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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15. 2024

의리 있는 아들, 여우 같은 딸

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20화 - 의리 있는 아들, 여우 같은 딸 

미라가 은행에서 주택담보 대출 상담을 하고 있다. 

정작 미라가 앉아야 할 창구 앞의 상담 의자에는 한주가 앉아 있고, 미라는 그 옆에 서서 은행 직원과 대화한다.

대화가 길어지자 한주가 몸을 비틀며 미라에게 소리를 지른다.

“어뚜뚜아두!”

미라는 은행 청원경찰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한주 말 안 들으면 저기 경찰 아저씨가 '이놈' 한다.”

한주는 청원경찰을 겁먹은 눈길로 바라보며 이내 잠잠해진다.

그 모습을 본 청원경찰이 한주에게 웃으며 다가와 사탕을 건넨다.


미라가 대출 안내 팸플릿을 챙기며 창구직원에게 말한다.

“그러면 여기 적혀 있는 서류들을 챙겨서 오면 되지요?”

“네, 그렇게 하시면 되어요.”

미라는 상담 직원과 인사한 후 한주의 손을 잡고 은행을 나선다.



미라가 택시에서 내린다. 택시 안에 있는 한주도 미라의 손에 안겨 내린다. 그리고 미라는 부동산 사무실로 한주의 손을 잡고 들어간다. 

잠시 후, 부동산 사무실에서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나온 미라, 한주를 등에 업고 바삐 걸어간다.

미라는 부동산 중개인과 아파트 안으로 들어와서 아파트 내부를 살펴본다.

한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미라의 손을 잡고 옆에 서 있다.



늦은 저녁 가족들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가운데 미라가 현수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도 복덕방에 들러서 집을 좀 알아봤어요.”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

“아직은요. 좀 더 알아보려고요.”

“여의찮으면 주말에 같이 돌아보던지?”

미라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현수, 그러나 미라는 그것이 사실 더 힘들다.

“그러면 혜진이 하고 인주도 데리고 다녀야 하는데 오히려 힘들어요. 얘들이 유치원 간 사이에 알아보는 게 편해요.”

TV를 보던 혜진이 미라의 말에 호기심을 보이며 미라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엄마, 나도 가보고 싶어.”

“집 보러 다니는 일이 얼마나 힘든데, 안 돼.”

조심스럽게 혜진의 바램을 거부하는 미라, 그러나 쉽게 물러설 혜진이 아니다.

“한주도 다니잖아?”

“한주는 유치원에 안 가니까 할 수 없이 데려가는 거지.”

“한주랑 같이 다니면 되잖아,”

미라가 혜진에게 양자택일의 강한 수를 던진다.

“그럼, 너도 유치원 그만두고 엄마랑 집 보러 돌아다닐래?”

강력한 필살기, 어리광을 부리는 혜진.

“으으으응~, 집 보러 다닐래.”

미라가 웃으며 혜진을 달랜다.

“엄마가 일 다 마치면 그때 집 보러 가자.”


혜진을 달랜 미라는 현수에게 말을 이어간다.

“내가 말했던 서류 준비하고 있죠? 당신이 은행 갈 때 그게 있어야 해요.”

“내가 직접 가야 해?”

“예.”

“그날 월차를 써야겠네.”


여전히 TV에 눈을 꽂고 있는 인주. 

현수는 바닥에 놓인 공룡 카드를 한 장 집어서 들며 묻는다.

“인주야, 이 공룡 이름이 뭐야?”

TV를 보는 인주가 공룡 카드를 힐끗 본 후 다시 TV로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파라사우롤로프스.”

“역시 인주는 천재야, 어떤 놈이 우리 인주를 무식하다고 하는 거야.”

한주도 질 수 없다는 듯 나선다.

“아따 우따빠야.”

공룡 이름을 당당하게 갈아치우는 한주를 보며 현수가 감탄하듯 말한다.

“그래, 우리 한주 보고 ‘무식의 지존’이라니, 그렇게 말하는 놈이 대체 누구야?”

