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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May 21. 2024

8. 숲의 그림과 소리

위대한 우리들의 어머니


(그녀)


기분 좋은 개와 사람

보통 주부에게 당연한 것, 남이 해주는 모든 종류의 음식이 가장 맛있다. 

맛없어도 맛있다. 

모두 공감하지 않는가?


주부가 되고 나서부터 쭉 그랬던 것 같다. 디저트 종류나 간식 종류를 좋아하진 않지만 어쩌다 

남이 차려준 것들을 딱 한 입만 베어 물면 그것으로 나는 하루를 만족한다.

정말 나는 그렇다.

두 입도 먹지 않는다. 딱 한 입이다.


그녀가 말했다.


“개 데리고 가서 앉아 있어
 내가 갖고 올라갈게”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내민 뜨거운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그녀와 큰 조카는 사진을 계속 찍어 댔고 바다와 맞닿은 이곳은 참 쾌적했다. 


그때 그녀가 큰 소리로 웃었다.


“왜?”


“너 사진 제부한테 보냈어 파파라치
 그랬더니 더 많이 보내라고, 장당 만 원씩 쳐 준데 흡”


그녀와 나는 웃었다.


그리고 사진을 계속 찍어 댔다.

너무 재밌는 건 내 개와 내 사진을 보낸 후 정말 십만 원이 입금됐다는 사실이다. 

커피는 내가 살게,라는 깊은 뜻이겠지만 참 그녀와 그는 쿵 짝이 잘 맞는다. 


큰 조카가 찍은 개 사진 때문에 우린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어떻게 사진을 사람 증명사진처럼 찍었는지 개와 함께 사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 찍혔다.

개의 증명사진

말도 안 되는 크기의 저 쌀알과 명란젓 같은 혓바닥, 사람 같은 눈동자를 가진 개.

오늘 증명사진을 찍었으니 여권이나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개와 함께 제주 애월읍에 오게 된다면 해안도로 2층에 있는 누구나 알법한 커피숍을 적극 추천한다. 참고로 사진이 참 잘 나오는 곳이다. 


개 증명사진을 한 번씩 찍어 가길 바란다. 



우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출발했다. 

바람의 강도가 점점 더 거세지고 나의 덴젤은 신호의 초록불을 기다릴 때마다 조금씩 휘청거렸다.

한 30여분을 달려 정말 시골길 보다 더 시골길 같은 좁은 도로를 왼쪽 오른쪽으로 꺾어 가며 어지러움을 피며 어렵게 도착했다.


볕은 점점 사라지고 회색 구름이 깔리는 것 같아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다. 

제발 숙소로 갈 때까지 비야 좀 참아 주지 않겠니?

마법사의 집

도착한 곳의 첫 느낌은 숲 속에 숨어 있는 마법사의 빵집 같은 분위기였다.


주위에 꽃들이 흐드러져 있었고 관리하지 않은 듯 또는 관리한 듯, 뭔가 야생의 느낌 그대로 남아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날씨에 의해 기압이 낮은 탓인지, 콧구멍을 좀 더 크게 벌리고 눈을 감고 냄새를 맡으면 풀 내음이 가득 풍긴다. 

코로 들어간 풀 내음이 입으로 머무는 느낌이 들었다. 아, 초록 풀을 입에 가득 머금고 있는 맛이다.


나는 한참을 상점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겉을 맴돌며 요가적 호흡을 계속 이어 나갔다.

잠시 눈을 감았다. 


아름다운 건 누가 봐도 척, 안다.


마치 숲 속의 작은 집에서 가가멜이 훔쳐보고는 있지 않은 지, 상상하며 피식, 거렸다.


사랑스러운 스머펫도 어디선가 거울을 보고 있을 것 같았고, 어디선가 폭파 장치를 안고 있을 익살이가 숨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이모 뭐 해?”


큰 조카가 나를 부른다.


“응”


나는 콧바람 쏘인 개를 덴젤에게 맡기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래된 나무 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온갖 색색들이 병들과 자연 친화적인 느낌의 도구들과 그들과 너무 잘 어울리는 주인장 두 남녀, 그리고 고양이들.


