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작가는 한 에세이에서 자신이 유당불내증이 있다는 사실을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것도 모르고 평생 동안 유제품과 우유를 먹고 마셨고, 그럴 때마다 속은 안 좋아지고 여러 골치 아픈 문제들이 생겼다. 사십 년이 훌쩍 지나서야 드러난 진실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지긋지긋한 고질병에서 완쾌된 기쁨과 ‘40년 넘게 이걸 몰라서 그 사달을 겪었다니’ 하는 허탈함이 교차했다.”
글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혹시 나에게도 내가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어떤 신체의 비밀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끼고 있지만, 그 원인을 전혀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라.. 그런 게 있다면 무엇인지 빨리 깨달아야 좋겠지만 비밀이 괜히 비밀이 아니고, 가만히 앉아 생각한다고 나올 답도 아니었다. 긴 시간이 지나서야 문제의 실체를 알아차리게 된다면 얼마나 야속할까,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달 뒤, 놀랍게도 나는 장강명 작가가 외친 유레카를 똑같이 외치고 있었다. 나에게도 드디어 깨달음의 순간이 온 것이다.
중학교 때부턴가 아니면 그보다 더 어릴 때부터 안구건조증이 있었다. 안구건조증의 일반적인 증상대로 눈이 빛에 쉽게 피로해지고, 건조한 날씨에는 눈의 수분이 금세 말라버렸다. 잠을 제대로 못 잔 날에는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최소한의 수면이 지켜지지 않으면 방전이라도 된 것처럼 눈은 작동되지가 않기 때문이다. 어린 날부터 이런 고충들은 익숙했다.
성인이 되자 증상은 눈에 띄게 악화되었다. 어떤 날은 길을 걷는데도, 눈을 감고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성가시고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증상의 원인에 대해 캐묻지 않았던 것은 어릴 때부터 눈이 좋지 않았으니까 지금도 그런 것이다는 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타고나기를 각막이 얇아 라식 수술도 하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았으니 더더욱 그랬다. 나는 원래 눈이 안 좋으니깐, 이렇게 투덜거리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지병은 오랜 기간 방치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상생활에 점차 지장이 생기니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예전에는 안 보이던 병원 광고 문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Ipl이라는 시술이 안구건조증에 도움이 된다고 적힌, 집 근처 안과의 마케팅 문구였다. 그에 대해 알아보니 미국의 어느 피부과 의사가 환자의 피부 개선을 목적으로 개발했지만, 안구건조증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밝혀져 요즘엔 안과에서도 널리 쓰이는 시술이라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꽤 큰 지출을 감내하며 시술 10회 결제를 했다. 결과는? 눈 밑 피부가 탱탱해지는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것은 내 인생의 첫 피부 시술이 되었다.
Ipl 시술이 먹히지 않자 좌절감이 들었지만, 이렇게 된 거 근본적인 원인을 확실히 알아보자는 생각에 대학병원에 가 정밀검사를 받았다.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으나, 결과적으로 눈 자체에는 별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다만 남들보다 눈물이 빨리 마르는 게 문제고, 처방해 주는 눈물약을 수시로 뿌리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어떻게 보면 뻔한 말을 들었다.
그래도 눈 자체에 문제가 없는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그렇다고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했고, 할 일에 치여 살다 보니 해결 의지는 희미해지다 못해 잊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술을 끊게 되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예전과 같이 술 마시는 게 즐겁지 않았고, 술을 마심으로써 치러야 하는 비용에 민감해지게 된 것이다.
사실 술을 끊었다기엔 한 달 정도 마시지 않은 것이지만 나 같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한 달 금주는 빵 없이 한 달을 버티는 유럽 사람에 버금가는 자기 수련이다. 술을 한 달간 마시지 않자 신체적인 변화를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눈이 건조하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못 잔 날에는 여전히 건조했지만 눈을 못 뜰만큼 건조해지지는 않았다. 눈의 빛 번짐도 일거에 없어졌고, 안구가 살살 타오르는 듯한 불쾌한 감각도 사라졌다. 술을 끊으니 안구의 전체적인 기능이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정신도 맑아졌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내가 심각한 ADHD를 앓고 있다고 생각했다. 술을 끊고 단번에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확실한 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릿속에 당연하다는 듯 끼어있던 찌뿌둥한 안개가 걷어진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안구와 ADHD에 미치는 술의 순수한 악영향을 확인하게 되었다. 몰랐지만, 술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술을 안 마심으로써 얻는 이점은 많았다. 시간이 남아돌게 되었다던가(이것은 정녕 장점일까?), 술 먹고 내뱉게 되는 헛소리, 술로 인한 후회, 우울감과 이별하게 된 것이 그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와 어떤 트러블이 일어나면 그 중간에는 거의 술이 끼어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간사에 발생하는 온갖 문제의 원인이 술로 느껴지기도 했다. 반대로 말하면, 맨 정신인 사람들끼리 서로 상처 주고 싸우는 모습이 문득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술도 안 마시면서 왜 서로 싸우는 거지? 맨 정신이면 기분 좋게 대화로 해결 못 하나?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왜 술도 안 마시면서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지? 시간도 남아돌고 정신도 맑으면서.
고작 한 달 술을 안 마신 주제에 정상인들을 비웃는다는 게 우습다는 것을 알지만, 알코올의 구름이 둥둥 떠다니던 퇴폐한 세상에서 하늘이 맑게 갠 투명한 세상을 잠깐이나마 맛보니, 들뜬 나머지 저런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반대로 정상인들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술 안 마시고 친구들이랑 어떻게 놀지? 술 안 마시고 어떻게 이성과 스킨십을 하지? 경외심마저 든다. 술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서로 다른 원리에 의해 돌아가는 것만 같다. 앞으로 맨 정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야 하리라.
술이 미치는 파괴력을 왜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걸까. 술이 일상의 일부로써 완전히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지난 육 년간 나는 알코올 중독자에 버금가는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해서 나의 음주량은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한국의 숨 막히는 초중고 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나자,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 흥분을 가누지 못하고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본체가 자유로운 영혼인지라 미성년의 결박에서 풀려나자 어른의 자유를 게걸스럽게 탐닉했다. 평균 잡아 삼일에 한 번 술 마시는 생활을 육 년 정도 한 것 같다. 한 번 마시면 만취할 때까지 끝까지 술을 퍼부었다. 억압된 욕구의 해방감, 그것이 나를 알코올 의존으로 이끌었다.
이십 대 후반을 지나고 있는 요즘, 불필요하거나 독이 되는 인간관계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있다. 연락을 끊거나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이제는 술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짧게나마 술 없이 살아본 이상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알코올 중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뛰어난 필치로 풀어낸 캐롤라인 냅은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을 진전시키는 의미 있는 사건들은 정신이 명료할 때 일어난다.”(p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