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네 이야기 제12화
미라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가고 있다.
미라가 미는 유모차에 거만하게 앉아 있는 막내 한주, 운 좋게 장화를 신고 있다. 그리고 그 유모차 옆에 붙어 서서 나란히 걷는 두 녀석, 혜진은 끊임없이 재잘대고 인주는 한주가 신은 장화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린이집 가는 것만 아니었으면 장화는 인주 것이었는데...
혜진의 말을 듣기만 하던 미라가 혜진에게 묻는다.
“혜진이는 공부하지 않을 때는 머리 안 아파.”
“응, 안 아파.”
“유치원에서 공부할 때 머리 아파? 안 아파?”
“안 아파.”
미라가 잠시 멈춰 서서 혜진에게 진진하게 묻는다.
“혜진이 엄마하고 병원 가서 진짜로 머리가 아픈지, 가짜로 아픈지 머리 사진 찍어볼까?”
“머리 사진?”
“그래, 머리 속을 보는 사진.”
당황하는 표정의 혜진,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 혜진을 보며 미라가 말을 잇는다.
“공부하기 싫으면 엄마한테 공부하기 싫다고 말해.”
“그럼, 병원 안 가도 돼?”
“그럼.”
혜진에게 웃으며 대답한 미라가 유모차를 다시 밀기 시작한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느긋하게 걸어가는 아이들과 엄마.
늦은 저녁, 이부자리가 깔린 안방, VTR로 재생되는 아동 율동 프로그램이 TV 화면을 채우고 있다.
인주는 TV를 보며 몸을 끄떡이고 있고, 한주는 모로 누워있는 미라의 옆구리를 짚고 서있다.
하루 일과에 지친 미라가 아이들에게 사정한다.
“어린이들, 잡시다. 10시가 다 되었어요.”
그나마 누워 있는 혜진이 미라에게 묻는다.
“엄마, 아빠 언제 와?”
“글쎄.”
그때 들리는 현관문 딸그락거리는 소리.
그 소리를 들은 미라가 잽싸게 말한다.
“엄마는 지금부터 눈 감고 잘 거야.”
어제 일로 현수와 서먹한 미라는 눈을 감고 자는 척한다.
현관문이 열리고 현수가 들어온다. 현수는 작은방으로 곧장 들어 갈려다가 열려 있는 문을 통해 안방을 빼꼼히 들여다본다. - 잠자고 있는 미라, 혼자서 들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술을 마신 현수의 마음이 짠하다. 그래서 현수는 마음을 바꿔 먹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한주는 누워있는 미라를 짚고 서서 현수를 바라보며 반갑다고 몸을 끄떡인다.
TV에 집중하고 있는 인주는 안방으로 들어오는 현수를 힐끗 보고는 TV로 다시 고개를 돌린다.
술을 마신 현수는 장롱 앞에 누워있는 혜진을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혜진과 장롱 사이의 좁은 틈을 파고들어 혜진을 향해 모로 눕는다.
“아이, 술 냄새.”
현수의 술냄새에 손가락으로 코를 잡는 혜진.
“술냄새 나서 아빠 미워?”
“아니.”
어제 일로 혜진에게 점수 깎인 현수가 아부를 떨기 시작한다.
“혜진이 오늘 재미있게 놀았어?”
“응.”
“아빠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
“응, 해줘.”
술을 마신 현수가 두서없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에 코끼리가 바닷가에 캠핑을 갔대.”
“캠핑이 뭐야?”
“밥 해 먹으면서 노는 거.”
강동 날라리 혜진은 또 하나의 노는 단어를 배운다.
“재미있겠다. 캠핑.”
현수가 횡설수설 말을 이어간다.
“코끼리가 캠핑 가서 상어를 꼬셨대. 아니 상어를 만났대.”
“코끼리 아저씨가 고래 아줌마랑 결혼한 것이 아니고?”
혜진의 지적질에 현수는 얼른 스토리를 바꾼다.
“그래, 맞아. 상어랑은 재미없어서 헤어지고 고래 아줌마랑 결혼했대.”
혜진은 신이 나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한다.
“결혼할 때 문어 아저씨가 왔지~?”
“문어 아저씨? 그래 왔다고 쳐, 토끼도 와서 춤추고 여우도 와서 노래를 불렀어.”
