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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09. 2024

미운 일곱 살

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16화 - 미운 일곱 살

토요일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한가한 시간.

혜진을 앞에 앉혀놓고 혜진 머리 손질을 해주는 미라가 혼잣말한다.

“다음 주에 올케언니 만나는데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해야겠네.”

그 말에 혜진이 고개를 돌려 미라에게 말한다.

“엄마, 나도 미장원에 가고 싶어.”

“아빠랑 같이 있어, 엄마 후딱 갔다 올게.”

혜진이 애원하듯 말한다.

“나도 가고 싶어, 미장원.”

“그럴까?”


미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인주와 한주의 눈치를 살핀다.

미라는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거리듯이 혜진에게 말한다.

“인주하고 한주 모르게 먼저 밖으로 나가 있어, 엄마도 따라 나갈게.”

음모에 가담하듯 혜진도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알았어, 엄마.”


혜진이 일어나서 방에서 나가고 뒤이어 미라도 아이들 몰래 나간다.

그리고 현수가 큰 방으로 들어온다.

놀고 있는 인주와 한주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는 현수, 아이들에게 말한다.

“어이, 사나이들. 우리도 밖으로 나가자.”

그제야 미라와 혜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인주.

“엄마하고 누나는?”

“배신 때리고 나갔어.”

알아듣지 못할 말에 인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현수는 인주와 한주에게 옷을 챙겨 입힌다.


아파트 단지에서 현수는 한주를 앉힌 유모차를 밀고 인주는 붕붕차를 타고 있다.

“우리 사나이들, 어디로 갈까?”

인주가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킨다.

“아빠, 저기.”

그러면서 인주가 붕붕차를 타고 앞장서 가고, 현수는 한주가 탄 유모차를 밀며 인주를 따라간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도로의 인도를 따라가는 현수와 아이들.


일행이 큰 상가 건물 입구의 문방구에 다다른다. 문방구 앞에 적지 않은 장난감이 진열되어 있다.

인주가 붕붕차에서 내려 장난감이 진열된 좌대 앞으로 간다. 그리고는 현수를 향해 뒤돌아보며 말한다.

“아빠, 보기만 할게.”

쪼그려 앉은 자세로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려가며 장난감을 보고 있는 인주. 현수는 그런 인주의 모습이 너무 애잔하게 느껴진다. 

“인주, 이 장난감 갖고 싶어?”

“...”

인주가 대답이 없지만 갖고 싶어 하는 눈치다. 현수는 인주가 보고 있던 장난감을 집어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장난감을 들고 나와 인주에게 건넨다.

유모차에 앉은 한주가 내리려고 버둥덩거린다.

“왜? 한주도 장난감 사고 싶어?”

현수가 인주를 유모차에서 내려주자 장난감이 놓인 좌판으로 가서 장난감을 집어 든다.

난감한 표정의 현수는 한주가 집어 든 장난감도 계산하여 한주에게 안긴다.



미장원.

미라가 미용 의자에 앉자 머리를 꾸미고 있고 혜진은 뒤편 소파에 앉아 있다.

머리에 파마 모자를 쓴 중년 여인이 혜진에게 말을 건다."

“어머, 이뻐라, 너도 머리 하러 왔니?”

“아니에요.”

중년 여인이 미라를 흘끗 보며 말한다.

“엄마 따라왔구나, 몇 살이니?”

“일곱 살이예요.”

“어머, 미운 일곱 살이네?”

‘미운’이라는 말에 혜진이 발끈하여 정체를 드러낸다.

“아니에요, 공주예요.”

머리를 하던 미라가 혜진에게 주의를 준다.

“혜진아, 공주라고 함부로 말하면 안 돼, 혜진이가 공주인 것은 비밀이잖아.”

그 말에 중년 여인이 혜진의 비밀을 알게 된다.

“하하하, 그래 공주. 너가 공주였구나.”

미라의 머리 손질을 하던 미용사가 뒤돌아서서 혜진을 보며 말한다.

“어머, 이뻐라, 공주 머리해줄까?”

혜진이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공주 머리요?”

미라는 혜진의 ‘미운 일곱 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얘가 요즘 얼마나 말이 많은지, 정신이 없어요.”

