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수납전문가의 일상

정리의 미학

by 샤론스톤

나는 올해 초부터 청소 시장을 탐색하다가 정리수납의 현장을 알게 되었다.

나는 쓰레기집 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특수청소 일을 하다가 정리수납시장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리수납을 청소의 카테고리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청소와는 완전히 다른 맥락이다.

청소라는 분야는 창의력이나 센스가 그다지 불필요해서 힘과 노동력이 주요한 에너지원이 된다.

정리수납 또한 힘과 노동력 없이는 안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상상력, 공간감각, 센스가 필요한 분야였다.

마치 작가가 쓰레기 더미들에서 창작을 하듯이 널브러지고 어지러워진 집을 재창조해나가는 과정과 같았다.

나의 예술적 재능이 여기서 빛을 발휘했다.

세상물정 모르던 시절 이슬만 먹고살아도 되는 줄 알고 예술학도로 예대를 다녔던 시간들이 부질없지는 않았나 보다. 돌이켜보니 그 시절 나는 얼마나 풋풋했던가.

아무튼 나는 숨*라는 플랫폼에서 정리수납을 원하는 고객들을 만났고 매칭이 된 고객들에게 비교적 가성비 있는 가격으로 정리수납컨설팅을 도와드렸다. 가는 곳마다 모두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다.

정리수납을 의뢰하는 고객님들은 크게 4가지로 분류되었다.

첫째는 이사를 했는데 혼자서 정리가 감당이 안 되는 분들이 계셨고

둘째는 옷이 정말 많은 방송인이나 배우, 또는 그에 준하는 일반인들이었다.

셋째는 육아로 인해서 살림이 급격하게 늘어나서 도저히 혼자서 정리가 어려운 상태인 분들도 계셨다.

마지막으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심각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계신 경우에 해당되었다.


첫 번째나 두 번째의 경우에는 고객님들과 소통이 잘 되고 상당히 만족도가 높았다.

셋째의 경우에는 정리 스케일이 커서 일이 고되긴 했어도 역시나 고객님의 만족도가 높았다.

그런데 문제는 넷째.

보통 의뢰하시는 경우 아내나 남편이 오랫동안 정신질환을 겪으신 분들이 많으신데 대게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는 여자분들이 많았다.

당연히 부부관계가 좋지가 않았고 환자의 배우자도 오랫동안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이거나 우울증 전조증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녀들이 있는 경우에는 자녀방 역시 오랫동안 방치된 채로 엉망진창이었고

대게 우울증 환자들의 집은 저장강박증과 함께 기준치를 초과한 병리적 증상이 동반된 공간의 상태였다.

여러 집들을 정리하면서 그 공간을 보면 어느 정도 그 고객님의 정신건강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공간에서 넷째에 해당하는 고객들은 우울증과 불면증의 악순환 고리를 끊지 못한 채 살고 있었고

대게 이런 집들은 정말 신기하게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고양이 털과 변 냄새로 집의 위생상태는 더 최악으로 치닿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런 고객들의 사정을 배려해서 최소의 인건비로 최대의 정리수납 효과를 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혼자서 2~3인분의 역할을 해가며 발품을 팔아서 해드려도 뒤끝이 좋지 않았다.

딸내미 귀중품이 없어졌다는 둥 엠프가 없어졌다는 둥 사진과 다르다는 둥 도둑년취급을 받기가 일쑤였고

환불을 요구하거나 소비자센터에 신고한다는 경우도 있었다.

친절하고 정중하게 응대하다가도 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나도 고객에게 거친 말을 쏟아부었다.

이제 고객을 만나서 상담을 하다 보면 어떤 고객이 쎄한지 감이 왔다. 대체로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쎄하다.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쎄한 기운. 이것이 바로 현장감이다.

아무튼 그 쎄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보다 정신력이 더 강해야 함은 틀림없다.

