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러브 코딩 45화 - 직장 상사의 콤플렉스
메모지에 계약자명, 피보험자명, 보험료, 보험금 등의 항목명이 적혀 있다. 민수는 그 메모지를 보며 온라인 화면 레이아웃을 종이 위에 그리고 있다. 그렇게 해서 다 그린 레이아웃을 바라보는 민수는 항목명들을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한다.
종이 위에 그려진 레이아웃이 어느 정도 완성되자 민수는 그것을 보며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다. 종이 위에 그려진 화면 레이아웃이 실제 단말기에 펼쳐진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민수, 다시 키보드를 치며 화면을 변경한다. 그렇게 한나절의 시간이 흐른다.
민수는 모니터 펼쳐진 온라인 화면을 만족스러운 듯이 바라보다가 명선에게 묻는다.
“저 홍대리님, 이 화면 어때요?”
명선이 민수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묻는다.
“벌써 프로그램을 짠 거야?”
“우선 온라인 화면 레이아웃만 코딩했어요. 실제 화면은 아닙니다.”
명선은 한동안 민수가 만든 화면을 쳐다본 후 말한다.
“화면이 타이트하긴 한데 뭔가 짜임새는 없어 보여.”
명선의 지적에 민수 화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말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민수는 명선을 바라보며 민망스러운 듯이 웃은 후 다시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다.
점심시간이 되어 명선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식사 안 해?”
“해야죠.”
민수도 자리에서 일어나 팀원들을 뒤따라간다.
구내식당 테이블에 앉은 민수, 대각선으로 앉은 영길이 민수에게 묻는다.
“재보험 처리 뱃치 시스템에 신상품 반영하는 것은 잘되고 있어?”
“지금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말하지 않았어?”
“테스트 끝나면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무미건조한 말투로 대답한 민수는 눈길을 식판에만 고정한 채 식사한다. 다른 사람들도 말없이 식사한다. 그렇게 냉랭한 분위기가 식사 시간 내내 이어진다.
사무실로 돌아와 모니터를 보며 일하는 민수를 영길이 부른다.
“민수씨, 작업한 것 좀 봅시다.”
민수는 프로그램 리스트와 지침 그리고 시스템 변경 의뢰서를 들고 영길에게 건넨다. 영길은 프로그램 리스트를 보며 말한다.
“프로그램 리스트는 필요 없고, 정리해 놓은 자료를 좀 보여줘.”
뭔가 뼈가 있는 듯한 영길의 말투. 민수는 말없이 매뉴얼을 펼쳐서 그가 새로 작성한 시트를 영길 앞에 내민다. 그것을 살펴보는 영길. 그리고 다시 시스템 변경 의뢰서를 보면서 민수가 정리한 시트를 보며 대조한다. 영길이 문서를 보는 동안 민수는 취조받듯이 영길 옆에 무표정하게 서 있다. 꼬투리를 잡으려고 문서를 살펴보는 영길과 영길의 그런 모습을 쳐다보는 민수, 둘 사이에 긴장이 흐른다. 한참을 살펴보던 영길이 민수에게 담담하게 말한다.
“잘했네.”
“감사합니다.”
민수 역시 무덤덤하게 말한다.
“언제 변경 신청할 거야?”
“현업 확인 후에 변경 신청할 예정입니다.”
“수고했어.”
무미건조하게 말한 영길이 매뉴얼을 민수에게 건넨다. 민수는 책상에 놓인 프로그램 리스트와 작업의뢰서를 마저 챙겨 들고 자리로 돌아온다. 추궁받은 듯한 기분이 드는 민수는 그의 얼굴에 불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화가 난듯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는 민수, 뭔가 결심한 듯 자세를 가다듬고 본격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민수는 말없이 키보드를 치는 가운데 저녁으로 시간이 이어진다.
“퇴근 안 해?”
명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민수에게 묻는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요?”
“인상 좀 펴고 일해, 옆에서 보기 무서워.”
“아, 예….”
그제야 민수는 웃음을 보인다.
“무슨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해?”
“부장님이 시키신 일을 하고 있어요.”
