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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Aug 28. 2024

섹스 없는 여행은 견디기 힘들다

섹스 없는 여행은 견디기 힘들다. 특히나 동행 없이 혼자 간 여행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혼자 떠난 여행에 섹스가 없다니. 얼마나 허무하고 우울할까. 어디를 여행하던 그런 상황이 내게 닥친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개인 여행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언제나 섹스가 함께했다. 작년 여름에 갔던 도쿄에서도, 올해 초 태국에서도 그랬다. 아버지를 혐오하지만 그로부터 물려받은 인생에 도움 되는 유산을 하나만 꼽자면, 아마 반반한 얼굴일 것이다. 안경을 벗고, 차림새만 단정히 하면 주위에서 간간이 잘생겼단 소리를 한다. 해외에 나가면 대체로 외국 여자들은 내 생김새에 호의적이다. K팝, K드라마의 저력은 그를 더욱 공고히 굳힌다. 이 틈새 속에서 섹스의 가능성이 피어난다. 성공 가능성은 행동의 적극성에 좌우된다. 집요하고 끈질기게 매달리면 추구하는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 가능성이 애당초 없다면 덮어두고 다른 일에 열중하면 되지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외면될 수 없다. 이런 연유로 언제나 개인 여행 때면 인간의 3대 욕구, 그 하나를 맹렬하게 쫓았다. 마른 덤불 속 피어난 작은 가능성의 불씨를 외면할 수 없었다.

필리핀 어학연수 동안 4일간 개인 여행을 허락받았다. 나는 이 기간 동안 세부를 여행했다. 여행이랄 것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호텔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고 영어공부와 독서, 지인들과 연락하며 유유자적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세부의 관광 액티비티를 즐기는 대신 세부 여자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섹스를 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총 3명의 여자와 섹스했다. 누구는 클럽에서, 누구는 틴더에서 만났다. 저녁이면 이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고, 궁극에는 함께 호텔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들 내 반듯한 생김새에 호감을 느꼈고,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했다. 나는 그중에서 특히 30대 초반의 여자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멈출 수 없는 타락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엄격했던 가정환경, 전 남자친구의 폭행과 그로 인한 입원, 우울증 경력에 대해 얘기했다. 알코올 의존과 방만한 남자관계를 가지게 됐다는 얘기까지. 그녀는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 살이 쪘고, 얼굴은 창백해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춤 영상이나 몸매가 드러난 사진으로 뭇 남성의 관심을 받는 것으로 제 존재 가치를 평가하는 듯했다. 세부에서 남은 마지막 날 밤을 그녀와 함께 보냈다. 나는 술을 마시며 그녀에게 말했다.

“마지막이라서 하는 말인데, 너도 나랑 같은 부류의 사람 같아”

그녀는 당황한 듯 말이 없었다. 잠잠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리 둘 다 이러고 있는 거. 이미 출구 없는 타락 지점에 와버린 게 아닐까”

 그녀는 울었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말했다.

“우리 집은 엄격한 카톨릭이야. 그런데 내가 왜 신을 싫어하는지 알아? 나는 평생 살면서 단 한 번 나쁜 짓 하지 않고 살았어. 오히려 남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어. 그런데 내 삶을 봐. 결정적인 상황일 때 누구의 도움도 못 받고 결과적으로 알코올, 남자에 의존하고 있잖아. 나는 원래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남자관계에 보수적이었어. 내가 전 남자친구에게 맞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누가 나를 챙겨줬을 것 같아? 가족은 고사하고 신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어.”

남자관계에 보수적이던 그녀는 어느 지점에 이르러 억눌린 자아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클럽과 가까워졌고, 데이팅 앱을 자주 애용하게 되었다. 원나잇, 섹스 파트너, 결국엔 쓰리썸까지 나아갔다. 그 누구도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더 대담해졌다. 남자와 짧은 만남 속으로 자신을 몰아붙인 그녀의 현재는 나와의 동침이었다. 그녀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다. 이미 거기까지 나간 선로를 바꾸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미 출구 없는 타락 지점까지 와버린 게 아닐까’

이미 시작된 타락의 굴레를 벗어나긴 힘들다. 그래서일까. 김영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왜 멀리 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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