나무의 초록빛 추억

 지난여름은 내게 사계절 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폭풍이 지나간 계절이었다. 나는 역동적으로 산도 타면서 시골집 마당에 자란 매실과 개복숭아를 따서 효소를 담느라 하루가 짧았다. 주인집 할머니네 마당에는 갖가지 꽃과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

나무와 꽃을 향한 할머니의 애정은 남달랐다. 나는 매일 시골집에 도착하면 오늘은 어떤 꽃들이 피었을지 궁금해졌다.

나는 할머니네 마당에 새롭게 피어나는 꽃들과 나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런 여유는 할머니네 셋방에 사는 세입자들에게 덤으로 주어진 그윽한 시간이었다. 할머니는 마당 한편에 닭장을 두고 닭을 키우셨다. 닭장에 닭들은 개처럼 사람이 오고 가는 것을 다 아는 것 같았다. 내가 주차를 하고 내리면 내게 인사라도 하듯이 꼬끼오 울기도 했다. 닭장 옆으로는 큰 매실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봄에는 매실이 열리기 전이라 예쁜 매화꽃이 피어났다. 나는 매실나무에 가까이 다가가서 가지마다 팝콘처럼 피어난 매화꽃에게 사랑을 전했다. 나는 매화꽃을 보면 왠지 모르게 지조를 지키고 싶으면서도 도발하고 싶은 그런 이율배반적인 마음이 생겼다.

 여름이 되자 그 매실나무에 피었던 꽃들은 다 떨어지고 동그랗고 탐스러운 초록빛 매실이 주렁주렁 열렸다.

그 옆에는 앵두나무도 있었다. 그동안 살면서 앵두나무를 볼 기회가 없었기에 앵두꽃도 그렇게 예쁘게 피는지 처음 알았다. 앵두나무에도 앵두꽃이 지면 빨간 앵두가 딸랑딸랑 열렸다. 할머니네 집 뒤편으로는 개복숭아 나무가 두 그루가 있었다. 할머니께서 오랜 세월 동안 거름을 주고 가지를 쳐주면서 키운 덕택에 과실이 크고 실했다. 봄에는 이렇게 개복숭아 꽃, 앵두꽃, 매화꽃 등등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한쪽에는 커다란 밤나무도 있었다.

 밤나무는 가을이 되면 눈깔사탕처럼 커다란 크기의 밤송이들을 툭툭 땅에 떨어트렸다. 나는 산에 올라갈 때 분명히 그 밤들을 싹 다 주워놓고 올라갔는데 다시 내려올 때 보면 또다시 밤송이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밤나무에 대한 역사를 듣고 나는 너무 놀라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밤나무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 나는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가 나처럼 젊은 새댁이었을 때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이 밤나무가 어떤 밤나무냐면, 내가 새댁처럼 젊은 나이에 시동생 결혼식에 갔다가 폐백하고 나온 폐백 밤 두 알을 받아왔더랬어. 그걸 저기 뒤편에 심었는데 그 폐백 밤이 자라서 밤나무가 된 거야. 작년에는 밤이 이렇게 실하지를 않았어. 그런데 올해는 이렇게 실하게 떨어지네?”

86세의 백발노인으로부터 이렇게 생생하게 밤나무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는 밤나무와 함께 까마득하게 흘러간 할머니의 지난 50년의 세월이 찰나처럼 느껴졌다. 지난 50년의 세월은 아직 내가 채 살아보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세월이었다. 나는 그 밤들을 매일 줍는 재미에 빠져서 날마다 밥에 넣어서 먹기도 하고 구워 먹기도 했다.

밤은 너무나 맛있었던 만큼 밤을 까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밤을 주우시곤 했다.

한 번은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본 할머니의 따님이 아침부터 짜증을 잔뜩 부리고 출근했다며 섭섭한 얼굴로 내게 말씀하셨다. 늙은 노인네가 무릎 아프고 허리 아프다고 하면서 저렇게 밤을 줍고 있다고 따님이 타박을 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내게 이제 자신은 힘들어서 밤을 못 줍는다며 밤나무에서 밤 떨어지면 다 주워가라고 하셨다. 나는 날마다 밤을 열심히 주웠고 집에 가서 주운 밤들을 소금물에 담가 놨다가 벌레가 빠지면 에어프라이어에 구웠다. 밤 까는 도구를 따로 구매하기까지 했다. 밤 칼로 그 많은 밤들을 모두 칼집을 내어 내가 먹을 만큼 남기고 나머지는 할머니께 갖다 드렸다. 할머니께서는 사실 밤을 줍고 싶으셨지만 신체적으로 무리가 가서 줍지 못하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고맙다며 함박웃음으로 밤을 받으셨다.

