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귀신의 집
정리수납 일을 시작하고 숨* 플랫폼에서 두 번째 고객을 만났다.
남자 고객님이셨는데 아내방을 정리해야 한다고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이미 아내방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부부가 한 공간에서 같이 생활하거나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고객님도 어떤 사연이 있으신 분이라는 것을 첫 문장에서 예측할 수 있었다.
그 고객이 보내준 아내방의 사진 속에는 오래된 붙박이장이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퀸 침대가 있었다. 퀸 침대 옆에는 고가구처럼 보이는 화장대와 피아노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퀸 침대 앞에는 묵직한 원목 수납가구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침대 위에는 이불과 큰 인형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었고 화장대 위에는 물건들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나와있었다. 피아노 위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곳은 무조건 현장을 미리 방문해 봐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사진만 보고 당일에 갔다가는 '에구머니나!'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바로 다음날 고객님 댁으로 현장방문을 갔다. 고객님은 서울 마포구의 입지 좋은 곳에 있는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길쭉한 키에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고객님이셨다. 그 고객님도 안색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고 매우 피곤해 보였다.
이 고객님 댁도 역시나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재활용 쓰레기통을 신발장 쪽에다 두고 있었고 입구서부터 지저분하고 어수선했다. 그렇게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느낌으로 신발장을 들어서면 고양이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었다. 고양이 변냄새는 정말 지독해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결벽이 있을 정도로 깔끔하거나 부지런하게 청소를 잘하는 사람만이 키워야지 집관리가 가능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 집도 그런 경우는 아니었다.
거실과 부엌은 어수선하더라도 그냥저냥 봐줄 만했지만 아내방이라는 그곳을 들어간 순간 보통의 스케일이 넘는 집임을 알 수 있었다.
공간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내분이 아프신 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신체적으로 아프든 정신적으로 아프든 둘 다 아프든 어딘가 엄청나게 아픈 분이시라는 것을.
공간에 비하여 너무나 큰 사이즈의 묵직한 가구들이 빈틈없이 가득한 데다가 문을 열 수도 없을 만큼 이상하게 배치를 해두고 있었고 그 와중에 옷과 물건들이 가득가득 쌓여있었다.
붙박이장은 문을 열 수가 없어서 열지 못한 채로 4년을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옷들을 안방 화장실 샤워부스 문에 걸어두고 헹거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샤워부스 안에는 온갖 신발상자와 물건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화장실은 아내가 건식용으로 세면대에서 세수하고 양치하는 정도로만 사용하고 있었고 샤워부스는 저렇게 창고처럼 사용한다고 했다.
침대 헤드 쪽에는 약봉지가 넘쳐났다. 안방 문 벽 쪽에도 밍크코트와 옷들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마치 산속에서 길을 잃어서 숲과 풀로 우거진 늪지대를 헤쳐가듯 물건더미들을 헤치고 건너고 올라타며 가야 했다.
"이러고 4년을 살았습니다. 정리를 너무 하고 싶었는데 엄두가 안 나서....... 아내가 자기주장이 워낙 강하고 방어적이라 자기 공간에 손도 못 대게 하거든요. 아내가 지금 출장을 간 상황이라서 아내 몰래 정리를 하지 않으면 답이 없을 것 같아서 정리업체에 의뢰하게 된 거예요."
"아....... 그러셨군요. 그동안 정말 많이 힘드셨겠어요. 아내분께 말씀드리지 않고 하시는 이유는 저도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만 후에 아내분께서 알게 되시면 후폭풍이 장난 아니실 텐데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어쩔 수 없습니다. 아내한테 말을 하고 할 거였으면 진작 했을 거예요. 아내가 완강하게 반대를 하고 정리는 안되고...... 하......"
정리수납 컨설팅을 하면서 여러 고객들을 만나봤는데 적지 않은 고객님들이 아내 몰래 또는 남편 몰래 의뢰하시는 경우가 있었다. 보통 아내분들이 남편 몰래 하는 경우는 봤지만 이번에는 남편이 아내 몰래 하는 경우였다. 안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피아노는 거실로 빼고 화장대도 폐기하기로 했다. 침대도 결혼하면서 산 거라고 오래돼서 버릴 때가 되었다며 버리겠다고 결정하셨고 수납장도 버리겠다고 했다.