현수는 그렇게 말해 놓고 웃는다.



미라는 한주를 안고 은행 영업장 의자에 앉아 있다.

은행 상담 창구 앞에 앉아 있는 현수는 상담 직원이 내민 서류에 서명한다. 그리고 그 서류를 다시 상담 직원에게 건네자 상담 직원이 웃으며 말한다.

“이제 다 되었어요. 대출 심사를 마치는 대로 통장에 대출금이 입금될 거예요.”

“예,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미라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간다.


“다 마쳤어요?”

대출 상담을 마무리 지은 현수를 보며 미라가 묻는다.

“응, 잔금은 언제 치르기로 했어?”

“이번 주 금요일에요.”

“이사 갈 날이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이사를 위한 대출이라는 고비를 넘긴 미라가 웃으며 말한다.

“당신이 한주 데리고 집에 먼저 가세요, 인주를 유치원에서 데려올게요.”

그 말을 듣고 현수가 말한다.

“내가 인주 데리러 갈게.”

“그러면 혜진이도 함께 데려오세요.” 

한주 손을 잡은 미라와 현수가 은행 영업장을 나선다.



현수가 인주 다니는 유치원 앞에서 다른 아줌마들과 함께 기다린다.

이윽고 유치원에서 나오는 인주.

“인주야!”

현수가 부르는 소리에 인주는 의외라는 듯 현수를 쳐다본다.

“어, 아빠?” 

“아빠가 와서 놀랐어?”

“응. 그런데 아빠 회사 안 갔어?”

“오늘 은행 가느라 회사에서 빨리 왔어.”

인주는 옆에 있는 유치원생에게 자랑하듯 말한다.

“우리 아빠야.”

인주에게서 아빠라는 가치를 인정받는 현수는 가슴이 뿌듯하다.

그 옆의 유치원생 엄마가 인주에게 웃으며 말한다.

“어머, 인주는 오늘 아빠가 오셨네.”

인주가 자랑하듯이 말한다.

“예, 우리 아빠예요.”

인주의 말에 현수는 묵직한 책임감 같은 것이 밀려오는 것을 느낀다.

현수는 유치원생 엄마에게 눈인사한 후 인주와 걸어가며 말한다.

“아빠가 오니 좋아?”

“응, 좋아.”

현수와 인주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간다.


현수와 인주가 손을 잡고 차도 옆 인도를 걷는다.

인주가 걷던 길을 멈추며 현수에게 말한다.

“아빠, 누나 버스 여기에서 서.”

“버스 언제 와?”

“기다리면 와.”

현수는 인주에게 과자라도 사주고 싶어 물어본다.

“인주는 점심 먹었어?”

“응, 유치원에서 먹었어.”

현수는 단둘이 있는 네 살 인주가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 들 앞으로 노란색 소형 유치원 버스가 도착하고, 그 버스에서 노란 유치원 모자를 쓴 일곱 살 혜진이 내린다.

“어? 아빠!”

현수는 혜진이 쓴 모자를 보면서 말한다.

“이거 유치원 모자야?”

“응, 오늘 회사 안 갔어?”

“응, 오늘 은행에 가느라 회사에서 조퇴했어.”

“은행에 왜 갔어?”

“큰 집으로 이사 하려고 은행에 돈 빌리러 갔어.”

“우리 언제 이사 가?”

“다음 주에 이사 갈 거야.”

혜진이 현수의 손을 잡고 집 반대 방향으로 끌고 가려한다.

“왜 이리로 가?”

“아빠, 팬시점 가자.”

‘여우, 여우, 요 여우’ 하며 현수는 속으로 외친다.

혜진은 현수의 손을 잡고 이끌고, 현수는 인주의 손을 잡고 끌려간다. 그러면서 현수 나름대로 반항을 해본다.

“혜진이 장난감 사면 엄마에게 혼나지 않을까?”

“아빠가 사다 주면 혼 안 나.”

