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수 Oct 14. 2024

무식의 지존

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19화 - 무식의 지존

유치원 하굣길. 혜진과 인주가 등에 유치원 가방을 메고 있다.

미라는 이제 어느 정도 걷게 된 한주 손을 잡고서 길을 가고 있다. 

뭘 좀 안다고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혜진과 나날이 말발이 세어져 가는 인주가 미라의 뒤를 따른다.

경쟁적으로 미라에게 재잘대는 혜진과 인주, 미라는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바쁘다.


“그래, 우리 인주가 유치원에서 무지개를 봤다고?”

“응, 무지개가 큰 아파트 위에 있었어.”

‘무식한’ 인주의 말에 ‘좀 배웠다는’ 혜진이 나선다.

“아니야, 무지개는 비 내린 다음 하늘에 뜨는 거야.”

인주가 지지 않으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우긴다.

“정말이야, 무지개가 아파트 위에 있었어.”

이어지는 ‘유식한’ 혜진의 ‘논리적인’ 설명.

“무지개는 하늘에 있기 때문에 못 잡는 거야! 무지개가 아파트 위에 있으면 올라가서 잡을 수 있게?”

‘무식함’의 바닥을 드러내는 인주.

“큰 아파트에 어떻게 올라가?”

오만한 혜진이 인주의 알량한 자존심마저 털어버린다.

“바보야,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면 되지!”

인주가 미라를 향해 울먹이는 소리로 말한다.

“엄마, 누나가 나 보고 바보래.”

인주의 말에 미라가 혜진에게 주의를 준다.

“동생에게 그런 말 쓰면 못써.”

혜진이 양손을 볼에 갖다 대고 인주에게 약 올리듯 혓바닥을 내어 보이며 말한다.

“바보.”

인주가 혜진에게 덤벼들려 하자 혜진은 도망간다,

도망가는 혜진을 쫓아가려는 인주, 

인주의 등에 진 가방을 잡으며 인주를 제지하는 미라.

분한 인주가 씩씩거린다.


아파트에 다다른 미라와 아이들.

인주와 혜진이 아파트 계단을 앞장서서 올라가고, 그 뒤를 한주와 미라가 뒤따른다.

한 발 한 발 계단을 밟으며 조심스럽게 올라가는 한주.

뒤에서 한주의 계단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미라가 한주에게 칭찬을 남발한다.

“옳지, 한주는 계단도 잘 올라가요. 올지!”

한주를 칭찬하는 미라의 말을 들은 인주, 그 말을 듣고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미라가 다급하게 인주에게 소리친다.

“인주야, 계단에서 뛰면 위험해, 다쳐.”

좀 ‘안다’ 하는 혜진이 또 인주를 놀린다.

“빨리 가도 문 잠겨서 집에 못 들어가지롱. 바보~.”

뛰어가던 인주가 계단참에 서서 미라에게 소리친다.

“엄마, 누나가 나보고 또 바보라 그래!”

“혜진아, 동생에게 자꾸만 그럴래?”

미라의 핀잔에 혜진이 딴전을 피우듯이 말한다.

“엄마, 우리 아파트에는 왜 엘리베이터가 없어?”

“작은 아파트에는 원래 엘리베이터가 없어.”

“그럼, 우리 아파트가 작은 거야?”

“응, 작은 거야.”     

아파트가 작다는 말에 실망하는 혜진, 미라가 그 모습을 쳐다본다.



혜진은 다양한 모양의 투명 스티커를 그림책에 붙이고 있고,

한주는 방 안에 있는 플라스틱 목마를 타고 끄덕이고 있다.

공룡 피규어를 가지고 노는 인주, 미라가 보여주는 공룡 그림 카드를 슬쩍슬쩍 보며 건성으로 공룡 이름을 대답하고 있다."


“인주야, 이 공룡 이름은 뭐야?”

“파키케팔로사우루스.”

“이 공룡은?”

“파라 사우롤로푸스.”

“그러면 이거는?”

“코리아 케라톱스.”

미라는 인주의 영특함에 감탄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 옆에서 플라스틱 목마를 타고 있는 한주도 소리친다.

“우라투라우바바!”

한주 자기 딴에도 공룡 이름을 대고 있다.

미라는 웃으며 또 다른 공룡 그림 카드를 한주에게 보여준다. 

“옳지, 그럼, 이거는 뭘까요?”

한주는 용감하게 외친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아타마다웁바!”

무식함의 지존이 탄생하는 순간, 그래도 미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유, 잘했어요, 우리 한주.”

무식한 한주에게 칭찬하는 미라, 부모의 마음이 원래 그렇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무식의 지존께서 플라스틱 목마에서 내려 거실로 뛰어나간다.



현관으로 들어선 현수, 

현수 앞으로 쫓아 나온 한주를 보며 현수가 말한다.

“어, 한주! 오늘도 잘 놀았어?”

“어떠떠 자야.” 

“응, 그래? 아빠를 하루 종일 기다렸다고?”

“아타아 노다다.”

“그래, 나도 한주가 최고야.”

한주의 의미 없는 소리에 현수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다.


안방에서 나오는 인주, 현수에게 자기가 본 것을 자랑한다.

“아빠, 오늘 무지개 봤어?”

인주의 고조된 목소리에 현수가 웃으며 말한다.

“아니, 인주는 무지개 봤어?”

“응, 유치원에서, 선생님하고 봤어.”

“어땠어?”

인주가 눈을 크게 뜨면서 말한다.

“무지개 굉장히 컸어, 산보다 더 컸어,”

현수도 인주처럼 덩달아 눈을 크게 뜨며 말한다.

