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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쓰레기집 청소부입니다.

경단녀 엄마가 일을 시작합니다.

by 샤론스톤

아이가 올해로 6살이 되었다.

나는 올해로 육종암 폐전이 소견 후 치병 3년 차가 되었고 지난 진료 결과를 끝으로 모두 깨끗하고

이상 없음을 판정받았다.

치병의 큰 산을 넘어온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분명히 내 얼굴의 모든 근육들이 웃고 있었지만 눈물이 주룩주룩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람은 삶을 살면서 어떤 큰 산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비교적 산의 크기가 작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험준한 산맥을 넘어야만 하는 숙명을 선물 받는다.

아무튼 나는 그 산을 용감하게 씩씩하게 잘 넘어왔다.

치병의 험준한 산을 넘어와서 잠시 목을 축이고 이마의 땀을 닦고 나니 또다시 내 앞에는 험준한 빚더미 산이

놓여 있었다.

내가 아프면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의 사업이 힘들어졌고 그동안 남편의 사업 채무는 눈덩이처럼 쌓였다.

나는 치병을 하며 일을 할 수 없었고 아이를 케어하는 일과 치병을 하는 일만으로도 너무나 벅찼다.

'이 빚더미 산은 어떻게 넘어갈까?' 패기와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현타와 함께 자신이 없어졌다.

'지난 3년의 치병기간 동안 정말 치열하게 쌓아온 건강성인데...... 앞으로도 잘 관리하고 유지해야 할 텐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아이는 어떡하지? 일을 하게 되면 아이를 누구에게 어디에 맡겨야 하나?'

나의 머리는 번뇌로 가득해졌다.

"그래! 까짓것! 치병의 산도 넘어왔는데 빚더미 산도 넘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어깨를 활짝 펴고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미 나는 5년이라는 기간 동안 아이를 키우고 치병을 하며 경단녀가 되어버렸다.

6세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은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나 배달라이더였다.

탄력근무제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할 수 있는 일은 쿠팡 분류업이나 콜센터, 보험, 상조와 같은 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보험과 콜센터처럼 말을 많이 하는 일은 입에서 단내가 나고 쉽게 기가 빨려서 일단 걸렀다.

00 상조회사에서 장례식장 서빙일을 구한다고 해서 연락을 했더니 바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해서 면접을 보러 갔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점장님이 나를 빠르게 스캔하더니 면접을 봤다.

검은색 진한 아이라이너가 인상적이었다.

그분의 인상과 말투, 몸짓에서 억세고 강한 기가 느껴졌다.

세상에 속일 수 없는 게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아무리 성형을 하고 꾸며서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그 어떤 것이었다.

오랜 습관이 향기가 되기도 하고 냄새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분은 내가 6세 아들이 있다고 하자 바로 이렇게 물었다.

"아이가 너무 어리네. 아직 손이 많이 갈 때인데...... 아이는 누가 봐주기로 했어요?"

"아이를 봐줄 사람은 없고요, 제가 봐야 해서 주말에 남편이 아이를 볼 수 있어서 제가 주말에는 프리랜서처럼 행사 뛰듯이 일할 수 있는 거라고 해서 지원했습니다."

"아....... 힘들겠는데...... 우리가 일이 이렇게 딱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서...... 사람이 갑자기 죽으니까.

죽으면 바로 뛰어나갈 수 있어야 되거든요. 힘들겠어요."

"아...... 그렇군요. 힘들겠네요."

"영업직을 해보는 건 어때요?"

00 상조 점장님은 영업직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하며 영업직을 권유했다.

"보험 같은 거네요. 죄송합니다만 제가 보험일은......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후......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는 게 욕심인거구나.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려면 아이를 키우거나 일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하라는 거네.'

그러던 중에 쓰레기집 청소부 구인공고를 보게 되었다. 오래전에 영상으로 쓰레기집을 청소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 우울증이나 어떤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집이 저렇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집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었다.