안방은 피아노와 붙박이장만 빼고 모두 폐기하기로 했다. 폐기가 된 뒤에 공간이 확보되면 4년간 열어보지도 못했던 붙박이장을 열어서 그 안에 있는 옷들을 전부 꺼내서 버릴 것과 입을 것을 분류하고 비워내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내방 옆에 있는 아들방으로 갔다. 아들방도 숨이 턱턱 막혔다.
이 집은 모든 공간들의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문 뒤에 어떤 수납가구나 짐들이 막고 있었다.
각각의 수납가구들도 물건들로 가득 차서 제대로 열리는 게 없었다.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정리의 개념을 잃어버리고 물건에 잠식된 채 살고 있었다.
아들 방 역시 좁은 공간에 큰 책상과 책장, 붙박이장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집에 이사오기 전에는 조금 큰 평수에 살았어가지고 그 평수에 맞는 가구들을 그대로 가져오다 보니까 이렇게 되더라고요."
아들은 고3 수험생이었는데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자고 공부는 독서실에서 한다고 했다.
고3 아들방의 침대 커버와 이불, 베개 커버는 핑크빛의 5~6세 공주님들이 좋아할 법한 스타일이었고 커튼 역시 유아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이었다.
아이들이 영유아기 때 쓰던 물건들이 그대로 묵힌 채로 생기를 잃어버리고 무기력하게 부유하고 있었다.
아들 방에 있는 가구들도 대대적으로 모두 폐기하고 아들방에 맞는 시스템장과 침대를 새로 사서 쾌적한 공간으로 바꿔드리기로 했다.
다음으로 따님 방으로 갔다. 따님은 고1이었고 피아노 연주와 기타를 좋아하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 같았다.
따님 방은 더욱 최악이었다. 그 좁은 공간에 양쪽으로 큰 사이즈의 붙박이장이 있었고 큰 책상 위는 무언가 집중해서 책을 읽거나 공부할 수 없을 만큼 물건들이 뒤죽박죽 다 나와서 널브러져 있었다. 빈 공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잘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따님은 어디서 잠을 자는 걸까요?"
"딸은 아내방에서 아내랑 같이 잠을 잤는데 딸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딸과 아내는 분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 귀신의 집 같은 아내방에서 딸과 아내가 함께 잤다는 말에 나는 차마 놀란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럼 아드님은 아까 그 아드님 방에서 주무시고 따님은 아내방에서 아내분과 같이 자고 고객님은 어디서 주무시나요?"
"저는 거실에서 잡니다."
"아......."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취약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냈던 것인지 아이들의 정서, 심리 상태가 심히 걱정되었다.
고객님 말씀대로라면 4년을 이렇게 사셨다는건데 묵힌 짐들을 살펴보니 이 상태가 지속된 지 적어도 10년은 넘은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고객님과 함께 주방으로 이동해서 주방의 공간을 살펴보았다.
주방도 엉망진창이었다.
"이 식탁은 너무 커서 버릴 거고요. 한 달에 한번 정도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밥을 먹을까 말까라서 이 테이블이 딱히 필요가 없어요. 공간만 잡아먹고......"
"아...... 네......"
주방의 상부장과 하부장에도 온갖 살림들이 가득 압축되어 뒤죽박죽 들어있었다.
세탁실의 틈새 공간에도 오랫동안 묵힌 쓰레기 같은 짐들이 방치된 채 불유쾌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냉장고 안에도 엉망진창이었지만 냉장고는 정리를 한 거라며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정말 어마어마한 집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용도실 공간으로 이동했다.
거실 끝에 다용도실이 있었는데 다용도실 앞에도 1인용 가죽 소파가 막고 있었다.
"이게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쓰던 애착 소파라서 이건 못 버려요. 다용도실 갈 때는 소파를 빼야 해요."
"아....... 네......"
소파를 빼야만 다용도실 문을 열 수 있고 열고 들어갈 수도 없을 만큼 그 좁은 다용도실도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실외기실은 문을 열 수 없을 만큼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물건들을 그냥 대책 없이 짱박아 두고 방치한 결과였다.
애착이라는 말은 보통 미성숙한 유아기 때 영유아들이 좋아하는 인형이나 장난감을 두고 많이 쓰는 말인데 다 큰 아이들이 애착 인형과 애착 소파에 집착하는 것은 발달과정에서 보더라도 정상을 벗어난 정서상태인 것 같았다. 아들방에도 10개가 넘는 애착 인형이 침대 위에 가득 있었고 아내 방에도 따님의 커다란 애착 인형들이 여러 개가 늘어져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아이들도 남편도 아내도 각자의 섬에서 사는 듯했고 곳곳에 지독한 외로움이 켜켜이 배어있는 것 같았다.
