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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11. 2024

위대한 마술

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18화 - 위대한 마술

형광등이 켜진 안방. 미라는 놀고 있는 인주와 한주 옆에서 지켜보고 있고,

혜진은 교자상 위에 펼쳐놓은 영어 학습서의 그림을 보며 영어 단어를 말하고 있다.

“폴라 베어, 레드 퐉스, 캥거루우...”

옆에 앉은 현수가 학습서에 그려진 코끼리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묻는다.

“이거는 뭐야?”

“엘리펀트.”

혜진의 영어 발음이 신기한 현수, 이번에는 말 그림을 짚는다.

“그럼, 이것은?”

“호오ㄹ~스.”

현수는 다시 그림책에 그려진 나비를 짚는다.

“그럼, 이거는?”

“버러플라이.”

현수는 혜진을 쳐다보며 말한다.

“다시 말해봐.”

“버러플라이.”

현수가 놀란 듯이 말한다.

“야… 완전 원어민 발음이네.”

그 말을 들은 미라가 현수에게 묻는다.

“혜진이 영어 잘하죠?”

“영어 발음을 잘하는 거지.”

“당신은 혜진이처럼 영어 발음을 할 수 있어요?”

“못 해, 그렇지만 영어는 발음보다는 영어 문장 구사 능력이 중요해.”

그러자 미라가 혜진에게 묻는다.

“혜진아, 나비가 영어로 뭐라고?”

“버러플라이.”

미라가 현수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한다.

“영어 잘하기만 하네.”

현수는 부러운 듯 혜진의 볼을 꼬집는다.



현수의 작은방. 현수가 이부자리에 누워서 책을 보다가 스위치를 눌러 불을 끈다.

깜깜해진 방, 어둠 속에서 현수가 영어 단어를 중얼거린다.

“호오스, 호오ㄹ~스.” 

잠시 멈췄다가 이어지는 현수의 영어 발음 소리.

“버터플라이, 버러플라이. 버러플라이.”

현수가 한숨을 쉰다.

“하 참…”



현수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캠코더 찍으며 말한다.

“너희들 싸우는 것도 이 캠코더로 다 찍어놓을 거야.”

그 말에 인주가 나선다.

“아빠, 나는 안 싸우지!~.”

“인주 너 한주 물려고 했잖아?”

“아니야. 안 물었어.”

미라가 느닷없이 현수에게 말한다.

“아이들 노는 것 말고 찍는 것은 없어요?”

현수가 뭔가 생각하면서 말한다.

“글쎄…. 이 캠코더로 마술을 한번 해 볼까?”

혜진이 현수에게 묻는다.

“아빠, 마술할 수 있어?”

“글쎄, 한번 해 볼까.”


현수는 캠코더를 삼각대 위에 설치한다. 

그렇게 설치한 캠코더 앞에 현수는 한주를 안아서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현수 주위로 인주와 미라 혜진이 자리 잡는다.


“자 캠코더를 쳐다봐, 이제 캠코더를 켤게.” 

현수가 리모컨 스위치로 캠코더를 켠다. 그리고 캠코더를 바라보며 말한다.

“자, 이제 마술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옆에 혜진이 소곤대며 묻는다.

“아빠, 이게 진짜 마술이야?”

현수도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응, 기다려 봐.”

현수가 마술 주문을 외친다.

“사라져라. 얍!”


주문을 외친 현수는 캠코더를 끄기 위해 리모컨 스위치를 누른다.

“자, 캠코더가 꺼졌으니 캠코더 앞에서 사라지자.”

현수가 한주를 안고 인주의 손을 잡은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리를 옮긴다.

캠코더 촬영 각도에서 벗어난 방문 쪽으로 간다. 

미라와 혜진도 현수를 따라 방문 쪽으로 간다.

혜진이 들떠서 현수에게 말한다.

“아빠, 이게 사라지는 마술이야?”

“응, 이제 사라지게 될 거야.”


가족이 사라진 빈 공간을 찍기 위해 리모컨 스위치를 눌려 캠코더를 켜는 현수,

혜진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한다.

“안 사라졌잖아.”

현수는 손가락으로 입술에 갖다 대며 조용히 말한다.

“마술할 때는 조용히 해야 해.” 

몇 초의 시간이 흐른 후 현수가 마술 주문을 다시 외친다.

“나타나라 얍!”


현수는 리모컨 스위치를 눌러 캠코더를 다시 끄며 말한다.

“자, 다시 저 자리로 가자.”

현수는 한주를 안고 캠코더 앞에 앉는다. 미라 인주 혜진도 그 옆에 서거나 앉는다.

현수가 도대체 뭘 하는 것인지 몰라 헷갈리는 혜진.

“아빠, 어떻게 나타나?”

“TV로 보면 갑자기 나타나게 돼”

현수는 캠코더를 켜는 리모컨 스위치를 누른 후 소리친다.

