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

다둥이네 이야기 제13화

by 여름

늦은 저녁, 혜진은 장난감 피아노에서 재생되는 동요 반주에 맞추어 앙증맞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가 나타나면은 ♪악어 떼가 나온다, 악어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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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인주가 혜진의 동요 장단에 맞추어 몸을 끄덕인다. 그리고 한주는 ‘찹쌀궁둥이’를 드러낸 체 방바닥에 엎드려 졸린 눈을 껌뻑이고 있다.

한 곡의 동요 반주가 끝나자 혜진은 버튼을 눌러 다음 곡을 부르기 시작한다.

감정에 심취되어 정말 진지하게 노래 부르는 혜진. 그리고 그 옆에서 혜진의 노래에 맞추어 다시 몸을 끄덕이는 인주.

“♪나처럼 해봐요 이렇게, ♬나처럼 해봐요 이렇게... ♬아이 참 재미있네”

노래 한 소절이 끝나고 간주가 이어진다. 그 사이 혜진이 누르는 동요 반주 버튼이 신기한 인주, 장난감 피아노로 다가간다.

간주가 끝나고 다음 소절 반주가 시작된다. 동요 반주에 심취되어 다음 소절을 부르기 시작하는 혜진.

“♪날 따라 해 봐요 요렇게, ♬날 따라 해 봐요 요렇게,..”

그런데 인주가 장난감 피아노의 동요 반주 버튼을 누른다.

뚝 끊어지는 동요 반주.

“...♬날 따라 해 봐요 요렇게, 아-.”

동요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반주가 갑자기 끊긴다. 노래를 멈추는 혜진, 황당하고 민망하다. 그리고 한껏 고조되었던 감정이 주체하기 힘든 분노로 바뀐다.

“야- 아!”

혜진이 소리치며 인주를 손으로 밀치자, 인주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울기 시작한다.

“으아아아앙”


주방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안방으로 들어서던 미라가 그 광경을 보고 혜진을 큰 소리로 나무란다.

“혜진이 그러면 못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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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의 화난 모습을 본 혜진은 장난감 피아노를 가리키며 말한다.

“인주가 잘못했단 말이야.”

미라는 혜진의 말을 무시하고 울고 있는 인주부터 달랜다.

“인주야, 괜찮아, 엄마가 누나 혼내 줄게.”

미라의 ‘혼낸다’는 말에 인주는 울음을 멈추고, 혜진은 미라의 눈치를 살핀다.

“그렇다고 인주를 울리면 어떻게 해!”

미라의 호된 꾸지람에 혜진은 이유를 대며 야무지게 항변한다,

“인주가 내 피아노 만져서 노래가 안 나온단 말이야!”

“그렇다고 동생에게 그러면 안 되지!”

미라의 다그침에 억울한 혜진.

“엄마도 잘못하면 혼내잖아.”

“동생을 밀어서 넘어지게 했잖아! 너 그러면 돼? 안 돼?”

인주에게 했던 자신의 행동을 들켜버린 혜진, 울먹이는 목소리로 일단 오리발을 내민다.

“언제?”

“방금 인주를 밀었잖아, 엄마가 다 봤어. 손으로 인주 때리는 거!”

더 이상 변명도 못하게 된 혜진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이렇게 말하는 엄마가 야속하다.

“엄마가... 흐으엉, 엄마가... 흐어엉...”

닭똥 같은 눈물이 두 뺨으로 흘러내린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기어이 울음을 터트리는 혜진. 이제 변명 대신 서러움을 토해낸다.

“엄마는, 흐어엉~ 나를 많이 혼내고, 그리고... 흐어엉~ 나를 맨날마다 혼내고... 으어엉~ 그리고 인주는 안 혼내잖아~.”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서럽게 울면서 말하는 혜진, 미라는 이제 혜진의 서러움을 달래야 하는 처지가 된다.

미라는 혜진 얼굴의 눈물을 두 손으로 훔쳐주며 한 옥타브 낮아진 톤으로 달래듯 말한다.

“인주는 아직 아기라서 말도 못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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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그러진 미라의 모습에 혜진이 항의하듯 말한다.

“엄마는, 허으엉~ 인주 맴매도 안 하잖아?”

이제 혜진에게 오히려 변명하는 미라.

“왜 엄마가 인주 혼을 안 내? TV를 바로 앞에서 보지 말라고 하는데도 인주가 TV를 바로 앞에서 보면 엉덩이 맴매 맞지?”

미라의 말에 말문이 막힌 혜진, 그리고 이어지는 미라의 결정적인 한 방.

“오늘 아침에도 인주 맴매하는 것 봤어? 안 봤어? 엄마가 혜진이만 혼내는 거 아니잖아?”

혜진, 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다. 훌쩍이면서 엄마 말을 천진난만하게 인정한다.

“봤어.”

다시 밀리는 혜진, 이제 서러움은 투정으로 바뀐다.

“엄마는 인주만 좋아하잖아!”

미라는 손을 흔들어가며 혜진에게 설명한다.

“혜진이가 인주 나이일 때 엄마가 혜진이 맨날 맨날 업고 다녔지? 그리고 석현이네 집에 놀러 가고 그랬어? 안 그랬어? 맨날 맨날 석현이 집에서 가서 놀았지? 동네 공원에도 가고... 그랬어 안 그랬어?”

미라가 구체적인 예까지 들어가면서 말하자 혜진은 이제 반박할 말이 없다. 그래서 혜진은 미라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와중에 인주는 미라의 등에 매달려 치댄다.

“엄마, 뿡뿡이.”