“화면 설계가 끝난 거야?”
“아니요, 화면 설계만 잡고 있다 보면 시간만 갈 것 같아서요 그래서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것부터 먼저 코딩해 놓으려고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 내일 봐.”
“예, 안녕히 가세요.”
민수는 일어나서 명선에게 인사한 후 다시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다.
늦은 시간까지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치던 민수가 기지개를 켜며 의자에 몸을 기댄다. 그리고 전화기를 보며 잠시 생각하던 민수는 모니터를 끄고 사무실을 나선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여 프로그램을 코딩하던 민수가 의자에 앉은 채 뒷줄에 있는 소라에게 다가가서 앉는다.
“소라씨, 보험계약 부활 연체 이자는 어떻게 계산해요?”
“부활 연체 이자 계산하는 모듈이 있어요, 왜 그러시는데요?”
“지금 개발하는 온라인 화면에 나오게 하려고 그러거든요.”
“아, 그러면 이 프로그램을 참고하세요, 이 프로그램 안에 모듈이 들어 있어요.”
소라는 민수가 들고 온 메모지에 관련 프로그램을 적어준다.
“이쁜 소라씨, 고맙습니다.”
“이쁘면 하면 뭐해요, 밥도 안 사면서.”
“술 한번 마셔요.”
민수는 그렇게 웃으며 말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목요일 아침, 아침 일찍 출근한 민수는 작성한 주간보고서를 영길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잠시 후 영길이 출근하고 민수가 올려놓은 주간보고서를 본다. 그리고 일하고 있는 민수를 보며 묻는다.
“민수씨, 이거 뭐야?”
“예, 주간보고서입니다.”
민수는 간단하게 말한 후 다시 키보드를 치며 프로그램 코딩에 열중한다.
‘보험계약 조회화면 개발’ 단 한 줄로 적혀진 주간보고서.
주간보고서를 본 영길은 일하고 있는 민수를 매섭게 바라본 후 아무 말 없이 주간보고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민수는 키보드 치는 것을 멈추고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뭔가 곰곰이 생각한다. 그리고 옆자리에 있는 명선을 바라본다.
“홍대리님, 이 화면 어때요?”
명선은 민수의 모니터에 펼쳐진 온라인 화면을 바라보며 말한다.
“벌써? 민수씨 손이 정말 빠르네.”
“아직도 프로그램 코딩 중인 걸요.”
“자기는 완전 전산 체질이야.”
명선의 추켜세우는 말에 민수가 민망스러운 듯 웃으며 말한다.
“그런데 화면 디자인이 별로라서요.”
“화면이 좀 빡빡하긴 한데 자꾸 보다 보면 눈에 익겠지.”
“프로그램 짜면서 어떻게 할 건지 생각을 해봤는데요.”
“어떻게?”
“계약 상태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요. 그러니까 보험료가 연체된 계약은 부활 보험료를 보여주고, 악관 대출이 있으면 약관 대출 이자 납입 상태 등을 보여주는 식으로요, 그러면 온라인 시스템 사용자가 이용하기 편할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그런 로직들을 다 코딩하면 프로그램이 복잡하고 무거워지지 않을까?”
“그래서 그 항목들은 관리하는 팀의 모듈 프로그램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 모듈이 있으면 링크(link : 연결)해서 데이터를 나타내면 되지 않을까요?”
“맞아, 그러면 힘 안 들이고 할 수 있겠네.”
민수는 머리 뒤로 손깍지를 끼고 화면을 쳐다본다.
프로그램 코딩하던 민수는 메모지를 들고 지급팀의 일환을 찾아간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응, 웬일이야?”
“보험계약 약관 대출에 대해서 물어보러 왔습니다.”
“악관 대출? 아…. 약관 대출 그게 문제야.”
일환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뭐가 문제인데요?”
“내가 약관 대출받아서 술 사다 먹었는데 마누라는 아직 몰라,”
민수는 일환을 보고 웃으며 말한다.
“형수님이 알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약관 대출 이자 납입 안내장이 집으로 발송되니까 문제지.”
“정말 문제네요.”
