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러브 코딩 44화 - 술 마시는 이유
민수는 출근 채비를 하고 방에서 나온다.
“회사 다녀오겠습니다.”
설거지하던 어머니가 돌아다보며 말한다.
“오늘도 늦나?”
“모르겠어요, 저녁을 먹고 올지도 모르죠.”
“저녁이 아니고 술이겠지.”
민수는 멋쩍은 듯 싱긋이 웃으며 구두를 신는다.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색싯감이라도 만나고 늦게 오면 내가 잔소리를 왜 할까….”
“그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요.”
“제발 결혼 좀 해라, 엄마가 이 무슨 꼴이니? 아침마다 깨워서 회사를 보내는 엄마 좀 살려다오.”
민수는 어머니가 하는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집을 나선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치고 있는 민수에게 영길이 묻는다,
“민수씨, 주간보고서 다 썼어?”
“오후에 작성할 예정입니다.”
“지금 좀 줄 수 있어?”
보통 목요일 오후에 작성해서 팀장에게 제출하는 주간보고서 오전부터 보채는 영길. 민수는 책상 서랍에서 주간보고서 양식을 꺼내며 말한다.
“지금 작성해서 드리겠습니다.”
영길은 모니터에 펼쳐진 주간보고서 작성 화면을 보며 말을 이어간다.
“저번 주에 보험서비스부에서 올라온 데이터 리포팅은 다 끝났어?”
“거의 다 마쳐갑니다.”
“그것은 완료로 표시할게, 그리고 재보험 처리하는 뱃치 시스템에 신상품 반영 작업은?”
“일정 여유가 있어서 아직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영길이 키보드를 치면서 민수에게 말한다.
“우선은 급한 데이터 리포팅하고 재보험 처리시스템 변경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주간보고서를 좀 적어서 줘,”
“예.”
민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주간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보험서비스부 혜영이 민수에게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데이터 리포트 가지러 왔어요.”
“아, 빨리 올라오셨네요,”
민수는 데이터 리포트 리스트를 혜영에게 건네며 묻는다.
“계약 조회 화면을 어떤 용도로 많이 보시나요?”
민수의 뜬금없는 질문에 혜영은 무슨 뜻인가 싶어 되묻는다.
“계약 조회 화면요?”
“예, ICIQ 온라인 시스템에서요.”
“아, 그 ICIQ 말이죠?, 고객에게서 전화가 오면 많이 봐요.”
“어떤 전화가 많이 오는데요?”
“보험료 연체라든가, 실효 계약 부활, 그리고 약관대출 연체 이자 등등 대중없어요.”
“그것을 화면별로 찾아보면서 통화하겠네요?”
“예.”
“그 외 다른 것은요?”
“글쎄요, 그런데 왜 물으시는데요?”
“그냥요, ICIQ에서 많이 보는 항목이 뭔가 싶어서요.”
“그야 당연히 보험료 납입 사항을 제일 많이 보죠, 종납년월과 최종납입일자를 보고 보험료 납입 사항을 판단해서 보험료 연체 보험료를 계산하고, 부활 화면을 찾아서 보게 되니까요?”
“그렇겠네요.”
진지하게 말하는 민수를 보며 혜영이 묻는다.
“선생님, 새로 옮긴 팀이 마음에 드세요?”
민수는 대답 대신 웃는다.
“안녕히 계세요.”
혜영이 인사하며 나가는 모습을 본 영길이 민수에게 묻는다.
“재보험 처리시스템에 신상품 반영 작업은 시작했어?”
“이제 시작할 예정입니다.”
“처음 하는 업무니까 빨리 손대는 것이 좋을 거야.”
“예.”
“그리고 부장님이 시킨 계약조회화면 개발은 당장 급한 것이 아니니까 내가 말한 것에 신경 쓰도록 해.”
“알겠습니다.”
민수를 은근히 쪼아대는 영길. 민수의 마음이 불편한 듯 모니터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옆에 있는 명선이 민수를 보며 묻는다.
“부장님이 뭘 시켰는데?”
“계약정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화면을 개발하라고 시키셨어요.”
“자기한테?”
“예.”
명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민수에게 나지막하게 말한다.
“아, 그래서 백대리가 저렇게 신경이 곤두서 있구나.”
그 말을 들은 민수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명선의 말.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겠다, 나한테도 어려운 일인데.”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할까요?”
“먼저 이 화면에 대한 개념부터 먼저 설정해야겠지.”
“개념 설정요?”
민수가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응,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이 온라인 화면을 제공할 것인가 하는 것.”
“예….”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몰라 자신 없는 민수의 모습을 보며 명선이 말한다.
“하다가 모르는 것 있으면 말해.”
민수는 명선에게 대답 대신 웃음을 지어 보인다.
민수는 재보험 처리시스템 매뉴얼과 모니터를 보면서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있다.
보험서비스팀을 지나가던 서부장이 뭔가 생각난 듯 영길에게 묻는다.
“백팀장, 내가 말했던 거 잘 되고 있어?”
서부장의 말에 영길이 당황한다.
“예,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
서부장이 씨익 웃으며 가던 길을 간다. 영길이 민수를 부른다.
“민수씨.”
“예?”
“부장님이 시키신 것 하고 있어?”
“아직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빨리하라고.”
부장 말 한마디에 자기가 했던 말을 뒤집는 영길, 민수는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예.”