“오늘 뿡뿡이 비디오 많이 봤잖아, 그만 봐.”

이 난리통에도 엎드려 졸고 있던 한주가 갑자기 일어나서 뒤뚱거리며 거실로 나간다.

“하이구, 한주야, 그 사이에 어디로 또 도망가…”

미라가 한주를 잡으러 안방에서 나간다.


현관으로 들어서는 현수는 서 있는 한주를 보며 반갑게 말한다.

“어, 찹쌀궁뎅이, 아빠 기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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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잡으러 온 미라가 현수를 보며 말한다.

“그랬나 보네요, 언제 현관문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현수는 한주를 끌어안으며 어른다.

“어쭈쭈쭈쭈우~.”


이 와중에 미라를 따라온 인주가 미라를 뿡뿡이 비디오를 들고 조른다.

“엄마, 뿡뿡이~”

미라는 인주의 요구를 못 들은 척한다.


현수는 한주를 안고 안방을 쳐다본다. 울고 있는 혜진의 모습이 보인다.

“혜진이 우네?”

“인주를 밀치길래 뭐라고 그랬더니, 저렇게 서럽게 우네요.”

현수는 웃으며 한주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현수는 안방에서 훌쩍이는 혜진에게 묻는다.

“혜진이, 왜 울어? 엄마에게 혼났어?”

혜진은 대답 대신 서러운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혜진의 그런 표정이 우스운 현수, 그래도 진지하게 혜진에게 말을 건넨다.

“혜진이 이제 그만 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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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편이 생긴 혜진,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엄마, 미워.”

현수는 웃으며 혜진에게 묻는다.

“아빠가 엄마 혼내 줄까?”

“아니, 인주 혼내줘.”

“인주가 혜진이 때렸어?”

인주를 혼내야 하는 이유를 묻는 현수. 혜진은 대답하지 못한다. 대신 미라가 나선다.

“혜진이가 인주를 밀었잖아. 죄 없는 인주는 왜 또.”

그렇게 모녀의 설전이 다시 시작된다. 혜진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한다.

“인주는 잠잘 때 맨날 맨날 내 자리 뺏고 그랬단 말이야.”

입장이 궁해진 혜진은 이제 별별 것을 다 갖다 붙인다. 현수가 혜진의 떼거리에 웃으며 말한다.

“잠잘 때 인주가 누나 자리 뺏고 그래?”

혜진의 말에 어이가 없는 미라, 웃으며 말한다.

“인주가 누나 자리 뺏으면 엄마는 인주를 제자리에 옮겨놓거든. 혜진이가 잘 때 한주가 우유 달라고 그러고, 인주도 우유 달라고 그러거든. 그러면 엄마는 자다가 깨거든, 그러면 엄마가 잠자는 자리 다시 제자리로 옮겨 놓거든,”

말이 없는 혜진, 또 밀리기 시작한다. 미라가 혜진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혜진이는 착해서 일찍 자거든, 그런데 인주는 늦게 자거든, 그러면 ‘너 또 비디오 볼래?’ 하면서 엄마가 인주 혼내거든, 엄마 말이 맞니? 틀리니?”

혜진을 칭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미라의 말, 혜진이 쭈뼛거리며 대답을 못한다.

현수가 혜진을 보고 웃으며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미라에게 건넨다.

“이게 뭔데요?”

“키위. 집에 오다가 샀어.”

미라가 아이들을 보면서 말한다.

“어머나, 아빠가 키위를 사 왔네. 어린이들 키위 먹을까요”


미라가 키위가 들은 봉지를 들고 주방으로 가자 인주와 한주도 따라 나간다.

혜진도 엄마를 따라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현수가 그런 혜진에게 묻는다.

“혜진이는 키위 안 좋아해?”

“키위가 뭐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묻는 혜진을 보며 현수가 웃으며 대답한다.

“새콤하고 달콤한 과일이야.”

현수는 호기심과 자존심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혜진의 등을 떠밀며 말한다.

“자, 키위 먹으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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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는 주방 싱크대 앞 바닥에 앉아 키위 껍질을 깎고 있고, 인주와 한주도 그 앞에 앉아 있다. 현수는 혜진을 그 녀석들 사이에 앉힌다.

미라 앞에 쪼그려 앉아 키위 껍질 깎는 것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세 녀석, 현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미라가 껍질 깎은 키위를 접시에 올려놓자 한주는 그 사이를 참지 못해 자기 주먹보다 큰 키위를 집어든다.

“잠시만, 이거 너무 커서 못 먹어, 엄마가 잘라줄게.”

미라는 한주의 손에서 키위를 빼앗아 잘게 썬다. 녀석들은 키위 조각을 손으로 집어 먹는다.

“맛있어?”

키위 조각을 오물거리며 먹는 인주가 미라에게 대답한다.

“응.”

그러나 방금까지 투정 부리던 혜진은 대답하기가 쑥스럽다. 미라는 그런 혜진에게 묻는다.

“혜진이도, 키위 맛있어?”

미라가 말을 걸어주는 것이 고마운 혜진이 여우처럼 다정하게 대답한다.

“응, 맛있어.”

“아유, 한주도 잘 먹네.”

미라는 진지하게 키위를 먹는 한주를 바라보며 나머지 키위를 마저 깎는다.


키위를 다 깎은 미라는 키위 담은 접시를 혜진에게 건네며 말한다.

“자, 방으로 가서 먹읍시다.”

키위 담은 접시를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안방으로 향하는 혜진, 인주와 한주가 키위를 먹으며 그 뒤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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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 담은 접시를 들고 가는 혜진, 기분이 좋다.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눈 녹듯 사그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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