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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May 14. 2024

7. 손님과 땅콩 된장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비몽사몽, 피곤을 곱씹어야 하는 루틴이 오늘은 되풀이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숙면을 두 시간은 했다는 증거다. 내 개도 오늘의 컨디션은 꽤 좋아 보인다.


오늘은 맞은편으로 이사를 해야 할 계획이며 오후에는 게스트가 올 예정이다. 

할 일이 태산인데 눈치도 없이 비가 말도 안 되게 주르륵 내렸다. 일기 예보를 확인하니 끝도 없이 비가 내릴 예정이라 한다.

나는 여전히 잠수해야 할 듯하다.

망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 개는 비가 와도 나간다. 그렇다면 나도 비가 와도 따라 나가야 한다.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상전 개다.

먹을 것도 의심이 많아 킁킁, 먼저 냄새를 맡거나 먹어 보지 않은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라고 말하면 당신들은 믿어 줄 것인가?


갑자기 떠올랐다. 

나의 동생의 반려견은 나의 개와 같은 견종이라고 우린 믿어왔지만 아뿔싸, 동생의 반려견은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나의 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과 성격을 갖고 있는 개다.


가족 모임으로 온갖 음식을 펼쳐 놓고 먹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음식 중 하나를 빛의 속도로 뛰어들어 물고 가더니 사라졌다. 아주 납작한, 아직 체 썰지 않은 고기의 종류를 개는 벌써 목으로 넘기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개의 얼굴 보다 더 크고 기도를 막고도 남을 만한 사이즈다.


나의 동생은 빛의 속도는 되지 못했지만 아주 빠르게 개의 복부를 잡고 개의 입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반은 개의 기도 속으로 들어간 그것을 아주 힘들게 아구 힘을 쥐며 빼내고 있었다.


와, 정말이지 그 광경은 공포스러웠다.

개는 이를 악물고 버티고 누군가는 온몸에 힘을 주어 빼내고 있다.

삼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


만약 그것을 꿀꺽, 넘겨 버렸다면 그 뒤에 있을 일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매우 끔찍, 이라는 감정 표현이 나왔을 것이다. 겁을 먹고 있던 나의 개는 그 광경을 보고 종종, 뒷걸음 질을 치며 그 당시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쩝.


동생의 반려견은 알고 보니 개가 아닌 음식을 향해 끊임없이 사냥하는 하이에나였다. 


이제 비,라는 건 뭐 특별할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인간은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동물이다. 인간의 사회화에 적응되어 있는 개도 물론 그런 것 같다. 세상에 나와 나의 개가 정말 싫어하는 비,라는 것에 적응을 하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짐을 현관 쪽으로 몰아넣고 예의를 위한 청소도 하고 공수해 온 피톤치드로 바닥도 닦았다. 정든 이곳, 계단과의 협상이 안 되는 이곳을 이제 떠난다.

아마도 다시는 오지 않을 곳.

잘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비의 굵기가 점점 굵어진다. 펜션지기 여사님이 도움을 주려 했지만 나는 극구 사양했다. 짐이 무겁긴 하겠지만 종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이쯤은 내가 할 수 있어야 했다.

아주 당연히, 그리고 거뜬히.


캐리어 두 개 대형 보스턴 백, 큰 박스 세 개, 개 용품, 아이스 박스 두 개, 따져 보니 여섯 번 정도를 왔다 갔다 움직이며 비를 맞으면 될 것 같았다. 


짐은 현관문에서 베란다로 옮기는 방법을 선택했다.

