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달콤 카스텔라

11. 둥지

by 금봉



<달, 그림자>

11화 등장인물



1. 코하네- 신페이와 후미코의 딸, 츠키노의 손녀

2. 신페이- 코하네의 부(군인)

3. 후미코- 코하네의 모

4. 츠키노- 신페이의 모

5. 아키라- 츠키노 집안 관리인(유키코의 부)

6. 유키코- 아키라의 딸

7. 노아- 예수(별명)라 불리는 유키코의 연인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yMDA1MjNfODEg%2FMDAxNTkwMjA0NDUyNjE3.-bmrSUqIOP8D9KFB1m_sUUw6Azto0k4sYCYy-e1Zobkg.7VwooBp0j7O4WB10_XxCRFMTLUMkqYXs6J-IEEArK6cg.JPEG.byunsawoo%2Fspiritshomecoming04.jpg&type=sc960_832 출처:영화 귀향




일본의 패망으로 막을 내린 전쟁의 세월이 지나고 있었다.

조금씩 남아 번지는 붉은 모래바람은 아직도 검은 기억을 안은 채,

남은 사람들의 입안을 토악질로 부추겼다.

행한 자와 당한 자의 역사는 다르게 남을 것이고

행한 자의 단맛은 세월을 견딜수록 썩어 버려 독약으로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코하네의 할머니 츠키노는 고단한 세월을

한국인 남편과 견뎌내며 온갖 오해와 수치심을 견디어 내야 했다.

하지만, 전쟁의 대물림은 한국인 아내를 맞이한 아들의 세월까지 갉아먹었다.

츠키노는 대단한 재력을 가진 아버지가 있었고,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주던 다카하시 아키라(유키코의 아버지)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곁에 있었다.


아키라의 집 안은 대대로 츠키노의 집안을 보살펴 왔다.

츠키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아키라의 역할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하지만 츠키노가 사망한 후,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그녀의 자리는 사라졌고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키라는 가끔 츠키노의 집을 들러

신페이와 후미코의 안부를 확인할 뿐이다.


신페이(코하네의 아버지)와 후미코(코하네의 어머니)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자신들이 낳은 딸 코하네를 끔찍이 아끼며 사랑했다.

방법은 달랐지만 누가 뭐래도 후미코는 코하네의 엄마였다.


아키라를 가끔 마주칠 때마다

그들 부부의 딸 코하네는

아키라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곧 잘 따랐다.

어쩌다 잠을 자고 갈 때엔 아키라 곁에 꼭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마다 울고불고하는 코하네를 떼어 놓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아키라는 꽤 오랫동안 진짜 가족들을 찾지 못했다.

아카라의 아내가 죽었고, 정작 관심을 줘야 할

진짜 가족에겐 무심했던 그는 자식들에게 온갖 원망을 들었다.

츠키노의 집 안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그는 진짜 가족들에게 그렇게 무심할 수가 없다.

물론, 가족들의 생활비와 금전적인 것들은 모두 그가 맡았다.

아키라의 아내와 자식들에겐 돈이란,

애초부터 쓸모없는 것이었다.

아내는 남편의 살가운 목소리조차 들어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버렸으니 말이다.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아키라는 마시지 않았던 술에 절어 울음을 삼켰다.


후미코가 갑자기 코하네의 곁을 떠났을 때

훌쩍 성장한 코하네를 보았다.

코하네의 명랑하고 독특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원망과 슬픔을 가득 실은 눈동자만 남아 있었다.

가슴에 못이 박힌 것처럼 오랜 통증과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내의 죽음도 자신의 탓, 그들의 삶도 자신의 탓만 같았다.


츠키노의 마지막 눈빛은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더한 죄책감을 느꼈다.

아키라는 다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신페이 또한 후미코의 죽음으로

커다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기에

코하네가 더욱 위험에 처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생각만으로 미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신페이는 아키라의 가족을 잘 알고 있었고,

아키라가 어머니를 연모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지나친 아키라의 발걸음을 극구 말리며 기쁘게 환영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또 시간은 그들을 뿔뿔이 흩어지도록 만들었다.


후미코가 떠난 지 얼마 안 된 시간에

신주쿠로 신페이의 편지가 도착했다.

아키라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 신페이가

스스로 그런 짓을 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 없었다.

하지만 신페이는 자신의 힘으로

딸 코하네와 함께 하는 삶을 끝내 버린 것이다.

코하네를 그 큰 집에 혼자 버려둔 채,

아키라에게 편지 한 통으로 코하네를 부탁했다.


아키라는 편지를 읽자마자 욕이 튀어나왔다.

코하네를 끔찍이도 아끼던 신페이가

어떻게 이런 짓을 벌였는지 그의 죽음이 안타깝기는커녕,

죽은 사람을 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키라는 며칠째 뜬눈으로 밤새며 작은 구둣방 문을 굳게 닫았다.

그는 신페이의 장례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밉고 원망스러운 신페이의 장례식엔 발을 들이고 싶진 않았다.

그는 자주자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죽일 놈 같으니라고… 쯧쯧쯧.”


아키라는 죽고 사라진 사람에게

자꾸 죽일 놈, 이라는 말을 붙이곤 했다.

그는 어쩌다, 설 잠에 들 때면

츠키노가 코하네를 불러 꽃들을 정리하던 모습을

바라보는 꿈을 꾸었다.

마치 방금 있었던 일 같아, 더욱 괴로웠다.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20131010_239%2Fcradmaser_13813617282657QDIS_JPEG%2F1.jpg&type=sc960_832



아키라는 소식도 없이 코하네를 찾아갔다.

코하네는 아키라를 보자마자 눈물 대신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건 신 뿐이라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것에 매달리지 않을 거라는 듯,

그렇게 그녀는 어른처럼 태연했다.

코하네는 츠키노의 집을 처분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남아 있던 모든 재산과 법적 문제를 정리했고 졸업을 한 후,

여러 번의 설득 끝에 그녀를 도쿄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코하네가 도쿄 생활에 적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아키라가 까맣게 모르고 지낼 정도로 그녀는 밝은 모습만 보여주었다.