보자마자 난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느낌은 뭐랄까, 내 것도 아니고 내가 사는 곳도 아닌데 굉장히 소중하게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 

무조건 지켜 주고 싶은 공간, 무조건 지켜져야 하는 공간이다.


아름다웠다.

작은 한 공간에서 누군가 뿅, 하고 나왔다.

엇?

남자 주인장이다. 


깜짝 놀랐다. 파파 스머프는 아니지만 마법사 같은 느낌은 들었다.

여자 주인장과 찰떡 어울림에 또 한 번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는 한참 뒤 남자 주인장에게 말했다. 아주 소심하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섭렵하고 싶은 와인 줄 세우기

“안녕하세요, 쪽진 머리입니다.”


주인장이 알고 있었다는 듯 웃으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처음 내추럴 와인을 알게 된 계기는 지인의 소개였다. 한번 맛을 보고 난 후 폭발적인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추럴 와인의 매력이 그랬다.

이 와인은 그리스 아시리티코 바리크,라는 와인이고 이 와인의 레이블에는 마리아 칼라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그녀는 쪽진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한 동안 도멘리가스 와인에 미쳐서 알아보던 중 이곳을 알게 된 것이다.


아쉽게도 지역이 제주도였고 택배로 와인을 받아오다 아주 좋은 이 날에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그때 주인장이 말했다.


“오시면 꼭 쪽진 머리라고 외쳐주세요”


와인에 대해 내 혀가 좋아하는 맛만 알고 있을 뿐 깊이 있게 잘 알지는 못한다. 

여러 와인을 보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주인장 두 사람을 보니 참 따뜻한 사람들 같았다.

혹시 모른다. 

여자 주인장은 굉장히 사랑스러운 외모를 갖고 있는 것을 보니 숲 속에 마법사와 함께 사는 마녀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상상도 해 볼 법하다.

거기에 눈에 들어온 고양이 두 마리까지, 정말이지 동화 속 나라 같다. 


그들의 자세한 설명과 눈에 띄는 레이블을 보면서 천천히 몇 병을 골랐다. 

색깔이 매력적인 와인을 보니 당장 마셔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정도였다.

이렇게 내추럴 와인의 세상은 참 넓기도 하다.

절대 섭렵할 수 없는 세상이다. 아무리 와인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공부한 전문가라 해도 그 많은 와인을 다 알지는 못한다,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


왜 아주 오래전 와인 때문에 전쟁을 했는지 너무 이해되는 대목이다. 

하나 예를 들자면 나는 이 대목이 참 재미있었다. 


-영화 밴드 오브 브라더스 중-


그 당시 와인 빼돌리기는 프랑스가 최고라고 한다. 전쟁 중, 지하실 벽면을 빈틈없이 꽉 채운 프랑스 명품 와인에 넋을 잃은 한 장교가 한 말이다.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군”


히틀러의 은신처 독수리 요새에는 한 병당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보르도와 부르고뉴에서 가져온 명품 와인이 50만 병이나 꽉 차 있었다고 한다. 그전에도 최고급 와인 2만 병을 전쟁 중에 차지한 게 프랑스였다. 


와인의 맛을 아주 조금 알게 된 나는 좋은 와인을 보면 혀가 먼저 마중 나가는 지금 상황에 와인을 빼돌린 그들이 좀 이해는 된다.

헌데 그들은 돈 때문이었을까? 

맛 때문이었을까?

와, 생각할수록 정말 궁금하다.


오늘 나의 그녀가 처음 내추럴 와인을 입문하는 날이다. 

그녀를 위해 과하지 않는 와인을 마법사 주인장에게 추천받았다. 

이 귀한 와인을 맛보게 할 오늘 저녁이 기다려진다.

드레스를 걸친 마네킹

추천받은 와인 중, 사슴벌레 같은 무늬의 레이블이 돋보이는 이 와인은 보기만 해도 초록색, 노란색의 상큼한 여러 과일의 맛을 품고 있을 것 같은 이것은 첫 이미지가 강렬했다.