베란다 앞으로 쭉 펼쳐진 나무 판 위에서 빗물이 고여 있었다. 그 상황을 보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 번의 헛디딤은 남은 제주 생활을 좌지우지한다’


나는 워낙 잘 넘어지는 편이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했다. 방심하는 순간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럽게 미끄러질 것이다. 가장 무서운 상황이라 상상할 수 있는 것, 일어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라면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굵은 빗줄기를 천천히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극세사로 된 두꺼운 잠옷을 입고 있었고 카디건도 걸치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왕복으로 이렇게 흠뻑 젖을 수 있다니 느린 걸음과 빠르게 내리는 굵은 빗줄기는 참 적과 같다. 두 번의 왕복까지 나는 비를 조금이라도 덜 맞기 위해 애를 써보려 했다.

하지만 그건 헛된 노력임을 빠르게 자각하고 나는 온몸으로 굵은 빗줄기를 받아들였다.


그래 맞다.

그대로 받아들이기.


젠장, 박스의 크기만 생각하고 물건을 있는 그대로 마구 집어넣은 것이 화근이다. 

어렵게 들어 올린 박스를 배의 힘으로 버텨 보려 했지만 어려웠다. 

어렵게 옮긴 박스를 내려놓자마자 허리가 허걱, 삐걱, 거렸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허리를 갖고 태어났다. 

이제 비를 맞는 것은 볕을 받는 것과 같이 되어 버렸다.


나는 처음 보다 더 천천히 짐을 들었고 욕심을 내던 행동은 이제 두 손에 하나의 짐을 들고 옮기라고 말한다.

일어나는 모든 것에는 끝이 있지 않은가.

이것은 정말 중요한 믿음이다.


아, 정말이지 홀딱 젖었다.


악 개야 제발 너까지 이러지 말자.

짐을 모두 옮긴 후 열려 있는 베란다 문 사이로 개가 잔디로 탈출했다. 곱실거리는 개의 털은 물을 머금게 되면 건조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 망했다.

역시 나의 포기는 빠르다. 


홀딱 젖은 몸으로 나는 개의 배변 활동과 냄새 맡는 활동을 지켜보았다. 개도 애써 털에 고인 빗물을 흔들어 털어 보지만 개도 나처럼 굵은 빗줄기를 이길 수는 없다.

개는 현실을 직시했는지 몇 번을 돌고 돌다 스스로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함께 질질질.


오픈 슬리퍼 덕에 숙소 안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발자국이 생긴다. 

하, 몸을 아주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헌데 내게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이런 일에 웃음이 나오다니 이곳은 자꾸만 내게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들, 이라며 모른 척하거나 내일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었다. 

나 홀로 생활, 이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대충 보면 용기 없는 나약한 사람과 같은 뜻,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내게 용기가 얼마나 필요했을까, 누가 되든, 상상이 갈까 모르겠다.


다른 이들은 아주 쉽게 말한다. 

혼자 여행 가는 것처럼 좋은 일은 없다, 너도 나도 그것을 지향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게 가장 쉬운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가장 쉬운 일을 이제까지 나약함으로 하지 못했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지인과 통화 중 그녀가 내게 말했다.


“참 용기 있다, 정말 용기 있는 행동이야
 아무나 못하는 거야, 응원한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 나가 아닌 나라는 뜻, 내가 용기 있는 자,라는 응원의 메시지다. 

한 주를 넘기며 약간의 위축감도 들었고 캄캄한 밤을 홀로 보낸다는 것에 공포감도 살아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응원에 나는 커다란 용기를 다시 채워 넣었다.

흠뻑 젖은 자신만만한 생쥐

내가 기특했다.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고 아직 정리할 짐은 산더미고, 젖은 개에게도 물이 뚝뚝 떨어졌고 뱃속은 꼬르륵, 거렸고 어깨는 후들후들 떨렸다.

하지만 뿌듯했다.

홀로 낯선 땅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는 참 예술적이고 창의적이다.

역시 환상의 섬 제주인가.

제자리를 찾은 주인 있는 물건들


꼼꼼하게 짐을 정리한 후, 개의 털도 말리고 뜨거운 물로 샤워도 마쳤다. 

아주 상쾌했다. 시원한 맥주를 꺼내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아보겠다. 