성의 없이 대답한 민수는 영길을 향했던 눈길을 다시 모니터로 돌린다. 하던 일을 계속하는 민수, 영길은 민수의 그런 모습을 불만스럽게 바라본다. 민수와 영길의 어색한 대화를 듣는 명선은 모니터에 눈길을 꽂고 있다.
민수는 일이 잘 안 되는지 머리 뒤를 손깍지 낀 손으로 받쳐 들고 모니터를 바라본다. 그 모습을 본 명선.
“커피 한잔할까?”
“예, 좋아요.”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명선을 따라간다.
커피 자판기 앞. 명선의 말.
“여기 와서 적응하려니 힘들지?”
“새로운 일이니까요.”
“아니, 분위기에 적응하는 거.”
대답 대신 웃는 민수, 명선을 그런 미수를 보며 말을 이어간다.
“처음에는 다 그래, 그러니 대충 맞추어 주면서 해.”
“조금 힘들기는 해요.”
“응, 사실 또라이야. 부딪히면 자기만 힘들어져.”
그 말을 들은 민수가 웃으며 묻는다.
“대리님도 힘드셨어요?”
“왜 힘들지 않았겠어?”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데요?”
“당연히 생각 차이 때문이지.”
“생각 차이요?”
“생각하는 차이 때문에 분석 설계할 때 많이 부딪혀, 이게 잘못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거든.”
“그럴 때는 어떻게 해요?”
“나는 이제 부딪히기 싫어서 해달라고 하면 그대로 해 줘, 나는 외주 개발자잖나.”
“아, 예….”
민수는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개발할 온라인 화면에 들어갈 항목을 정리하고 있는 민수, 메모지에 글자를 섰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며 일에 집중한다. 민수는 뭐가 잘 안되는지 메모지를 명선에게 보여주며 묻는다.
“홍대리님, 이 항목들을 한 화면에 다 넣을 수 있을까요?”
명선은 민수가 내밀은 메모지를 흩어본 후 말한다.
“글쎄, 텍스트 화면에 이 많은 항목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 요즘 나오는 그래픽 화면으로 만들면 몰라도.”
“이것도 최소한으로 줄인 것인데…. 부장님께서는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화면을 원하시거든요.”
“쉽지 않을 텐데…. 민수씨가 처음부터 힘든 일을 맡은 것 같아.”
명선이 우려하듯 말한다.
영길이 퇴근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 그럼 수고해.”
“예, 내일 뵙겠습니다.”
영길이 사무실을 나서자 민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펼쳐놓은 이면지에 메모하기 시작한다. 낮에 혜영에게 들었던 입금과 연체와 부활 등의 업무명을 나열한다. 모니터를 통해 온라인 화면을 보면서 각 업무에 대한 주요 항목을 정리한다. 그리고 메모해 놓은 문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민수.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퇴근한다.
“퇴근 안 하세요?”
소라는 사무실을 나서다가 생각하느라 멍하니 앉아 있는 민수를 보며 묻는다.
“예, 퇴근해야죠.”
민수는 무심히 말하다가 고개를 들며 소라를 부른다.
“참, 소라씨, 입금팀에는 어떤 전화가 제일 많이 와요?”
“그야 입금 여부 확인이 제일 많죠. 그리고 영수증 발행 여부하고요.”
“영수증 발행 여부요?”
“실효되면 영수증 발행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실효 여부라는 것이 중요하네요?”
“그렇죠.”
고맙다고 말하는 민수에세 소라가 묻는다.
“오늘은 저녁 약속 없으세요?”
“글쎄요, 오늘은 술 멤버가 안 꾸려지네요.”
“아니요, 술 말고 데이트요?”
“데이트? 하하, 데이트가 쉬운 게 아니잖아요. 소라씨는 데이트 안 해요?”
“애인가 있어야 데이트하죠.”
“소라씨처럼 예쁜 사람이 왜 애인이 없어요?”
소라가 반색하며 묻는다.
“어머, 저가 예쁘세요?”
그 말에 민수가 당황하며 얼버무리듯 말한다.
“예쁜 편이죠.”
“예쁜 편이라고요?”
그러면서 쏘아보는 소라. 민수는 민망한 듯 웃는다.
“안녕히 계세요.”
소라가 민수에게 내뱉듯이 인사하고 쌩하니 사무실에서 나간다.
소라가 나가자 민수는 전화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종이에 뭔가를 끄적거린다. 그러나 집중이 잘 안 되는지 다시 몸을 젖혀 의자에 기댄다. 한동안 전화기를 보던 민수는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건다. 상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상구니, 나 민수다.”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민수는 툭 던지듯 말한다.
“재미가 없다.”
“어떻게 재미가 없는데?”
“이것저것 다, 회사도 재미없고, 집에 가도 재미없고….”
“너 그 대학 여자친구는? 그 친구하고 잘 안돼? 뭐 잘 되는 것처럼 말하더니?”
“유학 갈지도 모르는데 잘 되고 안 되고가 어디 있어?”
“그럼, 그냥 바람이나 피우든지?”
상구의 말에 민수는 픽 웃으며 말한다.
“바람피우는 것도 너처럼 기술이 있어야 피우지, 아무나 못 피워.”
민수의 말에 상구는 한바탕 웃은 후 말한다.
“야, 시끄럽고, 빨리 건너와.”
“알았어, 지금 그리로 갈게,”
민수는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선다. 신계약팀을 지나던 민수는 잠시 멈춰서서 신계약팀의 빈자리를 무심히 바라본다.
민수는 오늘도 이렇게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