“팡! 자, 나타났습니다.”


현수가 소곤대듯이 말한다.

“캠코더로 찍히고 있어, 자, 웃어, 웃어.”

그리고 리모컨으로 캠코더를 끄면서 마술을 마친다.

그 옆에 혜진이 뭐가 왜 이리 시시하냐는 듯 묻는다.

“아빠, 진짜 이게 마술이야?”

“TV로 보면 마술이 보여.”


캠코더를 TV에 연결한 후 TV 화면을 켠다.

“아빠가 지금부터 마술을 보여줄게.”

현수가 캠코더를 재생 모드 바꾼 후 PLAY 스위치를 누른다.

TV 앞에서 소위 ‘마술’이라는 것을 보는 가족.


TV로 마술이 재생된다.     

TV 화면에 한주를 안은 현수와 인주, 혜진, 미라가 있다.

'자, 이제 마술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현수. 

현수와 혜진이 뭔가 속닥거리는 모습.

그리고 현수가 ‘사라져라. 얍’하고 소리를 지른다.

‘자, 캠코더가 꺼졌으니 캠코더 앞에서 사라지자’라고 말하는 현수. 

한주를 안은 현수,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으며 화면 왼쪽으로 사라진다.

뒤이어 미라와 혜진이 웃으며 현수를 따라 화면 왼쪽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TV 화면에 가족이 사라진다.


TV에서 이 장면을 보는 미라가 몸을 굽혀가면서 크게 웃는다.

난감한 표정의 현수는 리모컨을 살펴보면서 아쉬운 듯 말한다.

“아, 리모컨 스위치를 잘 못 눌렸네, 여기서 캠코더가 꺼졌어야 하는데 안 꺼졌어.”

미라가 웃음을 섞어가며 말한다.

“어쨌든 사라지긴 했네요, 하하하.”

미라가 웃으며 TV를 계속 본다.


가족 없이 뒷배경만 나오는 TV 화면에 목소리가 들린다.

혜진의 목소리, ‘아빠, 이게 사라지는 마술이야.’

현수의 목소리, ‘응, 이제 사라지게 될 거야’

혜진의 목소리, ‘안 사라졌잖아’

현수의 목소리, ‘마술할 때는 조용히 해야 해’ 

몇 초 후 이어지는 현수의 큰 목소리, ‘나타나라 얍’

다시 현수의 작은 목소리, ‘자, 다시 저 자리로 가자’ 

TV 화면 왼쪽에서 현수와 미리 그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걸어서 나타난다.


TV를 보던 미라가 눈물을 흘려가며 웃는다.


다시 이어지는 TV 화면.

화면에 나타난 혜진, ‘아빠, 어떻게 나타나’.

현수, ‘TV로 보면 갑자기 나타나게 돼’.

그리고 정면을 응시하며 뻔뻔하게 소리를 지르는 현수, ‘팡, 자 나타났습니다’


미라는 여전히 웃느라 정신이 없다.

혜진이 실망한 듯 현수에게 말한다.

“아빠, 이게 마술이야?”

현수는 혜진에게 변명한다.

“아빠가 리모컨 스위치를 잘 못 눌려서 이렇게 된 거야.”

미라가 현수를 놀리듯 혜진에게 설명한다.

“아빠가 마술을 실패한 거야, 하하하.”

풀이 죽은 현수가 말한다. 

“다시 마술을 찍으면 성공할 수 있어.”

그 말을 들은 혜진과 미라가 장난치듯 말한다.

“진짜야?”

“사실이야?”

“정말이야?”

오기가 발동한 현수가 말한다.

“이번에 잘 찍을 수 있어.”


현수가 캠코더를 다시 삼각대에 설치하여 마술 녹화를 시작한다.

현수는 리모컨의 ‘RECODING’ 스위치와 ‘PAUSE’ 스위치를 분간하여 누른다.

캠코더 앞에서 다시 한번 우르르 움직이는 가족, 그렇게 마술 녹화를 마친다.

그리고는 캠코더를 TV에 연결하여 마술을 시청한다.


TV 화면에 가족이 보인다.

앞쪽에 앉아 있는 현수가 마술사를 소개한다.

“오늘은 코끼리 영어 유치원 김혜진 마술사의 마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현수가 소개한 혜진이 마술 주문을 왼다.

“수리수리 마수리, 사라져라. 얍!”


혜진의 주문과 함께 화면에서 가족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빈 화면에서 마술 주문 소리, 이번에는 인주가 외친다.

“수리수리 마수리, 나타나라, 얍!”


비어있는 안방 배경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가족.

한 살씩 더 먹은 혜진, 인주 그리고 한주 모습이 나타난다.

현수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놀란 듯 말한다.

“어, 이 녀석들, 언제 이렇게 컸어?”

세월이라는 위대한 마술로 성장한 아이들.

성장한 아이들이 펼칠 다음 이야기를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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