끼니를 챙겨야 하는 시간을 넘기고 나니 일단 배고픔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어묵은 없지만 뜨끈한 우동을 끓여 먹을 작정이다. 

이런 날씨에 최고이지 않은가.


우선 물을 올려놓고 여러 채소들을 훑어보았다. 육지에서 가져온 알배추와 대파를 꺼냈다. 

당근도 먹을까, 고민하다가 너무 과다 섭취를 하는 것 같아 자제해 볼 생각이다. 당근은 과다섭취를 하면 눈의 흰자, 또는 손의 피부가 노란빛을 띨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채소도 과하면 뭐든 부작용이 있는 법이다.


제품 설명서가 말하는 물의 양 보다 조금 더 넣어 끓였다. 고체 육수 한 알과 간장을 첨가했다. 

알배추는 네 장 정도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대파는 달걀 프라이와 함께 먹기 위해 얇게 썰었다. 달걀 프라이는 파를 송송 썰어 튀기듯 함께 구워 먹으면 일품이다. 개인적인 입맛은 대파가 완전히 익는 것보다 식감이 어느 정도 살아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튀기지 않을 작정이다.


아, 비가 참 억수로 내린다. 

제주에 와서 익숙해진 풍경은 내리는 비와 바람일 것이다. 

역시 난 비를 몰고 다닌다.

어디를 가도 그렇다.


내리는 비 덕에 가쓰오부시의 냄새가 유난스럽게 코를 찌른다. 언제 맡아도 식욕을 돋우는 냄새다. 

우동에 채소를 넣을 땐 마지막에 넣어야 아삭함을 유지한다. 

인덕션의 전원을 내린 후 배추를 넣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배추는 축 늘어지게 되어 있다. 

완성된 배추 우동
완성된 반숙 대파 달걀 프라이

달걀 프라이를 할 때는 뚜껑을 살짝 덮어준다면 완성되었을 때 모양도 예쁘게 나오고 알맞은 반숙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늘 써먹는 방법이다. 

노른자의 반숙을 비리다고 느끼는 사람은 소금 대신 간장과 후추를 조금 뿌려주면 도움이 된다. 

그리고 썰어 놓은 파도 함께 씹으면 더욱 맛있다. 

노랗게 잘 익은 겨울 배추는 역시 달고 맛있다. 어떤 요리에도 참 잘 어울린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봐도 실리콘 지퍼 팩을 개발한 사람에게 찬사를 보낼 만하다. 

따봉.


채소를 이렇게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뜨거운 가쓰오부시의 우동 국물이 비 맞은 생쥐 같았던 나를 따뜻하게 해 주었다. 

내 개도 간식을 실컷 먹더니 뜨거운 드라이 바람에 지쳤는지 곤히 잠들었다. 


비 내리는 광경을 매일 보고 있지만 빗소리가 주는 나른함과 평화로움은 제주에서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비 내리는 제주, 음 이제 좀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내가 너무 긍정적인가? 

와, 이렇게까지 내가?

세상에 또다시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다.

비와 바람과 따뜻한 커피

나는 스스로 정해놓고 지켜야 하는 약속이 참 많다. 

그중 하나, 식사를 마치면 부득이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무조건 바로 뒤처리를 한다. 혼자 생활을 할 때는 더욱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이십 대부터 길러온 습관이다.


홀로,라는 것에 게을러지지 않을 것이며 나태해지면 안 된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없을 때 더욱 나를 긴장시켜야 삶이 좀 더 만족스럽고 윤택해진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진리다.


이제 자리에 앉아 익숙해진 내리는 비의 낭만을 즐겨 본다.

이전 숙소와 다르게 일층의 통 창은 기분 좋은 한숨을 뱉게 만들어 준다. 흔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시간도 금 보다 더 귀하게 여기게 된다.


아, 따뜻하다.

미리 올려놓은 난방장치 덕에 비에 젖어 얼었던 나의 발을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자, 에너지를 채워보자.