츠키노에 의해서 아키라의 삶이 온전히 바뀌었던 것처럼,

아키라의 삶은 코하네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yMDEwMTJfMjY5%2FMDAxNjAyNDgzMzM4NjI3.m8ZnR2po7FdXInjt8PTPbB03O_CQKhJt-nFmjdY0stYg.vhtiUEbNn0nCDaSU0ovSHLXcAjaWY2DBmAOYjJywj6Ug.JPEG.jy9351%2F%25C4%25AB%25B7%25B9%25C0%25C7_%25B3%25EB%25B7%25A1_1-9.jpg&type=sc960_832


칙칙했던 구둣방에 눈 부신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고,

향긋한 꽃 냄새가 나풀거렸다.

곰 살 맞은 그녀의 목소리와 행동은

한시라도 듣거나 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다.


오늘도 코하네의 소리가 구둣방을 온전히 감싸 안는다.

정오의 눈 부신 햇살이 구둣방을 비추어 팔리지 않던

낡은 구두를 제법 멋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2층에서 내려오는 내내 코하네는 하품하며 재잘거렸다.


“아하암, 할아버지.”


“오냐, 잘 잔 게냐.”


“시간이 많이 지났어요.”


“괜찮아, 괜찮아.”


아키라의 질긴 가죽을 바느질하는 손가락 끝이 돌덩이처럼 딱딱해 보였다.


“할아버지, 골무를 끼워야 해요.”


아키라의 돋보기가 코끝으로 미끄러진다.


“내 손이 골무야.”


코하네는 한쪽 눈이 감긴 채 또다시 하품했다.


“아이, 참.”


바느질하던 그가 밖을 보라며 손짓한다.


“우와! 어제보다 더 풍성해졌어요.”


“그게 확인이 되더냐? 허허.”


강을 사이에 두고 만개한 벚꽃들이

서로 아름다움을 뽐내느라 입을 헤 벌리며

자신을 자랑하기가 바쁘다.


“앗, 할아버지 아침 식사는요?”


“응, 괜찮아 괜찮아.”


“죄송해요.”


코하네가 아키라의 목덜미를 팔로 껴안았다.


“나는 먹었으니, 너는 이 얼굴부터 해결해야지?”


가느다란 머리칼이 정전기로 사방으로 날렸고,

허옇게 떠 있는 얼굴을 보며

할아버지가 손가락으로 볼을 톡톡, 두드렸다.


“힛, 네엣.”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xNzAxMzBfMTc1%2FMDAxNDg1NzU4ODEwNTY1.BgDQye2fethGSYjEglr4pdATR19vz9y7TYV8IRcUWnEg.4yWsXHziI3p-1LRRhgqAbJZbmwtKuBdIpOMwvSi8JwYg.JPEG.odliko_1101%2FM0020119_002S750%252C750.jpg&type=sc960_832



코하네는 빠른 속도로 계단을 오르지만,

깃털 같은 그녀는 쿵쿵, 대는 발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녀의 방 안은 딱, 비틀어진 오각형의 아주 좁고,

낮은 다락방이다.

다행히 창은 벽 한쪽을 모두 차지할 만큼 커다랬고

그녀가 좋아하는 달빛이 꽤 잘 들어온다.


사방을 두르고 있는 좁은 선반 위에는

겉표지가 해진 제목을 알 수 없는 책들과,

여러 종류의 마네키 네코가 웃고 있었다.

낡은 책들 사이로 잘 보이진 않지만

움직이고 있는 종이 벌레들이

나름의 규칙을 지켜가며 기어갔다.


마네키의 등 뒤에는 한국어로

“고양이”라고 손수 적어 놓은 것이 보인다.

글의 모양은 균형이 맞진 않지만,

앙증맞은 모습이 진짜 고양이 같았다.

코하네가 천천히 중얼거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코하네, 입므니다.”


아키라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대학에 들어가라는 말을 매일 했다.

그녀는 또 다른 학교생활로 자신의 시작을 망치려 하고 싶지 않다고,

아키라를 설득했고 대학은 포기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해 나갔다.

뚜렷한 직업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여건이 될 때마다 가리지 않고 시간제 일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할아버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고,

아키라에게 자신이 성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의 걱정을 덜어주기에 바빴다.


언젠가는 자신의 집을 구해 독립할 테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며

미리 할아버지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연습을 매일매일 하는 중이다.


아키라에게 가족은 코하네였다.

친딸들의 불편한 심기 또한 그 몫을 했을 것이다.

어쩌다 아키라가 구둣방 비울 때면

코하네에게 나타나 온갖 불만을 토로했고,

심지어 아키라의 험담을 내지르는 것 또한 망설이지 않았다.


코하네는 당연히 자식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이해하기 힘든 건 오히려 가족을 나 몰라라 하는 듯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진짜 피붙이도 아키라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 와중에

코하네가 뭐라고 할아버지에게 신세를 지고 있으니,

당연히 자식들은 코하네가 얄미울 법도 했다.


하지만 코하네의 할머니 츠키노는

생전 아키라의 가족을 세심하게 챙겼다.

이상하리만큼 금전적인 부분에서는

더욱 그들에게 부족함 없이 나누어 주었다.

모두의 관계라는 건, 어떤 부분에서는 한 마디로

가족, 이라는 울타리로 보인다는 것이다.

코하네는 마치 츠키노처럼 그들과 적당히 관계를 만들어 가며,

그들의 이야기와 불만을 성심을 다해 들어주었다.


“코하네, 네가 알다시피 아버지는 나이가 많으셔
넌 제대로 된 일을 시작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다면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점점 힘들어져
아버지는 성인 여자를 거둘 만큼 부자도 아니고, 건강하지도 않아.”


그들은 아마도 작지 않은 아버지의 재산을 코하네가 가져갈까,

겁을 내는 모습을 하곤 했다.

그럴듯한 말로, 아키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처럼 비치다가

결국엔 돈, 이라는 단어가 항상 끝을 맺었으니 말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 츠키노가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는 것을

코하네는 모른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양심으로 봤을 때, 그들의 행동은 조금은 틀렸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코하네는 세면대에 받아 놓은 온전한 찬물에

천천히 얼굴을 담근다.

꼭, 그들이 자신에게 진저리 치는 것처럼 차가움에 놀라

고개를 바싹 들었다.

다행히 싹, 달아난 잠과 하품이다.

차가운 온도에 금세 발개진 얼굴이다.