위로하듯 말하는 민수에게 일환이 다시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런데 그 안내장 발행 작업을 내가 해야 해.”
“자기 비리를 자기가 알려야 한다니, 비극이네요. 슬픕니다, 선배님.”
놀리듯 말하는 민수. 일환은 민수가 찾아온 이유를 묻는다.
“그러게, 그런데 약관 대출 무엇 때문에 왔어?”
“온라인 화면에 약관 대출 사항을 나타내려고 하거든요, 프로그램 모듈을 얻으러 왔어요.”
일환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친다. 화면에 나타난 프로그램 코드를 보며 메모지에 프로그램명을 적어서 민수에게 건넨다.
“이 프로그램을 참조해서 보면 될 거야.”
“감사합니다, 이 프로그램 보고 모르는 거 있으면 좀 여쭤보러 올게요.”
민수는 메모를 건네받고 돌아서려다가 다시 돌아서서 일환을 보며 말한다.
“선배님이 약관 대출받은 계약 있잖아요, 그거 해약하면 되잖아요.”
“안 그래도 그럴까 생각 중이야.”
“해약하면 그 해약환급금으로 또 술 사 먹으면 되잖아요.”
일환은 민수의 말을 듣고 웃는다.
민수가 모니터를 보면서 키보드를 치고 있는 가운데 영길이 민수를 부른다.
“민수씨, 좀 봅시다.”
민수가 영길의 자리로 다가간다.
“주간보고서에 단순히 ‘개발 중’이라고 적어 놓으면 내가 어떻게 알겠어. 좀 더 성의껏 적어내면 안 돼?”
“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모호하게 대답하는 민수.
“그러니까 프로그램 몇 개 중에 몇 개를 개발했다는 진척도를 넣어서 적어줘야지 내가 부장님에게 보고를 할 수 있잖아.”
“온라인 화면 하나를 개발하는 것이라 프로그램이 하나뿐이라서요.”
영길은 민수 말에 반박하지 못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한다.
“개발하고 있는 화면을 좀 볼 수 있어?”
“예, 테스트 온라인에서 아이씨아이씨 (ICIC)를 치시면 볼 수 있습니다.”
영길이 민수를 쳐다보며 빈정거리듯 말한다.
“아이씨 아이씨? 불만이 많은가 보네, 아예 아이시팔 (IEC8)로 하지 그래.”
영길의 꼬투리 잡는 말에 민수는 침착하게 대답한다.
“지금 있는 ICIQ에서 Q를 컴프레스(compress)라는 의미의 C로 바꾼 것입니다.”
“콤플렉스?”
“콤플렉스가 아니라 컴프레스, 요약이라는 뜻입니다.”
민수의 말에 영길이 애써 태연한 척하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민수가 개발한 화면이 영길의 모니터에 펼쳐진다. 민수는 가지고 온 메모지를 영길 앞에 놓는다.
“테스트 증권번호입니다, 아직 코딩이 끝나지 않아 데이터가 다 뜨진 않습니다.”
영길은 민수가 내민 증권번호를 보며 키보드를 친다. 개발 화면에 보험계약 내용이 전개된다. 그 화면을 찬찬히 살펴본 영길은 다른 증권번호도 입력하며 개발 화면을 점검한다.
“화면이 왜 이리 촌스러워?”
“일단 화면 형태를 잡아놓고 계속해서 화면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려고 합니다.”
“최종 설계안도 없이 개발하고 있는 거야?”
뭔가 하나라도 꼬투리를 잡겠다는 영길. 민수는 영길 앞에 놓인 테스트 증권번호가 적힌 이면지 한 페이지를 넘겨 설계한 온라인 화면을 보여준다.
“이것이 설계안인데 화면 배치를 계속 조정하고 있습니다.”
민수를 무시하듯 설계안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영길은 한동안 모니터에 뜬 개발 화면을 바라보다가 툭 던지듯 말한다.
“알았어.”
민수는 아무 말 없이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분을 삭이고 있던 민수는 여섯 시가 되자 단말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에서 나간다. 잠시 후 민수 자리에 놓인 전화기가 울리고 소라가 대신 그 전화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