누구에게나 첫눈에 딱 박혀 절대 잊을 수 없는 레이블을 갖고 있었으며 이 무늬를 해석하는 것도 사람마다 모두 달랐다. 마녀 주인장의 표현으로는 자신이 봤을 때 마네킹이 드레스를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그녀와 나는 아,라는 소리를 연발했다. 

정말 그랬다. 누구나 생각해 볼 만한 상상은 벌레, 였을 것이다. 

나 또한 다리가 긴 사슴벌레나 장수투구벌레라고 생각했다. 드레스를 걸친 마네킹이란 발상을 나도 어디선가 써먹어야겠다.


세상에 숲 속 작은 마법의 상점에 눈이 흩날린다.

어찌 이런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 아주 몽환적이다.


바람을 타고 싸라기 눈이 내렸다. 공중에서 바람을 타며 원을 만들어 돌다가 날아갔다. 

정말이지 누군가 마법을 부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정말 동화 속이 틀림없다.

너무 아름다웠다.


주인장과 나는 약속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갈색 봉투에 싱그러운 와인을 담아 

빛나는 햇살을 받으며 또는 걸으며 와인을 마셔보겠다고.


아, 해가 짧은 내년 이맘때쯤이나 가능할 것 같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덴젤에게 짐을 한껏 지게 한 후 우린 이곳을 벗어났다. 

마법사와 마녀 주인장!!

다시 만납시다.

덴젤과 삐꼴라

상점에 있는 내내 나는 덴젤에서 낑, 거리는 내 개를 다시 안고 다녔다. 알다시피 내 개는 겁이 너무 많은 아이라 밖에서의 행동과 안에서의 행동이 많이 다르다.

밖을 나오면 엄청나게 위축된 행동을 보이며 뒷다리를 사시나무 떨 듯이 떤다. 


나의 막내 조카는 내 개를 정말 사랑한다. 

집 안에서 조카를 협박하거나 으르렁, 하는 행동을 보여도 조카는 못된 이 개를 사랑한다. 


상점에서 개를 안고 있을 때 막내 조카가 말했다.


“이모 난 개 만지고 싶어, 지금 너무 귀여워”


이럴 땐 단호함이 필요하다. 

어정쩡한 모습과 말을 한다면 상대방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개를 만질 수 있고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조카야, 그건 누굴 위해서야?
 널 위해서지?
 근데 개를 위해서는 만지면 안 돼
 왜냐면 얘는 다른 사람이 만지는 걸 싫어해”


조카는 나의 반복된 이 이야기를 워낙 잘 알기 때문에 빠르게 수긍해 왔다.

그런데 개를 안고 돌아서 있을 때 막내 조카가 발을 몰래 만져보는 게 아닌가, 나의 생각을 완벽하게 엎어버렸다.


조카가 말했다.


“이모 미안한데 나 지금 개 만졌거든?
 근데 왜 가만있어?”


“너, 약속이 다르다?”


굉장히 낯선 모습이다. 

겁이 많은 건 알지만 밖에서 가족의 터치는 또 그리 예민함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참 알다 가도 모를 일이다. 가족을 아는 내 개지만 지금 이 행동은 참 신기했다. 


워낙 나의 개는 반려인 나 말고, 다른 이들의 손길을 거부하는 개다. 

까칠하고 예민하고 성질도 사납다. 겁이 많아서 그런 편이지만 본가에 가면 늘 아버지에게 욕을 먹는다.


“뭔 개xx가 사람 손을 타야 만져보든 예뻐하지
 손만 보면 으르렁 하니, 뭐가 저래?”


본가를 방문할 때 늘 듣는 이야기다. 

적응할 때도 되었는데 들을 때마다 속상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누가 개의 기억력이 몇 분 지나면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력이 낮다,라고 말했지?

개의 트라우마는 사람의 트라우마 보다 더 강력하다.


어떤 훈련과 보상으로도 극복이 되지 않았다. 