차가운 물이 패인 얼굴에 고랑을 만들며 목으로,

가슴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큰 숨을 몰아쉬며 이번엔 더 크게 뱉어냈다.


“흠, 휴우.”


3월, 4월은 새로 태어나는 것들 천지다.

그렇게 축제가 시작된다.

코하네는 꽃의 축제에 안내서와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작은 일을 맡았다.

오늘은 축제의 마지막 날이다.

해가 질 때까지 꼬박, 서 있는 상태에서

재잘거려야 하는 일이라 고단하긴 하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늘 하늘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과 말을 섞었고

웃음을 주고받았다.

그녀를 알지 못하는 사람 앞에 선다는 건 꽤,

자존감이 높아지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학교생활 6년 동안 떠든 말 보다

더 많은 말을 한 것 같았다.

그 생각만 하면 입술을 실룩거리며 웃음이 나온다.

아마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지금의 코하네다.


마지막 날의 아침은 조금 버겁다.

목이 퉁퉁 부어오름을 느꼈지만,

할아버지에게 걱정을 안겨줄까,

부은 목을 찬물로 채우며 진정시켰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자마자 내 달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키라의 가래 섞인 목소리가 뒤통수로 들려온다.


“어허, 천천히 천천히.”


코하네가 발에 브레이크를 넣으며 뒤돌아보며 웃었다.


“코하네는 늘 괜찮아요,
할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잠깐만 잠깐, 기다려 보거라.”


할아버지는 뒤로 돌아간 스카프의 매듭을 다시 매 주더니,

아플까, 툭툭, 아닌 톡톡, 으로 등을 두드리며 격려했다.


“조심해서 다녀와.”


할아버지의 손등은 쭈글쭈글한 살들과,

불거져 나온 핏줄이 제법 잘 어울린다.

그 핏줄에선 수십 년 담배를 잡아 왔던 흔적이,

그 냄새가 배어 나온다.

코하네는 할아버지의 섞여버린 로션 향,

그리고 담배 냄새를 들이마셨다.

그건 그녀가 마음에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구실이다.


“넵.”


코하네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게 마네키처럼 웃었다.

꽤 오랫동안 멈추기를 한 낡은 구둣방의 문에서

딸랑거리는 반가운 소리가 바람을 맞는다.

강에서 잊을 만하면 가끔 올라오는 비릿한 냄새가

역할 법도 했지만,

금세 꽃향기가 번갈아 가며 후각을 자극했다.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xODAzMDRfNzQg%2FMDAxNTIwMTY5NTk4NDU3.X2z48IwiinGk7OqzQL5qgASS8Oisioml_wpORMxx4sgg.5oUk_CAlrJdR7fDpvcQZcFyu5iKAk7t8zxtkV_-I4l8g.PNG.pes4633%2FLittle.Forest.Summer.Autumn.2014.720p.BRRip.x264-PSW.mp4_000197454.png&type=sc960_832


해가 쨍, 한 하늘 위로 습한 바닷바람이 너울거린다.

유난히도 작은 그녀는 자전거를 억지로 몸에 맞춰 탄,

어린 소녀 같다.

아키라는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쑥 빼고 어정쩡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코하네는 뒤를 돌아볼 법도 했지만,

그랬다간 앞을 보지 않는다며

할아버지의 걱정을 하나 더 만들어 줄 것임을 잘 알았다.

그녀는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새하얀 원피스가 그녀의 종아리를 감싸며 팔랑거린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찢어지는 듯한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구둣방을 울렸다.

상대방이 짜증이 나도 상관이 없다는 듯,

아키라는 서두르는 법이 없다.

구둣방에 울리는 전화는 딸들의 독차지인 것을

아키라는 너무 잘 안다.

수화기를 들고도 한참을 있다가 소리를 내었다.


“………………. 여 보세요.”


“아버지, 저예요.”


아키라는 앞에 그녀가 있기라도 한 듯, 고개만을 끄덕였다.


“아버지, 유키코예요.”


“으응, 그래.”


“별일 없으시죠?”


“응, 좋다.”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유키코가 말했다.


“저, 내일 들를게요.”


“으응, 그래라.”


“내일 뵐게요.”


적막함을 애써 견딘 유키코는

언제나 수화기를 먼저 달칵, 하고 끊어 버렸다.

아키라는 구석에 박힌 작은 금고를 쓱,

쳐다보더니 한숨이 길어졌다.





“타닥, 타닥, 타닥.”


낡은 천막을 구멍이라도 내려는 듯,

굵은 빗줄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자리를 반복하며 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겨우내 얼고 메말랐던 땅에 봄비는

꽃의 생명을 흙에 묻고,

다시 피어나기를 희망하고 기대한다.


유키코가 아니, 그들이 가게를 들를 때면

코하네는 일 층에 코빼기도 비출 수 없다.

워낙, 단단하고 커다란 방패 막인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코하네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음흉하고 서늘한 웃음을 보이는

유키코의 남편은 코하네를 항상 움츠러들게 했고,

그 부분 또한 아키라는 알고 있었다.


유키코는 아키라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득하는 중이었다.

남편은 곁눈질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척하며

금고가 마치 코하네라도 되는 양, 눈이 기웃거린다.

아마, 침만 흐르지 않을 뿐이지

아주 맛있는 음식을 이미 삼켜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키코의 한숨에 아키라의 미간이 들썩인다.

아키라의 목소리는 담대했고 낮고 절도 있게 들렸다.


“유키코, 그래서 돈이 필요한 것이냐?”


유키코가 남편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고,

남편은 유키코를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협박하는 듯했다.

그때 유키코는 긴장하고 있었다.

마치 아키라에게 돈이 아닌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유키코는 마치 완벽하게 외운 듯한 대서를 어색하게 읊었다.


“아버지도 다른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으세요?”


아키라가 말했다.


“돈이 필요한 것이냐고 물었다.”


유키코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네, 죄송해요.”


유키코의 남은 양심은 그나마 남편과 같은

음흉한 것으로 물들지 않아 보였다.

그것만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이 곁을 지키는 이상,

유키코는 해결할 수 없는 잔인함을 계속 입에 달고 살아갈 것이다.

기어코 자기 행동이 양심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의 잘못을 늘어놓으며

형평성을 찾으려 애를 써 보았다.


“안 되나요?
아버진, 제게 해 주신 게 없어요
더군다나, 저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애지중지하면서
전 왜 안 되는 거예요?”