방문할 나의 게스트들을 위해.

아이고 허리야…



(땅콩 된장)


덴젤과 화이트

나의 게스트가 도착하기 전 노곤한 몸을 조금 뉘어 쉴 수 있었다. 

드디어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모 우리 도착 십 분 전이야”


나는 부랴부랴 카디건을 걸치고 그들을 마중 나갔다.

갓 대학을 입학한 첫 조카는 막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얼굴이 퉁퉁 부었고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긴 여정을 아들 둘을 데리고 온 그녀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인사는 짧고 애틋하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춥냐? 
 제주도가 춥다니”


막내 조카도 거들었다.


“이모 비행기 타기 전까지는 안 추웠거든? 
 근데 제주도 너무 추운데?”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대답했다.


“이모는 제주 도착 후 하루 빼고 계속 비 왔어
 왜 안 춥겠어?”


셋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웃었다. 


나는 8일을 적막과 친해지며 글을 적고 또 적었다. 적막과 더욱 친해져야 할 때 그들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적막은 사라졌고 이제 정말 시끌벅적하다.

그들을 보자마자 짖는 내 개는 가족임을 너무 잘 안다. 

내내 풀 죽어 조용하던 내 개의 활동성이 대단하다. 

눈과 입이 계속 웃고 짖는다.

조카들이 부른다.

곱슬거리는 제주 개의 털을 보며 말했다.

(사실 육지에서의 내 개의 털은 늘 정돈된 상태였다, 세상에 지금은 털도 제대로 빗지 않은

곱슬거리는 털이 되어 있다)


“개야 잘 있었어?
 너 제주 좋아?”


계단을 올라서는 그들의 발소리가 웅장하고 정겹다.

우린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저녁식사로 근처 고깃집을 선택했다. 오다가다 보면서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터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사장님의 포스가 대단했다. 뭔가 음식도 대단하지 않을 까,라고 생각하며 주문한 고기를 열심히 구웠다.


밑반찬이 모두 특이했다. 

겉절이의 포스도 사장님처럼 대단했기에 맛도 대단할 줄 알았다. 그녀의 입에 먼저 들어간 순간 두 입을 씹더니 그녀의 작은 눈이 커다래졌다.


내가 말했다.


“왜? 맛있어?”


그녀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음, 먹어 보지 못한 맛이야”


아, 이 뜻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지만 난 그녀의 해석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래도 실험적인 것에 적극적인 나는 외면할 수 없었기에 내 입에 겉절이를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딱 두 번이다. 

딱 두 번을 씹고 삼켜야 나오는 소리와 커다란 눈이다.


“으엇? 뭐지?”


정말 나 또한 먹어 보지 못한 맛의 겉절이다. 

뭔가 젓갈 맛이 느끼다가 잘못 쓴 고춧가루의 텁텁한 먼지 맛이라고 해야 할까? 

맛없지도 맛있지도 않은 괴상한 맛이었다. 맛있다,라고 느끼려던 찰나, 앗, 이라며 미각이 빠르게 변해버렸다. 


사람들은 꽤 그런 편이다. 

어떤 특정한 관광지에 가면 보통 먹었던 비슷한 음식의 맛도 뭔가 특별한 것이 들어갔을 것 같고, 더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는 이 식당에서 그들과 앉아 있는 내내 그랬던 것 같다.

여러 반찬 중, 고추 된장 무침에 땅콩이 섞여 있었다. 매우 달달한 맛이었고 특별하다면 땅콩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어 나온 된장찌개를 보니 땅콩 된장 소스와 꽤 색깔이 비슷했다.

된장찌개는 우리가 보통 식당에서 먹는 색깔과 맛이 아니었다.


나는 말했다.


“이거 된장 땅콩, 땅콩 된장 아닐까?
 이것 봐, 고추 된장 무침도 땅콩이 들어가 있어”


그녀와 조카들이 동시에 뱉었다.


