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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Dec 19. 2023

하쿠나 마타타

It means "no worries"

 나는 치병하면서 암 환우들이 서로 소통하는 카페에서 환우들과 나의 자연치유 소식을 간간이 공유했다.

암 카페에서 어떤 유방암 환우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내게 쪽지를 남겼다. 그녀가 문수산으로 와서 산을 같이 타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유방암 환우와 서로의 사연을 나누고 격려하며 산을 타려던 생각이었다. 부랴부랴 아이 어린이집에 도착했는데 근로자의 날이라 휴업으로 문이 닫혀있었다. 그래서 결국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문수산 시골집으로 출근을 하였다.

 처음 만난 유방암 환우는 아이와 함께 나온 나를 보며 놀람과 반가움을 표했다. 나는 오늘 처음 본 환우에게 아이를 데리고 온 사정을 말씀드리고 아이와 함께 산을 타보자고 했다. 유방암 환우와 산타는 일이 계획에 없었다면 나는 그냥 아이를 강화도에 있는 키즈카페에 데리고 갔거나 산림욕장에서 조금 놀다가 돌아왔을 것이다. 서울에서 전철과 버스를 타고 2시간이나 걸려서 온 손님을 아이 때문에 그냥 혼자 산에 가시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멀리서 달려온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 아이와 소중한 손님을 모시고 어느 코스로 가야 할지 잠시 고민을 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문수산 북문에 있는 산장 쪽으로 가기로 했다. 당시 우리 아이는 막 4세가 되어 볼도 빵실 빵실하고 베이비파우더 향기가 나는 아기였다.

 북문 산장 길은 장대 2번의 정상을 향하여 둘러서 올라가는 코스다. 문수산 주차장 뒤편의 산림욕장이 문수산의 앞모습이라면 북문 산장 길은 문수산 뒷모습의 산림욕장이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중턱까지는 완만한 경사의 숲길이 펼쳐진다. 잣나무와 소나무가 우리들의 입산을 환영하는 듯 싱그러운 향기를 바람에 실어 미소를 전했다. 중턱까지는 아이가 걷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나와 유방암 환우는 산행을 지루해하는 아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양손을 잡고 폴짝 폴짝 뛸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아이는 힘들다고 하면서도 나뭇가지를 줍고 던지면서 곧잘 쫓아왔다. 그렇게 우리는 산의 중턱까지 걸어서 올라왔다.

 이제 여기서부터 경사가 점점 높아지는 코스다. 경사를 지나서 10분 코스의 고바위가 나오는 구간은 인왕산을 연상시킨다. 이 마지막 고바위를 지나면 장대 2번의 정상이 나온다. 아이가 쭉쭉 앞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나는 아이 뒤에 서서 엉덩이를 받쳐주며 조금씩 밀어주기도 했다. 우리는 한 고개를 으쌰 으쌰 하며 올라왔다. 나무 그늘 아래에 벤치가 있었다. 우리는 그 벤치에 앉아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아이는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나는 아이에게 “앞으로 너랑 산에 올 일은 없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아이는 배가 고팠는지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유방암 환우는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꺼내 먹고 나는 현미 과자를 꺼내 먹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비슷한 처지의 환우들과 함께 있을 때는 상대방이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밥을 씹어 먹는 모습, 시선 등등에서 여러 감정들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마지막 구간을 오르기 위해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여기서부터는 어른들에게도 꽤 험준한 코스인데 조그마한 우리 아이가 타기에는 위험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우리 아이는 그동안 산을 타 본 경험도 없었고 운동화가 아닌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

나는 맨발로 산을 탄 지 익숙해졌다지만 이렇게 산을 탈 줄 알았다면 아이는 운동화를 신겨서 데리고 왔어야 했다. 어쩌겠는가? 이미 고바위 코앞까지 올라온 것을!

 그런데 우리 아이는 이곳을 키즈카페에 있는 밧줄 타기 장애물 따위로 인식했는지 밧줄을 잡고 험준한 고바위들을 스파이더맨처럼 씩씩하게 타는 것이 아닌가!나는 아이의 거침없는 추진력과 산행 실력에 놀라고 말았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우리 아이는 오히려 고바위에서 더 즐거워 보였다. 나는 그런 우리 아이의 엉덩이 뒤에서 ‘정말 대단해! 문수산에 스파이더맨이 나타난 것 같아! 정말 멋져!’를 연신 내뱉으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우리는 아이와 함께 생각보다 거뜬히 고바위 구간을 통과하여 장대 2 정상에 올라 발자국을 찍게 되었다. 문수산성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정말 멋지지만 장대 2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정말 끝내줬다. 나는 장대 2번에 오르면 청소년기에 졸면서 듣던 국어 시간이 떠올랐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지루해도 빨간펜으로 줄을 치고 별을 그리며 듣던 청산별곡이 떠올랐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침을 질질 흘리며 책에 이마를 부딪혀가며 들었던 그 구절이 몽롱하게 나의 오랜 기억 저편에 저장되어 있었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풍미 깊은 고전 시가의 맛을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문수산의 장대는 망각하고 있었던 고전 시가의 멋을 음미하도록 하는 신비가 있었다.