유키코는 화가 날 때면 움찔하고 움직이는

아키라의 콧수염을 기어코 살아나도록 만들었다.

아키라가 가래 섞인 기침을 뱉는다.

남편이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무언의 협박으로 유키코를 재촉했다.

아키라가 말했다.


“유키코, 넌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겠지…”


남편이 씹던 껌을 손으로 말아 쥐더니,

아키라 앞에 섰다.

보기만 해도 진득해 보이는 껌은

그의 손톱에 달라붙더니,

떨어질 생각하지 않았다.

그제야 유키코의 남편이 간사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아버님, 유키코의 요리 솜씨를 잘 아시잖아요?
아마 떼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


아키라의 기침 소리가 더욱 거칠어졌고,

위로 치켜든 아키라의 눈알은

사위의 얼굴을 보며 금방이라도 들이댈 태세였다.

남편은 움찔하며 뒷걸음치더니,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말아 쥔 껌을 다시 입안으로 구겨 넣었다.

껌의 끈적한 자국이 손톱 위에 선명하다.


“넌, 이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놈일 게다, 썩어 빠진 놈.”


아키라는 한 걸음 더 그에게 다가가 눈알을 더욱 번뜩거리며

손가락으로 그의 눈을 찌르려는 것처럼 시늉했다.


“너같이 멍청한 놈이 내 딸을 데려갔으니… 이런 이런 쯧.”


유키코가 아키라의 앞을 막아선다.


“아버지는 제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 자리에 없었어요
그런 분이 저 사람을 멍청이라고 부를 자격 없지 않나요?
아버지 자격 없는 훈계는 이미 지겹도록 들었어요.”


유키코는 마치 책을 읽듯 감정 없이 잘도 읽어 내려갔다.

또다시 그녀가 형평성을 운운하는 바람에

아키라는 성난 황소에서 송아지가 되어 버린 양,

고개를 숙이고 다 식은 커피잔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네가 바라는 대로 해 준다고,

내가 네 아버지가 되겠느냐? 허허.”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이세요.”


난로 위의 찌그러진 주전자의 물을 커피잔에 따른다.

미처 맞지 않은 초점에 물이 넘쳐 잔을 받치고 있던

아키라의 쭈글쭈글한 손을 적셨다.

뜨거운 물의 온도에 그의 골무 같은 손은 절대 반응하지 않았다.

지켜보던 남편의 눈은 조금 놀란 눈치다.

유키코의 남은 양심은 마른 수건을 아키라 쪽으로 밀어 놓게 했다.


“쿨럭, 쿨럭 고맙구나.”


유키코의 남편은 한쪽 구석에 배치해 둔,

누런 구두를 발에 맞춰 보더니, 쓱, 발을 밀어 넣었다.

아예 왼쪽 신발마저 집어던지더니, 발을 모두 밀어 넣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보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아키라는 다시 혀를 찼다.


“쯧쯧…”


“작은 가게를 알아봤어요,

자리가 좋아서 서두르지 않으면 놓칠 게 뻔하죠.”


아키라가 남편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허허허허 허허, 쿨럭, 쿨럭.”


유키코의 한숨은 삶의 맨 끄트머리에서

썩은 동아줄을 잡은 듯한 그만큼의 무게가 되는 소리다.


“아버지…”


“유키코, 가 보거라 난 그저 너를 막고 싶을 뿐이야
자식이 인생을 망치는 꼴을,

부추기는 부모는 없을 거다
네가 저 멍청한 놈과 끝을 낸다면

그땐 다른 얘기가 되겠지
넌 아주 똑똑하고 착한 아이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아키라는 절대 그들에게 돈을 내어줄 사람이 아니었다.

유키코는 포기의 몸짓으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키라가 탁자 위 그녀의 손을 살며시 쥐었다.


“유키코, 내가 이러는 건 넌,

내 딸이기 때문이다.”


유키코가 빠르게 손을 빼내며 손사래 친다.


“싫어요, 죽음 문턱까지 간 엄마를 모른 척한 당신을,

내가 아버지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난 싫어요, 아버진 지금도 그 여자를 위해 사는 사람 같아…”


유키코는 단지 돈이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다.

입 밖으로 마구 튀어나오는 응어리진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기회였다.


“긴말 필요 없다,

난 저 멍청한 놈을 도와줄 능력은 없어.”


아키라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키라는 유키코가 어떤 억지를 부려도

이번만은 도와주지 않을 작정이다.

그의 결심은 초점이 뚜렷한 눈 속에 담겨 있었다.

유키코는 이미 돈, 이라는 단어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남편은 자신의 눈치에도 반응이 없는 유키코를 보고 화가 났는지,

누런, 새 신발을 신고 아키라에게 다시 다가간다.

이번엔 아주 큰 용기를 낸 것이 분명하다.


“아키라, 분명히 약속하는데

난 제대로 갚아 나갈 거예요.”


아키라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나가라며 손짓했다.


“다시는 내 집에 발을 들이지 말아

이, 멍청한 놈 같으니…”


유키코는 하고 싶은 말을 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구둣방 문을 덜컥, 소리가 날 정도로

발로 세게 밀쳐 버린다.

독을 품은 듯한 억양으로 유키코가 말했다.


“걱정 말아요, 다시 올 생각, 없으니까.”


유키코의 남편은 거드름을 피우며 몸을 좌우로 흔들며 걸어 나갔다.

아키라을 한 번 쳐다보더니,

협박하듯, 눈을 내리깔다, 위로 치켜뜬다.


“아키라, 헤헤헤 어디 두고 봅시다.”


남편의 이죽거림에 아키라가 벌떡 일어나

그의 옷깃을 낚아채며 들어 올리다시피 하며

손으로 번쩍 올렸다.

정말이지 아키라의 힘은 황소 같다.

재빠른 유키코의 남편은 아키라의 손을 세게 뿌리쳤다.

뿌리치는 힘에 밀려 아키라가 바닥에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나쁜 놈 같으니,

내 딸을 망쳐 놓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알아?”


다행히 아키라의 손이 먼저 바닥에 닿아 넘어졌지만,

빠르게 다시 일어나기엔 역부족이다.