현수의 무식을 또 지적질하는 혜진.
“여우는 바이올린 아니고?”
현수는 자꾸 끼어드는 혜진에게 변사(이야기꾼)로서의 독점적 권위를 보여준다.
“혜진이가 자꾸만 이야기하면 아빠가 헷갈리잖아, 너가 이야기할래?”
그러자 당장 꼬리를 내리는 혜진.
“아니, 아빠가 해줘.”
돌아 누워 잠자는 척하는 미라가 웃음을 참지 못해 어깨를 들썩인다.
그것을 본 현수,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코끼리가 고래하고 결혼해서 사슴하고 코알라 이렇게 두 마리를 낳았대.”
“두 마리 낳았어? 우리 집은 세 마리인데.”
현수의 말에 말려드는 혜진, 그리고 장난기가 발동한 현수, -- 이제 이야기가 막 나가기 시작한다.
“아, 그렇지, 우리 집은 세 마리지, 백설공주, 똥강아지, 찹쌀 궁뎅이, 이렇게 세 마리.”
자는 척하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미라, 냉전을 벌이는 이 상황에서 현수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혜진이 안타깝다. 자는 척해야 할 미라가 어쩔 수 없이 입을 뗀다.
“혜진아, 이 때는 세 마리가 아니라 세 명이라고 하는 거야. 아빠 말 듣지 마, 아빠 말 들으면 바보 된다.”
‘바보’라는 말에 현수가 걱정되는 혜진은 미라에게 재차 확인한다.
“그럼, 아빠가 바보야?”
“그래, 아빠는 술 마셨기 때문에 바보가 되고 있어.”
혜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빠가 바보 된대.”
걱정스러워하는 혜진을 보며 현수가 묻는다.
“그럼 이야기 그만할까?”
“아니, 듣고 싶어.”
그렇게 ‘바보’가 된 현수는 미라에게 보복을 시작한다.
“그래, 우리 집에 아기가 하나 더 생겼어, 그럼, 몇 마리?”
“네 마리? 아니, 네 명. 그런데 우리 집에 아기 하나 더 생겨?”
“응, 한주 동생, 한주에게도 동생 만들어줘야지.”
그 말을 들은 미라는 돌아 누운 채 작은 아기 베개를 뒤에 있는 현수 쪽으로 획 던진다.
베개가 날아오지만 현수는 통쾌하다.
미라가 현수에게 베개 던지는 것을 본 한주, 미라를 돕기 위해 방바닥에 있는 밥주걱을 주워 미라에게 내민다.
한주로부터 ‘사랑의 밥주걱’을 건네받으며 몸을 일으켜 앉은 미라, 한주의 기특한 효심에 몸을 앞으로 숙여가며 웃는다.
한주의 배신적 망동을 본 현수,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주를 끌어안으며 말한다.
“이 배신자. 내가 너 동생 만들어 주려는데, 너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현수의 말에 미라는 끝내 웃음이 터트린다. 그렇지만 현수에게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는 미라는 애써 평정을 찾으며 인주에게 덤덤한 목소리로 말한다.
“인주야, 바보 아닌 사람은 너밖에 없다. 이리 와서 얼른 자자.”
현수가 웃으면서 일어나 안방에서 나간다.
출근하는 현수,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미라에게 묻는다.
“청주로 몇 시에 출발할 거야?”
“아이들 유치원 마치고 갈 거니까, 대략 두 시쯤 출발하겠죠.”
“얘들 데리고 다니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
“걱정하지 마세요. 나 없다고 술 먹고 늦게 오지나 말고.”
“자격증 시험이 다음 주인데 술 마실 수 있겠어?”
혜진이 안방에서 나오며 출근하는 현수에게 자랑하듯이 말한다.
“아빠, 우리 오늘 외갓집 간다~.”
“갈 때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응, 알았어.”
혜진의 천진난만한 목소리의 대답을 들으며 현수는 출근길을 나선다.
외가로 가기 위해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미라와 아이들.
혜진은 문밖에서 현관문 문고리를 잡고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현관에서는 장화를 한쪽씩 들고서 대치하고 있는 인주와 한주, 배낭을 멘 미라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외갓집에 가는데 장화 신고 가면 안 돼. 외할아버지가 ‘이놈~’ 해.”