쓰레기집의 난이도에 따라서 일이 힘들 수 있지만 일거리가 많고 소득도 괜찮았다.

이 일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친정 엄마가 아이 등, 하원 시간 총 3시간만 도와주실 수 있다면 엄마에게 아이 돌봄 비용을 시터급으로 챙겨드리며 일을 할 수 있었다.

"엄마. 나 일을 구했는데 엄마가 나 도와줄 수 있을까?"

"무슨 일을 구했는데?"

"청소일인데..... 홈케어업체인데 어지러워진 집 청소 하는 일이야."

엄마한테 쓰레기집이라는 표현을 쓰면 더 거부감이 생길까 봐 단어를 순화해서 이야기했다.

"하...... 다른 일을 찾아보면 안 되니?"

엄마는 내가 청소일을 하는 게 영 내키지 않았나 보다. 우리 엄마는 어릴 때부터 체면이 중요한 사람이었고

아빠가 우릴 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구두수선을 했었는데 엄마는 아빠의 직업을 한심하게 여기고

창피해했었다.

나는 우리 엄마라면 딸이 청소일하는 것도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와줄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만 말해줬으면 좋겠어. 엄마가 도와줄 수 없다면 이모님을 구해서 아이 등하원을 부탁드리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당분간만이라도 조금만 도와주면 좋겠어. 돌봄 비용은 시급 12000원으로 칼같이 계산해서 드릴게요. 주말에는 남편이 보기로 했으니까."

"엄마도 스케줄이 있는데 어떻게 하라는 거니? 네가 인천으로 오면 모르겠지만."

"맞아. 이해해. 그런데 내가 인천으로 갈 수는 없는 상황이고...... 아이도 이미 유치원 생활에 적응을 하고 있고 여기에 세팅이 되어있어서 인천으로 옮길 수는 없을 것 같네. 도와줄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어쨌든 남보다는 그래도 엄마한테 맡기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이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하......"

나도 엄마에게 이런 난감한 부탁을 해야 하는 나 자신이 영 잘 소화가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당분간은 봐줄게. 그런데 장기간을 봐주는 건 힘들어."

"알겠어. 고마워. 어쨌든 도전해 볼게. 적응이 되면 나도 장기 이모님을 알아보던지 할게."

"그래. 그리고 너 건강도 생각해야 하는데...... 힘든 일 하면 안 되는데......."

"엄마.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 있으면 내게 알려줘. 그런 일이 있나? 만약 있다면 대부분 이상한 일일 거야. 사기꾼들이거나."

"그렇지. 휴......."

나는 엄마의 이런 한숨이 익숙하면서도 거북스러웠다. 그래도 엄마를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래. 엄마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거야. 딸내미가 미술 한다고 쎄빠지게 일해서 교육시키고 키워놨더니 청소를 하고 있네? 하...... 짜증 나.' 이게 아마 엄마의 마음의 소리가 아닐까. 엄마는 아무래도 자신의 인생의 성적표나 트로피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영 뜻대로 되지 않았던 딸의 모습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어딘가 모르게 엄마에게 응원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조금 슬펐다.

나는 어쩌면 엄마에게 이런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딸아. 엄마는 너의 건강이 걱정돼. 하지만 엄마는 네가 씩씩하게 세상에 부딪치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멋진 것 같아. 엄마는 널 언제나 응원해. 힘내!"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우리 엄마의 품은 내가 발을 뻗기에 너무나 비좁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딸에게 응원을 보낼 여유가 없다는 것을!

우리 엄마가 청소부가 된 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를 도와준다고 하셨다.

아이의 등하원을 당분간 봐주시겠다고 했다.

감사할 따름이다.

응원한다! 힘내라! 따위의 말은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이것만으로도 큰 응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큰 벽이 있는데 그 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엄마의 도움을 승낙받고 쓰레기집 청소부가 되기 위해서 면접을 보러 갔다.


(쓰레기집 청소부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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