유키코는 벌써 몇 걸음을 앞서

그곳을 멀찌감치 벗어나는 중이었고,

남편이 아버지를 밀쳤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코하네는 더 이상 이층에서 숨을 죽이고,

숨어 있을 수가 없었다.

빠르게 계단을 내려와 아키라를 부축하며

성난 강아지처럼 그에게 왕왕거렸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유키코의 남편은 생각하지 못한 반항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반가움에 온몸을 흔들었다.


“이야, 안에 있었네?

너 기가 막히게 이뻐졌는데?”


아키라는 허리춤을 잡고 일어나,

황소 같은 기개로 다시 그의 옷깃을 잡고 끌었다.

절대 끌려가지 않을 것 같던 그도

이번엔 항복하는 자세다.


“이것 놔 놓으라고, 이 영감탱이가.”


코하네는 아키라가 다칠세라,

재단할 때 쓰는 기다란 나무 자를 들고

아키라 옆에 꼭 붙어 공격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키라가 다시 한번 눈을 부라렸다.


“꺼지지 못해, 고약한 놈 같으니라고.”


코하네가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있었고,

그 틈을 타, 아키라는 밖으로 그를 집어던지듯, 밀어냈다.

그의 더러운 입에서 들어 보지도 못한 욕이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도저히 인간의 입에서 튀어나올 수 없는 것들을 뱉었다.

코하네는 빠르게 문을 잠갔다.

밖에서도 발을 떼지 않는 그를 보더니,

이번에는 코하네가 협박하기 시작했다.


“당장 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 거예요.”


코하네가 수화기를 들어 보이자,

다시 욕과 침을 내뱉으며 그제야 사라졌다.

순간 빛과 향기가 가득했던 공기 속에

절망과 적막만이 가득히 쌓였다.

끝나지 않을 할아버지의 상처일 것 같아 가슴이 쓰리다.

숨을 고르고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yMTA2MTRfMjg2%2FMDAxNjIzNjM3OTMwNzAw.RMyAYRyQpfzckl9xJ4GfF9CwYoiqM0Sxc1glP-wP4qQg.mznKgnmbRi0xt1SVhM3kwKPq7eqkdn_xi6glIiJWS6cg.JPEG.topher06%2F%25BB%25E7%25C1%25F8_%25282%2529.jpg&type=sc960_832


“할아버지.”


“후,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려오지 말라 하지 않았어?”


코하네가 달려가 아키라의 부은 손을 잡았다.

아키라의 손은 뜨거웠고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코하네의 눈물은 유난히 굵게 뚝, 하고 떨어졌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자꾸 딴 소리할 셈이야?”


아키라는 코하네에게 화를 내는 법이 없었지만,

얼굴까지 붉히며 화를 내며 소리쳤다.


“너까지, 이 할아비 말을 듣지 않을 거면 나가거라.”


아키라가 코하네의 손을 뿌리쳤다.


“이까짓, 다친 게 무슨 대수야?”


“할아버지, 많이 부었어요.”


“대답해, 어쩔 셈이야?

이 녀석 말 안 들을 셈이야?”


“죄송해요. 할아버지.”


“됐다, 난 괜찮아 세수해야겠어,

차나 준비해 다오.”


코하네가 자꾸 아키라의 손을 바라보며

눈썹까지 축 처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라는 짐승 같은 놈이

원하는 걸 취하지 못했을 때

유키코에게 어떤 피해가 갈지 가 제일 걱정이었다.


찻잎은 할아버지 기침 소리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화장실 문틈 사이로 할아버지의 움직임대로

덜그럭, 달그락, 어푸어푸, 하며 소리가 들린다.

할아버지의 싱그럽고 아릿한 로션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아키라가 유키코의 남편이 벗어 놓은 신발을

쓰레기통에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기가 막힘에 약간의 어이없는 웃음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못된 놈이 값도 치르지 않고 신발을 신고 갔어,

또 당했지 뭐야.”


코하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우, 정말이지 악한 사람이에요.”


색깔만 봐도 진하게 우러난 녹차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옅은 푸른색만 보아도

성난 황소의 성질이 가라앉는 것 같다.

잔을 짚는 아키라의 손은 조금 전보다 더욱 부어올라 있었다.


“할아버지, 찜질이라도 해야, 잠깐 계세요.”


“괜찮다, 괜찮아.”


“할아버진 자꾸만 괜찮데.”


아키라는 코하네 앞에 늘 괜찮은 사람이 된다.

아키라는 길게 뻗은 자를 보고 말했다.


“그나저나, 자 막대기를 무기로 쓰다니, 말이다, 허허허.”


코하네는 찜질 주머니를 부어오른 곳에 올려놓더니,

이를 드러내며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웃었다.

아키라의 웃음소리도,

주전자가 물을 끓이는 소리도,

나무 자를 바닥에 딱, 딱, 하며 내리치는 소리도

멈출 생각이 없다.

다시 구둣방 안이 빛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는 중이다.


유키코는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어쩌면 내심 아키라가 선뜻 돈을 내어주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그가 돈을 거리낌 없이 내어주었다면 음식점은커녕,

남편이란 작자가 노름으로 돈을 날려 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를 갈고 눈을 부라리는 남편의 협박에

함께 아버지를 찾아가긴 했지만,

유키코의 목적은 남편과 달랐다.

돈을 논하며 자신을 보는 아키라가

어떤 말과 행동을 보여줄지 알고 싶었다.


유키코의 발걸음은 아키라의 구둣방을 들리기 전보다

한층 더 가볍다.

한참을 빠른 걸음으로 걷다,

유키코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오래되고 낡은 신발이지만,

아키라의 솜씨는 좋았다.

다시 고개를 내민 햇살에 아키라의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유키코의 남편은 눈을 번뜩이며 유키코에게 말했다.


“야, 이제 와서 들은 척이야?

몇 번을 불렀는지 알아?
귀까지 먹은 거야?”


남편이 채근하는 소리는 일상이었기 때문에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유키코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금고 봤지?

그 노인네가 금고까지 있을 줄이야.”


“아버진, 거짓말하지 않아.”


“아니, 네 눈으로도 직접 봤으면서 그런 소리를 해?”


“아키라 것이 아니겠지.”


남편은 코하네가 살던 집이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집, 이라고 들은 것을 어렴풋이 기억해 냈다.