그 유명한 훈련사를 찾아가 별 수업을 다 받아 봤지만 손에 대한 기억과 줄에 대한 기억은 극복되지 않았고 더욱 그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부진한 노력을 해서 그렇다,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쨌든 그랬다. 


몇 년 동안 녀석의 물 것 같은 행동과 으르렁, 거리는 습관에 대해 교육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개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극한으로 다다랐고 나 또한 그랬다.


내 개를 가장 잘 아는 수의사의 이야기가 또 떠올랐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조심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 더 신경 쓰고 그것에 대한 교육을 보호자가 받는 게 더 낫다,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왜 이제까지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녀석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하면서 더욱 트라우마의 끈으로 묶은 내 발등을 찍고 싶었다. 나는 너무도 트라우마에 대해 집착했고 지우고 싶어 했다.

왜 나는 내가 맞추고 조심해야 할 생각은 못했는지,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내 개의 좋지 않은 기억도 사람이 심어 준 것이다. 

난 내 개와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할 것이며 내가 극도로 조심하며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교육받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후 나의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인정하는 것, 이것은 모든 세상에 통용되는 가장 좋은 방법인 듯하다.

잊지 말자.


어디에서도 사납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으며 내 개는 만지지 말아라, 물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처음엔 창피했고 그런 애를 어떻게 키우냐,라는 둥 안락사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런 말이라는 것과 싸우고 있는 중이지만 꽤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내 개는 나와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나 또한 내 개와 함께 했을 때 참 행복하다. 


나는 오늘도 말한다.


“이 개는 만지지 마세요, 물 수 있어요”


라고 말이다. 이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기억하자.


평생을 내가 조심하며 스스로 교육하며 반려견을 키울 것이다. 

건강한 반려견 문화 조성에 이바지하자, 풉.



(애월 해변여행횟집)



우린 관광, 이라는 의미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차귀도에서 사 온 오징어를 씹으며 숙소에서 각자의 휴식을 취했다. 쭉 취하지 못했던 수면 덕에 시간이 갈수록 나의 몸이 피곤하다며 신호를 보냈다. 


제주에서는 영양제에 의지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결국 맛있게 꿀꺽 삼켰다.


아, 차귀도 오징어 이거 정말 물건이다. 

이렇게 맛있는 오징어는 처음 입에 물어본다. 

그만 씹어야지 하는 생각과 다르게 입은 오징어를 오물거리며 씹고 있었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하러 나갈 때까지 계속.


제주에서 부리는 엥겔지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해산물의 천국 제주에서 해산물을 꼭 그들이 먹고 가야 한다, 는 압박감이 있었다. 

폭풍 검색을 시작했고 역시 댓글과 블로그 운영 방문자들의 평가는 모두 A급이다. 

또한 1인분의 양을 판매도 하지 않지만 2인 이상의 회 한상은 거의 25만 원을 육박했다. 

솔직히 그 가격을 받고 다녀온 후기가 좋지 않다면 더 말이 안 되는 상황일 것이라 생각했다. 


애월 해안도로의 모든 횟집은 모두 유명 횟집, 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있었다. 

마치 가격을 맞추기라도 했는지 만원 이만 원의 차이가 있을 뿐 가격은 거의 비슷했다.


이층에서 쉬고 있는 조카들의 엄마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여기 어때?
 좀 오래됐지만 여기 지역민들이 자주 가는 횟집이야
 그래서 가격도 착하고 맛도 좋고”


아, 나는 이들을 좀 더 예쁘고 바다와 가까이 있는 곳에 데려가 입과 눈을 충분히 만족시켜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똑 부러지는 결단에 나는 손을 들었고 우린 출발했다.


나는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조금 놀랐다. 

아니 솔직히 아주 많이 놀랐다.

요즘 좌식으로 된 식당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리고 난 좌식 방식의 앉는 방법이 좀 어렵다. 

허리가 받는 압박 좀 강하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하다. 

그리고 식당의 바닥은 정말 오래된 짙은 회색의 시멘트 바닥이었고 오픈된 주방이긴 했지만 시설이 모두 낙후되어 있었다. 다시 둘러보았다.