“아아”


그때 서빙 해 주는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이 된장국은 집 된장인가요?”


여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산 거예요”


“아, 그럼 혹시 땅콩 된장인가요?”


여자가 나를 좀 이상한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아니요 마트에서 산 그냥 재래된장이요”


직원이 자리에서 떠난 뒤 나의 자매 그녀와 눈이 마주친 후 우린 미친 듯이 웃었다.


아, 어쩌면 나는 나의 게스트에게 뭔가 특별함을 남겨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린 한참 삼겹살을 구워 먹다가 발견했다. 

제주에서 삼겹살을 맬젓 없이 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설마 깜박했을 거라는 생각에 다시 손을 들었다.


“맬젓 좀 부탁드려요”


“아, 네네”


다행이다. 역시 깜박한 모양이다.

직원은 스테인리스 작은 볼에 가득 담긴 멜젓을 구이판 위에 올려놓았다. 

우린 맬젓이 끓어오르길 기다리며 익은 고기를 젓가락질하는 행위를 잠시 보류했다.

잠시 후 멜젓이 바글바글 끓었다. 

갑자기 그녀가 물을 맬젓에 부어 섞었다.


“에? 뭐 해?”


“이렇게 해야 돼”


난 이해할 수 없었지만 5분 뒤 그녀의 명석한 행동을 이해했다.

가장 먼저 내가 고기를 멜젓에 듬뿍 찍었다. 그때 형체가 또렷한 멸치가 걸려 올라왔다. 또다시 우리들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다시 웃었다.


“에이 제주잖아, 이렇게 먹는 건 가봐”


아마 그녀는 속으로 그… 그래하며 더듬어 대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푹, 하고 적신 고기를 입에 넣었다. 씹어야 한다. 

꼭꼭 씹어서 넘겨야 한다. 하, 도저히 넘어가질 않는다. 나는 고기 하나를 들어 그냥 입에 넣었다. 

그리고 무식하게 씹었다.

아주 빠르게 맥주를 한 번에 넘겼다. 


막내 조카가 키득거리며 웃으며 말했다.


“이모 여기 뭔가 이상해”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이상한 건 맞다. 

나는 말했다.


“우리 곱창전골 먹을까?”


그녀가 말했다.


“돼지 아냐?”


막내 조카가 말했다.


“이모 그냥 안 시키는 게 나을 거 같아”


“왜? 아직 더 먹어야잖아?”


조카 둘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큰 조카가 말했다.


“여기서 더 시키는 건 아닌 거 같아”


난 모두의 말을 듣지 않고 게장과 곱창전골을 시켰다. 

정말 뭔가 이것이라도 특별하길 바랐다. 제주이지 않은가, 또한 여러 검색에서 이 식당은 분명 맛집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나는 또 실패를 한 것일까.


“여기, 곱창전골이랑 게장 하나 부탁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 황게장은 그녀가 너무도 잘 먹었다. 다리에 있는 살까지 싹싹 잘도 발라 먹었다. 

정말이지 뿌듯했다. 반은 실패했지만 또 반은 성공한 것이다.


팔팔 끓어오르는 곱창전골을 맛볼 차례다.

나는 괴이한 특별함을 찾았다. 그녀와 내가 눈을 마주하고 미친 듯이 웃었다. 

맛을 보자마자 이건 시판 곱창전골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맛은 있었지만 특별하다고 말해야 한다면 시판 곱창전골이라는 점이다.

아, 식당에서 시판되고 있는 음식이라니.


오랜만에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마주 보고 이야기도 나누어 보니 솔직히 살 것 같다.

나는 계산을 마치고 아직 풀지 못한 미스터리 겉절이에 대해서 알아내고 싶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최대한 기분 상하지 않도록 질문을 해야 했다.


“사장님, 혹시 겉절이에 젓갈이 들어가나요?”