이렇게 나는 할머니네 집에 세입자로 살면서 사계절 내내 나무들이 던져주는 과실들로 일상이 풍요로웠다.

 매실이 새콤한 향기를 뿜어내며 익어갈 때쯤이었다. 매실을 따는 일도 할머니 혼자 하시기엔 무리가 있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매실을 땄다. 할머니네 집에는 생전에 할아버지께서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시던 나무 지팡이가 있었다. 반짝반짝 손 때 묻은 이 지팡이는 가지를 잡아당겨서 매실이나 개복숭아를 따는데 아주 유용했다. 나는 의자에 올라가서 높은 곳에 달려 있는 매실을 따려고 지팡이를 이용해서 나뭇가지를 끌어당겼다.

매실이 투두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할머니는 떨어진 매실을 주워 담으셨다. 할머니와 내가 손, 발을 맞추니 그 많은 매실도 모두 따고 개복숭아도 모두 땄다. 할머니께서는 2년에 한 번씩 효소를 담그신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아직 담가 놓은 효소 양이 많아서 자신은 장아찌 할 것만 가져가면 되니 새댁이 매실이랑 개복숭아 효소를 담가서 먹으라며 그 많은 과실을 내게 주셨다. 나는 당근 마켓에서 중고로 항아리 3개를 구매하였다. 처음 사보는 항아리라서 어떤 게 좋은 항아리인지 잘 몰랐지만 수박처럼 두드려도 보고 항아리 속에 얼굴을 집어넣고 “아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도 해보았다. 나는 나의 허리까지 오는 키의 큰 항아리와 작은 항아리 2개를 샀다. 할머니는 큰 항아리를 보고 얼마나 많이 담그려고 이렇게 큰 걸 사 왔냐며 눈이 동그래지셨다. “할머니 제가 문수산에서 개복숭아 나무를 발견했거든요. 그것도 같이 담그면 이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아서요.” “아이고, 살림도 크네.” 할머니는 효소 담그는 법을 내게 일러주시고 항아리에 담그고 마지막 마무리까지 잘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도를 해주셨다. “내가 할아버지 생전에 효소를 담가 놓고 병원에 입원하게 돼서 병원에 있었거든?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설탕 잘 녹게 젓고 파리 들어가지 못하게 뚜껑 잘 닫으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할아버지가 꼼꼼치가 못해서 그 사이에 파리들이 들어가서 구더기가 생겨 버린 거야. 그래서 그 아까운 걸 감나무 밑에 싹 다 버렸잖아. 파리가 못 들어가게 잘 묶어야 해. 안 그러면 구더기 생겨. 아무튼 우리 감나무는 할아버지 덕에 비싼 비료 먹어서 그런지 달고 맛있어.” 할머니는 자신의 첫 효소 실패담을 꺼내놓으며 꼼꼼한 밀봉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그 감나무의 감은 정말 달고 맛있었다. 할머니네는 감나무가 4그루가 있었는데 한 그루는 단감이었고 나머지 세 그루는 홍시로 먹거나 곶감을 만들어 먹는 용도였다. 나는 지난가을에 할머니네 감나무에서 감을 따서 곶감을 만들어 먹었다. 할머니께서 곶감 만드는 방법을 일러주셔서 나는 감자 칼로 감 껍질을 까서 볕 좋은 곳에 걸어두고 모기장으로 덮어두었다. 5일 정도 지나니 쭈글쭈글한 곶감이 되었다.

그 곶감은 그동안 내가 먹어본 곶감 중에 최고로 맛있는 곶감이었다. 겉은 쫄깃하고 속은 촉촉한 젤리 같았다. 쫀득하고 달콤해서 영양 간식으로 최고였다. 나는 점점 ‘곶감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했던 우리나라 호랑이의 입맛을 똑 닮아갔다.

그렇게 할머니와 함께 커다란 항아리에 개복숭아 효소를 담아서 밀봉하고 작은 항아리 두 개에는 매실 효소를 담아서 밀봉하였다.