“영감이 키워 줬으니,

그게 그년 것이면 영감 것이랑 다른 게 뭐야?”


유키코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그를 뒤돌아보고 말했다.


“제발, 제발 부탁이야 그만 좀 하자 응?
지겹지도 않아? 자존심도 없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돈을 벌어 볼 생각은 없어?”


“제대로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짓 아니야?

이게 나 혼자 잘 살자고 하는 짓이야? 응?”


유키코도 지지 않았다.

이것은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그렇다면 당신 엄마한테나 가서 빌어먹어.”


“너 지금 말 다했어?

이게 며칠 봐줬더니, 기가 살았네? 어?”


유키코는 다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남편은 유키코의 팔을 잡아채더니,

어디론가 질질 끌고 갔다.

유키코는 일상이 된 듯, 겁내지도, 반항하지도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고 질질 끌려갔다.


사실 그녀의 남편은 처음부터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꽤, 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성실함을 갖추고 있었고,

작은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러 명의 직원을 둔 작지만 매우 바쁘고 유명한 잡화점이었다.

그때 잡화점의 직원이었던 유키코는

그의 친절함과 성실함에 반해

어린 나이에 결혼을 서둘렀고

몇 년의 행복한 시간은 냉큼 지나가 버리고

먹구름이 걸쳐지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술은 본성을 이기고 고약한 성질을 뿜어 대도록 주문했다.

남편은 잡화점으로 번 돈을 모두 노름에 갖다 바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장난, 아니면 혹,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불씨가 커다란 빚더미에 앉게 할 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살고 있던 집까지 처분하기에 이르렀고,

임신 중이었던 유키코의 배까지,

순식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유키코는 성실했던 남편의 모습을 잊지 못했고,

다시 기회를 맞이하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곁에 있던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할 정도로

그는 기회를 모조리 썩게 만들고 짓이겼다.

이젠 아무도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유키코 또한 더 이상 남편에게 달라질 모습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젠 하루라도 술을 곁에 두지 않으며

금단 증상에 몸부림쳤고 그때마다

그녀는 그에게 마구잡이도 맞고 또 맞았다.


처음 주먹질 한 번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구잡이의 폭력이 되었고

고통도 느낄 겨를 없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폭력에 수없이 당한 후론

남편의 전 모습을 기대했던 마음도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좁은 방 한 칸의 구석에서

술주정뱅이 남편과 마주 보고 있기란,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다.

아키라의 아내가 살아있을 때,

유키코의 생활을 눈치챈 아키라가

재산을 털어 아내에게 건네며 부탁했다.


“그놈과 헤어지고 난 후에,

꼭 전해주시오, 그래야 새 출발에 도움이 될 수 있소.”


하지만 돈 냄새를 맡은 남편은

유키코의 엄마를 찾아가 끈질긴 설득으로

아키라의 돈을 차지할 수 있었다.

순진했던 유키코의 엄마는 두 배로 돌려준다는 말에

유키코처럼 남편의 성실했던 그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역시 그 돈은 하루 사이에 공기가 되어 버렸고,

기절할 듯한 소식에 드러누운 그녀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결국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죄책감을

마치 아키라의 탓인 양,

형평성을 갈구하는 유키코는 자신을 혐오했다.

남편에게 구타당할 때마다 유키코는 기도했다.


“제발 오늘은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게 안 되면 내가 죽을 수 있도록...”


지쳐 잠들다 눈뜰 때마다 밀려오는 통증은

유키코의 목숨을 그 어떤 것보다 더 질기게 만들었다.

다행히 그는 술에 잔뜩 취해 잠들었다.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yMDA1MTNfMTE4%2FMDAxNTg5MzU4NDE3Njk1.wwNMUtwb7xrqF-e8dl5hrpMwUu4yRfD9awHDgpgVKCgg.45Gt-OsSaKQjjByFHVVgk6AxHWnLEzZn3vBSkYJQxy8g.JPEG.buldang-i%2F%25C3%25B5%25BE%25C8%25BA%25D2%25B4%25E7i%25BD%25C9%25B8%25AE%25BB%25F3%25B4%25E3%25BC%25BE%25C5%25CD-%25BA%25CE%25BA%25CE%25C0%25C7%25BC%25BC%25B0%25E8.jpg&type=sc960_832



상처투성이 얼굴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유키코가 그토록 갈망하고 사랑했던 사람인가, 싶다.

그의 비뚤어진 인생 탓인지

그의 얼굴도 삐뚤어져 있었다.

정말이지 완벽한 비대칭을 이루고 있다.

흙으로 사라진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 보면

어쩌면 차라리 이 꼴을 보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알코올 냄새를 뿜어 대며

잠든 남편의 얼굴은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

유키코는 그 표정을 보자

형체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그의 얼굴을 짓 누르며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직도 그의 본성은 남아 있을까?

라는 물음에 어이없는 기대를 한 자신이

우스워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남편의 삶을 끝내 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키코는 몸을 일으켜 보았지만,

마구잡이의 발길질에 어느 곳을 맞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온몸이 삐걱거렸고,

움직일 때마다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유키코는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힘을 주어 악, 물었다.

이쯤은 고통도 느끼지 않을 줄 알았는지

꽉 다문 입술에 피가 툭, 터져 나오더니

생각지 않은 고통에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하얀 이 사이로 붉은색이 사이사이를 비집고 자리 잡았다.

있는 힘껏 허리를 쭉 펴 보았지만,

우두득, 하는 소리가 나며

뼈가 부러진 듯한 고통을 느꼈다.


유키코의 두 팔이 다리와 함께 바닥을 짚으며 걷기 시작했다.

꽉 막힌 어두운 공간에도

아버지가 만든 갈색 구두는 눈에 들어왔다.

순간 감정이 북받치더니,

허리의 통증이 가슴까지 올라옴을 느꼈다.

순간 믿지 못할 만큼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터져 나왔다.


입안의 붉은 피와 침이 뚝뚝, 떨어지며

눈물도 함께 범벅이 되어 흘렀다.

아버지의 갈색 구두를 두 손에 잡아끌고,

몇 번의 시도 끝에 현관문을 열었다.

아버지의 구두는 유키코의 방패와 두 다리가 되어

끝없이 길을 걸었다.

점점 더 강한 용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의 거리는 어디서부터 오는 냄새인지,

술 냄새로 가득했다.