이 더운 여름 에어컨이 없는 공간에서, 그 뒤죽박죽 된 짐들 사이에서 분류와 정리작업이 이뤄지니 말이다.


정말 신기한 게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고 있는 고객들의 특징은 거실 에어컨이 없거나 고장 나 있었다.

어쩜 그런 것도 신기하게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았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공간에 대해서 더욱 생각이 깊어졌다.

공간은 내 마음의 은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공간은 나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꽉 차고 어지럽고 정신없다면 나의 마음이 그렇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복잡하다면 내가 있는 공간의 묵힌 짐들을 정리하고 정돈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백이 생겨날 것이다. 이것이 고객님들이 정리수납을 의뢰하는 본질적 이유일 것이다. 정리라는 것이 단순히 공간을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심리적 안정, 평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KakaoTalk_20250717_102313381_04.jpg 10평 원룸 아파트 공간을 의뢰하신 고객님 댁.

양주에 있는 10평 아파트였다. 발랄하신 20대 후반 여성 고객님이셨는데 강아지와 함께 살고 계셨다.

수납력이 좋은 아메리칸 스타일의 침대를 쓰고 계셨고 수납장 공간에 수납가구들과 헹거, 테이블이 엉망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겉보기에는 정리상태가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수납장을 열어보니 옷들과 물건들이 체계 없이 그냥 뒤죽박죽 짱 박혀있었다.

KakaoTalk_20250717_102313381.jpg 신발장 공간에 꺼내기도 힘들 만큼 꽉 찬 겨울 패딩들.

신발장 공간을 사이드 옷장으로 쓰고 계셨는데 겨울 패딩과 후리스가 가득 차있어서 꺼내서 입기도 힘들 정도로 압축되어 있었다.

KakaoTalk_20250717_102313381_06 (1).jpg 침대 밑 넓은 수납공간에 뒤죽박죽 짱 박혀 있는 옷들.

침대 밑의 수납공간이 깊고 넓어서 수납력은 좋았지만 옷들이 그냥 질서 없이 짱 박혀있어서 정리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하는 상태였다.

KakaoTalk_20250717_094921905_02.jpg 드레스룸으로 공간의 정체성을 찾아주고 가성비 좋은 왕자 헹거를 ㄷ모양으로 설치하여 드레스룸 설계.

옷을 좋아하는 고객님을 위해서 드레스룸을 만들어드리고 좁은 공간이지만 효율성을 높여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안드렸다. 고객님의 남자친구께서 협조해 주신 덕분에 헹거 설치도 빠르게 진행되어 정리수납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KakaoTalk_20250717_094921905_03.jpg 계절별, 종류별로 옷들의 섹션을 나눠서 걸고 좌측 수납장은 세로로 세워서 화장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유행이 지난 옷들과 불필요한 옷들을 분류하고 비우는 작업이 선행되었는데 양이 대략 75KG가 나왔다.

헌 옷수거업체에서 대략 29,000원의 헌 옷수거비를 고객님께 지불하고 가져갔다.

고객님께서 무거운 옷들 어떻게 정리하나 걱정했는데 옷도 손쉽게 정리하고 밥값도 벌었다며 남자친구 맛난 저녁 사주신다고 하셨다. 벽면에 하부장은 기존에 가지고 계시던 압축봉을 활용해서 청바지 진열 헹거로 변신시켰더니 화장대까지 겸비한 깔끔한 드레스룸이 탄생되었다. 구매물품은 왕자헹거 3세트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있던 수납가구들의 재배치를 통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공간이었다.


KakaoTalk_20250717_094921905_05.jpg 침실과 드레스룸의 공간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재탄생되었다.

신발장에 있던 겨울옷들도 드레스룸 헹거에 모두 걸렸고 벽면에 있던 헹거는 당근으로 처분하셨다.