“정말로?”

“아빠, 무지개 잡을 수 있어?”

그 말을 들은 현수는 인주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아 돌려서 말한다.

“글쎄… 아빠는 못 잡아봤어.”


안방에 있는 혜진은 거실에 있는 현수와 인주의 무지개에 대한 대화를 신경 써서 듣는다.

현수의 ‘글쎄’라는 말을 듣는 혜진, 미라에게 묻는다.

“엄마, '글쎄'가 무슨 뜻이야?”

“응, 그건 잘 모르겠을 때 하는 말이야.”

그리고는 미라가 현수를 향해서 말한다.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요, 저녁은요?”

“응, 내가 알아서 먹을게.”


현수가 대답하며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한주는 현수를 따라 작은방에 들어가고 인주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옷장에서 옷을 꺼내는 현수, 한주가 그 옆에 서서 참견한다.

“아따 우따빠야!”

한주의 말에 다정하게 대답하는 현수.

“그래 알았어, 아빠 옷 좀 갈아입고.”

“아따 자야프이따!”

“그래, 아빠도 한주가 제일 좋아.”

현수가 바지를 갈아입는 동안에도 진지한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

“라뚜아 뜨리아!”

“그래, 나중에 과자 사러 가자~.”


부자간의 참 아름다운 대화를 나눈 현수와 한주, 작은 방에서 나간다.



혜진은 그림책에 투명 스티커를 붙이고 있고, 인주는 공룡 피규어를 만지고 있다.

뭔가 곰곰이 생각하던 미라가 혜진에게 말한다.

“혜진이는 아빠에게 인사 안 해?”

“글쎄.”

“글쎄?”

미라는 혜진의 대답에 웃으면서 다시 말한다.

“아빠에게 가서 인사해야지.”

“알았어.”

혜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에서 나간다.


거실에서 현수가 밥상을 앞에 두고 식사하고 있다.

현수의 단짝 한주는 식사하는 현수 무릎 위에 앉아 있다.

현수는 식사하면서 혜진이 ‘글쎄’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 말을 듣고 빙긋이 웃는 현수.


혜진이 안방에서 나오고 현수는 혜진을 못 본 척 한주에게 말한다.

“한주야, 우리 과자 사러 나가자아~.”

“아따 우따빠야!”

과자를 사러 나간다는 말에 혜진이 한주에게 말한다.

“한주야, 지금 나가면 무서운 고양이 돌아다녀, 누나랑 같이 가야 해.”

현수는 한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한주는 아빠랑 같이 갈 거지~?”

그 말에 혜진이 얼른 따라붙는다.

“아빠, 팬시점에도 가자.”

현수는 혜진을 놀리듯이 바라보며 말한다.

“글, 쎄!”

현수 말에 삐지는 혜진, 현수를 곁눈질하면서 소리친다.

“아빠 미워!”

혜진이 삐쳐서 안방으로 들어가고, 현수는 웃으며 식사한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미라, 식사를 마친 현수가 한주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오자 말을 건넨다.

“혜진 아빠, 뭐 좀 상의해야 할 일이 있는데요.”

“뭔데?”

“우리 이사하는 것 어때요?”

의외라는 듯 현수가 묻는다.

“왜?”

“아이들이 커가는데 집이 좁은 것 같아서요.”

“여기 아파트도 재개발된다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면 안 될까?”

“언제 재개발을 시작할지도 모르고, 그리고 지금 당장 아이들이 문제예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니기 시작하면 집이 너무 좁아요.”

“그렇긴 하지, 그런데 돈이 되겠어?”

“은행에 대출을 좀 알아보려고요.”

“대출 이자가 부담스러울 텐데.”

“당신 월급으로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대출 액수를 알아보고 집을 찾아보려고요.”

잠시 생각하던 현수가 말한다.

“갑자기 이사 이야기를 들으니 얼떨떨하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게.”


옆에서 듣고 있던 혜진이 미라에게 묻는다.

“엄마, 우리 집 이사 가?”

“응, 큰 아파트로 이사 갈까 해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인주도 미라에게 묻는다.

“엄마, 이사가 뭐야?”

“다른 집으로 가는 거.”

“장난감도 가져가는 거야?”

인주의 걱정에 미라가 웃으면서 말한다.

“글쎄… 안 쓰는 장난감은 버리고 가야겠지?”

미라를 바라보는 인주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파트 앞마당에서 혜진이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있다,

타던 싱싱카를 땅바닥에 내팽개친 채 혜진의 롤러블레이드 타는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인주.

인주가 기어이 억지를 부리기 시작한다.

“누나 타는 것 나도 탈래.”

미라가 인주를 말린다.

“안 돼, 인주가 좀 더 크면 탈 수 있어.”

어리광 부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인주.

“나도 타고 싶어.”

“아유, 인주는 저거 타면 위험하다니까.”

인주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부림을 치며 생떼를 부리기 시작한다.

“나도 탈래~.”

미라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잠시 후, 오른발 한쪽에 롤러블레이드를 끼운 인주는 미라의 손을 잡고 쩔쩔매면서 타고 있다.

“인주야 무섭지?”

“...”

롤러블레이드를 타겠다고 생떼를 부리던 인주, ‘내가 왜 타자고 했던가’ 하는 표정이다.

어린 자존심에 이제 와서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인주는 미라의 손에 매달려 땀을 흘린다.


롤러블레이드를 타며 쩔쩔매는 인주, 싱싱카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혜진, 그리고 붕붕차를 타고 혜진을 따라가는 한주의 모습이 아파트 앞마당을 채운다.

이전 18화 위대한 마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