식당에 방문하기 전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네 횟집입니다”


“안녕하세요, 일곱 시 네 명 예약 가능할까요?”


“일곱 시요? 네 가능해요”


숲 속에서 공수해 온 와인을 서둘러 맛보고 싶었다.


“그럼 혹시 콜키지 가능할까요?”

(Cork와 비용을 의미하는 차치 Charge의 줄임말)


여사님의 대답이 재밌었다.


“우린 그런 거 안 팔아요”


참, 나도 짓궂다. 


사실 이 문화는 대한민국의 문화도 아니고 나 또한 생소했던 단어였다. 

제주에서의 식당 반응이 참 궁금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구수함, 또는 나의 엄마가 했을 법한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식당 안은 볼이 발간 손님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이 또한 그녀의 선택에 엄지를 척, 하고 들어주고 싶은 광경이지 않은가.


우린 반사적으로 신발을 벗고 자리에 착석했다. 

진하게 퍼지는 매운 고춧가루와 생선의 비릿한 향이 코 주변을 맴돌았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메인 회는 절대 아님

메인 회가 나오기까지 우리가 먹어 치운 요리의 가짓수가 몇 개였지?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온갖 해산물을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니 참 감사했다.


우리가 식사의 끝을 달리는 중, 아이들과 두 엄마가 식당 안을 들어왔다. 

그중 한 아이의 세상은 보통과 다른 특별한 눈으로 보는 아이 같아 보였다. 


아이가 불편함을 호소하는 방법이 보통의 표현과 다름을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의 엄마의 미간은 여느 엄마의 모습 같지 않았고 내내 웃는 모습을 보였다. 분명 아이의 엄마는 조금 다른 아이를 인정해 주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수없이 연습하고 고민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오늘따라 엄마,라는 존재가 참 기이할 정도로 너무 높은 사랑의 존재라고 느껴졌다. 

소리 없는 응원을 조용히 보내 본다.


참 대단했던 요리의 향연을 마치고 계산을 하며 남자 주인장과 여러 담소를 나누었다. 

주인장이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따뜻했다.


참, 남자 주인장이 말했다.


“다음에 올 때는 식탁을 만들어 놓을게요 허허허”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나는 좌식 방식으로 고단했던 허리를 아무렇지 않은 듯, 꺾어 굽혀 정중히 인사를 했다.

음식에 대한 감사함의 여운은 오래 동안 남았다. 



(마이클 잭슨)



두 시간 동안 잘 있어 준 개에게 칭찬을 하고 간식도 주고 바람도 쐬어 준다. 

우리가 맛볼 와인을 위해 이만 닦으면 잘 수 있는 환경을 미리 만들었다. 그래야 취기에 뭔가를 행동하지 않고 이불로 들어갈 수 있다. 이건 어쩌면 나의 루틴이다.

와인과 동치미의 찰떡같은 궁합

우린 드디어 와인을 오픈했다. 

내추럴 와인을 처음 맛볼 그녀의 눈이 반짝거렸다.


나도 그녀를 따라 흥분했고 그 분위기에 맞춰 음악을 틀었다. 나이가 들어도 자매는 어릴 때와 같다.

 

달라진 건 조금 더 늘어난 서로의 대한 이해와 안쓰러움의 눈물일 것이다. 


우린 달짝지근한 과일과 얇게 썰어 놓은 소고기를 구웠다.


맑고 고운 소리가 들린다.

“펑”


코르크 마개가 기분 좋게 뽑혔다. 

나는 무식하게 병을 흔들었다. 알다시피 절대 시원함과 멀리해야 하며 짧은 시간 동안 마시기도 멀리해야 한다. 적정한 온도와 지나가는 시간은 와인을 백 가지 맛이 넘는 요물로 변하게 만든다.


그녀가 첫 잔을 넘겼다.


“꿀꺽”


아, 이 시간은 언제나 긴장되는 시간이다.

한참을 음미하더니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탄식이었다.


“어어엇, 스읍 이거 뭐지?
 뭔가 목에 탁 걸리는 느낌?”


나도 따라 와인을 마셨다. 

