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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전시회

by 자유인

4월 25일, 김영하 전시회를 위해 서울에 갔다. <단 한 번의 삶> 출간 기념 전시회였다. 태어났을 무렵부터 어엿한 중년에 이르기까지, 김영하가 거쳐간 세월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전시가 가장 흥미로웠다. 거기에는 어느 집에나 걸려있을 엄숙한 가족사진부터, 동생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앳된 얼굴로 대금을 불고,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고, 부모님과 대학 졸업 사진을 찍고, 소설가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책을 다 읽고 전시회에 왔기에, 사진 속 부모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래전 신문도 스크랩되어 전시되었는데, 기사에서는 “충격적인 신예”, “젊은 작가”라는 말로 김영하를 설명했다. 기사에는 반항적인 얼굴의 사진이 함께 실려있었다. 그랬던 그가 벌써 오십 중반을 넘겼다. <단 한 번의 삶>을 쓴 작가가 거쳐간 단 한 번의 삶은 이랬구나, 세월이 이렇게나 빠르구나, 나도 쥐도 새도 모르게 금방 나이 들겠구나, 이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굿즈를 사기 위해 줄을 섰는데, 전시장 입구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김영하가 왔다는 걸 직감했다. 곧 그의 육성이 들렸다. 불시에 전시회를 찾은 그와 운 좋게 만나 사진도 찍고, 책에 사인도 받았다. 실제로 본 그는 역시 중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저녁에는 영국 출신의 D와 만났다. 우리는 언어교환 어플을 통해 알게 되었고, 나는 그녀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질 예정이었다. 취기가 적당히 올라올 만큼 술을 마시고 그녀 자취방으로 향했다. 가파른 신림동 고개에 그녀 자취방이 있었고, 퀴퀴한 방, 좁은 침대가 나를 맞이했다. 원치 않는 상대에게 몸을 잠깐 맡기는 동안 ‘단 한 번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동경하는 작가를 실제로 만나고, 그의 삶을 찬찬히 음미하며 삶의 유한함에 대해 생각에 잠겼던 오늘, 그 밤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나를 심란케 했다. 한낮에 얻은 귀한 깨달음의 여운이 뒤섞인 육체 속에서 질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나는 그녀에게 한 번 더 맡겨지고 나서야 서둘러 신림동을 벗어날 수 있었다. 어제의 그 여운, 깨달음에 대해 하나하나 천천히 되새기며 서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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