  백일 뒤, 나는 효소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 보기 위해서 뚜껑을 열고 밀봉한 천을 풀어서 열어보았다.

개복숭아는 쪼글쪼글해져서 씨알만 남아서 잘 발효되고 있었다. 매실을 담았던 두 개의 항아리 중 하나를 열어보았다. 새콤달콤한 매실 향기가 코를 찔렀다. 주걱으로 뒤적이고 휘저어보았다. 비정제 설탕이 녹으면서 매실 과육이 흐물흐물하게 변하면서 잘 발효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매실 항아리를 열어보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만 "으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항아리 속에서 내 새끼손가락 두 마디 만한 사이즈의 구더기들이 꿈틀꿈틀거리고 있던 게 아니던가! 그렇게 큰 구더기는 처음 보았다. 그 구더기는 번데기보다는 날씬한데 번데기보다는 길었다. 색은 누르스름한 색이었고 이미 나의 매실 효소를 맛있게 먹으며 오동통통하게 성장한 모습이었다. “우웩~!”나는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는 할머니께 뛰어가서 매실 항아리 하나에 구더기가 생겼다고 울상이 되어 슬픈 소식을 전했다. 할머니는 “뭐야? 구더기가 생겼다고? 이런! 아니, 왜? 잘 밀봉했는데 어떻게 된 거야?” 할머니가 나오셔서 항아리를 들여다보시더니 “구더기도 왕 구더기가 생겼네. 아이고, 이를 어쩌냐. 감나무에 거름이나 줘야지. 어떡하겠어. 속상해서 어떡해?” 나는 왜 이 항아리에만 구더기가 생긴 것인지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 항아리에 밀봉했던 천이 다소 두께감이 있는 천이었다. 고무줄로 꽉 묶는다고 했는데 천이 두껍다 보니까 주름이 지면서 틈이 생긴 것 같았다. 그 미세한 틈으로 파리가 들어가서 알을 깐 것으로 짐작했다. 이 무거운 매실 항아리를 어떻게 옮겨야 할지 난감했다. 할머니는 굴리면서 가져가자고 하셨는데 나는 그 구더기들을 보니 자꾸 헛구역질이 나와서 굴리다가 구더기가 흘러나오면 어떡하냐고 울상을 지었다.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차 트렁크에 아이 킥보드가 실려있었는데 그걸 이용하여 옮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할머니! 제 차에 아이 킥보드가 있는데 거기에 항아리를 올려서 감나무까지 옮기면 수월할 것 같아요!” “오! 좋은 생각이네! 얼른 꺼내와 봐.” 나는 얼른 분홍색 킥보드를 꺼내와서 할머니와 함께 으쌰! 하고 항아리를 살짝 들어서 킥보드에 올려놓았다.

“새댁이 쓰러지지 않게 항아리를 잘 잡아. 내가 킥보드 손잡이를 끌고 갈 테니까!” “네! 할머니!” 우리는 영차영차 호흡을 맞추며 킥보드에 항아리를 올려서 감나무가 있는 곳까지 힘들이지 않고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감나무 밑에 구더기 매실 효소를 쏟아부었다.

꿈틀꿈틀 거리는 구더기들이 새콤달콤한 매실들과 함께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감나무들아 내 매실 효소 맛있게 먹고 내년에는 더 맛있는 감들을 열어주렴.” 항아리 하나는 실패했지만 나머지 두 항아리는 무사해서 천만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나는 매실 효소로 샐러드에 뿌려도 먹고 에이드를 만들어서 즐겨 먹었다. 개복숭아 효소는 김치를 담글 때 정말 유용하게 쓰였다. 기관지가 약한 우리 아이에게도 물에 희석해서 먹이곤 했다. 할머니의 따님께서는 내게 개복숭아는 예부터 그 씨에 독성이 강하여 사약의 재료로 쓰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개복숭아를 이렇게 효소로 만들어서 3년을 묵히면 독성이 약성으로 변해서 약효가 뛰어나진다고 하셨다. 나는 지난여름 할머니와 담근 효소들과 함께 나의 치병도 파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잘 밀봉하여 3년간 푹 발효시키기로 했다. 3년이 지난 뒤에는 모든 독성이 약성으로 바뀌는 개복숭아처럼 나의 치병기도 잘 발효가 되어 필요한 누군가에게 약성 좋은 효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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