미라의 말에 중년 여인이 맞장구를 친다.

“요 나이 때가 제일 말이 많죠. 그래서 우리 막둥이는 영어 유치원에 보냈었어요.”

“영어 유치원요?”

“한참 말 많고, 호기심 많은 아이에게 좋더라고요.”

미라가 거울로 혜진을 바라보며 말한다.

“혜진이, 영어 유치원 갈까?”

“영어?”

“그래, 아빠가 매일 공부하는 거 있잖아.”

“공부해야 하는 거야?”

공부라는 말에 머뭇거리는 혜진, 중년 여인이 혜진에게 달콤한 양념을 친다.

“영어 유치원은 공주하고 왕자들이 영어로 말하면서 노는 곳이란다.”     

노는 곳이라는 말에 혜진의 표정이 밝아진다.



인주는 장난감을 두 손으로 든 채 길을 걷는다.

그 바람에 현수는 한 손으로 한주가 탄 유모차를 밀면서 다른 한 손은 인주가 타던 붕붕차의 손잡이를 잡고 걸어간다.


“인주야, 그렇게 좋아?”

“응.”

“인주야, 장난감 집에 가서 가지고 놀아. 장난감 보면서 걸으면 넘어져.”

유모차에 탄 한주도 장난감을 만지고 있다.

현수는 장난감을 만지면서 걷는 인주의 모습을 지켜보며 걸어간다."



인주와 한주는 새로 산 장난감을 가지고 방에서 놀고 있다.

미라와 함께 돌아온 혜진, 뾰로통한 모습으로 응석을 부린다.

“엄마, 공주 머리.”

“공주 머리라는 것은 없어. 미용사 선생님이 그냥 한 말이야.”

“으으으응, 공주 머리하러 미장원에 가자. 응?”


미라는 혜진의 응석을 무시하면서 인주와 한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어머나, 못 보던 장난감이네. 아빠가 사다 줬어?”

미라의 말에 현수가 변명을 늘어놓는다.

“장난감 가게를 지나는데 인주가 장난감을 얼마나 애절하게 바라보는지… 안 사줄 수가 없더라고.”

미라가 웃으며 현수에게 말한다.

“인주가 장난감을 그냥 구경만 하겠다고 그랬죠?”

“응. 어떻게 알았어?”

“나도 그러다가 사다 줬어요.”

그 말에 현수가 웃으며 말한다.

“그래? 나도 인주에게 넘어간 것이네. 하하하.”

현수는 놀고 있는 인주의 볼을 꼬집는다.

“하이구, 요놈.”

 

공주 머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혜진, 애원하는 눈빛으로 미라를 쳐다보며 말한다.

“엄마, 공주 머리.”

미라는 할 수 없다는 듯 혜진에게 말한다.

“엄마가 공주 머리해줄게. 혜진이 왕관하고 귀걸이 가져와.”

혜진이 장난감 통에서 조잡스러운 왕관과 귀걸이를 가져온다. 미라는 혜진 머리의 묶음을 풀고 빛으로 머리를 길게 빗겨준 후 왕관과 귀걸이로 치장해 준다.

“아유, 이뻐라. 정말 공주 같다.”

“정말?”

“공주는 머리를 길게 내리지? 인어공주하고 백설공주도 머리를 내리잖아.”

혜진이 거울 앞으로 가서 자기 모습을 본다.


거울을 보는 혜진을 보며 미라가 현수에게 말한다.

“혜진 아빠, 혜진이 영어 유치원에 보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영어 유치원도 있어?”

“그렇다네요, 혜진이 또래 아이들이 많이 가나 봐요.”

“그래? 그것도 괜찮겠네.”     

인주와 한주는 사서 온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고

혜진은 왕관을 쓴 채 공주가 그려진 그림책을 보고 있다.



현수는 캠핑 물건을 담은 큰 쇼핑백과 텐트 가방을 들고 자동차 쪽으로 다가간다.

미라가 텐트 가방 사용법을 가르치며 묻는다.

“그것 텐트 가방 아니에요?”

“응, 혜진이가 텐트 좋아하잖아.”


현수는 물건들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자동차 운전석으로 들어가고.