안 그래도 인상이 꽤 무서운 남자 사장은 갑자기 여러 생각을 하는 듯 우리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나는 눈치를 살폈다.


“맛이 굉장히 특별하고 먹어 본 맛이 아니라서…”


나는 특이하다,라는 단어 대신 특별하다,라는 단어를 썼다. 

사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진 않았지만 꼭 알아보고 싶었다. 


사장이 입을 열었다.


“저 겉절이는 전라도에 명인한테 얻은 레시피로 한 거요 좋은 젓갈 종류는 다 들어가요
 멸치젓, 새우젓, 갈치 젓”


나는 멸치젓, 이라는 단어를 듣고 내가 맛보았던 그 멸치젓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특이한 맛이 그 맛이 맞는 것 같았다.


“아, 잘 알겠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나는 오늘 나쁜 짓을 했다. 

음식이 맛없다, 가 아니라 괴상한 맛이 나면 맛없는 것보다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으며 그 식당은 앞으로 맛을 실험적으로 바꾸거나 더 나은 맛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라니 난 큰 잘못을 한 거다. 


우리는 돌아오는 내내 할 말이 너무 많았다.

겉절이의 맛에 대해서 꼭 특별함을 만들고 말 테다,라는 이상한 조합의 땅콩 된장까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의 억지가 이들을 좀 행복하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말했다.


“혹시 너 수행하니?”


“응?”


“아니 매 끼니를 직접 해결하고 
 과식 안 하고 간식 안 먹고
 수행하는 거 아니야?”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런가?"


“오늘 평소 너 같지 않다?
 되게 외로웠나 보다? 응?
 아니 말이 왜 이렇게 많아?”


우린 또 크게 웃어 댔다.

숙소로 돌아온 우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웃었다.

나의 우울의 깊이 언제나 얕게 만들어 주는 이들이 있어서 나는 이틀 내내 행복할 예정이다.


고마워, 나의 자매 그녀 정.




(달콤 쌉싸름한 나의 가족)



나는 이제까지 이루지 못한 잠을 한꺼번에 숙면을 누린 것 같다. 

역시 혼자와 여럿이라는 단어는 확연히 다르다. 


갑자기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아버님이 지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후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홀로 지내셨다. 가끔 어머니와 함께 밤을 보내고 나면 아침에 꼭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야야, 니들 덕에 너무너무 잘 잤다”


나는 이 말을 이해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지금 10일 동안 단 하루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 보낸 어젯밤은 참 달콤한 수면을 이룰 수 있었다.


경험이란 것을 한꺼번에 빠르게 할 수는 없는 걸까? 

그렇다면 내가 어머니를 이해하는 시간이 더 빨랐을 것이다.


모든 일들이 그렇다. 

경험을 직접 하지 않고 남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건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또한 나의 능력은 남들의 이해력 보다 더 떨어진다.

그런 예로 인해 많은 오해와 상처를 불러일으킨다.


왜, 사람은 경험을 해야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야만 한다면 빨리 익힐 수는 없는 걸까? 그게 인생이라면 참 조금은 섭섭하다.


인간의 삶이 결코 길지는 않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든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밉다,라는 감정을 배제시킬 수만 있다면 그 삶은 과연 인간의 삶이 아닌 게 되는 걸까?

오랫동안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었던 나다.


나는 오늘 또 누굴 얼마나 미워하게 될 것인가 에 대하여.


오랜만의 단잠으로 나의 컨디션이 하늘을 찌른다.

가장 먼저 일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첫 끼니를 요리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이 행위는 사랑이 가득한 행위이다. 참 행복하다.


아침은 간단하게 두부와 식빵, 그리고 아침에는 빠질 수 없는 달걀을 요리할 생각이다. 

우선 끓는 물에 두부 한 모를 데친다. 데친 두부는 물기를 빼기 위해 단면에 소금을 뿌린 후 채반에 놓는다.