어둠과 번쩍거림이 사라지고,

밝고 하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키가 큰 각진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그의 허리춤에 달린 무언가 눈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키코의 움직임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굉장히 밝은 불빛이 번쩍하더니,

그녀의 기억과 의식이 잠시 쉬길 원하고 있었다.


유키코가 눈을 떴을 때 기분은

이제까지 이루지 못한 잠을 원 없이 자고 일어난 기분이었다.

그 순간, 순간의 안도 섞인 숨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유키코를 바라보고 있었고,

온몸은 붉은색, 파란색,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퉁퉁 부은 눈은 얼굴의 생김새를

도통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침을 삼켰을 땐 입술에 진득하게 발라 놓은

연고 맛이 진하게 남았다.

그는 아니 그놈은 유키코를 마구잡이로 때리고 난 후,

꼭 놈의 손으로 상처를 소독하거나,

약을 발라주곤 했다.

그의 모습이 떠올라,

몇 번이고 침을 뱉어내고 입술을 닦아 냈다.


시선이 머문 그 자리엔 아버지의 구두가

정갈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키코를 부르는 목소리가

점점 더 크고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유키코 씨, 유키코 씨, 유키코 씨.”


그녀를 부르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기이하게 생겼다.

아마도 자신이 죽음 안에 들어와 있는 건 아닌지,

저 사람은 신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나 눈을 깜박이고 눈앞의 사람을 보았다.

그의 머리칼은 금발의 색깔이었고,

눈 안에서는 초록색이 왔다, 갔다 움직이고 있었다.

그 옆 각진 모자를 쓴 남자가 말한다.


“유키코 씨, 정신이 듭니까?
다행하게도 이분이 길가에 쓰러져 있는

당신을 발견했어요,

여기는 병원입니다.”


정신이 조금씩 맑아지고 있었다.

그 신이라는 사람은 처음 보는 외국인이라 했다.

유키코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는 부분은

한 군데도 없다.

신이길 바랐던 그 외국인이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누르며 다시 눕히려 했다.


“괜찮아요,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은 파출소 앞에 쓰러져 있었고,

난 당신을 발견했어요,
당신의 몸은… 음, 상처가 많아요,

지금은 병원이에요.”


신인 양 예수의 얼굴을 한, 그는

마치 잠이 들어야 할 아이에게

책을 낭독해 주는 것처럼

잔잔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각진 모자를 쓴 남자가 다시 다가오더니,

말을 잇는다.


“이 수첩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어요,

가족 맞죠?”


유키코는 놀란 눈을 하고, 온갖 인상을 찌푸렸다.


“안, 안돼.. 요.”


각진 모자의 남자, 그러니까 경찰은

남편이 한 짓을 두 번째 보는 사람이었다.

어렴풋한 기억이었지만,

경찰의 뇌가 유키코를 인식했다.


“저기요, 남편한테 연락할 순 없잖아요?
보호자가 필요한 절차니까 기다리세요.”


각진 모자의 남자는

유키코의 상처가 남편의 짓이라는 것을 꿰뚫고 있었다.

유키코는 다시 상체를 들어 올리며

당장이라도 도망칠 기세다.

외국인은 눈치를 챘는지,

고개를 저으며 유키코의 어깨를 다시 살포시 눌렀다.


“걱정 말아요,

당신 상태를 먼저 치료하는 게 우선이에요.”


이상하리만큼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진심으로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유키코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고,

코하네의 말로 그녀가 이틀 동안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다시는 눈을 뜨지 않을 사람처럼 잠만 잤다고 한다.



봄비로 적신 강은 더욱 풍족해 보인다.

강을 끼고 둘러싼, 벚꽃이

비에 떨어져 강물 위를 수놓았다.

아이처럼 사뿐히 걷는다면

꽃잎 위를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아키라의 한숨이 쉼 없이 계속되었다.

유키코는 세 딸 중에서도 막내다.

그는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지만,

유키코만큼은 그의 손을 많이 탔다.

가끔 유키코를 보러 들를 때면

그녀가 좋아하는 카스텔라를 잊지 않고 사 들고 갔다.

철없던 때의 그녀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늘 함께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책임 같은 것 따위도 몰랐다.


두 명의 터울 많은 언니는

유키코의 앞에서 늘 아키라를 나쁜 사람이라고

혀를 내둘렀고,

자신들에게 진짜 아빠는 따로 있다며,

카스텔라에는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럴 때마다 유키코는

스스로 아키라를 찾아가 설명을 들어야만 했고,

그때 츠키노의 얼굴도 처음 보았다.

언니들과 아빠가 다르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작정하고 언니들이 자신을 괴롭혔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춘기가 되면서 엄마의 수척한 얼굴이

아키라 때문이라는 것을 천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아키라를 미워하기 시작했고,

유키코가 열 살이 넘어가는 해부터,

카스텔라를 사 들고 오는 아키라의 얼굴을

똑바로 보려 하지도 않았다.

스스럼없이 츠키노의 집에 들러

유키코와 재잘거리던 소리를 다신 들을 수가 없었다.

유키코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카스텔라가 된 건 그때부터다.

깊어진 강물이 바람에 너울거리며 꽃잎이 떠내려간다.


“쯧.”


“할아버지, 바람이 차요.”


“그래.”


아키라와 그의 가족들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츠키노는 유키코의 엄마를 집 안으로 불러들인 후,

그녀 앞에서 아키라를 내쫓았다.

아키라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산지가 꽤 오래였고,

더 이상 신분이 서로 다르지 않은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코하네는 항상 무표정을 일관하던 아키라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할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은 아키라는

세상을 모두 잃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가씨, 제발 이곳에 남게 해 주십시오.”


아키라의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츠키노는 대문 앞에서 밤새는 아키라의 고집을

끝내 꺾지 못했고,

츠키노가 세상을 등질 때에도 아키라는 츠키노를 지켰다.


코하네의 기억 속에 뚜렷이 남은 그림은,

츠키노가 숨을 헐떡이며

후미코의 손을 잡고 있었으며

눈의 시선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아키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을 거둔 츠키노의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코하네는 할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와

거뭇한 옆모습이 쓸쓸해 보여 가슴이 미어졌다.


“할아버지, 전… 그 큰 집이 필요 없어요.”