자동차가 출발한다.



현수 가족이 탄 자동차가 펜션 주차장에 도착한다.


연형과 연형 아내 명선, 첫째 아들 민호, 둘째 딸 상희가 현수 가족을 맞이한다.

혜진이 차에서 먼저 내려 상희에게 다가간다.

“언니!”

“혜진아.”

혜진이 자기보다 두 살 위의 상희 손을 맞잡고 깡충깡충 뛰며 좋아한다.


현수가 손위 처남인 연형에게 인사한다.

“형님,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게. 안 그래도 같이 술 마실 사람이 없어서 적적했는데, 잘 왔네.”

“하하, 술 하면 저가 빠질 수 없죠.”

연형의 아들 길수가 현수에게 인사한다.

“고모부 안녕하세요.”

“어, 길수구나, 지금 초등학교 몇 학년이야?”

“4학년요.”

“야, 많이 컸네. 상희는 그럼 2학년이야?”

“예.”

미라가 올케언니 명선에게 인사한다.

“언니, 잘 계셨어요.”

“아가씨 어서 오세요.”


연형과 현수는 음식을 장만해 놓은 펜션 앞의 야외 테이블로 가서 앉는다.

미라는 들고 온 가방을 어깨에 메고 인주와 한주를 데리고 펜션 안으로 들어간다.


혜진이 현수에게 다가온다.

“아빠, 텐트 쳐줘.”

“나중에 텐트 쳐 줄게. 지금은 식사 준비해야 해.”

“아빠, 지금 쳐줘.”

“지금은 안돼.”

혜진은 불만스럽다는 듯 어깨와 양손을 털래털래 흔들며 펜션 안으로 들어간다.


미라는 펜션 안에서 가지고 온 짐을 정리하고 있다.

혜진은 잔뜩 부은 표정으로 미라에게 다가온다.

“엄마 텐트 쳐 줘.”

“엄마는 텐트 칠 줄 모르는데.”

“아빠보고 텐트 좀 쳐 달라고 해줘.”

“아빠, 밥 먹고 난 다음 쳐 줄 거야.”

“아빠한테 지금 텐트 쳐 달라고 해.”

미라는 응석을 부리는 혜진을 정색하며 보면서 말한다.

“조금 있다가 쳐 줄 거야. 어떻게 오자마자 텐트 쳐 달라고 해?”

“으으으응~”


혜진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펜션에서 나간다.


현수는 연형과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다.

잔뜩 불만스러운 얼굴로 펜션을 나온 혜진, 현수에게 다가가 다시 조르기 시작한다.

“아빠, 텐트 쳐줘.”

“안 돼, 나중에 쳐 줄게.”


속이 크게 상한 혜진은 펜션 계단 턱으로 가서 앉는다. 그러고는 양발로 땅바닥을 굴리며 입을 크게 벌려 울기 시작한다.

“우어어엉~, 나 아빠랑 안 놀아줄 거야, 아빠 혼자 놀아!”

대성통곡을 하는 혜진을 보며 쩔쩔매는 현수.

“조금 있다가 쳐 줄게.”

“우어어엉~, 바보 아빠야! 우어엉~.”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혜진의 말에 당황하며 달래듯 말하는 현수.

“아빠가 조금 있다가 쳐 준다니까.”

“싫어, 아빠 혼자 놀아! 우어어엉~.”

그 말에 현수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알았어, 지금 쳐 줄게, 울지 마.”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차해 놓은 자동차로 가서 텐트 가방을 가져온다.

상희와 혜진이 현수가 텐트 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다.

이윽고 텐트를 다 친 현수.

“텐트 다 쳤어. 이제 됐어?”

“응,”

상희를 보며 말한다.

“언니 텐트 안에서 놀자.”


상희와 혜진이 신발을 벗고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테이블에 혜진과 상희를 제외하고 모두가 앉아서 삼겹살을 구워가며 식사한다.

현수는 연형이 따라주는 소주를 마시며 말한다.

“미운 일곱 살이라고… 떼를 얼마나 쓰는지 감당하기가 어려워요.”

연형이 웃으며 현수에게 말한다.

“딸바보가 아니고?”


현수가 겸연쩍은 듯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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