미라는 인주와 한주가 한 개씩 들고 있는 장화를 빼앗는다.
인주와 한주의 아쉬워하는 표정.
미라는 빼앗은 장화를 신발장에 넣고 바닥에 놓인 신발을 아이들 앞에 놓는다.
“자, 이 신발 신어.”
밖에서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는 혜진이 재촉한다.
“엄마 빨리 가자~.”
미라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아이들의 신발을 직접 신겨준다.
미라는 불만이 가득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나서며 현관문을 닫는다.
혜진은 인주의 손을 잡고 한주를 안은 미라 옆에서 걷는다.
“혜진아, 인주 손 꼭 잡고 걸어야 해.”
“응.”
그렇게 걸어서 이윽고 큰길로 다다른 미라와 아이들.
미라는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 아이들과 택시에 오른다.
택시에서 내린 미라와 아이들은 고속버스터미널 입구를 향해 나란히 걷는다.
“혜진아, 엄마 옆에서 인주 손 꼭 잡고 걸어야 해.”
미라는 아이들을 연신 쳐다보며 걷는다. 오리 가족이 움직이는 것 같다.
고속버스 안으로 인주와 혜진이 차례로 오르고 그 뒤에 한주를 안은 미라가 뒤따라 오른다.
버스 좌석 번호를 확인한 미라는 인주와 혜진을 복도 오른쪽 의자에 나란히 앉히고 그 맞은편 왼쪽에 한주와 나란히 앉는다.
처음 타는 고속버스가 신기한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을 고속버스에 태워서 안도하는 미라.
“엄마, 이 차 언제 가?”
“조금 있으면 갈 거야.”
고속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은 좌석에 나란히 앉은 혜진과 인주의 모습을 신기한 듯 보다가 반대편의 한주와 앉아 있는 미라를 보고 미소 짓는다.
이윽고 정원의 반도 못 채운 버스가 출발한다.
조바심을 내며 버스 출발하기를 기다리던 혜진이 미라에게 외친다.
“엄마, 버스 간다!”
버스가 출발하자 아이들의 들뜬 모습이 이어지고...
드디어 버스가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달리기 시작한다.
고속도로에 줄지어 그들의 버스와 함께 달리는 자동차를 보며 신이 난 아이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자동차 행렬에 점차 흥미를 잃어간다.
“엄마, 많이 가야 해?”
지겨워서 몸을 비트는 혜진, 미라에게 묻는다.
“응, 많이 가야 해.”
미라는 무료한 아이들을 위해 배낭에서 과자를 꺼내준다.
버스 안 승객 대부분은 눈을 감고 편안하게 잠자고 있다.
그렇게 심심하게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터널로 진입한다. 버스 안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심심해하던 인주, 기쁨이 가득한 개구쟁이 얼굴로 돌변한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현수 자동차 안에서 그랬듯 소리를 지른다.
“아---.”
무료해하던 혜진도 표정이 바뀌면서 덩달아 소리를 지른다.
“아---.”
아무것도 모르는 한주까지 가세한다.
“아---.”
세녀석 모두 소리를 지른다. 신나게 소리를 지른다. 조용하고 평화롭던 버스 안이 아이들 목소리로 점령당한다.
졸거나 잠을 자던 승객들, 아이들 외치는 소리에 모두들 화들짝 놀란다. 승객 모두 등을 곧추 세우고 소리의 지원지를 찾는다. 곧바로 소리 지르는 아이들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당황한 미라, 우선 급한 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혜진과 인주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는다.
“안 돼, 안 돼!”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쪽에 앉은 한주가 계속 소리를 지른다.
“아---.”
“아유, 이걸 어째!”
미라는 돌아서서 한주의 입을 막는다. 그러자 혜진과 인주가 또 소리를 지른다.
“아---.”
“아---.”
다시 또 혜진과 인주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는다.
미라는 버스 안 승객들의 눈치를 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말한다.
“여기서 '아'하면 안 돼, 조용! 조용히 해야 해! 경찰 아저씨 온다!”
이리저리 아이들 입을 막는 미라, 버스 앞 창문을 본다.
달리는 버스 앞으로 보이는 끝없이 이어진 터널...
언제 끝날지 모르는 터널을 바라보며 미라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