당당히 말하는 여우 같은 혜진, 그 말을 들은 현수가 다시 말한다.

“그게 아니고 아빠가 엄마에게 혼나지 않을까?”

“아빠는 엄마가 무서워?”

“응, 무서워.”

혜진은 의외라는 듯 현수를 바라본다.

그 말을 들은 인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아빠, 나는 장난감 사다 달라고 안 할게.”

“그래, 효자는 인주밖에 없다.”

효심 경쟁에서 밀리는 혜진, 여우같이 말한다.

“아빠, 그러면 조금만 살게.”

현수는 웃으면서 혜진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혜진이 팬시점 안에서 이것저것 만지는 동안 인주는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공룡 피규어를 바라본다.

이것을 본 현수가 인주에게 묻는다.

“이 공룡 이름이 뭐야?”

“트리 케라톱스.”

“이 공룡 좋아?”

현수의 말에 인주가 황급히 대답한다.

“아니야 아빠, 그냥 보는 거야.”

“이것 살까?”

“…”

공룡 피규어를 사고 싶은 눈치의 인주는 대답을 안 한다.

현수는 웃으며 인주가 보고 있는 공룡 피규어를 집어 들고 계산대 위에 올린다. 그리고 물건을 고르고 있는 혜진을 향해 말한다.

“빨리 안 고르면 아빠 간다.”

혜진이 애원하듯이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 줘. 아빠,”

혜진은 두 손에 투명 스티커를 하나씩 들고 무엇을 고를까 고민한다.

장난기가 발동한 현수, 혜진을 보고 웃으며 말한다.

“아빠가 셋 셀 때까지 골라.”, 

“아, 아빠~.”

현수가 천천히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양손에 스티커를 들고 있는 혜진을 보며 현수가 말한다.

“아직 못 골랐어? 그냥 가자.”

혜진은 어깨를 흔들며 투정을 부린다.

“아~, 아빠~.”

혜진은 들고 있는 것 중에 무엇을 고를까 고민한다,

그것을 보고 현수가 놀리듯이 다시 말한다.

“자, 그럼 다시, 아빠가 셋 셀 때까지 골라.”

그러면서 빠르게 숫자를 세는 현수.

“하나둘셋!”

혜진은 들고 있던 스티커 하나를 아쉬운 듯 내려놓고 나머지 하나만을 들고 현수에게 다가온다.

“아빠, 이거!”

현수는 혜진이 건넨 스티커에 붙은 가격표를 본다. 500원이라 적힌 가격 표시. 

현수는 혜진에게 웃으면서 말한다.

“혜진아, 한 개 더 골라.”

“정말?”

혜진이 상품이 놓인 자리로 돌아가 조금 전에 포기했던 스티커를 들고 온다.

현수는 웃으며 인주의 공룡과 함께 물건값을 치른 후 팬시점을 나선다.



현수가 혜진과 인주를 앞세우고 현관으로 들어오자 미라가 반갑게 맞이한다.

“혜진이 하고 인주, 유치원 잘 갔다 왔어요?”

“엄마, 아빠랑 오다가 스티커 샀어.”

혜진이 손에 들고 있는 스티커를 자랑하듯 흔들어 보인다.

“인주는 뭐 샀어?”

인주는 현수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자 철없는 혜진이 말한다.

“인주는 공룡 인형 샀어.”

그 말에 미라가 인주에게 어르듯이 말한다.

“인주는 공룡 샀어요~?.”

인주는 현수에게 불똥이 튈까 봐 대답하지 않는다.

옆에 있는 현수가 실토하듯이 말한다.

“삼천 원짜리.”

미라가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가자 혜진도 따라 들어가며 미라에게 묻는다.

“엄마, 우리 언제 이사 가?”

“다음 주에 이사 갈 거야.”

“엘리베이터도 있어?”

“응, 이번 주 토요일 집 보러 가자.”


현수는 공룡 피규어를 들고 있는 인주의 신발을 벗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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