채소는 식성에 맞게 어떤 것을 사용해도 맛이 좋다. 

나는 약간의 단맛을 살리기 위해 붉은 파프리카와 약간의 매운 감칠맛을 위해 양파를 썰었다.

양파의 알싸한 맛은 조카들의 식성에 맞지 않기 때문에 십분 정도 물에 담가서 사용한다. 모든 재료의 물기가 빠져나갈 틈에 버터헤드 래터스를 씻어 툭툭 털어 무심하게 찢어 접시에 올려놓는다. 


무슨 채소 이름이 이렇게 어려운지 나는 늘 버터헤드, 까지만 말한다. 

음, 왜냐면 그때그때마다 다른 이름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레터스라는 말이 잘 붙지 않는다. 

하지만 샐러드로 먹기에 이만큼 부드럽고 싱그러운 채소는 없다.


물기가 빠진 두부를 키친타월로 한번 닦아 낸 후 포크로 으깨 준다.

숟가락으로 으깰 경우엔 죽처럼 변한다. 어느 정도 씹는 느낌과 크기를 위해서는 포크가 적당하다. 

으깬 두부와 파프리카, 그리고 후추, 소금과 함께 아주 살살 섞어 준다.

너무 오래 섞을 시에는 물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한다.

식빵은 알맞게 구워 주고 달걀 프라이는 뚜껑을 닫아 같은 방법으로 예쁜 반죽 프라이를 만들어 준다. 

두부 파프리카 샐러드

빠질 수 없는 커피는 2인용을 담았다. 

이른 아침부터 커피 향이 숙소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이 향기야 말로 행복의 향기일 것이다.


“얘들아, 내려와”


그녀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들린다.


“응”


우다다다다다다


부실해 보였던 계단은 꽤 튼튼한 모양이다. 튼실한 이들 셋을 잘 버텨주고 있다.

역시 나의 조카들과 나의 그녀는 참 맛있게 먹는다.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다. 

그녀가 두부 샐러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 이거 되게 큰 숟가락으로 막 퍼먹고 싶어”


나는 날개만 있다면 행복에 겨워 하늘로 날아갔을 것이다.


“응, 먹어 먹어 더 있어”


조카들은 역시 덩치답게 식빵 두 개를 더 구워 먹었다.

참 뿌듯하다.



이제 오늘 하루 시작, 행동 개시를 할 시간이다.

나는 모든 정리를 말끔히 마치고 외출을 준비했다. 개의 물과 간식을 가장 먼저 가방에 넣고 혹시 모를 현금도 챙겼다. 

오늘은 벼르고 벼르던 그곳을 찾아갈 생각이다. 

우선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부족한 카페인과 눈을 호강해 줄 바다를 먼저 본 후 움직이기로 했다.


밖을 나오자마자 우린 너무 놀랐다.

내가 있는 내내 계속 불었던 바람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더 그들을 맞아주는 듯했다. 강력한 바람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 나의 덴젤이 오늘 잘 버텨 줄 수 있을까, 걱정이다.


바람은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개에게 굉장히 큰 불안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거센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오랜만에 나온 볕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홀로 다니면서 찍을 수 없었던 나와 개의 투 샷을 나는 큰 조카에게 부탁했다.

나의 큰 조카는 꽤 감성이 풍부했고 사진 찍는 능력도 일품이다.


“조카야, 어떻게 설까?
 이렇게? 이렇게?”



 

오랜만의 볕을 따라 움직이기 위한 준비

숨어있는 볕을 기다리며 사진을 찍기, 란 참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의 개는 한계점에 달하여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다. 

큰 조카가 말했다.


“이모 찍었어”


“응, 고마워”


자, 개야 달릴까? 우린 덴젤이 있는 곳까지 달렸다. 


뒤통수로 들리는 그들의 웃음소리, 말소리, 발소리가 나를 흥분시킨다.

잊고 있었다.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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