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인 Jun 25. 2024

시험지 교환 정책


파격적인 제안을 하나 해보겠다. 바로 ‘시험지 교환 정책’이다. 시험지를 거두기 직전, 교수는 다른 학생과 시험지를 교환하고 싶은 학생이 있는지 묻는다. 학생 몇몇이 손을 들어 바꾸고 싶은 학생을 가리킨다. 해당 학생이 승낙하면 시험지 교환은 이루어지고, 거부하면 없던 일이 된다. 교수는 학생들을 훑으며 교환 신청할 학생이 더 있는지 묻는다. 없으면 조교를 시켜 시험지를 걷는다. 시험 하나가 끝난다.     

여기서 전제는 학생들끼리 서로 누가 누군지 잘 몰라야 한다는 점이다. 누가 공부를 잘하는지 모두가 안다면 돈을 줘서라도 그 학생과 시험지를 바꾸려 들 것이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초·중·고는 제외한다. 누가 공부를 잘하는지 이미 정보가 쫙 퍼져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 제도는 우등생을 목 조르는 결과를 낳는다. 깡패 같은 일진이 무력으로 협박하고, 돈 많은 집 학생은 비싼 뇌물로 회유할 것이다. 이것은 정의롭지 않다. 제도의 의미가 퇴색되고, (의미는 후에 서술하겠다.) 부작용만 남긴다면 애당초 실시하지 않는 편이 낫다.

결국 제도를 실시할 수 있는 곳은 대학교밖에 없다. 대학생들은 같은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에 대해 잘 모른다. 조별과제라도 없으면 더하다. 수업을 같이 듣지만 서로 말 한 번 섞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누가 공부를 빼어나게 잘하는 지도 모른다. 경제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이다.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확실하게 알지만, 남들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남들도 나와 같은 입장이다. 그래서 모두가 정보 비대칭에 직면한다. 그 누구도 최상위 학생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누가 수업 시간에 가장 열심히 듣는지, 제 기억을 더듬어 유추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조차 유추에 불과하고, 더구나 성실함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확률로써 불확실하게 존재한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시험지 교환 제도를 도입해 보자. 사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인내심이 대단한 사람이다. 말같지도 않은 말을 여기까지 읽어주다니, 고맙다. 이왕 읽은 김에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나도 이 제도가 가진 태생적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우선 이것은 학칙 위반을 넘어 헌법 위반이다. 굳이 헌법을 안 들춰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공정성 문제도 있다. 학점마저 거래한다며 주위에서 시장 광신주의라고 비난할 것이다. 의외로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도 거스른다. 로또도 무작위로 돌리는 것보다 굳이 자기 손으로 번호를 직접 찍어보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제 손으로 운명을 통제하려는 강한 욕구를 타고났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대로 망하겠다는 바람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자기 운명을 함부로 위탁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제도는 인간의 본능을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여기까지 열거한 문제를 전부 못 본 척한다 해도,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다. 제도를 실시해서 실제로 시험지 교환이 이루어지면, 뚜렷하게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즉, 반드시 한 명은 이득을 보고 한 명은 손해를 본다. 승자의 미소는 철저하게 패자의 성과에 근거한다. 이것은 크나큰 문제다. 원래도 없었던 교우관계는 더 악화된다. 제도를 시행할수록 서로에 대한 혐오가 만연해진다. 아무래도 이 제도는 사회악인 것 같다. 부작용, 문제점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미약하게나마 이 제도에도 장점은 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순간의 불안으로 시험지 교환을 신청한 학생. 요청은 받아들여지고, 본래의 점수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을 때 학생은 처음으로 느끼게 된다. 운이 가진 파괴력을, 그리고 운이 가진 매혹성을 말이다. 학교 정규교육 과정에 이 가르침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노력을 중시하지 운의 중요성은 외면한다. 물론 학교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느 미친 학교가 노력보다는 운이 중요하다고 가르치겠는가. 본 제도는 삶의 뒷골목에서나 배울 수 있는 지혜를 ‘작은 체험’을 통해 몸소 느낄 수 있게 한다. 시험지를 다른 학생과 바꿨을 때의 부풀어 오른 기대감, 설렘, 그리고 끝없는 절망과 분노가 롤러코스터로 준비되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수천만 원을 잃은 후에나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운명의 여신이 외면했을 때의 열패감을, 이 제도를 통해 학생들에게 적절한 수준으로 안겨줄 수 있다. 돈주고도 못 살(아니, 원래는 거금을 들여야 할) 진귀한 경험이다.

그래도 이 제도가 쓰레기 같은가? 당신 생각이 맞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글을 쓴 목적이 뭐냐. 도대체 왜 이런 글을 쓴 것이냐. 사실 별의미는 없다. 그냥 헛소리를 장대하고 그럴듯하게 해보고 싶었다. 길고 지루한 시험기간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도 시험을 치렀다. 내일도 친다. 시험을 치기 몇 분 전, 누군가와 시험지를 교환하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했다. 망함을 직감한 자의 동물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러니 파격적일 수밖에. 정상적인 꼼수로는 풀 길이 없으니.

작가의 이전글 하루가 망하는 패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