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고

다둥이네 이야기 제10화

by 여름

혜진의 할머니집, 현관 쪽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영숙이 문을 열자 혜진이 앞장서서 들어오며 앙증맞은 목소리로 외친다.

“할머니!”

“요, 여우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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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은 혜진을 끌어안고 볼을 꼬집는다.


한 손에 수박을 든 현수가 인주를 데리고 들어오고 뒤이어 미라가 한주를 안고 현관으로 들어선다.

현수의 아버지 호진은 현관으로 나와 일행을 맞으며 인주를 들어서 안는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현수에 이어 미라도 호진에게 인사한다.

“아버님, 안녕하셨어요.”

“오냐, 어려운 걸음 했다.”

미라는 혜진을 안고 있는 영숙에게도 인사한다.

“어머니, 저 왔어요.”

“어서 와라.”

영숙은 혜진을 내려놓고 미라가 안고 있는 한주를 건네받는다.

“아이고 우리 작은 대감! 많이도 컸네.”

“어찌나 빨리 기어 다니는지 잠깐 눈만 돌리면 사라지고 없어요.”

“이제 곧 걷겠네.”

미라는 할아버지 품에 안겨 있는 인주에게 말한다.

“인주야, 할머니에게도 인사드려야지.”

고개만 어설프게 끄덕이며 인사하는 인주, 영숙은 인주의 볼을 꼬집으며 말한다.

“오, 우리 큰 대감. 점잖은 우리 큰 대감.”

그 모습을 본 현수가 웃으며 말을 더한다.

“인주가 제일 점잖긴 하죠.”

“이 할미가 우리 대감 좋아하는 잡채를 해 놓았어요.”


잡채와 다른 반찬들이 놓여 있는 주방 옆 식탁 테이블에 현수는 들고 있던 수박을 내려놓는다.

영숙은 전기밥솥에서 밥을 퍼서 그릇에 담아 쟁반에 놓는다.

현수와 미라는 식탁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식을 거실에 차려놓은 큰 교자상으로 옮긴다.


그 사이 혜진은 호진이 기르는 난초를 만지고 있다.

혜진이 난초를 망칠까 봐 노심초사하는 호진은 애가 탄다. 그렇다고 난초를 만지는 손녀에게 뭐라 말할 수도 없다.

인주는 TV 장식장에 올려놓은 호진의 돋보기안경을 들어서 눈에 끼고, 한주는 바닥을 기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바쁘다.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불안한 시선으로 감시하듯 바라보는 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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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이 다 차려지자 현수가 호진에게 말한다.

“아버지, 식사하시죠?”

호진은 애타는 마음을 숨기며 혜진에게 최대한 인자하게 말한다.

“혜진아, 식사하자꾸나. “


혜진을 옆자리에 앉혀서 식사하는 할아버지 호진, 그를 중심으로 영숙은 인주를 그리고 미라는 한주를 안고 식사한다.

호진은 옆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 혜진에게 반찬을 입에 넣어준다.

그때마다 제비 새끼 마냥 입을 벌려 냉큼 받아먹는 혜진.

인주는 손으로 잡채를 집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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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는 미라 품에서 벗어나려고 바둥거리다가 결국 빠져나와 거실을 헤집으며 기어 다닌다.

현수는 그런 한주를 잡아다가 무릎에 얹혀놓고 식사한다.

어른 숟가락으로 입을 크게 벌려가며 밥을 먹는 혜진, 영숙은 그런 혜진이 대견스러워 말을 건다.

“혜진이 엄마 말 잘 듣니?”

혜진은 언제나 자기편일 것 같은 영숙에게 제 딴에는 심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머니, 있잖아요, 음~. 인주가 한주를 깨물려고 했어요. 그래서 인주가 아빠에게 혼나서 울었어요.”

“인주가 울었어? 아빠가 그러면 안 되지.”

혜진은 자연스럽게 시시콜콜한 가족 사정까지 까발린다.

“그래서 아빠가 엄마한테 혼났어요.”

당황하며 혜진의 말을 막아서려는 미라.

“혜진아.”

미라가 당황한다는 것을 눈치챈 영숙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한다.

“원래 아빠는 엄마에게 혼나.”

“그럼, 할아버지도 할머니에게 혼나요?”

“하하하, 그럼.”

호진은 영숙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이 웃으며 헛기침한다.

“음! 음!”

미라는 호진의 눈치를 보며 혜진의 말을 부드럽게 제지한다.

“혜진아, 이야기 그만하고 빨리 밥 먹자.”

현수도 혜진에게 잡채를 먹이며 혜진의 말을 막는다.


식사를 마치자 현수와 미라는 밥상에 있던 그릇을 주방으로 옮긴다. 그리고 아이들은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시 헤집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안방으로 들어간 혜진과 인주가 온돌침대 위에서 뛰면서 놀자 현수가 녀석들을 데리고 나온다.

“아빠, 침대에서 놀래.”

“침대에서 뛰면 위험해, 안 돼.”

그것을 본 호진이 웃으며 말한다.

“그냥 놀게 놔둬라.”

호진은 웃으면서 말은 하지만 사실 개구쟁이들이 무슨 짓을 할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생각 끝에 한마디 덧붙인다.

“할아버지가 과자 사다 줄까?”

“예, 할아버지!”

요주의 인물 혜진을 꼬드기는 호진, 조무래기 인주는 덤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할아버지, 놀이터도 있어요?”

“그럼 있지, 거기서 놀다가 올까?”

“예, 할아버지, 그네도 타요.”