작은 헹거 겸 트롤리만 남겨두어 사이드 헹거로 활용하여 헹거에는 옷을 걸고 아래쪽 수납바구니에는 헤어용품들을 정리해 두었다. 고객님이 너무 만족스러워하셨다. 침대 밑 수납공간에서 엄청난 짐들이 나와서 예상보다 대략 5시간가량 작업이 지연되었지만 고객님께서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비용이 아깝지 않다고 하셨다.

아침에 아이 잠든 모습을 보고 나와서 저녁 11시가 되어서야 끝났기에 일이 고되었다.

고객님께서 이런 리액션을 해주실 때가 가장 보람되고 기뻤다.

KakaoTalk_20250717_094921905_06.jpg 렌지대에도 강아지용품과 문구류, 잡동사니가 뒤죽박죽 섞여있었는데 1층에는 강아지 간식과 고객님 간식을 두고 2층과 3층에는 레토르트 식품과 영양제를 정리해 두었다.

고객님께서 주로 냉동식품과 레토르트 식품을 즐겨드시는 편이라서 렌지대에 고객님이 자주 드시는 레토르트 식품들을 정리해서 깔끔하게 자리를 마련해 드렸다.

KakaoTalk_20250717_094921905_07.jpg 1인 가구라 살림살이가 많지는 않았지만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들을 용도와 동선에 맞게 재배치하고 정리해 드렸다.

정신없던 주방을 물건의 주소지를 재설정해서 동선에 맞게 정리수납을 해드리고 정수기 자리를 마련해 드렸다. 주방이 훤해지고 깔끔해졌다.

KakaoTalk_20250717_094921905_10.jpg 고객님께서 요리를 좋아하셔서 프라이팬 종류가 많았다. 뒤죽박죽 꽉 차있던 이 공간을 프라이팬 수납장으로 재탄생되었다.

프라이팬 거치대 2개를 이용하여 가열대 아래 프라이팬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KakaoTalk_20250717_095034186_09.jpg 신발장에 마구 뒤죽박죽 섞여있는 롱부츠와 앵클부츠, 구두들.

신발장에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는 부츠들의 주소가 필요해 보였다. 옆 신발칸에 꽉 차 있던 겨울옷들을 드레스룸으로 옮기고 신발장과 팬트리 공간으로 만들어드렸다.


KakaoTalk_20250717_102313381_12.jpg 베란다에 가득 쌓여있는 이불짐, 빨래짐, 인형, 잡동사니들
KakaoTalk_20250717_115806928.jpg 드레스룸 수납장 위에 깨알 같은 화장대 공간이 재탄생되었다.

눕혀서 쓰던 기존의 수납장을 세워서 수납을 하고 윗부분에는 화장품을 두고 화장하실 수 있도록 화장대를 만들어 드렸다. 고객님께 벽에 붙이는 조명을 구매하셔서 1~2개 붙여서 환하게 켜놓고 화장하시면 될 거라고 조언을 드렸다.

KakaoTalk_20250717_115658606.jpg 신발장의 신발들의 주소지가 정해졌고 신발들이 각자의 주소지로 찾아갔다.

주소지를 잃어버린 혼돈의 신발장에서 꽉 차 있던 운동화와 크록스들을 새 주소를 만들어주었더니 신발장이 깔끔해졌다.

KakaoTalk_20250717_115621478.jpg 우측의 신발장의 아랫부분은 롱부츠와 부츠칸으로 활용하고 위쪽은 팬트리칸으로 캠핑용품과 잡동사니들을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들어드렸다.

롱부츠걸이 4개를 구매해서 신발장 안쪽에 부츠를 깔끔하게 걸어두고 보관할 수 있도록 해드렸다.

위쪽의 공간은 깨알 같은 팬트리 공간으로 큼직한 캠핑 물건들과 잡동사니를 보관하실 수 있게 정리해

드렸다.

정리수납전문가가 하는 일은 창작의 맥락에 있다.

이 일이 정말 신기하게도 심리치유의 선상에도 맞닿아있었다.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