코하네는 진심으로 유키코를 도와주고 싶었다.


“무슨 소릴 하는 게냐?”


“그 못된 사람만 아니면,

유키코는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시끄럽다.”


아키라가 강둑에 발을 디디며 벌떡 일어선다.


“할아버지.”


“시끄럽다 하지 않았어?”


그는 서둘러 강의 계단을 올라가

아스팔트에 떨어진 꽃들이 지저분하다며 욕을 퍼붓는다.

뒤따라온 코하네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할아버지도 유키코가 걱정이면서…”


“코하네, 네가 맘대로 해도 되는 건 맞지만,
나 죽거든 해라

내 앞에서 더 이상 꺼내지 말 거라.”


아키라의 고집은 할머니도 꺾지 못했다는 생각을

깜박 잊은 모양이다.


“꽃잎이, 이렇게 지저분해서야… 으음, 쯧.”


더 이상 말을 꺼냈다간,

더 큰 호통을 치실 게 뻔했다.

코하네는 조용히 그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갔다.


“할아버지 같이 가요.”


아키라는 뒤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걸음의 보폭이 눈에 띄게 좁아졌다.

아닌 척, 기다려 주는 할아버지가 귀엽기까지 했다.


“후흣.”


코하네는 젖은 아스팔트 위의 꽃잎들을

밟지 않으려 발을 통통거리며 뛰어간다.

이른 아침부터 구둣방의 전화벨 소리가

찢어질 듯이 울려 퍼졌다.

코하네가 빠르게 뛰어가 보지만,

아키라는 손을 내 저었다.


“관두거라.”


코하네의 입술이 툭, 불거져 나왔다.


“차나 한잔 다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찻잔에 찻잎을 담아낸다.

다시 신경질적인 소리가 울렸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따르르릉.”


“이렇게 귀찮아서야 원…”


아키라는 수화기를 들어 올렸지만,

역시 말을 아끼고 있었다.

처음 듣는 강직한 남자 목소리가

다급하게 유키코의 이름을 읊고 있었다.


“지금, 뭐라 했소? 내 딸아이가 맞소?”


코하네가 주전자의 물을 조르륵, 따라 냈다.

녹차의 쌉쌀한 향이

아키라의 콧등을 스치더니 삐져나온 코털이 움찔거렸다.


“알겠소, 지금 가겠소.”


수화기를 내려놓는 아키라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부들거렸다.

그는 잠시 멈칫하며 숨을 몰아쉰다.

애써 정신을 차리는 모습이다.


“할아버지, 무슨 전화예요?”


“유키코, 그 아이가 병원에 있다는구나.”


코하네는 놀라 입이 쩍 벌어져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다녀올 테니,

작은 방을 따뜻하게 해 놓거라.”


“할아버지…”


그가 손사래 치며 살며시 코하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괜찮을 거다, 걱정 말거라

금세 데리고 올 테니 문을 잠가 놓거라.”


아키라는 겉옷도 걸치지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나섰다.

코하네는 재빨리 겉옷을 챙겨 그의 손에 전했지만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이는 아키라의 손이 서투르다.

그의 그런 모습에 코하네는 불안했다.

유키코가 걱정되는 건 말할 필요가 없지만,

할아버지의 건강이 우선이다.

코하네는 택시를 잡아타는 그의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구둣방을 단속했다.


유키코가 어릴 적, 사용했던 방은

단 한 번도 발을 들인 적이 없다.

코하네는 문을 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아키라가 유키코를 아끼는 마음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다.

다다미에서는 오래된 냄새 대신,

신선한 대나무 냄새가 났고,

금방 빨아 놓은 듯한 새 하얀 이불이 올려져 있었다.

아마도, 그는 언제 올지 모르는 유키코를 위한 배려인 듯하다.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xNzA1MDRfMjM4%2FMDAxNDkzODMyOTMxMjc2.3JYPGMvbKKjDH3CXQqT1ok2SRJuBugQwwwwTa8sAO5Yg.LLIN1gsEj303WeXuCsfUsOo-K7wavcQX2Ch0UGU15m4g.JPEG.keita_hitomi%2FIMG_20170504_14.jpg&type=sc960_832


코하네는 재빨리 고타츠를 확인했다.



아키라가 구둣방에 도착했을 때,

기린처럼 목이 길고 키가 큰 남자가

아키라 옆에서 유키코를 안고 있었다.

어찌나 큰 덩치 인지 유키코가 어린아이처럼 작아 보였다.

밖으로 보이는 살들이 보라색인 그녀를 보고

그땐 어안이 벙벙해 말도 나오지 않았지만,

유키코의 말로는 신과 같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코하네도 머리칼과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가까이서 보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머리칼을 만져 보고 싶은 충동도 일어났다.

결국, 나중에 호기심을 충족하긴 했지만,

그 사람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내심 안도했다.


유키코의 몸은 날이 갈수록 호전되었고,

신이란 남자도 자주 그녀를 들러 보고 가곤 했다.

유키코는 내내 코하네가 자신을 돌보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맙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가 힘든 모양이다.

언니들과 다른 성품을 갖고 있던 유키코는

점점 코하네가 맘에 들기 시작했고,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될 것이라 짐작하며

아버지를 더욱 이해하려 들었다.


유키코의 남편은 고작, 가벼운 처벌에 불과한

벌 같지도 않은 벌을 받았고,

몇 번의 용서를 빌며 유키코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협박하거나, 를 반복했다.

그러나 가족이 틈 없이 뭉쳐 있는 지금,

그 못된 놈, 은 문제가 되지 않았을뿐더러

협박이란 말들은 재밌는 연극에 불과했다.


유키코의 말처럼 신 같은 존재인

기린 아저씨가 떡, 하고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키라와 유키코는 여전히 어색하지만

말 없는 느낌의 대화를 나눈다.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20150509_279%2Fyylee372_1431148201041n2Wdv_PNG%2F%25B8%25AE%25C6%25B2%25C6%25F7%25B7%25B9%25BD%25BA%25C6%25AE_%25C1%25D6%25C0%25CE%25B0%25F8.png&type=sc960_832


아키라가 카스텔라를 무심코 던져 놓으면

미소를 지으며 달콤함을 즐기는 유키코의 모습은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그렇게 구둣방 탁자 위는 언제나 달콤한 카스텔라가 독차지하게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