호진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다.



식탁 테이블에 앉아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영숙과 미라.

영숙의 품에 안긴 한주는 작은 수박 한 조각을 손에 쥐고 오물거리며 빨고 있다.

그 모습이 신기해 보이는 영숙은 한주 엉덩이 옆을 두드리며 말한다.

“우리 작은 대감, 요 수박 먹는 거 좀 봐라. 어이구 우리 대감!”

현수도 수박 한 조각에 몰두하고 있는 한주를 보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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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현수가 미라에게 부탁한다.

“혜진이 그림 좀.”

미라는 가지고 온 어깨가방에서 인쇄된 A4지 용지 한 장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현수는 미라로부터 건네받은 혜진의 그림을 냉장고 문에 붙인다.

“혜진이 그림이니?”

“예, 혜진이가 그린 그림.”

영숙은 혜진의 앙증맞은 그림을 보며 말한다.

“정말 얘들 그림이다, 그림이 참 우습네.”

영숙의 말에 신이 난 현수가 웃으며 말한다.

“그렇죠? 아이 그림인데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와요.”

“얼굴은 넙데데하고, 하하, 요 눈 그린 것 봐라, 야물딱지게도 그렸네.”


영숙의 말에 현수는 신이 나서 설명을 덧붙인다.

“녀석이 자기 자화상 그린다고 나름 기교를 많이 부렸어요. 여기 옷에 무늬를 넣은 것하고 머리 장식하고... 피카소도 이렇게 못 그려요.”

현수에게 웃으며 핀잔을 주는 미라.

“꿈보다 해몽이라고, 자기 딸 자랑은...”

현수는 야속한 미라에게 정색하며 말한다.

“이것은 정말 잘 그린 그림이야. 그러니 내가 자랑하려고 이렇게 가져왔지.”

현수와 미라의 가벼운 분쟁에 영숙이 조심스럽게 끼어든다.

“자기 얘는 뭐를 해도 다 좋아 보이지. 너도 이제 아비 다 됐다.”

그 말에 현수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을 덧붙인다.

“내가 아빠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 그림 정말 잘 그리지 않았어요?”

딸을 위해 외롭게 항변하는 현수의 모습을 보며 영숙과 미라가 웃는다.

현관문이 열리고 혜진과 인주 그리고 호진이 뒤따라 들어온다.

현수가 혜진을 보며 묻는다.

“그네 탔어?”

“응, 할아버지가 그네 밀어줬어.”

미라가 웃으며 말한다.

“혜진이 소원 풀었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자랑하는 혜진.

“아빠, 할아버지가 돈 줬어.”

“그래? 엄마에게 맡겨.”

“엄마는 내가 준 돈 안 돌려줘.”

그 말에 현수가 빙그레 웃으며 혜진을 꼬드긴다.

“엄마가 얘들 코 묻은 돈 뺏는다고? 그 돈 아빠에게 맡겨.”

혜진이 아무 생각 없이 만 원짜리 지폐를 현수에게 내민다.

“아빠, 여기.”

“이런 돈은 먼저 맡는 사람이 임자지,”

현수는 지폐를 지갑에 넣으면서 엉큼한 본색을 드러낸다.

“인주도 돈 받았어?”

“응.”

인주를 다정하게 부르는 현수.

“인주야, 이리 와.”

그것을 보는 영숙이 웃으며 말한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고. 하하하.”

현수가 인주의 돈까지 건네받으며 말한다.

“돈 벌었으니 이제 집에 가자.”

그 말에 호진은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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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이 아파트 입구 현관에서 나와 계단에 내려선다.

앞서가던 현수가 뒤돌아 서며 말한다.

“더 나오지 마세요, 여기서 갈게요.”

미라가 호진과 미라에게 인사한다.

“아버님, 와서 폐만 끼치고 갑니다.”

“아니다, 또 오너라.”

“어머니, 이만 갈게요.”

“그래, 조심해서 가고.”

“혜진이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해야지.”

미라의 말에 혜진이 배꼽인사를 한다.

“안녕히 계세요.”

뭔가 아쉬움이 남아 있는 듯한 혜진을 영숙이 떠본다.

“혜진이는 여기서 할머니랑 같이 살자.”

“아니에요,”

“혜진이 인형 사줄 건데.”

인형이라는 말에 흔들리는 혜진은 현수를 올려다본다.

현수가 웃으며 혜진에게 말한다.

“할머니가 진짜로 못생긴 인형 사다 줄 건데.”

혜진은 영숙에게 손을 흔들며 아빠를 따라간다.

자동차에 탄 현수 가족은 차 창문을 내려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떠나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는 호진은 손을 흔들며 영숙에게 낮게 말한다.

“녀석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고...”

아이들에게 손을 들어주는 영숙이 그 말을 듣고 말한다.

“말을 그렇게 솔직하게 하면 안 되죠.”

“녀석들이 오니 정신이 다 없네.”

“지금이야 그렇죠, 나는 얘 셋 키울 때는 힘든 줄도 몰랐어요. 하루하루가 얼마나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호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이제 난 아이들하고 하루 지내는 것도 힘들어.”

그 말에 영숙이 웃으며 말한다.

“저때는 아이들이 이뻐 죽지요. 얘들 키우던 때만큼 좋았을 때가 없었는데...”

“하기야 자식들이 정말 재산이지. 돈 많아도 자식 없는 사람들을 보면 측은해.”


현수의 자동차가 아파트 밖으로 사라진다.

호진과 영숙은 돌아서서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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