 나는 어린 아들과 태양이 작열하는 장대에 오르니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라이언 킹에서 아기 사자 심바가 태어나자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원숭이 주술사는 심바를 하늘 높이 추켜올려 안는다. 그리고 주술사는 심바가 정글의 왕을 이어갈 후계자의 숙명을 축복한다. 장면이 너무나 멋지고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 아들을 아기 사자 심바처럼 높이 추켜올려서 우리 아들의 존엄한 생명력을 축복했다. “네 살에 크록스를 신고 장대에 올라온 아이는 너밖에 없을 거야. 정말 대단해! 넌 분명 라이언 킹의 심바처럼 정글의 왕이 될 거야!” 아이는 장난을 치는 엄마의 모습이 마냥 재미있는 듯했다. 푸른 하늘에 우리 아이의 맑고 영롱한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사람은 가장 먼저 눈으로 치유가 된다는 것을 문수산의 2번 장대에 올라 탁 트인 경치를 바라보며 몸소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보고 듣는 데로 살게 된다고 하는데 우리의 삶이 빛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장대 2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잠시 벤치에 누워서 배를 내놓고 일광욕을 즐겼다. 아이는 소나무 옆에 있는 자기 키만 한 돌기둥 옆에서 놀고 있었다. 돌멩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아이가 서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돌기둥 위에 사람들이 소원을 담아서 쌓아놓은 돌탑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 아이가 돌탑의 돌멩이를 하나씩 집어서 바닥에 떨어트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돌을 던지면 안 되지. 돌을 던지다가 네 발등으로 떨어지면 다칠 수 있어. 매우 위험한 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소원을 담아서 정성껏 쌓아둔 것을 망가뜨려 놓으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속상하겠니? 던지지 않아요.”라고 타일렀다.나는 아이가 떨어트린 돌을 다시 집어서 돌탑을 쌓으려는데 그 돌기둥 속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떤 작은 새가 이곳에 둥지를 터서 낳은 작은 새알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작은 새알은 태어나서 처음 본 것이라 이 만남이 정말 너무 신비롭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이에게 “쉿! 여기 새알들이 있어. 알 속에서 새끼 새들이 자고 있나 봐. 조용히 봐봐”

아이는 신기한 듯 새알을 바라보았다. 나의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새알들이 예쁘게 모여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한참 동안 그 새알을 바라보았다. 어미 새가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을 만큼 틈을 두고 돌탑을 쌓아두기로 했다.

자칫하면 돌탑이 무너져 둥지로 돌멩이가 떨어지면 새알들이 깨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돌탑을 치워버리면 사람들의 눈에 띄거나 뱀에게 공격을 당할 것 같았다. 돌탑을 원래대로 유지하되 돌멩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더 안전하게 쌓아두었다. 우리 아이가 아니었다면 무심코 지나갔을 그 돌기둥에 그런 작은 생명체가 웅크리고 있었다니 생각할수록 너무 신비로웠다. 우리는 어떤 새의 새알일지 궁금증을 마음에 품고 장대 2에서 북문을 향하여 내려왔다. 아이는 정글의 왕 후계자답게 내려오는 길에 소변과 대변을 보며 문수산에 영역 표시를 제대로 하였다. 우리는 산을 내려와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조촐하지만 정성껏 준비한 산나물과 우엉 반찬으로 유방암 환우분께 점심 겸 저녁 식사를 대접하였다. 나는 아기 사자 심바와 정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 사자의 피로를 어느새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라이언 킹의 하루를 보내고 해가 질 무렵 하쿠나마타타를 부르며 헤어졌다.

 나는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도 계속 아기 새알이 생각났다. 나는 날마다 장대 2로 올라가 새알들이 안전한지 확인하였다.

새알들은 다행히 무사하였다. 한번은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던 작고 까만 어미 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어미 새는 내가 공격을 하는 줄 알았는지 나를 그 작은 부리로 쪼려고 공격 자세를 취하며 그 작은 날개를 연신 푸드덕거렸다.

그리고 열흘 만에 나는 혹시나 새들이 태어났을까 궁금한 마음에 다시 장대 2의 돌기둥 둥지를 찾아가 보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작고 예쁜 새알들이 반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고 반은 모두 깨져 있었다.

나의 마음도 와장창창 깨져버리는 순간이었다. ‘아기 새들이 무사히 태어나길 기도했는데......’

나는 먼 강을 바라보며 청산별곡을 읊었다. 세상에 빛을 발하지 못한 아기 새들을 애도하고 어미 새에게 위로를 전했다. “우는구나 우는구나 새야. 자고 일어나 우는구나 새야.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우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씁쓸한 마음을 애써 빗어내며 터덜터덜 산을 내려왔다. 하쿠나 마타타를 부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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