이 부부는 천주교 신자로 신앙심이 매우 깊어 보였다. 아니, 사실 솔직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이 부부는 성모마리아에게 기대야만 하루하루를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거실과 아내방, 아이들 방에 모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조각상과 자애로운 성모마리아 조각상들, 종교적 의식에 쓰이는 향초들이 놓여있었는데 그것들이 그 공간에서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로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아내방에는 성경말씀과 엽서들, 기도문, 종교 액세서리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나는 마치 거기서 아내의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남자고객은 견적이 많이 나올까 봐 두렵다고 했다. 자기 주머니 사정이 딱해서 사정을 잘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연신 내게 가격 좀 잘해달라고 했다.
정리수납 일이 사실 대부분 인건비라서 고객님이 적극 참여하시게 되면 인건비가 줄어든다. 또 그 과정에서 고객님은 자연스럽게 정리수납의 과정에 관찰자가 아닌 주도자로서 깊숙하게 들어와서 저절로 공부가 된다.
그래서 나는 어지간하면 고객님들을 참여시킨다. 추후의 유지 및 관리도 결국 고객님의 몫이기 때문이다.
묵은 가구들을 철거 및 폐기하기 위해서 장정의 남자 둘이 필요했다.
"고객님 댁은 먼저 아내방과 아이들 방에 있는 묵은 가구들을 철거 및 반출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고
아내방부터 뒤섞인 물건들을 자루에 담아서 한쪽에 둘 테니 그것들은 주말에 고객님께서 분류 작업을 해주세요. 그리고 붙박이장에 묵혀있는 옷짐들을 고객님이 퇴근하신 뒤에 저녁 시간에 저와 함께 버릴 것과 사용할 것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 방의 짐들도 아이들과 소통하며 함께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자녀분들께도 내용을 잘 전달해 주시고요, 귀중품은 미리 빼놔주세요.
저와 고객님이 함께 둘이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족히 4~5일은 걸립니다. 숨은 짐들이 계속 나와서 작업량이 늘어날 확률이 매우 높고 작업 시간이 상황에 따라서 더 늘어날 수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잘 부타드려요."
장정의 남자 둘이서 땀을 뻘뻘 흘리며 5시간을 옮기고 나서야 빈 공간이 확보되었다.
이번 고객의 경우에도 거실의 에어컨이 고장 나 있었고 아이들 방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아내방에만 벽걸이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집은 비싼 집인데......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웠다니......학대라고 해도 할말이 없겠는걸?
아이들은 무슨 죄람?'
푹푹 찌는 폭염 속에서 물건들도 고양이도 사람도 모두 그 공간 속에서 진땀을 흘리며 무기력하게 녹아내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내분 방을 치우다 보니 아내분이 의료계통 쪽에 종사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얀 가운이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나왔다. 임상병리학 쪽에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붙박이장을 열어보니 포장을 뜯지 않은 명품 지갑부터 명품백들과 옷들이 꽉 차있었다.
텍과 봉지를 뜯지 않은 옷들이 잔뜩 나왔다. 똑같은 옷들도 여러 벌이 있었다.
"하...... 짜증 나. 버려. 버려. 버려."
그 남자 고객은 아내의 이런 병적인 저장강박증에 진절머리가 났다는 듯이 아내 옷을 꺼내며 신경질을 냈다.
캄캄한 붙박이장에서 빛을 발하지도 못한 채 폐기물이 되어버린 옷자루들이 잔뜩 나왔고 옷들을 비워내자 붙박이장도 여유 공간이 생겨났다.
색연필과 연필, 사인펜, 지우개, 테이프 같은 문구류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고객님. 문구류가 여기서 또 이만큼 나왔네요. 문방구 하셔도 되겠어요~"
"하...... 버려주세요."
"고객님. 멀쩡한데 이거 버리려면 또 폐기물비 내야 하고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고 해도 종량제 봉투도 돈 주고 사야 하잖아요. 당근에 나눔 하시던지 좋은 곳에 기부하세요."
"하......"
남자 고객님과 아내분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부부의 형식을 유지해 오며 골이 깊을 대로 깊어진 것 같았다.
붙박이장에 있는 옷들은 전부 아내분의 옷과 가방들이었고 남편과 관련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오전 10시부터 저녁 11시까지 귀신의 집 정리수납 작업 첫날을 보냈다.
녹초가 된 몸으로 12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왔다.
(다음 편에 귀신의 집 2부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