느리게 느리게 삼킨 후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 맛은 상상해 보지 못한 맛이었고 나는 너무 놀랐다. 

마치 굉장히 매력적인 드라큘라 백작과 와인을 한 잔 했을 때 느끼는 맛이라고 해야 할까?


첫맛의 달콤함이 제대로 넘어왔다?라고 유혹했을 때 그 기분은 사라지고 씁쓸함과 시큼함과 강한 알코올의 향이 목을 제대로 강타했다.


그녀의 말이 맞다. 

그리고 우린 다시 또 마셨다. 이건 마법의 와인이다. 

우린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어울리는 안주를 찾아야 했다. 강하게 응축된 과일을 마시는데 과일 안주는 쓸데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내가 직접 담근 동치미를 꺼냈다.


고이고이 육지에서 모셔온 이것은 내가 제주에서 아껴먹던 참이었다. 


우린 동시에 감탄했다.


“이야, 이거 야”


역시 와인은 동치미와 참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꽤 높은 알코올 도수에 우리의 얼굴은 점점 감귤이 되어가고 있었다. 추워서 덜덜 떨던 모습은 온데 간데없이, 목을 감싸던 옷은 저절로 접혀 브이넥을 만들었고 단벌로 버티고 있던 나의 카디건도 사라졌다.


몸이 순식간에 따뜻해졌고 우리의 웃음은 더욱 커졌고 많아졌다.


조카들은 하나 둘이 층에서 내려오더니 하이에나처럼 먹을 것을 찾았다. 

이제 갓 성인이 된 큰 조카는 요즘 찾아보기 힘든 성격을 갖고 있다.

늘 느긋하고 할 말만 하고 많이 참고 속도 깊은 아이다. 일찍 철이 들어버린 건 아닐까, 란 생각에 늘 미안하기도 했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이야기했고 또는 울컥했다.


다 마셔버린 와인 병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들고 잔에 따라내는 시늉을 계속했다. 아쉬움에 맥주를 꺼내 보았다.


잘 들어가진 않았지만 탁자가 풍성해 보이는 것에 만족했다.


한때 우리가 정말 사랑했던 가수의 음악을 틀었다.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이 음악을 듣는다면 동시에 일어나 춤을 춰야 한다. 

이건 무언의 약속이었다. 우리 넷은 발개진 얼굴로 똑같은 동작으로 춤을 췄고 그녀는 말도 안 되는 문워크까지 선보였다. 


나는 그날 밤 자기 전 신에게 기도했다.


“이 가족을 저의 곁에 머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한 삶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주에 온 이유와 모든 애달픔이 낮게 가라앉았고 행복에 겨워 부리는 나의 치졸했던 내면을 다시 한번 깊은 내면 속으로 묻었다.

그녀의 정성 어린 악필

다음 날 아침 그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로 떠났다.


그녀를 떠올리면 만년 소녀 같음에 눈을 부라리기도 하지만 또한 그 모습에 너무 감사한다. 

쓰라린 삶은 내색할 수 없던 그녀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생채기를 냈었다. 그것들이 반복되었고 강력한 장점으로 그녀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수 백 번을 넘어지고 또다시 회복하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강한 엄마였다.

우린 그 상처를 꺼낼 때마다 특유의 웃음과 유머로 그것들을 넘겨 내지만 찰나의 눈 마주침을 눈물로 울컥, 내비치기도 했다.

수많은 날들을 그랬다.


앞으로도 우린 반복하는 삶을 살 것이다.

두렵지 않다. 

그녀의 곁에 내가 있음을 내 곁에 그녀가 있음을.

때론 서로 상처를 내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우린 서로의 휴식이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존경의 인사를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하긴 루꼴라도 맛있는 건 같다)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에게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근데 그 루꼴라 있잖아?”


나는 한참 생각했다.


“응?”


“아니다, 리꼴라인가?”


그녀는 동화 속 초록 불 냄새가 나는 그곳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미친 듯이 웃으면 말했다.


“삐꼴라 상점”


우린 한참을 마법의 숲 속 이야기를 나누며 마법의 와인 맛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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